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5년 가을
타브리즈가 내 형님인 즈므긴이 이끄는 맘루크 왕조군 9000에게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고은 형님이 맞서 싸우러 나섰다. 한고은은 맘루크 왕조군을 전멸시키고 적의 두 총대장을 사로잡았다. 즈므긴 형님은 등용토록 하고 나머지 하나는 본보기로 목을 쳐 타브리즈 성문 앞에 내걸도록 하였다.
각지에서 하나 이상의 수치가 90이 넘는 인재들이 등용되었다 하니 기분이 좋다. 새로 등용된 자들에게 연회를 베풀어주도록 하였다.
지모 100에 외교 특기에 빛나는 투퍼다이 형님을 힌두 제왕조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각종 기술을 가르쳐 살살 구슬린 다음 항복시킬 예정이다.
나의 소망은 태평성대이지 세계 정복은 아니나 고통받고 있는 인도 백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인도를 정복하여 평화의 시대를 선물해야 했다. 또한 힌두 제왕조엔 카스트 제도라는 악습이 있어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하니 반드시 폐지해야겠다. 힌두 제왕조를 정복하면 그 땅에 정책적으로 라마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전파하여 평등의 이념에 익숙하게 한 뒤 조치를 취할 것이다.
1315년 겨울
함양에서 첫 눈이 내렸다.
기쁨에 들 뜬 나는 축재를 벌이겠다고 제안했으나 어른들은 눈 오는 걸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 그만두기로 했다. 왜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튼 함양에서 도시 규모로 축재여는 건 포기하고 궁전 한켠에 황후들, 궁녀들, 환관들, 친위대 병사들을 2000명 정도 모아 조촐하게 축재를 열었다. 몸매 좋은 궁녀 몇 십 명을 골라 벌거벗게 한 뒤 나체로 눈싸움하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황후들이 어째 날 이상한 눈초리로 노려보는 것 같다-_- 내가 쳐다보면 안색을 싹 바꾸고 싱글벙글거리지만 이미 눈치 챘다-_-++
곽수경이 찾아와 간했다.
"폐하께서는 궁전에서만 자라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르십니다. 겨울은 가난한 백성들에겐 너무나 힘든 계절입니다. 불도 못 떼어 추위에 떨어 얼어 죽을 수도 있고 벌이도 신통치않아 굶어죽을 수도 있습니다"
"알았소, 좌승상. 조치를 취하도록 하리다"
쿠빌라이 칸이 비록 국고를 낭비하긴 했으나 워낙에 땅덩어리가 넓은지라 수입이 엄청나서 국고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었다 한다. 또한 내가 즉위하자마자 실시한 강도 높은 긴축 정책으로(사실 내 나이가 어리다보니 어른들 놀이를 잘 안 즐기는 것도 까닭 중 하나 였다고 나중에 알았다. 사냥도 안 가고 축재도 잘 안 벌였고 술 같은 것도 안 샀으니까) 국고가 조금씩 튼튼해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궁궐 창고의 일부를 개방하여 구휼미를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겨울이 추운 여러 다른 도시에서도 같은 정책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가난한 집 출신 관료들을 내 집무실로 불러 그들의 어려웠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상황이 전혀 짐작되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양양에서 태어난 진회 형님, 교토에서 태어난 나까무라 겐이치로 형님, 평양에서 태어난 강감찬 형님에게 각각 4000기의 몽고기병대를 주어 파간에서 델리를 향해 출병케했다. 모두들 연사를 할 줄 아는 무서운 형님들이다. 특히 진회 형님은 전투100에 지모95에 이르며 연사에 화공까지 쓸 줄 아신다. 이들이 힌두 제왕조군을 때려부술 것이다. 투퍼다이 형님이 힌두 제왕조의 도시 빅마마 교외를 지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빅마마는 쿠빌라이 칸 시절 무리하게 원에서 확장한 도시로 얼마못가 힌두 제왕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은 빅마마 근처에 있는 두 도시 델리와 제베가 원의 것이니 큰 무리 없이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쟁으로 힌두 제왕조를 쓰러뜨린다면 백성들이 너무나 많이 상할 것이니 되도록이면 투퍼다이 형님이 성공하셨으면 한다.
1316년 초봄
이제 나도 11살이다.
모든 공노비를 해방시켜 임금 노동자로 만들었다. 계속 관청에서 일하기 싫다고 하는 이들은 내보도록 지시하고 나머지 인원은 새로 뽑도록 했다. 많은 반대가 있었으나 내가 노비의 경우 잘 일하려 하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자료를 잔뜩 제시하자 모두 침묵하고 말았다. 사노비도 언젠가는 해방시킬 작정이다. 나라의 빚을 모두 갚았다.
