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21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당신 품에 달려가게 하소서.
중국 무협영화를 보면 참 신이 납니다. 어쩌면 그렇게 작은 몸에서 장풍이 일고, 검기가 하늘을 찌르고, 주변의 산을 무너뜨리고, 사람이 물위를 걷거나 하늘로 치솟고, 실 같은 것도 무기가 되고, 붓으로 절벽에 글씨를 자유자재로 쓰고, 부채로 창과 칼을 막아내고, 정말 대단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무협영화를 보다가 꿈을 꾸면 나도 신나게 날아다니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주먹으로 한대만 맞으면 뻗을 것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았는지 신기합니다. 그런 영화를 보면 못난 사람은 빨리 죽고, 잘난 사람이나 주인공은 절대로 죽는 법이 없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어찌 되었든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는 왜 그렇게 둔하고 그렇게 바보 같고 능력도 없고, 눈치는 없고, 아는 것은 왜 그렇게 없으며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겨울연가’라는 연속극을 보고 세상의 남자들이 모두 못생겼고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일본 여자들이 남편을 구박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생각으로 성경을 읽다보면 정말 예수님에게 비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무능하고 보잘 것 없으며, 능력도 없고, 잘 생기지도 못하고, 어찌 되었든 아주 형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빠진 자매들이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편하게 쉴 생각이나 재미있는 일에 파묻히면 그 일 때문에 하느님을 잊어버립니다. 부모와 친한 친구도 잊고 그 좋은 일에 매달리면 모두 잊고서 그 속에 파묻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일 속에 빠져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살기도 하다가 돈이나 현실에 닥친 일이 아주 다급해지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요즘 나는 매일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사목자로서 우리 평신도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간직하고 ‘차라리 사제가 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신부님의 사정이나 그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지만 사제의 고뇌와 어려움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쓰고 살지 못한데서 오는 고민일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가끔은 역으로 ‘나도 사제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를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본다.>는 말이지요. 그래야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호수는 세상이고, 배는 교회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호수는 가정이고 배는 부부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을 떼어놓고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이 아주 거칠고 풍랑이 치고, 배가 흔들리듯 많은 사건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인생이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고, 엎어질 듯 가라앉을 듯이 흔들립니다. 모든 삶이 다 그렇고 내 자신도 매일 풍랑에 시달립니다. 왜 그렇게 문제가 많은지요. 더군다나 캄캄한 밤에는 작은 문제도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듯이 어둔 세상은 더 갑갑하고 더 견디기 힘듭니다.
정말로 견디기 힘들고 어려워서 나 혼자 외톨이라고 서러워할 때, 아무도 없어서 혼자서 어깨를 들썩이며 두 다리를 쭉 뻗고 대성통곡하면서 울고 있을 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다고 느낄 때, 문을 꼭꼭 쳐 닫고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다고 판단하고 도저히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갑자기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시며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나는 보듬어 안아 주시며, 당신의 겉옷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께서 “나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외로워하지도 말라. 그리고 용기를 내렴, 얘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부족하고 엉터리 같은 내 삶이지만 뉘우치고 후회하면서 용기를 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부님도 인간이시기에 미사를 지내다가 그냥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면서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것을 견디며 미사를 지내고 성체를 나누어 주시며 다시 제단에 엎드려 감사드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자들도 시퍼런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감히 용기를 내어 칼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우리 곁에 오시는 주님을 느끼며 용기를 내어 헤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령처럼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이 아니라 정말 아무도 모르게 인기척도 없이 언제나 우리 곁에 동행하시는 바로 곁에 계신 주님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때는 하느님께서 전혀 우리에게 관심도 두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기도를 해도 잘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속이 터지고 답답한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냥 지나쳐 가시는 하느님이 야속한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내버려 두신 줄 알았는데 한참을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도 주님은 내 곁에서 바라보시고, 안심시켜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겨우 철이 들어 정말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모시려고 하면 이미 세상의 끝자락에 와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 속에서 함부로 몸을 굴리고 살다 정신을 차리고 건강을 챙기려고 하면 이미 병이 깊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 사랑을 찾고, 풍랑에 힘겨워 살다보면 그렇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인생인가 봅니다.
언제나 지켜보시며, 용기를 주시며, 평화를 주시는 주님!
저희는 쓸데없는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겨 당신을 잊고 살고 있으며 다급한 마음에 언제나 당신을 제쳐 놓고 서둘러 떠나 온 길이 헛되고 잘못된 길임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나이다. 어둡고 캄캄한 이 세상에 당신을 의지하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어린 아기가 두려움 없이 엄마에게 몸을 던지듯, 아빠가 두 손을 벌려 아기의 겨드랑이에 손을 둘러 높이 들어 올려 꼭 안아주듯이 당신 품에 달려가게 하소서. 오늘도 "나다 두려워 마라" 하시는 뜨거운 말씀에 그만 가슴 저리게 행복합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가타리나 자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성인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 자비의 주님!!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축일4월 22일 성 루치오 (Lucius)
신분 : 예수의 제자, 주교, 순교자
활동 지역 : 라오디케아(Laodicea)
활동 연도 : +1세기
같은 이름 : 루기오, 루치우스, 루키오, 루키우스
성 아펠레(Apelles)는 예수님의 제자로 사도 바오로(Paulus)의 로마서 16장 10절에서 언급되었으며,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의 초대 주교였다.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 또한 예수님의 첫 제자들 중 한 사람으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6장 21절과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언급되었으며, 라오디케아의 주교였다. 이들은 모두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고,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축일4월 22일 성 아펠레 (Apelles)
신분 : 예수의 제자, 주교, 순교자
활동 지역 : 스미르나(Smyrna)
활동 연도 : +1세기
같은 이름 : 아뻴레스, 아펠레스
성 아펠레(Apelles)는 예수님의 제자로 사도 바오로(Paulus)의 로마서 16장 10절에서 언급되었으며,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의 초대 주교였다. 성 루키우스(Lucius) 또한 예수님의 첫 제자들 중 한 사람으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6장 21절과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언급되었으며, 라오디케아(Laodicea)의 주교였다. 이들은 모두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고,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루치오 (Lucius), 아펠레 (Apelle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