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0월 21일 제26차 유엔총회에서 찬성76표, 반대 35표로 중화인민공화국(당시 중공이라 불렸던)의
UN 가입이 상임이사국 지위와 함께 가결되었다.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으로 축출된지 21년간 끌어온 중국의 대표권 문제는 이렇게 ‘힘의 논리’로 정리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사회주의 정부수립 후 모든 친미국가를 적성국으로 간주하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우리나라하고는 한국전쟁 개입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단절의 벽을 쌓고 지냈다.
70년대 초 미중 화해무드로 한반도 주변정세에 변화가 일었다.
양국은 체육, 관광, 이산가족, 친척방문 등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교류를 시작했다.
1990년에 들어와 영사기능의 일부를 수행하는 무역대표부 설치에 합의하였고,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한중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두 나라는 상호간 최대교역국으로 발전했다.
어느 날 부터,
우리는 중국이라 부르던 대만을 '타이완'이라 하고, 중공이라 부르던 대륙을 '중국'이라 했다.
대만을 마지막까지 지지한 나라가 당시 대한민국이었지만,
‘힘이 정의’인 냉정한 국가 간 외교에서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했다.
'자본의 논리'다.
대만은 피 눈물를 흘리며 대사관을 철수했다.
- 당시 명동 오비스캐빈 골목 건너에 있었던 찻집 ‘가무’ 2층에서는
중국(대만)대사관 뜰이 내려다 보였다. 가을이면 대사관 뜰의 단풍이 고왔던 기억이다-.
1945년 일본을 몰아낸 중국은 1946년부터 시작된 국.공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1949년 10월 1일 대륙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하여 세워진 국민당 장개석 정부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쫓겨난다.
이후 중화의 대표권을 놓고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결국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받은 것이다.
미국을 비롯 많은 유엔 회원국들은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축출되는 대신,
UN회원국 자리를 그대로 유지해 중화인민공화국과 두 개의 중국으로 모두 인정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강력한 송미령의 반대에 부딪혔다.
‘영위옥쇄 부위와전‘ 이라며 두개의 중국을 강력히 반대했다.
’부서진 옥이 될지언정, 온전한 기와가 되지는 않겠다‘
즉 ‘가치 있게 죽을망정 너절하게 살지는 않겠다’ 두개의 중국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송미령의 중화인민공화국의 UN 가입을 반대하는 치열한 미의회 로비에도 불구하고,
1971년 10월 21일 중화민국은 유엔에서 축출된 후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타이완에서는 이 사건을 ‘장부인일언정강산’ 장개석 부인의 한 마디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했다
고 송미령을 지탄했다. 그 만큼 송미령의 파워와 자존심이 대단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3년 후인 1975년 향년 89세로 장개석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장개석. 송미령
2003년 10월 24일, 중국 근대사 '여왕벌' 지다,
장제스 사망 이후 미국서 여생 보내...
쑹메이링(宋美齡) 은 2003년10월 24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10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로써 중국 근대사의 산증인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송가황조(宋家皇朝) 3자매'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송미령 그녀에겐 '사랑 없이 권력과 결혼한 여인' '자유분방한 미녀 로비스트'
'서태후 왕관의 진주알을 결혼식 구두에 단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따라 다녔다.
언니 송경령이 '국모'로 추앙되고 인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화려한 외모와 사치,
미국의 막대한 차관을 받자마자 송미령은 그 돈을 미국백화점 순례에 사용했다.
인민을 위해 쓰여져야 할 미국원조가 장개석과 송미령 그리고 송애령, 공상희의 개인 주머니로 흘러갔다.
그들은 이 돈을 '뉴욕의 부동산'에 재투자했다.
송미령( 1898 ~ 2003)
서해너머 거대대륙 중국, 적대국에서 최대교역국으로,
2012년 11월 15일,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당대표대회(전국대), 바로 중국의 새로운 권력이 이동되는 순간이었다.
180은 넘는 키에 온순하고 자상한 이웃집에서 본듯한 아저씨같은 풍모... 그가 바로 '시진핑' 주석이다.
'후진타오' 10년시대를 마감하고,
앞으로 중국을 이끌 지도자로 그의 시대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시진핑(1953~ )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이날 중국의 유일한 정당인 '중국공산당'의 총서기로 선출되면서,
군사위원장도 겸임하는 사실상 중국의 새지도자로 선출된 것이다.
