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든 가족 여행
지난 달 25일, 2박3일 일정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조금 그럴 듯하게 단어 조련을 해서 '가족 여행'이지 그냥 가족끼리 여수 지인(知人) 댁을 방문해서 시간을 보내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몇 곳을 둘러보았으니 '여행'이란 말을 써도 그렇게 어긋나지는 않을 듯합니다.
아이들이 다 큰 관계로 각자 떨어져 생활을 합니다. 큰 아이는 화천에서 군 복무 중이고 둘째는 서울에서 그리고 셋째는 포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제대하여 복학하면 대학생만 셋이 되니 뿌듯하면서도 늘 무거움을 느낍니다. 우리 부부 둘만 덩그러니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가족 구성원 다섯이 모두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 하순 식구가 다 모였어요. 의도성이 조금은 작용했습니다. 군 복무 중인 첫째가 그 때 말년 휴가를 나왔거든요. 거기 맞춰 방학 알바 중인 두 동생이 시간을 조정해서 집으로 온 것입니다.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준비하느라 아이들이 부산을 떨었습니다.
농촌 목회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름휴가는 가까이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 와중에 여름휴가를 떠 올린 것은 두리셋교회 송 목사님 부부의 덕입니다. 여수에서 목회하는 송정권 고영신 목사 부부는 지역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이 있고, 상담실이 있고 게스트룸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작은 농촌 교회지만 목양하랴 지역 섬기랴 쉼 없이 달려 왔습니다. 이런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가족과 오순도순 시간을 보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아이들도 부모의 눈과 손길을 받지 못하고 알아서 자라야 했습니다. 스스로 성장했다는 말은 우리 아이들에게 해당될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키워주셨다고 말하지요.
여수, 우리의 여행지로 삼다
지난 여수 여행은 아이들이 준비한 것입니다. 두 딸아이가 아들의 마지막 휴가에 맞춰 시간을 조율해서 날을 잡았습니다. 부모와의 빈약한 대화 통로를 넓혀 보고 싶은 마음들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여수로 장소를 정한 것은 아내의 결정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가면서부터 노래 부르는 시간, 토론하는 시간, 잠 자는 시간으로 자유를 누렸습니다.
여수 송 목사님 부부의 섬김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도착한 날(8월 25일) 저녁 식사는 장어탕이었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유명한 음식점이라고 했습니다. 맛이 입에 찰싹 들어붙었습니다. 여수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음식점은 인증 받은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을 먹고 만족감을 누리는 것도 하나의 행복에 속하겠지요.
휴가 나온 아들이 바다낚시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갑자가 '웬 바다낚시!' 송 목사님과 고 목사님도 낚시를 즐긴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서비스의 변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낚시 도구가 다 갖춰져 있는 것으로 봐 송 목사님과 낚시와의 긴밀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바다낚시는 제게 처음입니다. 갯지렁이로 미끼 끼우는 것 까지는 송 목사님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바다에 던지고 기다리면 고기가 무는 느낌이 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낚시를 번쩍 들어 올리면 물고기가 달려올라 옵니다. 낚은 고기를 바늘에서 조심스럽게 빼 내어 바다로 던져 살려 줍니다. 낚는 재미만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영성 단련의 산실 여수 애양원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수 애양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한센인들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목회하던 곳입니다. 애양원병원이 있고 애양원교회(지금은 성산교회로 개칭)가 있으며 한센인박물관과 손양원순교기념관이 있어서 신앙 교육의 장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갈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게 교육의 효과가 클 때가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선교 영성은 이곳을 방문할 때에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했습니다. 순교기념관에 이어 삼부자묘, 성산교회 예배당에서 손 목사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큰 관심을 갖고 임했습니다.
기념관을 둘러보던 중 노 신사 한 분이 제게 와 목사님이신가 물어왔습니다. 단박에 손동길 목사님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2015년) 10월 함안 손양원기념관 준공식에서였습니다. 누님 되시는 손동희 권사님과 함께 그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 뒤 한 번 만나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문의할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지요.
손동길 목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제 생각을 수정하게 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손동길 목사님이 유복자라는 것, 즉 손양원 목사님이 1950년 9월 29일 새벽 2시에 순교했고 막내 손동길이 29일 아침에 태어났다는 것 입니다. 몇 시간을 사이에 두고 유복자가 된 것입니다. 손동길 목사님은 아버지에 대해 잘 못 전해진 것이 적지 않다며 제게 하소연하듯 얘기했습니다.
