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시대라고 말하는데 신약의 저자들이 대부분 유대인입니다.
*누가는 히브리인이 아님!
(특정 주제에 관하여 히브리인들이 제공한 정보를 일부분 삽입했다고 누가가 인정)
구약의 저자들은 당연하고 신약의 저자 중 누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히브리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한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바벨탑을 부수시고 언어를 70개로 나누셨다고 할 정도로 그 시대에 언어가 다양하게 나뉘었음을 고려하고 그 언어를 중심으로 모여 사는 삶 속에서 독특한 문화가 발전되었다는 것은 다들 인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언어는 특정 문화를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법과 정의 우선순위와 가치등의 고유한 개념)
그래서 언어와 문화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독특한 문화는 나름의 철학과 개념에 의해 작동하며 특정 문화에 독점적으로 국한되기도 합니다. 한 문화가 가진 언어는 그 문화에만 있는 독특한 개념을 반영하는 단어들을 개발했으며,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는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은 기원전 450년경의 대중화된 헬라철학을 기반으로 형성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 이전이 사고방식과 많이 다름)
현재 성경은 대부분 기원전 250년에 히브리에서 그리스로(합리적이고 논리적) 번역된 것입니다.
예슈아 시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중 학자들은 유추론적이라 부르는 사고방식을 가졌습니다.
모호한 유추가 내재 된 히브리어 + 논리와 합리를 기본으로 하는 그리스어 + 라틴어+ 영어 (중국어+한국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의 진정한 의미가 가려집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각기 다른 사고방식에 대하여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
;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사고<--서구 문화가 이 방법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사고 방식에서는 역사가 직선이라고 믿습니다. (원시 상태부터 선형적으로 진화하여 진보한 것으로 현재나 미래에 내재 되어 있는 것과 거의 관련이 없다고 믿습니다.)
대안적 사고방식에 노출이 된 적이 없을 것이며,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무엇인지 관찰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2000년 동안 현대 서방 사회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반영- 과학적 방법과 분리될 수 없으며 이것은 원인과 결과라는 철학에 (이것을 하면 이런 결과가 따른다)따라 작동합니다. (체계화된 사고)
체계화된 사고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더 큰 시스템의 일부라는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시스템은 그것을 더 작은 하위 시스템으로 쪼개서 각각의 하위 시스템을 개별적으로 검사하고 각각의 작동 방식을 확인 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예- 자동차의 엔진과 이것의 개발에 사용된 원리는 보트, 트럭, 비행기, 발전기와 같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시스템에 사용될 수 있으며, 각각의 시스템은 모두 완전한 독립적인 기능이 있고 그중에 몇 가지를 연결하여 자동차가 생기는 원리입니다,
- 귀납적 추론: 연역적 추론처럼 수학적 확실성을 달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찰1: 아진이는 오늘 수업에 늦게 왔다
관찰2: 아진이의 머리는 지저분했다.
↓
경험: 아진이의 머리는 보통 단정하고 깔끔하다.
결론 아진이는 늦잠을 잤음에 틀림없다.
- 연역적 추론; 결론을 달성하기 위해 일련의 딱딱하고 냉정한 사실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사실1: 개는 다리가 네 개입니다.
사실2: 풍구는 개입니다.
사실3: 풍구는 다리가 네 개입니다.
- 보통 귀납적 추론을 사용하여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는 언제나 왜?라고 묻습니다. 역사 또한 직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되지 않는 어떤 일정 시점에서 시작하여 어떤 일정 시점까지 이어지면서 반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함.
합리적, 논리적 역사적 관점으로는 패턴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합리적 논리적 사고방식은 유사한 것들과의 관계나 관련성을 떠나 이전에 발생한 것들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방식이 잘 작동합니다.
진실과 타당성은 실용성을 바탕으로 함. 즉,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에서의 왜? 라는 질문은 어떻게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고는 특정 시간의 특정 이벤트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범위가 매우 좁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서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현재의 상황만을 보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는 성경이 그리스 사상(유대인들과 대립했던 헬라인들이 가졌던 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야호훼께서 창조하신 우주가 반드시 합리적 논리적 방식으로 작동할 필요는 없음!!
