|
선친의 삼년상을 치르기도 전에
허달수는
물려받은 전답을 팔아 장삿길로 들어섰다.
배짱 좋고 통 큰 허달수는
개성으로 가서 닥치는 대로 인삼을 사
창고에 차곡차곡 쌓았다.
한양 허부자가
인삼을 매점매석한다는 소문이 돌자
인삼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때를 기다리며 명월관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허달수에게
그의 집 집사가 찾아왔다.
간밤에 질펀하게 술을 마신 후
해가 중천에 올랐는데도
어린 기생 도화를 끼고 누워 있던
허달수가 문밖의 집사에게 물었다.
“그래, 개성에는 다녀왔는가?”
“개성은 지금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습니다.
전국에서 몰려온 약재상들이
인삼을 구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내가 예측한 대로야.”
“한가지 꺼림칙한 것은
5년근 인삼이 6~7년근으로 둔갑해서
쏟아져 나온다는 소문이 떠돕니다.”
속치마만 걸친 도화가 들고 온
수정과를 벌컥벌컥 마신
허달수는 벌떡 일어났다.
“몽땅 팔아 치우게.”
큰돈을 쥔 허달수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명월관 기생 도화와 딴살림을 차렸다.
허달수의 부인은
끓어오르는 부아를 돈 쓰는 재미로 풀었다.
충무자개농에 분청사기백자를 구입해 들여놓고
친지를 불러 자랑하는 게 그녀의 일이다.
집에는 찬모·침모까지 두고,
영광굴비에 암소갈비로
하루 세끼가 진수성찬이다.
어느 날
개성에 다녀온 집사가
허달수에게 보고를 했다.
집사가 치부책을 펼쳤다.
“요즘 인삼값이 떨어져
재미를 못 보고 있습니다.”
“이번엔 안동포를 싹쓸이하게.”
치부책을 덮은 허달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며칠 후 안동으로 내려간 집사가
사람을 보내 돈이 모자란다고 전하자
허달수는 또 문전옥답 열마지기를 팔았다.
허달수는 장죽을 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분명 장사는 남는데
매번 돈이 모자라 땅을 팔아야 한다는 게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허달수는
선친의 친구이자 거상인
억만장자 염첨지를 찾아갔다.
허달수는
염첨지 어른의 집이 초라한데다
염첨지 버선 뒤꿈치가 헤어져 천을 덧댄 것에 놀랐다.
자초지종 곡절을 듣고 난
염첨지가 말 없이 뒷마당으로 가 허달수에게 말했다.
“우물물을 길어서 바가지에 담아
저 독에 물을 채우게.”
허달수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바가지에 물을 담자 물이 줄줄 샜다.
종종걸음으로 독까지 가서
반바가지도 남지 않은 물을 붓자
깨어진 독에서도 물이 샜다.
염첨지는 말 없이 들어가 버렸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허달수는 염첨지의 뜻을 알아차렸다.
들리는 소문에
집사의 고향에서는 팔려는 매물만 나오면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이
집사 부친이 땅을 사들인다는 것이다.
허달수는 도화와 차린 딴살림을 접고,
집으로 가 입던 비단 옷을 불태우고
녹슨 호미와 삽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