환상적인 돌섬 야경과 태백산맥 문학관
돌섬공원의 야경도 보기 좋았습니다. 조명을 잘 설치해 두었고 포토 죤 등 방문객들을 배려한 손길들이 곳곳에 미쳐 있었습니다. 한 가지, 제게 국한되는 얘기가 되겠지만 많은 계단과 급격한 경사로로 다니기에 불편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장애인들과 노인 분들을 생각해서 경사로와 계단에 손을 잡고 다닐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멀리 장군도 등을 바라보며 우국충정의 의미를 새겨 보았습니다.
벌교 태백산맥문학관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문화에 대한 존중은 그 지역의 수준을 말해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공공도서관과 서점을 찾아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 문학관 등 예술에 대한 기념관도 제가 즐겨 찾는 곳입니다. 벌교 태백산맥문학관도 그런 의미에서 일부러 찾았습니다. 여수에서 좀 떨어져 있었지만 꼭 다녀올만한 곳입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역사의식이 뚜렷한 소설가입니다. 시종여일(始終如一) 정의와 진리 그리고 사회적 약자 편에서 문학을 생산해 온 사람입니다. 태백산맥문학관에는 그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신문 관련 기사에서부터 그가 쓰던 물품까지…. 독자들이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해 보관하고 있는 원고지들에서 조정래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후배 김만수 원장과 차 정원(Tea Garden) 방문
여수에 가면 꼭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만수 원장 부부입니다. 그는 제가 서울에서 사회 운동을 할 때 함께 활동했던 동지입니다. 그 뒤 역시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던 여성 동지와 만나 결혼을 하고 한의대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은 여수에서 '우리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지역운동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고 합니다.
26일 저녁 김만수 원장 부부와 같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호텔식이었습니다. 정갈한 한정식이었는데, 여수에서 최고급 음식점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마침 그 날이 사드 반대 전국 동시다발 집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사드의 직접 영향권 아래 살게 될 상황에 놓여있는 제가 여수의 집회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불발로 그쳤습니다.
이튿날(27일)은 우리 휴가의 마지막 날입니다. 김만수 원장의 부인 최미숙이 운영하는 '차 정원(tea garden)'에 들렸습니다. 돌섬에 6천 여 평의 야산을 사서 꾸민 정원입니다. 차를 직접 재배해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또 다도(茶道)로 마음을 힐링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 사람의 손길이 자연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일 동안 가꾸고 꾸민 정성이 돌 하나 나뭇가지 하나에 그대로 배어 있었습니다. 멀지 않아 여수에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관광 명소가 될 것 같은 예감을 가졌습니다. 마치 남해안 거제도에 있는 외도와 같이 말입니다. 한 번 가면 또 방문하고 싶은 곳, 그런 데가 바로 관광 명소 아니겠습니까.
따뜻한 만남에서 진실한 삶을 다짐하다
모처럼 가족 모두가 함께 한 여름휴가,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무 타산하지 않고 만남 자체에서 의미를 찾게 해 준 지인들에서 아이들도 생각하는 바가 많았던 듯합니다. 송정권 목사 부부, 김만수 원장 부부가 순수하고 따뜻한 만남을 만들어 낸 한 쪽 주인공들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 부끄럽지 않게 살리라고 다시 다짐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난다 해도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삶, 진실 위에 바탕 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번 가족이 함께 한 여름휴가는 이렇게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섬김의 본을 보여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손양원순교기념관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손양원 목사님의 막내 아들 손동길 목사. 그는 몇 시간을 두고 유복자로 태어났다.
산돌 손양원 목사님 사진 앞에서 손동길 목사와 포즈를 취했다.
삼부자 묘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두 부자
태백산맥문학관에 비치되어 있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전편 수기 원고.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직접 쓴 것이다.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입구에서
송정권 고영신 목사 부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거울에 비친 것을 휴대폰 카메라로 담아낸 것이다.
최미숙 씨가 꾸며놓은 '차 정원(Tea Garden)에서
'차 정원'에서 우리 부부가 최미숙 씨와 함께 프즈를 취했다. 최미숙 씨는 나의 사회운동 후배이기도 하다.
풀 한 포기, 돌 하나에서도 그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은 정성과 사랑을 쏟아부은 정원이란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