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여정 "온갖 어려움을 비움의 계기로 삼읍시다"
2024.11.5.연중 제31주간 화요일 필리2,5-11 루카14,15-24
우리 말의 섬세하고 깊고 아름다움에 감동합니다. 비움, 섬김, 배움이 제가 참 좋아하는 그런 말입니다. 비우다, 배우다, 섬기다, 영성생활에 꼭 필요한 말마디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비움의 여정, 일상에서 겪는 온갖 어려움을 비움의 계기로 삼읍시다”입니다. 비움대신 배움을, 섬김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수도원 게시판에 붙은 “한국교회 축성생활의 해, 2024,11,21-2025.10.28.”팜프렛의 “평화를 향한 길 위에 있는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말마디가 좋습니다. 비움의 여정을 따르는 이들은 “평화의 길 위에 있는 희망의 순례자들”이기도 합니다. 참 아름답고 거룩한 이들이 평화의 여정, 비움의 여정중에 있는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제가 10년전 2014년 산티아고 순례시 최고의 수확은 삶의 여정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30일전후로 끝나는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우리의 전 삶의 여정을 압축하고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순례여정중 참 많이 강조해온 목적지, 이정표, 도반, 기도의 네 요소로 전 삶의 여정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이어 강조하는 것이 내 삶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일년사계로 압축했을 때 어느 시점(時點)에 위치해 있겠느냐의 확인입니다.
10여년 동안 강론에서나 강의에서 참 많이 강조해온 내용들은 제 남은 생애동안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시점(時點)에 대한 확인이 깨어 거품이나 환상없이 본질적 깊이의 참삶의 선물 인생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피정오는 대부분 사람들이 인생 오후 3-4시, 인생 가을에 걸쳐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비움이란, 비움의 여정이란 말마디도 참 깊고 아름답습니다. 비움의 겸손, 비움의 믿음, 비움의 사랑, 비움의 순종, 비움의 침묵등 비움 예찬에는 끝이 없습니다. 비움의 여정은 겸손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겪는 온갖 어려움을 그대로 놓아두면 짐이 되고 상처가 되겠지만 비움이나 겸손을 통한 치유와 더불어 영적성장의 계기로 삼는 다면 참 지혜롭고 풍요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비움의 여정, 겸손의 여정의 대가와 달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따라 평생 비움의 여정에, 겸손의 여정에 충실할 때 주님을 닮아 성인다운 참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며, 바로 이것이 영성생활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입니다. 이런 주님의 비움과 겸손, 순종을 집약한 오늘 제1독서 필리피서 그리스도 찬가, 비움(kenosis;케노시스) 찬가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 수도자들은 물론 신자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성무일도때 마다 이 비움 찬가(필리2,6-11)를 바칩니다. 참 하느님이자 참 사람인 예수님의 정체를 잘 보여주는, 우리 영성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아마 신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가에 속할 것입니다. 얼마나 고귀한 품위의 우리 인간인지 깨닫게 하는 참 고마운 복음입니다. 인간의 신비는 바로 하느님의 신비임을 깨닫게 됩니다.
누구보다 비움의 대가이자 달인인 그리스도 예수님께 정통해 있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주님을 닮아 비움의 여정에 시종여일 한결같았던 비움의 대가요 달인임을 깨닫습니다. 어제의 성화의 여정 강론 주제도 오늘의 비움의 여정과 그대로 통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2,5) 권고에 이어지는 전반부 말씀이 예수님의 생애는 물론 우리가 따를 비움의 여정에 대한 참 귀한 가르침입니다. 이런 주님의 파스카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비움의 여정이 있기에 파스카의 영광스런 부활과 더불어 영적승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찬가 전반부입니다. 겸손과 비움, 순종의 사랑을 통해 참 사람이자 참 하느님이 된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참사람의 원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오늘 복음의 초대를 사양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은 그대로 세상 탐욕에 가득한 무지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하늘 나라 큰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신을 비울 절호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대로 오늘날 비워야 할 비움의 여정 대신 채움에 중독된 채움의 여정을 사는 현대인들을 닮았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빈자리는 여전히 남아있고 결국은 텅빈충만이 아닌 텅빈허무의 인생이 될 사람들입니다. 세상사에 채움에 중독된 사람들의 치유와 구원에는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는 길 뿐임을 깨닫습니다. 이런면에서 하늘 나라 잔치의 예표인 날마다의 미사잔치 초대에의 참여는 비움의 여정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 지요! 삶의 우선순위가 자신을 비우고 천상 미사잔치에 참여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
참으로 내면이 비워져 있을 이런 불우한 이들을 하늘나라 잔치에 입장시키라는 것이며, 어떻게 해서라도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하는 하느님의 갈망에서 그분의 한량없는 구원의 사랑을 배웁니다. 복음의 마지막 말씀 역시 욕심에 중독되어 초대를 사양한 현대인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냉담을 풀고 미사잔치의 초대에 응하라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루카14,24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와 더불어 세상 탐욕을 비우고 주님의 초대에 응답해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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