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사제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한다. 보편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에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의무 축일로 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주일로 옮겨 지낸다.
본기도
주님,
이 놀라운 성찬의 성사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성체 성혈의 거룩한 신비를 공경하게 하소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몰랐던 양식을 먹게 해주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8,2-3.14ㄴ-16ㄱ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15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16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제2독서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0,16-17
형제 여러분,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부속가
<21절부터 시작하여 짧게 할 수도 있다.>
1.
찬양하라 시온이여
목자시며 인도자신
구세주를 찬양하라.
2.
정성다해 찬양하라
찬양하고 찬양해도
우리능력 부족하다.
3.
생명주는 천상양식
모두함께 기념하며
오늘특히 찬송하라.
4.
거룩하온 만찬때에
열두제자 받아모신
그빵임이 틀림없다.
5.
우렁차고 유쾌하게
기쁜노래 함께불러
용약하며 찬양하라.
6.
성대하다 이날축일
성체성사 제정하심
기념하는 날이로다.
7.
새임금님 베푼잔치
새파스카 새법으로
낡은예식 끝내도다.
8.
새것와서 옛것쫓고
예표가고 진리오니
어둠대신 빛이온다.
9.
그리스도 명하시니
만찬때에 하신대로
기념하며 거행한다.
10.
거룩하신 말씀따라
빵과술을 축성하여
구원위해 봉헌한다.
11.
모든교우 믿는교리
빵이변해 성체되고
술이변해 성혈된다.
12.
물질세계 넘어서니
감각으로 알수없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13.
빵과술의 형상안에
표징들로 드러나는
놀랄신비 감춰있네.
14.
살은음식 피는음료
두가지의 형상안에
그리스도 온전하다.
15.
나뉨없고 갈림없어
온전하신 주예수님
모든이가 모시도다.
16.
한사람도 천사람도
같은주님 모시어도
무궁무진 끝이없네.
17.
선인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달라
삶과죽음 갈라진다.
18.
악인죽고 선인사니
함께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
19.
나뉜성체 조각마다
온전하게 주예수님
계시옴을 의심마라.
20.
겉모습은쪼개져도
가리키는실체만은
손상없이 그대로다.
21.
천사의빵 길손음식
자녀들의 참된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22.
이사악과 파스카양
선조들이 먹은만나
이성사의 예표로다.
23.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51-58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체의 열매: “할 수 있다!”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뭐니 뭐니 해도 성체성사로 삽니다. 만약 냉담하게 되는 신자가 있다면 성체성사의 의미와 효과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라고 하셨는지 이해해야만 합니다.
심판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먼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성체는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할 수 있음을 믿게 만드는 힘입니다. 어떤 자매가 아기를 낳고는 불안증으로 한강에서 아기와 함께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문을 걸어 잠가도, 친정어머니를 찾아가도 그 불안증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고로 결국 어머니는 목숨을 건졌지만, 아기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는 아기를 키울 능력이 있다’라는 믿음이 없다면 이처럼 진짜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믿어서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키우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의 애착 실험은 사랑의 실체를 증명하고 싶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새끼 원숭이를 어미와 떼어놓고 어미 사랑을 받지 못하게 한 채 키웠습니다. 그리고 교배시켜 또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새끼가 위험에 처하자 어미 원숭이는 새끼를 밀쳐냈습니다. 새끼 때 자신을 안아준 어미 원숭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야만 줄 수 있는 실체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먼저 어머니의 젖이라는 따듯한 양식으로 전해집니다. 그 양식을 먹은 새끼는 자신도 소중한 존재임을 믿게 되어 어미처럼 할 수 있는 존재라 믿게 됩니다.
옛날 일본의 한 천민 아이가 사무라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귀족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주가 새로운 성을 짓는데 그 성 기둥에 들어갈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합니다. 일본엔 기둥에 사람을 넣고 성을 지으면 그 성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그 기둥에 들어갈 테니 자신의 아이를 그 성에서 사무라이로 교육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성주는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약속대로 아이는 귀족 아이들과 함께 사무라이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귀족 아이들의 괴롭힘이 너무 심해서 밤에 도망치기로 합니다. 몰래 성을 빠져나가던 중 어머니가 들어있다는 기둥을 만납니다. 그는 그 기둥을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그 아이는 기둥을 지나쳐 도망갈 수 없었고 그래서 끝까지 참아내어 일본의 유명한 사무라이가 됩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들어계신 그 기둥에서 힘을 얻어 사무라이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어머니는 죽었고 그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힘이 그를 새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아이가 사무라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어머니의 피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매일의 양식을 먹으며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지니게 됩니다. 용서가 안 되는 이유는 용서하고 싶지도 않고 용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다음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가 바로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살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에 맞아들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분은 물 위를 걸을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요한은 이처럼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그리스도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생겨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야곱은 에사우의 옷을 입고 자신이 에사우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장자만이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에사우를 피해 도망치다가 베텔(하느님의 집)이라는 동네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거기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를 봅니다. 에사우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에사우의 옷을 입고 에사우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사다리의 양 기둥은 바로 희망을 상징하고 각 계단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많은 열매를 맺었고 그것을 나중에 에사우에게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체를 영하는 우리 운명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복음을 읽다 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신 뒤에 군중이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장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임금으로 세우려고도 합니다(요한 6,15 참조). 놀라운 빵의 기적을 통해 먹을 것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군중이 예수님을 쫓아다녔을까요? 그러나 돈 많은 부자같이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역시 예수님을 쫓아다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병자를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냈던 놀라운 장면에서는 쫓아다녔다는 말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육신의 배고픔이 채워지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집트에서 탈출하면서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야만 했습니다.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은 구원자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배고픔보다 더 큰 문제인 영적 배고픔과 갈증을 보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빵과 물고기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영적 배고픔과 갈증을 채워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100%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언젠가 내려올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즉,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나의 행복 전체가 될 수 없음에도 계속해서 이것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계속된 굶주림과 갈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즉 주님의 뜻을 다르며 함께할 때 진정한 포만감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사랑의 신비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계속된 굶주림과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 안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성체 성혈을 통해 진정한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이 성체와 성혈은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지는 영광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을 보지 못하면 성체와 성혈의 은총을 얻기가 힘들어집니다. 세상의 것만을 얻으려는 마음만으로는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미사성제를 통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그분의 사랑을 우리 삶에서 기억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제가 나눠 주니까 당연히 받는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랑을 통해 우리 삶이 변화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참 구원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다른 누군가의 길을 밝혀주기 위해 등불을 켜면 결국 자신의 길도 밝히는 것이 된다(벤 스위트랜드).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