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1-12) 24
주님께 드리는 귀한 예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구원자로 오셨지만,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바로 동방의 박사들을 통하여 주님의 탄생이 공적으로 드러났음을 기념합니다. 이시간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쳤듯이 우리에게도 주님을 알고, 참된 예물을 바쳐드릴 수 있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구세주의 탄생은 커다란 기쁨인데 각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1.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한 동방의 박사들은 기뻐하면서 선물을 바치며 경배하였습니다. 2.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자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 놀랐을까요? 내가 임금인데 감히 어디에 다른 임금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놀라움입니다.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적대감을 가졌습니다. 3. 예루살렘 주민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이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사실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2살 이내의 남자 아기를 다 죽여 싹을 잘랐습니다. 권력의 욕심이 큰 죄악을 가져왔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권력다툼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헤로데는 로마를 위한 전쟁에 큰 공을 세워서 기원전 47년에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예루살렘에 대성전도 짓고, 세금 정책도 잘 세워서 백성을 위했습니다. 자기 개인 사치품을 팔아서 백성의 식량도 사들이고 하던 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면서부터 의심증이 생기고 의처증이 생겼습니다. 결국 말년에 가서 폭군으로 둔갑하여 부인 미리암, 장모 알렉산드라, 장남 안티파테르, 장남의 두 아들도 그리고 10명의 부인에게서 난 아들 중에도 왕권을 탐낸다 싶으면 다 죽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오는가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충분한데도 근심합니다.”
야고보 사도에 의하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야고1,15). “욕심을 내다가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남을 시기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다”(야고4,2). 욕심을 부리면 끝이 좋을 수가 없고, 욕심은 그나마 지금 처지의 행복마저도 거두어 갑니다. 헤로데는 천년만년 권력을 잡을 줄 알고 욕심을 부렸으나 지금 그는 없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이교도들인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아보고 멀리서 귀한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삶의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느님을 발견하면,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인도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 별입니다. 그러나 깊이 보면 별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입니다. 구세주를 기다리는 간절한 믿음이 별을 찾아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박사들이 “그분의 별을 보고” 라고 표현합니다. 별이 믿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믿음이 그분의 별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대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도 메시아의 탄생에 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다인들은 주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머리에 머물렀지, 믿음으로 승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박사들(6세기경부터 카스팔, 발타살, 멜키올이라고 부름)은 온 인류를 상징합니다. 그들이 바친 예물은 인류가 메시아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빛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들은 희망을 지니고 주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혹 예물과 뇌물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내가 바치면 예물이고, 남이 바치면 뇌물이랍니다. 감사해서 그저 고마워서 바치면 예물이고, 조건이 붙으면 뇌물입니다. 주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이것을 꼭 하겠습니다. 이것은 뇌물이지요. 우리가 봉헌할 때 마찬가지입니다. 예물을 봉헌해야지 뇌물을 바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첫 번째 예물은 황금입니다. 황금은 왕권을 말합니다. 당신을 왕으로 모셔 순종하고 살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은 주인이시고 저는 종입니다.’ 예수님의 왕직을 상징합니다. 희생 봉사입니다.
두 번째의 예물은 유향입니다. 제사장의 권한, 다시 말하면 그분의 신분이 신적 사제인 왕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 신성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몰약은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를 말합니다. 왕이 죽음을 감당하는 인성을 지니신 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썩지 않게 하는 것이기에 불사불멸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거룩함과 성화의 사제직을 상징합니다. 미사 때 사제가 봉헌예물을 준비하면서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서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할까요? 가장 귀한 선물은 믿음의 사람이 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고 희생 봉사하는 삶으로 황금을, 거룩함을 유지하는 자기 성화의 모습으로 몰약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유향을 예물로 바쳐드려야 하겠습니다. 구원에 대한 희망은 어떤 희생과 고난도 감수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선물을 드리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 중 하나는 전교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확신을 지녔다면, 예비자 인도를 통해 그 믿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빛을 받았지만, 많은 사람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영생으로 인도된 기쁨은 혼자 누리지 말고 이웃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전교는 우리의 소명이고 그래야 믿음이 성장하고 기쁨도 커집니다. 그러므로 예비자를 인도하시고 인도된 사람이 꼭 세례받을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 열매 맺는 기쁨을 차지하시길 바랍니다.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한 후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한 왕의 부탁보다도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더 중요하게 여겨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다른 길로 돌아갔다’ 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내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내 계획,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간적인 요구보다도 천상 것을 우선시하고 하느님의 뜻을 더 중요시하는 삶의 방향 전환이 꼭 필요합니다. 일상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가오는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손길을 꼭 잡으시길 기원합니다. 사람에게 매이거나 세상 것에 묶여 천상을 놓치는 일은 결코,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러분 위에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여러분 위에 나타나기 바랍니다(이사60,2).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 감사합니다 ♡ ♡
구세주를 기다리는 간절한 믿음이 그분의 별을 찾아냇습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뇌물이 아닌 예물 아멘 🙏
아멘!~~~ 묵상 하고갑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