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93회
진목공(秦穆公)은 20여 융족(戎族) 나라를 복속시키고 마침내 서융(西戎)의 패자가 되었다. 주양왕(周襄王)은 윤무공(尹武公)을 사신으로 보내, 황금으로 만든 북을 하사하며 치하하였다. 진목공은 늙어서 입조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공손지(公孫枝)를 주왕실(周王室)로 보내 사은하였다.
그해에 요여(繇余)가 병으로 죽자, 진목공은 슬퍼하면서 맹명(孟明)을 우서장(右庶長)으로 임명하였다. 공손지는 주왕실에 다녀온 후, 목공의 뜻이 맹명에게만 향하고 있음을 알고, 늙었음을 핑계대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한편, 진목공에게 어린 딸이 있었는데, 태어날 때 마침 어떤 사람이 다듬지 않은 옥돌을 바쳤다. 그걸 다듬어 푸른색의 아름다운 玉을 얻었다. 딸이 돌이 되었을 때 궁중에서 돌상을 차렸는데, 딸이 유독 그 옥만 가지고 놀면서 놓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을 농옥(弄玉)이라 하였다.
농옥이 자라면서 절세미인이 되었는데, 총명함도 비할 바가 없고 생황(笙簧)을 잘 불었다. 악사(樂師)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음조(音調)을 깨우쳤다. 목공은 뛰어난 장인(匠人)에게 명하여, 그 아름다운 옥으로 생황을 만들게 하였다. 농옥이 그 옥 생황을 불자, 소리가 마치 봉황(鳳凰)의 울음소리 같았다.
목공은 농옥을 특별히 사랑하여 큰 누각을 지어 그곳에 살게 하였다. 누각의 이름을 봉루(鳳樓)라 하고, 누각 앞에 또 고대(高臺)를 짓고 봉대(鳳臺)라 하였다. 농옥이 15세가 되자, 목공은 좋은 사위를 구하려 했는데, 농옥이 맹세하며 말했다.
“반드시 생황을 잘 불어 저와 창화(唱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저의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원하지 않습니다.”
[‘창화(唱和)’는 한쪽에서 부르면 딴 쪽에서는 화답(和答)하는 것을 말한다.]
목공은 사람을 시켜 두루 찾았지만, 그런 사람을 얻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농옥이 봉루에서 주렴을 걷고 한가로이 밤하늘을 바라고 있었는데, 하늘은 맑아 구름 한 점 없고 거울 같은 밝은 달이 떠 있었다. 농옥은 시녀를 불러 향을 피우게 하고, 창가에 앉아 옥 생황을 불었다. 청아한 생황소리는 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미풍이 살랑살랑 불어오면서 홀연 화답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농옥은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생각하여 생황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 그 소리도 멈췄는데, 여운만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듯 끊어지지 않고 은은히 이어졌다.
농옥은 바람을 맞으면서 무언가 잃어버린 듯 멍하니 있다가, 방안을 서성거렸다. 밤이 깊어 달도 기울고 향도 꺼지자, 농옥은 생황을 침상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꿈속에 서남방의 하늘 문이 열리더니 오색 노을빛이 대낮처럼 밝게 비치면서, 우관(羽冠)을 쓰고 학창(鶴氅)을 입은 수려한 장부(丈夫)가 아름다운 봉황을 타고 하늘에서부터 봉대에 내려와 농옥에게 말했다.
[‘우관(羽冠)’은 깃털로 장식한 관이고, ‘학창(鶴氅)’은 학의 털로 짠 옷으로 신선(神仙)의 의복이다.]
“나는 태화산(太華山)의 주인인데, 상제(上帝)께서 당신과 혼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중추절(仲秋節)에 상견하여 당신과 숙연(宿緣)을 맺고자 합니다.”
[‘중추절(仲秋節)’은 추석이다. ‘숙연(宿緣)’의 전생의 인연이다.]
장부는 허리춤에서 붉은 옥퉁소를 꺼내 난간에 기대어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봉황이 퉁소소리에 맞춰 울면서 날개를 펴고 춤을 추었다. 봉황의 울음소리와 퉁소소리가 창화하여 조화를 이루면서 곡조가 귀에 가득 찼다.
농옥은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이건 무슨 곡입니까?”
장부가 대답했다.
“이건 ‘화산음(華山吟)’의 제1롱(第一弄)입니다.”
농옥이 또 물었다.
“이 곡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장부가 대답했다.
“이미 혼인을 약속했는데, 가르쳐주는 것이 어찌 어렵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장부가 다가와 농옥의 손을 잡았는데, 그 순간 농옥은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본 광경이 눈앞에 생생하였다.