- 논리적 합리적인 사고는 필연적으로 “사람 중심”임을 아셔야 합니다; 우주에서 관찰될 수 있는 4차원의 요소인 길이, 넓이, 높이, 시간 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과학적인 관찰과 반복적인 실험으로 인해 증명 될 수 있는 것 만이 진짜라는 신조 ← 그렇게 발견하려고 하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필요로 하고 발견해낸 것을 사용하여 결정과 판단을 내려 논리와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자동으로 무효가 됩니다.
※ 유추적인 사고방식
; 이미 확립 되어있는 패턴과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사고 방식으로 유사한 것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공통 진리를 찾습니다.
1. 어떤 특정의 유사한 것들 사이에서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공유되는 어떤 공통의 기본 진리를 찾고 인식하려는 것입니다.
예- 비행기의 날개 작동 방식은 새나 곤충의 날아다니는 방식과 어느정도 같음.
날 수 있는 능력 외엔 날개라고 불리는 구조가 있다는 점 외엔 유사점이 없음.
그러나, 공기역학이라는 동일한 원리가 날 수 있는 생물과 비행기에서 모두 작용.
유추적 사고는 관계와 연결에 의존합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의 내용은 일일이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 하십시요.
그 대신 각각의 율법과 지시에 다른 것들을 더 하고 또 그 위에 다른 것들을 더 더하고 이것들의 관계를 통해 어떤 의미를 확립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유- 이 율법도 다른 모든 율법의 이면에 있는 기본 원칙을 따르기 때문)
새로운 율법이 가진 목적 역시도 다른 모든 율법이 가진 목적과 완벽하게 연결되고 조화되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창세기에서 처음 주신 패턴은 나중에 나오는 다른 모든 것이 바라보고 이치 시켜야 하는 기준임을 말하는 겁니다.
예슈아께서는 “비유”라고 하는 특정한 유추적 사고방식으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는 전형적인 유추적 사고방식으로 그분의 비유들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영적 원리와 패턴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유사해 보이지 않는 서로 다른 것들에, 이미 잘 확립되어 이해되고 있는 어떤 패턴의 원칙을 적용하심으로써 그분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요점을 설명하셨습니다.
때때로 그것들 사이에 유사성이 너무 없어 사람들은 그분의 비유에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냐구요? 연결하는 패턴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 겨자씨와 하나님 왕국, 돼지에 진주, 등잔불을 켜 둘 기름이 떨어지는 것과 그분의 재림, 등 오래전부터 확립되어 있던 영적 패턴과 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히브리 문화에서 나오는 연결을 알아야만 이해되는 부분이라는 말입니다)
유추적 사고는 그 사고를 발전시키고 본보기가 되어줄 기존의 어떤 기본적인 패턴이 있어야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패턴 → 모세의 율법 → 예슈아 말씀 ( 점점 덧 붙혀짐)
성경 등장 인물들의 유추적 사고방식에서 중점은 “어떤 패턴이 현재의 나의 상황과 관련있는 패턴인가?”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고방식 즉, 성경적 사고방식의 탐색은 “어느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패턴이 특정 규정이나 상황에 맞는지를 제대로 인식하면 그 의미가 비로소 명확해 지는 것)
2. 유추적 사고는 사물을 소우주(자체로 작은 세계를 의미)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족을 커다란 공동체의 축소판으로 보고 있습니다.
* 히브리어는 유추적 사고방식을 가진 문화를 구현하는 언어입니다.
히브리 개념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 언어를 쓰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그분의 말씀을 직접 주셨습니다.
처음엔 토라, 다음엔 다른 성경.
물론 그리스어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문화는 인간의 발견, 인간의 철학, 과학과 기술, 도덕과 진리 탐구 등 사람이 만든 시스템을 기반으로 히브리와 정반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유추적인 사고와 언어와 문화 안에서 만들어진 성경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꼭 아셔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그릇된 교리와 정통을 기꺼이 버려야 합니다!