서화에 취미가 생겼다. 아직은 낙서 수준이지만 열심히 하면 좋을 것이다. 북송이 휘종의 사치 탓에 망했다는 걸 알기에 그런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 대규모의 서적 편찬 사업을 일으키는 한편 남송의 관학이던 성리학 대신 다른 유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도록 지시했다. 고려에 벚꽃 축재라는 것이 있다는데(벚꽃 즉 사쿠라가 일본 국화로 제정돤 건 임진왜란 이후의 일입니다) 벚꽃이 자랄 수 있는 모든 지역에 널리 벚꽃을 심도록 지시했다. 가도를 정비하는 사업을 벌이도록 하고 가로수를 심었다. 몇 년 뒤에는 함양에서도 벚꽃 놀이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7살 때까지는 대구 출신인 어머님과 함께 부산에서 살다시피하면서 자주 벚꽃 놀이를 즐기곤 했었다. 이제 황태후가 되신 어머님은 자주 벚꽃 놀이를 즐기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니 들어드려야 겠다.
임안, 천주, 개성, 다자이후, 대도, 밀주 등 항해 문화가 크게 발전한 도시들에 거대한 조선소를 건설토록 하고 6000톤 급 이상의 범선들을 대량 생산하도록 했다. 이것들을 무역에 투입할 예정이다.
1316년 봄
델리에 힌두 제왕조의 첩자가 들어와 이를 사로잡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본보기로 참수하도록 지시했다. 투퍼다이 형님이 마드라스 교외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환관을 멀리하고 중신들을 중용하는 정책을 쓰는 한편, 앞으로는 환관을 수술할 때 음경은 내버려두도록 하였다. 환관들이 권력욕이 유별난 까닭은 성욕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라는 분석 기록을 읽은 까닭이다. 음경만 있어도 발기는 되지만 임신은 시킬 수 없다. 또한 앞으로는 환관들이 궁녀들과 음행을 저질러도 임신만 안 되었다면 아무런 제제도 가하지 않도록 하는 내부 규정을 정하여 시행하였다. 나는 후한이 환관의 전횡으로 멸망했음을 알고 있다. 원을 오랫동안 존속시키려면 각종 조치들이 필요하다. 밀주의 좌승 석학취를 함양으로 불려들여 예부상서 지위를 약속했다.
폴란드의 사신으로서 와 수십 년 넘게 함양에서 거주하고 있는 폴란드 대신 오루친을 궁궐로 불러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오루친은 쿠빌라이 칸 시절 수많은 기술을 우리나라에 전해주어 우리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이 있다. 원의 무수한 도시들은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함양의 부는 최고이다.
1316년 여름
여러 뛰어난 인재들이 등용되어 기분이 좋다.
과거에 수석으로 합격한 정준용을 직접 등용해 기분이 더욱 좋다.
투퍼다이 형님이 힌두 제왕조의 수도 캘리컷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좋은 소식만 들리나 했더니 내가 일전에 추방했던 아우 김소월이 폴란드에 등용되었다고 해서 기분을 잡쳤다. 모든 잔치에 참석하기로 한 것을 취소하고 궁궐 안에 틀어박혔다. 황제의 집무는 정말 강행군이다. 진시황은 하루에 30kg의 기록을 처리하지 않으면 잠 자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나도 하루에 45kg 정도의 기록은 처리하는 것 같다. 바스바 문자와 한자를 함께 공용어로 쓰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난 두 문자로 된 기록 모두를 검토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성미다.
그렇지만 정무를 소흘히 할 수는 없다.
정준영 및 황후 7명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황후가 1명 밖에 찾아오지 않았다. 누나라서 그런지 내 벗은 모습이 엄청 귀엽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부끄러워서 혼났다. 아무리 내 나이가 11살이라지만 자기도 13살인 주제에 이래도 되는 거야-_-
건강에 신경을 쓰라는 정준영의 조언에 따라 궁궐에 있는 무투장에서 쿵후, 태극권을 연마하는 한편 소림사와 무당파(이 둘은 실존했었다는군요. 물론 무협지에서 나오는 건 거진 다 구라)에서 무술 사범을 초빙하도록 지시했다. 무협지를 보면 강호라 하여 마치 조정과 분리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웃기는 소리다. 이들 무술 사범들은 조정의 관리 하에 들어가 있으며 그 세력도 크지 않다. 몽케 칸은 소림사와 무당파의 문을 닫게 했었다. 그러던 것이 쿠빌라이 칸 말기에 문을 여는 걸 허락해주었다. 그 뒤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다. 내가 그것에 힘을 보태주는 겸 내 체력 단련도 할 겸 해서 부르는 것이다. 또한 무협지 들에서 보면 검을 주로 쓰고 말을 잘 안 타면서 이를 멋있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것도 어이없다. 본디 무기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은 창과 활이다. 검은 단지 비상용 무기에 불과하다. 창은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금하고 있기에 검을 쓰는 것을 미화했을 뿐이다.