제 7대 시진핑 집권이후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제2경제대국으로 도약하면서,
미국 다음가는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으로 북한김정일의 표현대로 '천지개벽'한 중국은,
세계최강대국 미국에 버금가는 G2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2000년 이후 10여년간 연평균 10%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조만간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중국경제가 급부상한 요인 가운데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15억 인구에서 나오는 힘이다.
한국이 1992년에 대만(자유중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한 것도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이었다.
15억중국인들에게 10원짜리 껌 하나씩만 팔아도..., 운동화 한 켤레씩만 팔아도...
이런 상상만 해도 엄청난 중국 시장의 매력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공감하는 곳이다.
헐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가 영화 홍보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방송국에서 준비한 접이식 부채를 선물로 받고는 Made in China ? 냐고 조크했다.
-그는 불교신자로 티벳 독립을 지지하고 지도자 딜라이 라마와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관광지에 중국인이 몰리고 중국제품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없는 지구촌,
China Money는 이제 세계 곳곳에서 넘사벽으로 군림한다.
시진핑은 주석의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을 폐기하며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고,
집권 초기부터 실시한 반부패 운동을 통하여 정적들을 숙청하며,
1인 독재의 지위를 굳히고 있다는 평가를 대외적으로 듣고 있다.
한편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장기집권에서 오는 자신감인지,
시진핑 시대 해외 중국 외교관들의 무례한 언행과 공격적인 태도는 ‘전랑 외교’
또는 ‘늑대 외교’라고 불리며 전 세계인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2008년 4월 27일 베이징 올림픽 서울 성화 봉송 때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오성홍기가 물결을 이루었다-.
또한 2019년 12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COVID-19)가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원하여,
중국의 다른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결국에는 전세계로 번지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어졌다.
이후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황색테러'의 타깃이 되어 얼굴색 노란이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 했을 때 '천지가 개벽했다'는 말을 남겼다는 '상해의 마천루'
서울 중심부 뒤덮은 '오성홍기'와 중국인의 폭력사태...중국에서 공수된 수 만장의 '오성홍기'
“강력한 하나의 중국과 중국 민족주의의 표현"이라는데....
서울 송파구 올림픽 광장과 광화문 일대는 2002년 월드컵 때처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서울 성화 봉송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인 6500여명이 중국 국기 오성홍기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A4용지부터 성인 키 만한 크기까지 다양한 오성홍기가 올림픽 광장은 물론 성화 봉송길에 휘날렸다.
1인1기는 기본이요, 깃발을 몸에 두르고 얼굴에 그리고 봉에 끼워 함께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서울시내 곳곳에서는 국내 체류 중국인들이 가담한 친(親)중국 시위대의 폭력행위가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는 등 우려를 자아냈다.
오후 2시40분께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앞에서는 중국인들이 탈북자 인권단체 회원들을 향해
플라스틱 물병과 각목, 돌을 던져 한 일간지 기자가 돌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국인 시위대는 또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미국·캐나다인 5~6명에게 물병을 던지고 시청앞 광장에 모여있던
5천여명 중 일부는 티베트와 대만 국기를 흔든 반(反)중국 시위대를 추격,
인근 프라자호텔에까지 난입해 의경을 구타하는 소동을 벌였다. -당시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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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올림픽과 성화 봉송에 반대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쁜 것은 이해하지만,
법도. 이성도 없이 남의 나라 수도 한 복판에서 짐승처럼 날뛰는 중국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만약 북경에서 한국인이 저랬다면 그 자리에서 중국경찰에게 맞아 죽었다.”
“저것들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저 따위 행동을 하나,
신성한 대한민국 영토에서 자국민이 중국 것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는데 정부는 도대체 뭣들 하는 거냐”
“민주주의 국가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인 이단 옆차기가 가당한가, 이게 치안이 있는 나라냐”
“폭도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물리력 없이 행진하던 자국민 시위대와 기자, 티베트인, 관광온 외국인,
경찰에게까지 폭행하고 집단 린치를 가한 게 말이 되냐”
벌건 대낮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중국인들의 '폭동'을 보았을 때,
그들은 도저히 올림픽을 치룰 만한 '양식과 양심,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세계경제대국 2위가 웬말이냐.. 그에 걸맞는 수준 갖춰야..막 가는 중국이 무섭다.
성화 봉송 반대 시위대에 대한 공격은 '중화주의'에 근거하겠지만,
진정한 자존심은 '보편적 인권과 소수에 대한 인정 및 포용을 지향' 할 때 존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