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밭을 맸습니다. 밭을 매기 시작한자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연신 내가 매는 밭이랑의 끝을 쳐다봅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매야 할 밭의 앞만 보고 직수굿이 매셨습니다.
마치 소걸음 걷듯이 뚜벅뚜벅 매셨습니다. 나는 힘이 들고 꾀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럴수록 빨리 서둘러 끝내려고 야단입니다. 자꾸 밭 끄트머리만 쳐다봅니다.
아버지의 밭 매는 속도는 거의 일정하지만 나의 속도는 대중없습니다.
아버지보다 앞에 가던 나는 결국 아버지보다 쳐지기 시작합니다.
종내는 아버지는 당신 분량을 다 매시고는 내가 매지 못한 밭을 매시기 시작합니다.
다 매시고 나서 나무 그늘 밑에서 쉬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넷째는 머리는 좋은데, 근이 없어서 탈이야!”
지나가던 먼 흰구름을 보시면서 구름에게 말 한 마디 던지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소걸음처럼 뚜벅뚜벅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우적우적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소의 목덜미가 비 오듯이 젖듯이 뻘뻘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나는 후다닥 한 개의 위주머니를 지나가듯이 소니기 밥을 먹습니다.
소는 천천히 되새김질하며 네 개의 밥통을 지나가면서 여물을 먹습니다.
나는 머리를 써서 재빨리 공부를 합니다. 진득하게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시험 때는 당일치기해도 성적이 고만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소걸음처럼 진득하게 공부한 친구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걸 깊이 깨달았을 때는 버릇이 되어 고치기 어려웠습니다.
버릇이 운명을 낳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서양 속담 중에 엉덩이가 무거워야 공부를 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정설이라 합니다.
진득한 사람이 이기게 마련인가 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시골 초등학교 교사 초임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하숙집에서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있는데, 우리 반 녀석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6학년 혁중이가 식식거리며 재명이네 안방에 누워 있다는
것이다. 고만고만한 혁중이와 재명이가 싸웠다.
다들 학급에서는 키가 작이 앞에 앉는 아이들이다. 혁중이는 키가
다부지고 한 펀치하는 녀석이다. 둘이 싸우다가 재명이가 혁중이한테
맞으니깐 중학생 재명이 형이 합세하였다. 2대 1의 싸움이었다.
아무리 한 펀치하는 혁중이라도 싸움에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맞아가면서 혁중이는 대들었다. 그 녀석은 아주 끊질긴
녀석이었다. 결국 재명이 형제는 달려들고, 달려드는 혁중이를 피해서
산으로 도망갔다. 혁중이는 자기 단단한 주먹보다 몇 배나 큰 돌멩이를
쥐고 재명이네 안방에 식식거리며 누워 있었다.
아무리 재명이, 혁중이 부모가 야단을 쳐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담임인 나까지 호출되었다. 살살 달래니 혁중이는 매 맞은 것이
화가 난 것이 아니라, 1대 1 싸움에 왜 형까지 합세했느냐는 것이 화가
북받쳐서라는 것이었다.
종내에 재명이 형제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서야 사건은 해결되었다.
한번은 우리 반 아이들의 동네 싸움이 벌어졌다. 혁중이 얼굴이 눈탱이
밤탱이가 되었다. 사유를 물으니 일체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담임인 내가 달래고 어르고 몇 대 쥐어박아도 모로쇠였다.
다만 들을 수 있는 말은 “선생님, 이것은 우리들 사이의 일입니다”라는
말뿐. 혁중이는 중학생 때 연탄 때는 함실아궁이 방에서 둘이 자다가 같인
잔 아이는 죽고, 혁중이는 고압산소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아마 끊질긴 성질 때문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심한 연탄가스 중독으로 뇌손상을 입어 기억 장애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공이산(牛公移山)이라 했습니다.
뚜벅뚜벅 가는 인생을 허겁지겁 가는 인생이 따라 잡지 못합니다.
소는 웬간해서는 뛰지 않습니다. 서두르지도 않습니다.
사실 소가 뛰기 시작하면 참으로 무섭습니다. 쟁기질, 써레질, 길마질할
때는 천천히 소걸음으로 걷습니다. 성질머리 나서 고삐로 그리 재촉을
해도 소걸음으로 걷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조금도 참지 못하여 요리조리 미꾸라지 운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일종의 성질머리 급한 운전이고 버릇입니다.
그랬다고 멀리 가지 못합니다. 신호등 근처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유에다 쇠죽을 주면 소는 후다닥 먹지 않습니다.
그저 천천히 우적우적 먹습니다. 우리네 삶은 시간의 무늬 속에 정해진
속도대로 가는 것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서둘러 빠르게 간다고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천천히 간다고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한테
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나는 소처럼 가는 시간이 부럽습니다.
내가 소처럼 가 보려고 결심해도 작심삼일입니다.
이미 굳은 버릇이 되어 고치기 어렵습니다. 버릇은 운명을 낳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소걸음으로 6남매를 키우시고
일찌감치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시며 “넷째야, 내가 뭐라고 하던?
너는 머리는 좋은데 근이 없다고 했지 않니?”
아직도 그 버릇 개 주지도 못하고 욜량욜량 하는 나를 나무라고 계실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경박한 잔나비 띠니 한시도 듬직하게 있지 못하고
진득하지도 못합니다. 이젠 팔자려니 하며 자가 위안만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