궁궐 내부의 맑은 연못에서 황후들, 궁녀들을 불러서 같이 벌거벗고 수영하면서 놀았다. 가끔은 빡빡한 정무에서 벗어나 놀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난 그 다음날 난 다시 집무실로 돌아가 조회를 열고 관리들과 고개를 맞대고 나라 일을 의논했다. 나에겐 황제로서 천하 만민의 복리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내 이전의 몽골 대칸들은 백성을 단지 전리품으로서 다루었으나 중국 제왕학을 익히면서 고려에서 자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316년 성하
카라코룸 출신 황후 와풀리크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 정말 기쁘다.
내 형 나까무라 겐이치로가 힌두 제왕조군과 격돌했다. 전투98, 지모96에 연사, 화공도 쓸 줄 아는 명장 중의 명장이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다 다를까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적장은 참수하도록 했다.
마침내 투퍼다이 형님이 캘리컷에 도달하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단 삼포농업의 기술을 가르쳐 저들과의 사이를 친밀하게 했다. 그래야만 원에 항복해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저들 사이에 퍼지게 되고 그럴수록 항복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맘루크 왕조의 대군이 타브리즈로 진격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참으로 끈덕진 것들이다.
1316년 가을
각지에서 흉작이 들었다.
즉시 그동안 비축해둔 쌀을 헐값으로 대량으로 풀었다. 군량미는 한 도시당 5만 씩만 비축하도록 되어 있어서 풍작이 들 때마다 비싸게 사들인 쌀들이 아주 많이 있다. 현재 군량이 183만이니 군량도 넘쳐나겠다 사정없이 헐값으로 풀게 하고 덤으로 가난한 사람들한텐 구휼미도 나누어 주도록 조치했다. 농업의 도시인 양양 한 도시에만 60만, 목동의 도시인 카라코룸 한 도시에만 49만의 식량의 쌓여 있었던 판이다. 물론 이들을 다 풀지는 않았다. 전국에서 300만 정도만 풀어도 충분하다. 다 풀고도 500만 정도가 남았다는 보고다. 어차피 참파미 덕에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고려 인도에선 지난 성하에도 수확을 했었으니 끄덕없다.
내 형님 진회 장군이 인더스 강가의 습지에서 힌두 제왕조군과 격돌했다는 소식이다. 전투 100 지모 95에 연사 화공을 지닌 명장 중의 명장이시니 잘 싸우실 것이라 믿는다. 인더스 강가라 그런지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진회 형님이 적을 순식간에 무찔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5부대와 4부대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는 소식이다. 몽고기병대의 연사는 가능했던 것이다. 적장의 목을 치도록 지시했다. 원의 힘에 맞서는 자들에겐 언제나 가차없는 보복이 내려졌었다.
투퍼다이 형님에게 명해 사포농업의 기술을 힌두 제왕조에 전하게 하였다.
폴란드의 왕족 미노프가 수많은 인부를 거느리고 사라이에서 바쿠에 이르는 가도를 닦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잘 된 일이라 여겨진다. 동서 문화 교류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라 여겨진다. 대상들은 이구동성으로 징기스칸 이래 가장 무역하기 좋은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쿠빌라이 칸 시절엔 폴란드와 원이 대립하고 있어 두 나라의 국경 지대는 불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폴란드의 공주 리리안을 황후로 삼고 있어 두 나라의 우의가 돈독하니 안전할 밖에 없다.
1316년 겨울
힌두 제왕조와 맘루크 왕조가 동맹을 맺었다고 한다.
호코키에게 명해 강감찬 형님의 군대에 군량을 보급하게 했다.
투퍼다이 형님에게 명해 힌두 제왕조에 참파미의 종자와 재배법을 전하게 했다. 빅마마에의 가도가 순조롭게 닦이고 있다고 한다. 연결되는 즉시 제베와 델리에서 빅마마에 군대를 보낼 것이다. 일전에 내가 쫓아낸 트딘두팔 형님이 맘루크 왕조에 등용된 뒤 군대를 몰고 와 타브리즈의 번화가에 불을 질렀다. 새삼스런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트딘두팔은 몽골의 발생지 오논 출신으로 자신이 순수 혈통임을 내세워 전횡을 일삼았다. 내가 황제가 된다는 것에 노골적으로 분함을 표시한 형이기도 했다. 사로잡으면 참수할 것이다. 몽골 순수 혈통이라는 무서운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통성에 도전할 수 있는 자를 용납할 수는 없다(트딘두팔의 경우 이소영을 황제로 만드니까 충성도가 4가 되더군요-_- 쿠빌라이 칸 아래서는 충성도 100이던 놈이 이래도 되는 거야?!)
첫댓글 잼씀다~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