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는 어디다 뿌리나요 (외 2편) ―homo artex 예술적 인간
김추인
주검과 함성이 함께하던 곳 낡은 콜로세움 둥근 광장, 단조의 음표들이 흩날리고 있는데요 희끗희끗 페인트 칠 나간 의자 위 스테판*은 홀로 낡은 첼로를 켜고 홀로 날아가는 새를 보고 홀로 떨어져 나간 돌벽, 빈 자리에 꽂혀 우리별의 긴 서사를 떠올립니다 별은 속수무책 낡아가고 돌벽도 돌계단도 모래의 시간으로 이행 중, 이런 때 감성의 순도는 흐림입니다 그는 아직 젊어 물고기자리의 에로스, 수염이 검고 갈 길이 아득한데요 상념은 무너지는 시간의 돌무덤 곁이라니 시간이 없습니다 여자가 밀감 빛 달빛 아래 흐르는 뗏목 위에서 무반주를 들으며 “향수는 어디다 뿌리나요?” 질문했나 본데 “키스 받고 싶은 곳에 뿌려라”**하는 은밀한 목소리 나, 그녀를 알아요 ⸺⸺⸺ * 크로아티아의 첼리스트 ** 코코샤넬의 답변.
장미원의 퍼포먼스 ―homo aestheticus 미학적 인간
빗소리 고와서 바람이 오고 생 초록의 꽃집 한 채, 우듬지 흔드는 빗소리에 작은 발목들, 수차(水車)를 돌리기 바쁘겠네 꽃 한 송이 피울 연금술에 골몰하고 있겠네 덩굴마다 꽃이 오시는지 스미는 장미향에 공기 알갱이들 흡⸰ 흡⸰ 흡⸰ 가시 찔리며 팡팡 터지며 도도한 족속들의 마을을 배회하는 동안 손 타겠구나 긴장한 꽃가지들, 가시 탱탱 불리네
'모을 수 있을 때 장미봉오리를 모아라'* 저들도 아는 모양이네 노란 꽃가루 경단을 싸들고 온 꿀벌이라든가 청띠나방, 호랑나비까지 장미원의 오월은 시방세계가 시끌시끌하네
꽃을 탐하다 피를 본 내 엄지와 검지 욱신거리는 계절에
⸺⸺⸺ *영국, 로버트 헤릭의 말
메타 세콰이어* ―Homo prospectus 전망하는 인간 그는 아득히 우러러보아야 보인다 수십 미터 하늘 키로 일어서는 씨앗 한 알, 응축된 진화 파일이다 최적화된 압축파일이다 흙에 묻히어 싹을 틔우고 무한천공, 시간 겹겹이 하늘로 길을 내어 우듬지에 닿기까지 푸르름을 세우는 나무의 의기를 생각한다 나무의 수치를 어느 수족手足이 밟아 물이 오르는지 1m, 10m, 100m, 상하좌우, 못 갈 데 없이 치고 오르는 물길, 하늘로 오르는 강물 저 씨앗 속 유전자 좌표를 훔쳐 읽고 싶다 ⸺⸺⸺ * 세콰이어: 미국 체로키족 현자賢者의 이름에서 유래한 나무. —시집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에게』 2024.4 --------------------- 김추인 / 경남 함양 출생.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모든 하루는 낯설다』 『프렌치키스의 암호』 『전갈의 땅』 『행성의 아이들』 『오브제를 사랑한』 『해일』 등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