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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주님의 은총으로 연수를 잘 마치고 왔습니다. 기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묵상을 올려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주님의 평화와 축복을 기도드립니다.
2023년 7월 3일 월요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4-29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진정한 주님의 자녀로 살게 하소서.
내가 살아온 경험은 내 생활방식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 온 인생의 경험은 앞으로의 내 생활의 길잡이가 됩니다. 그래서 그 경험과 삶의 방식은 자신의 독특한 모습으로 결정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 식별할 수 있는 것도 내 경험과 삶의 방식에 의해서 다르게 결정될 수 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주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중병으로 아주 고통을 받고 사셨습니다. 먹고 사는데도 힘이 들었는데 학교를 다니는 것은 너무 힘에 겨운 일이었고 사치와 같았습니다. 농사일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하여야 하는 처지에 있는 내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 진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고등학교의 학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온실을 맡아서 일을 하면서 학교의 정원과 화분을 관리하면서 겨우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푼수와 같이 언제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내 책상 앞에 이렇게 써 붙여 놓았었습니다. “박사학위 졸업식에만 간다.”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나는 많은 졸업식을 하였지만 박사 졸업식에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은 졸업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으로 살아갑니다.
내 인생에서 공부를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쓰였기 때문에 그것이 내 인생을 언제나 옭아매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어느 때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결정에 따르기 위해서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했었습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공부벌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학점도 아주 짜게 주는 그런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하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을 돌보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 가치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성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신자는 어려서 한 번도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해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청할 줄 모른답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의 용서를 청하는 말은 들었어도 자신은 용서를 청해 본적이 없어서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신자는 같은 본당의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같이 할 수 없다고, 그래서 같은 성당에 다닐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른 성당에 다닌다고 말하였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 때문에 마음이 상해져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신부님은 자신은 절대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신자들의 특성과 생활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 동안 자신의 삶과 생활이 결국 어떤 아집과 편견, 선입견을 만들고, 그 것이 인생의 많은 문제들에 결합하여 어떤 사고방식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과의 신뢰관계는 결국 그렇게 만들어 놓은 생활 패턴에 의해서 움직여집니다. 그래서 패러다임의 전환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 사도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신 주님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은 주님과 같이 다니며 주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들을 보았기 때문에 도저히 주님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그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주님께서 돌아가실 분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혼란에 빠져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믿지 못한다고 생떼를 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주님은 모든 것이었음을 또한 허망하게 포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고 말할 때 그는 강하게 부정한 것입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처럼 그는 주님의 돌아가심과 허망함을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가장 강렬하게 주님께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 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러한 고백은 간단하게 나올 수 있는 고백은 아닐 것입니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이나 이러한 고백을 진심으로 내 마음을 다하여 충실하게 하였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거양성체 시간에 오늘 토마스 사도의 신앙고백을 주님께 합니다. 전에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그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것이 버릇이 되어 지금도 거양성체의 종이 울리면 그렇게 고백합니다. “오! 주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나 오늘 토마스 사도의 외침과 같이 진솔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느끼고 있답니다. 그리고 입에 발린 말만 하는 내 자신을 뉘우치면서 생각한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과 같이 ‘보지 않고도 믿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만 우리는 손에 쥐어주고 확인하고도 믿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랍니다. 아무리 신앙에 대하여 많은 피정을 하고 강의를 듣고, 사람들의 체험담을 듣고, 강론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우리의 이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진리의 주변에서 헤매면서도 그 안에서 살지 못하고 그 밖에서 맴도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만이 가장 건전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모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님의 자녀로서 고백하고, 주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모든 편견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주님의 품에서 의심 없이 살아야 할 때입니다. 어정쩡하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답니다.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축일7월 3일 성 토마스 (Thomas)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 연도 : +72년경
같은 이름 : 도마, 토머스
사도 성 토마스는 아마도 갈릴래아 출신인 듯하며 ‘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토마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쌍둥이’라는 뜻을 가진 ‘토암’이나 ‘타우마’의 변형으로, 그리스어로는 같은 뜻을 가진 ‘디디무스’(Didymus)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리스어 문화권에서는 성 토마스를 디디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위경 문헌에서 그의 실제 쌍둥이 형제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지만, 단지 ‘쌍둥이’란 뜻을 지닌 ‘토마스’란 이름의 사도라고 볼 수 있다. 성 토마스는 열두 사도 중의 한 명이지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열두 사도의 명단을 언급할 때 등장하고 있다(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5; 사도 1,13).
요한 복음은 성 토마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 네 번의 사건을 기록하여 비교적 그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11,1-16; 14,1-6; 20,24-29; 21,1-14). 이 중 세 군데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라고 그를 지칭하고 있다. 첫 번째로 그는 베타니아에 사는 성녀 마르타(Martha)와 마리아(Maria)의 오빠인 성 라자루스(Lazarus, 7월 29일)가 죽음에서 부활할 때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가는 길에 대해 말씀하실 때,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여쭈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세 번째는 가장 잘 알려진 사건으로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고 했을 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 성 토마스가 제자들과 함께 모여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자 성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며 장엄하게 신앙을 고백했고,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성 토마스의 신앙 고백은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명백하게 고백하는 유일한 예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도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와 함께 그 현장에 있었다.
이후 성 토마스의 행적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전승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다른 이들에 의해 전해진 초기 전승에 따르면, 성 토마스는 나중에 파르티아(Parthia, 고대 이란의 왕국)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또 다른 옛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이 전승은 성 토마스가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으로 인도로 갔고, 그곳에서 목수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인도-파르티안 왕국을 세운 곤도파레스 1세(Gondophares I) 왕이 준 왕궁 건축 기금을 모두 불쌍한 이들에게 나눠준 뒤 하늘나라에 왕궁이 세워져 있다고 선포하여 감옥에 갇혔다. 기적적으로 풀려난 그는 인도 남서 해안지역인 말라바르(Malabar)로 가서 7개의 교회를 세우고 선교 활동을 본격화해 많은 인도인에게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그러다가 72년경 마드라스(Madras) 교외 밀라포르(Mylapore) 근처에서 힌두교 사제들에 의해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한다.
첸나이(Chennai, 옛 마드라스)에는 그가 순교하고 묻힌 무덤 위에 있었던 성당 위에 19세기 말 포르투갈 교회가 재건한 성 토마스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of St. Peter)과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성당(Santiago de Compostela Cathedral)과 함께 사도들의 무덤 위에 건립된 세 개의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오늘날 케랄라(Kerala)주에서 말라바르 전례를 사용하는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성 토마스 사도에게 복음을 전해 받았다며 스스로 ‘토마스 사도의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고 있다. 성 토마스 사도의 유해는 394년에 에데사(Edessa, 오늘날 터키의 우르파 Urfa)로 옮겨졌다가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Abruzzi)에 있는 오르토나(Ortona)에 안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 토마스 사도의 순교일은 12월 21일로 알려졌으나, 그의 유해가 옮겨진 후 6세기부터 현재까지 가톨릭교회와 시리아 교회에서는 7월 3일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리스 정교회는 10월 6일에 축일을 지낸다. 1972년에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성 토마스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을 맞아 그를 ‘인도 교회의 사도이자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상처를 만지는 모습으로, 그리고 건축가와 목수의 수호성인으로서 목수들이 사용하는 직각자를 들고 있거나, 순교할 때 사용된 긴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오늘 축일을 맞은 토마스 (Thoma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