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323208§ion=sc30§ion2=
이렇게 끝내기는 아쉽다. 꽤 많았던 연휴 사탕이 어느새 단 한 알만 남겨두고 있다. 친구가 링크를 걸어준 명소에 다녀오리라. 사실 어제 마음을 먹었다. 뜻 한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변수가 있으랴. 명일로 목표를 이월해 둔다.
집안일이 얼추 끝났다. 대충 알 것 같은 목적지이다. 혹여 불가항력인 돌발사태에 대비하려 지도를 더듬어본다. 가 보자. 신호등이 없는 길로 접어든다. 팔십 킬로미터 제한 속도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걸로 안다. 차량이 쌩쌩 잘도 내 차를 치고 나간다. 뻥 뚫린 길은 일방으로 기분까지 한껏 달릴 수 있다. 여유롭게 안전한 속도로 나아간다. 이 차선이기에 거북이처럼 즐기며 느릿하게 가고 싶다. 급한 토끼 차량은 얼마든지 추월할 수 있으리라.
너무 안일했던 걸까. 붕 뜬 직진을 지속하다 보니 예상과 다른 풍경이 눈앞을 흐린다. 샛길로 빠질 구간을 곁눈질하면서 달려본다. 다행히 익숙한 경찰서가 보인다. 잠시 멈추어 보자. 네비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곧 다가올 것이다. 또다시 일방통행인 외길 안내다. 머릿속에 그렸던 지역 근처로 진입했다. 이럴 수가, 우회전을 끝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갑자기 종료한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메밀꽃은 당최 보이질 않는다. 승용차 한 대가 없고 큰 트럭만 몇 대 주차하고 있는 흔한 아스콘 파운데이션 하나 찍어 바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맨땅이다. 나 더러 맨땅에 헤딩이라도 하라는 걸까. 재작동시켰지만 같은 말을 반복하는 우스운 기계이다. 거의 다 온 듯한데 막판에 날 내동댕이치는 불통이다.
무조건 큰 도로로 다시 진입해 보자. 얼마쯤 달렸을까. 도로의 양쪽 가장자리에 긴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옳거니 여기로구나. 누적된 눈치, 코치로 추정리 마을이 인근에 있음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간다. 야광봉으로 차량 진입을 막는 밀짚모자다. 그 뒤에서 가운데 잘 정비된 하천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한여름에 계곡으로 피서를 떠날 필요가 없겠다. 저 상류까지 이어진 하천으로 보건대 어디든 접이식 의자를 놓거나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면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으리라. 뒤에서 정담을 나누는 노부부도 내 생각에 재담하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상하다. 블로그에서는 주차와 입장이 무료라 했다. 플래카드는 장식용이 아닐 텐데, 오천 원에 미취학은 무료라고 씌어 있다. 일 킬로미터라고 안내했으나 오르막이라 그 이상의 거리인 듯한 운동화의 감각이다. 칭얼거리는 손녀를 업고 가는 저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는 힘들겠다. 이제 백 미터만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의심했던 예감이 과녁을 빗겨가지 않는 건 불문율인가 보다. 좌판 뒤에 서 있는 젊은 남자가 표를 사야 들어갈 수 있다고 연신 소리치고 있다. 블로그 정보를 꺼냈다. 작년까지였고 올해는 아니란다. 분명 지난달 말에 다녀갔다는 블로거 글을 보았으나 순순히 돈을 냈다. 뒤따라오던 일행 중 한 명이 투덜댄다. 현금만 받는다고 했나 보다. 안내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면서 입구에 다 와서 돈을 받느냐고 항의한다. 여기까지 에움길을 걸어왔다. 메밀꽃의 코 앞에서 어찌 그가 등을 돌릴 수가 있으랴. 현금을 찾는 몸짓이 분주하다.
오, 장관이다. 꿈꾸었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하나만 피어 있으면 물가에 피는 풀꽃 비슷해서 감흥이 없을 듯했다. 군락으로 모여있으니 이토록 눈을 황홀하게 할 수가 있구나. 운집의 힘은 실로 굉장하다. 혼자는 용기가 없어도 운집하면 거대한 세력이 되는 것처럼. 잘디잘은 메밀꽃들이 산의 구릉을 온통 차지하고 있다. 하얗게 넘실대는 꽃들의 여백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하나는 힘도 미약하고 별 볼일이 없다. 독창은 약해도 합창단의 일원이 되면 단합된 화음의 공명으로 휘황할 수가 있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심을 채우기보다 여기 메밀꽃처럼 사람들의 눈과 가슴을 따듯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
하얀 메밀꽃밭을 색실로 수를 놓는 존재자가 있다. 군데군데 낀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다. 정갈하게 말아올린 잔치국수에 얹어놓은 화려한 고명처럼 미학적이다. 이곳 추정리에서는 메밀꽃이 그들에게 결코 미모 면에서 꿀리지 않는다. 청초한 순백의 소녀가 되어 화려한 립스틱을 바른 여인과는 다른 청량미를 뽐내고 있다. 볼수록 빠져든다.
추정리의 메밀꽃 필 무렵 한 가운데서 유명한 시구가 떠오른다. 조금 바꿔 보련다.
그냥 보아도 예쁘다
오래 보면 더 예쁘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