신약을 만들 때 참여한 사람들은 다른 마음을 가졌고 성경에 복종하기를 버거워하여 온갖 교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교단)
이방인들이 교회를 주도하기 시작한 2세기 중반부터 어떤한 유대의 문화도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냐고 묻는 방식으로 연구에 접근하거나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고 시험하여 검증하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접근하려고 한다면 유추적 사고방식에 의해 기록된 고대 원리와 율법들을 고찰할 수 없게 되며 이러한 이유로 혼란과 오류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패턴과 모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그림자와 유형이라고 말하는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패턴을 인식해야 해답을 얻을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사고가 하나님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은 분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작동한다는 것을 신뢰함으로써 찾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유대인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계명의율법이 다폐해졌는데 무슨 유대인
제도가 필요할까요?
아직도 할례를 행하고 십계명 율법지켜서
하나님 백성이되는 제도가 유효합니까?
불가능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않고 다이렉트로
하나님백성이 되는 방법은 없습니다
고로 현시대 유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칭유대인이요 사탄의회가 되는것이죠
당연히 예슈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지요
그러나 구약을 좀더 자세히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첫 언약 백성으로 큰 계획안에서 그들의 역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시점과 방향을 우리가 다 안다고 할수 없다는거지요.
하나님을 더 잘 알려면 히브리 관점은 꼭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유대인이 되자는게 아니고 유대인 관점을 뺀것을 인정해야 버릴것이 무엇인지 보입니다.
베님은 참 멍청합니다 계명의 율법이 폐해졌다고 십계명을 지키지 말라고하니 이렇게 반복음적이고 악한 자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계명의 율법이 폐해졌으면 그리스도가 없어지고 성령도 없어졌습니까? 십계명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법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문자적 법보다 더 고귀한 살아계신 십계명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법을 폐한자도 죽음을 면치 못하였거든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성령을 모독한 자들의 받을 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한 것입니다.
@신인류건설
하나님의 말씀들이라고 하지요.
열개가 아닙니다.
십계명이라고 나눈것도 카톨릭교부들입니다.
제 1계명이라고 만들면서 진짜 중요한 첫 번째가 빠졌습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아니라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히브리 이름으로 야호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대로 살 민족을 분리하여 구별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신 것이 시작이라고 말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하려면 히브리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율법, 십계명이라고 해석을 해 놓은 것 자체가 구약의 하나님의 관점이 아님을 알면 진리에 더 가까이 갈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것입니다.
@신인류건설
내가 하지도 않은말을 만들어서
예수님을 천사라고 했다고 신성을 부인한다며
나를 공격하던자가
미카엘천사를 예수님이라 주장하냐?
엉?
어리버리하고 멍청한 신인류 건설노가다십장
=> 속죄제단
안식일교 목사수준이 저정도니 알만하다...
ㅎㅎㅎㅎㅎ
내용은 히브리어의 추론 적합성, 연속적 특성을 언급하면서 글의 전개는 이분법적, 대립적 전개로 보입니다.
히브리인의 추론적이며 유기적 사고를 이야기 하지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대립시키면서 언어의 융통성에 강하게 한계를 긋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론적 전개로 한다면 헬라어로도 추론적 사고가 가능하며 언어는 문맥을 통해서도 패턴은 인식 됩니다.
패턴 인식은 지능이 중간 이상이면 동물들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적 전개는 감성형 사고에 어울릴지 몰라도 오히려 성경을 바로 아는데, 더 나아가 일반 지적 활동에도 도움이 되기보다 반대로 지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추론 해 봅니다.
헬라어가 히브리적 사고와는 어느 정도 다를지 몰라도 언어의 한계가 성경을 바로 아는데까지 장애가 되는건 아마 조금은 지엽적 작용으로 보일 것 같고 다양한 다른 요소들이 더해질것 같습니다.
히브리사고로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하실때 보기 좋았더라! 가 강조 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만드심에 왜? 라는 질문은 없다는것이지요.
헬라적 사고는 몇 째날 뭘 만들고 몇 칠 걸렸고...인간은 며칠날 창조 되었나?를 시작으로해서 분석 하기에 바쁨니다.
창조주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한 것입니다.
창조주의 반대편에서 그게 좋다고 말한다면 더 이상의 권고가 필요없겠지만은,,,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따라가는 것의 차이를 겪어 본 입장에서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