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4. 일요일.
어제 서울 송파구 잠실로 택배된 '한국국보문학' 2023년 10월호.
오늘도 문학지를 읽다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내천(人乃天)의 하늘, 그리고 임신서기석'이란 글에서 인용한다.
1) '... 최재우의 본 이름이 '복술인 것 같았다. ...'
2) '... 그래서 구미산 밑에 용담정사에 들려 비로서 최재우의 사상을 엿보게 되었다. ...'
3) '... 최재우가 아닌 최복술이가 산꼭대기에 앉아....'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崔濟愚)에 관한 내용인데도 월간문학지에서는 '최재우'로 세 번이나 잘못 표기되었다.
인터넷으로 최제우에 대한 자료를 검색한다.
- 출생 1824년(순조 24) 12월 18일, 경상도 경주부 현곡면 가정리(現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315번지)
- 사망 1864년(고종 1) 4월 15일(향년 39세), 경상도 대구도호부 서상면 계산동 관덕당 뜰(現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
조선의 종교 사상가이자 동학(천도교)의 창시자 겸 제1대 교주, 호는 '수운(水雲)'이며 '경주 최부자집'의 비조인 최진립의 7대손이다.
경주최씨 후손이다.
최제우(崔濟愚, 1824~1863)는 동학을 창도한 1대 교주이다.
본관은 경주, 초명은 복술(福述), 개명한 이름은 제우(濟愚,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한다)이다. 자는 성묵(性默), 호는 수운(水雲)이다. 경주에서 1824년 몰락한 양반인 최옥과 재가한 어머니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수운은 19세에 울산 박씨와 혼인한 후, 31세까지 삼교(三敎, 유·불·선), 서학(西學, 천주교), 무속, 도참사상을 두루 접하였다.
1860년 당시 조선은 경술국치(庚戌國恥) 50년 전으로, 오랜 당파싸움과 삼정문란(三政紊亂)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야기된 민중의 고통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수운은 열강이 침략 야욕을 뻗쳐오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19세기 중엽 당시를 ‘개벽(開闢)이 필요한 말세’로 인식했다.
'최제우'를 '최재우'로 잘못 표기해서야 어디....
어디 이뿐이랴?
다른 수필에서도 .... 잘못된 부분마다 연필로 표시를 했으니 훗날 남한테 책을 선물할까 봐 조금은 걱정이다.
문학지에 내는 글은 더 다듬었으면 싶다.
아쉽다. 글 읽다가는 은근히 짜증이 난다.
최제우는 경주최씨.
우리나라 성씨 본관별 6위인 경주최씨는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몰락한 가문'으로 추락한다.
조선조에서는 이렇다 할 인물이 없다.
동학교를 창교한 최제우, 2대 교주인 최시형, 일제시대에 항거하다가 체포되어 일본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굶어 죽은 면안 최익현 등이 고작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름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했으면 싶다.
책에 내는 글에서 이름이 틀린다면....
2023. 9. 24. 일요일.
나중에 보탠다.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