날이 밝자, 농옥은 목공에게 꿈 얘기를 했다. 목공은 맹명에게 태화산으로 가서 농옥이 꿈속에서 본 장부를 찾아보게 하였다.
맹명이 태화산 밑에 이르러 물어보니, 한 시골 농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산 위에 명성암(明星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어떤 이인(異人)이 7월 15일부터 그곳에 초가를 짓고 홀로 살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산을 내려와 술을 사서 혼자 마시다가, 밤이 되면 퉁소 한 곡조를 붑니다. 그 통소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 듣는 사람은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맹명이 태화산을 올라가 명성암 아래 당도해 보니, 과연 한 사람이 우관을 쓰고 학창을 입고 있었다. 옥 같은 얼굴에 입술은 붉은데, 초연한 기상이 속진(俗塵)을 벗어난 듯하였다. 맹명은 그가 이인(異人)임을 알아보고 앞으로 다가가 읍을 하고 성명을 물었다.
[‘속진(俗塵)’은 ‘속세의 티끌’이란 뜻으로 속세의 잡다하고 번거로운 일을 말한다.]
그가 대답했다
“저는 성은 소(蕭)이고 이름은 사(史)라고 합니다. 족하(足下)는 누구시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족하(足下)’는 대등한 사람에 대한 경칭이다.]
“저는 본국의 우서장(右庶長)인 백리시입니다. 주군께서 사랑하는 따님의 배필을 구하고 있는데, 따님은 생황을 잘 불어 배필도 그런 분을 구하고 있습니다. 족하께서는 음악에 정통하다고 들었습니다. 주군께서 한번 뵙고자 하여, 제가 명을 받들어 모시러 왔습니다.”
“저는 음악에 대해 조금밖에 모르고 남들보다 별로 뛰어나지도 못합니다. 감히 군명을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
“저와 함께 가서 주군을 뵙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맹명은 소사와 함께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
맹명은 먼저 목공을 뵙고 태화산에서의 일을 아뢴 후에, 소사를 인도하여 알현하게 하였다. 목공은 봉대에 좌정하고 있었는데, 소사가 절을 올리고 말했다.
“신은 산야(山野)의 필부(匹夫)인지라 예법을 모르오니, 용서해 주십시오!”
목공은 소사가 맑고 깨끗한 용모와 속진을 벗어난 음성을 지닌 것을 보고, 심중으로 몹시 기뻐하였다. 목공은 소사를 옆자리로 불러 앉히고 물었다.
“그대는 퉁소를 잘 분다고 들었는데, 생황도 잘 부는가?”
소사가 말했다.
“신은 퉁소만 불 줄 알 뿐, 생황은 불 줄 모릅니다.”
“본래 생황을 잘 부는 반려자를 찾으려 했는데, 이제 퉁소와 생황은 같은 악기가 아니니, 내 딸의 배필이 되지는 못하겠다.”
목공은 맹명을 돌아보며 소사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였다. 그때 농옥이 시녀를 보내 목공에게 말을 전하였다.
“퉁소와 생황은 같은 종류의 악기입니다. 객이 퉁소를 잘 분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한번 시험해 보지도 않고 그냥 돌려보내려고 하십니까?”
목공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소사에게 명하여 퉁소를 연주하게 하였다.
소사가 붉은 옥퉁소를 꺼냈다. 붉은 옥빛이 은은하게 빛나는데 참으로 세상에 희귀한 보물이었다. 소사가 첫 번째 곡을 연주하자,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두 번째 곡을 연주하자, 오색찬란한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세 번째 곡을 연주하자, 한 쌍의 흰 학(鶴)이 날아와 궁중에서 날개를 펼치고 춤을 추었으며, 공작(孔雀) 여러 쌍이 날아와 숲에 내려앉았고, 온갖 새들이 모여들어 퉁소소리에 화답하여 울었다. 이윽고 퉁소소리가 멈추자, 새들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목공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때 농옥이 주렴 안에서 그 기이한 광경을 엿보고 있다가 역시 기뻐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 나의 남편감이로다!”
목공이 소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생황이 언제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는가?”
소사가 대답하였다.
“생황(笙簧)의 ‘생(笙)’은 ‘생(生)’의 뜻입니다. 여와씨(女媧氏)가 만들었는데, ‘발생(發生)’이라는 뜻을 취했으며 음률은 태주(太簇)에 응합니다. 퉁소를 가리키는 ‘소(簫)’ 字는 ‘숙(肅)’의 뜻입니다. 복희씨(伏羲氏)가 만들었으며, ‘숙청(肅清)’ 즉 엄숙하고 맑다는 뜻을 취했으며 음률은 중려(仲呂)에 응합니
첫댓글 생황(笙簧)과 퉁소(퉁簫)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