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주님의 제자다운 삶”
2024.11.6.연중 제31주간 수요일 필리2,12-18 루카14,25-33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늦가을 밤의 별들이 유난히 밝게 빛납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라는 권고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필리비서 귀한, 아름다운 대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비뜰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이대로 살 수 있음은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는 은총이 있어 이렇게 살 수 있음을 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이렇게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참으로 단호히 구체적 처방을 주십니다. “누구든지”로 시작되는 말마디에서 예외없이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참 제자의 삶의 원리임을 깨닫습니다. 열광하면서 큰 기대를 지니고 있는 군중들에게 꿈을 깨라는 듯 찬물을 끼얹는 듯한 제자직의 필수조건입니다. 값싼 은총도 없듯이 결코 값싼 제자직도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다음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첫째,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문자 그대로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 말에는 비교급이 없기에 이렇게 말합니다만,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은 ‘목숨보다 나를 더 좋아하지 않으면’, ‘목숨을 나보다 하찮게 여기지 않으면’으로 바꿔읽어야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사랑을 우선순위에서 첫째 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강조하는바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마음, 온정신, 온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그대로 지혜가 되고, 주님께 대한 이런 열렬한, 한결같은 사랑은 분별의 잣대가 됩니다.
사실 이래야 친지들과 자신을 맹목적 눈먼 사랑이 아니라, 눈밝은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사랑, 집착없는 무사한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바로 아가페 순수한 사랑으로 친지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나깨나 평생공부가 주님께 대한 사랑공부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수록 주님은 이런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랑과 힘을 선물로 주십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민초들에게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연민이 넘치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는 참 엄격한 잣대를 적용합니다. 자발적 기쁨으로 제 책임의 십자가를, 제 운명의 십자가를 온사랑으로 죽기까지 기꺼이 지고, 끝까지 따라야 비로소 당신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책임적 존재가 되어 당신의 제자답게 살아야 함을 봅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운명애(運命愛)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내가 내 운명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합니까? 역시 이런 제 책임을 다하는 사랑, 제 운명에 대한 사랑도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에서 기인힘을 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수록 주님은 이런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랑과 힘을 선물로 주십니다.
주님은 여기에 둘의 예화를 추가합니다. 당신 추종은 1회성의 이벤트도 아니고 값싼 낭만도 아니기에 과연 끝까지 주님을 추종할 수 있을런지 냉철히 그 성소를 식별하라는 취지에서 망대와 전쟁 이중비유의 예화를 드십니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모하게 값싼 감상으로 주님을 따랐다가 유혹에 빠져 도중하차하는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전 성철 큰 스님의 인터뷰 기사도 생각납니다.
“백련암은 어떤 곳입니까?”
“세상을 속이는 곳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화입니다. 값싼 낭만이나 감상에 결코 착각하거나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도원 역시 깨어 살지 않으면 그대로 세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사실 당대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버림과 따름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문자그대로는 힘들더라도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무소유의 정신은, 무집착의 이탈의 정신은, 무욕의 정신은 너무나 절대적입니다. 버림과 따름 역시 한두번이 아니라 평생 여정임을 봅니다.
저의 경우는 모든 보장된 것을 다 내려놓고 수도원에 들어왔기에 마음 해이해지거나 내적으로 무너지려는 순간, “내가 이렇게 살려고 늦깎이로 수도원에 왔나?”하며 심기일전 마음을 다잡고 살아왔음도 솔직한 고백입니다. 예전 권정생 동화작가가 어느 스님의 고백을 듣던중 “그렇게 살면서 죄를 지을 바에야 절에서 나오라” 했다는 일화도 생각납니다.
모두가 한두번으로 끝나는 제자직의 여정이 아니라. 죽기까지 계속될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주님을 한결같이 사랑해야 하고, 한결같이 제 십자가를 져야하고, 한결같이 버림과 따름에 항구해야 하는 평생여정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주님의 제자직 수행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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