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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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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타원 민자연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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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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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원 이공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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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타원 김영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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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산 박창기 |
이 집안이 불보살 집안이다. 락타원님이 66세에 대종사님을 육타원 이동진화 선진님의 인도로 만나게 되었다. 육타원님이 궁궐과 인연이 있었고 구타원님도 왕자를 가르치는 시독이었다. 그런데 대종사님과 인연이 되면서 구타원 이공주 선진님, 융타원 김영신 선진님, 묵산 박창기 선진님이 출가하신 분들이다. 서울에 왕궁가에 있던 사람들이 익산에 가난한 신룡동에 사는 대종사님을 만나 출가한 것이다. 대종사님의 위덕이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대종사님은 처음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육타원 이동진화 선진님, 구타원 이공주 선진님 집을 오가면서 서울의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돈암동에 지금 비석이 있다. 서울교당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대종경에 대종사님이 서울역에 가자고 했는데 응산 이완철 선진님이 “교무가 어떻게 짐을 지고 가겠습니까” 했다가 혼난 내용이 나오는데 그 곳이 여기다. 용산에 서울 교당은 해방 후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하고난 후 정부에서 용광사 절을 불하받아 서울 교당이 용산으로 가게 되었다. 그 곳에 건물이 두 채가 있었는데 원래 경복궁에 있던 것물이 일제가 절을 짓는다고 가져가서 지은 곳이었다. 하이원빌리지와 서울교당을 다시 지으면서 융무당은 옥당박물관 옆으로 가고 융문당은 영산 선학대학교 앞으로 갔다.
구타원님의 어머님이신 락타원님이 돌아가시기 8년 전에 대종사님을 만나서 그 8년동안 대종사님께 큰 신심을 바쳤다. 이 내용을 봐도 대종사님이 식사를 하시면 얼른 가져다 드셨다. 그 때 당시 대종사님을 생불님이라고 하셨다. 생불이신 대종사님의 남긴 밥을 먹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또 옷을 지어 바친 것도 큰 인연이 되고 복이 되기 때문이다.
안암교당 오기전까지 딱 맞는 옷을 입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초기교단의 모습이다. 그래도 서럽지는 않았는데 교역자로서 품위가 떨어지고 교화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걱정은 됐다. 스스로 부족한 것은 없었다.
여러분들이 이 법문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대종사님께 이불을 바친 사람, 옷을 바친 사람이 많았다. 대종사님이 상당히 부르조아처럼 옷을 입으셨다. 박물관을 봐도 그 당시 최고 옷이었다. 그럼 그 옷을 평소에 입고 돌아다니셨느냐? 해주시니까 한 번씩 사진 찍을 때나 한 번씩 입으시고, 옆에 놓고, 평소 옷을 입으셨다. 해주신 분들은 생불님에게 정성을 바친다는 의미였다. 음식 같은 것도 “난 시골에서 몇 가지 반찬 안 먹고 자랐으니까 이런 고급 음식 안 해주셔도 됩니다.”하셨다. 부처님이라 “난 이런 거 안 입어” 하고 짤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번씩 입고 따로 두셨다.
초기 선진님들의 추모담을 들어보면 꼭 우신다. 그 이유가 나는 후진들에게 좋은 대접 받으면서 살고 있는데, 당대에 대종사님, 정산종사님은 식사도 잘 못 하셨는데 하며 우신다.
락타원님이 밥을 먹으니까 대종사님이 “왜 가져다 먹느냐?”
락타원님이 “연유는 모르지만 좋다니까 먹습니다.”
대종사님이 “부처님의 공양하시고 남은 밥을 먹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과 인연이 가깝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사람은 환경에 쉽게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환경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을 계속 상대해보면 그렇게 되더라. 중매할 때 부모를 먼저 본다. 그 부모의 언어 성격 등을 보며 환경을 파악한다. 그만큼 환경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다. 맹자 어머니는 맹자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 하셨다고 한다. 특히 어릴 때는 그 환경의 특성을 쭉쭉 빨아들인다. 성격이 특이한 사람들은 자라난 환경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본인이 싫다고 해도, 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락타원이 생일마다 생일상 앞에서 대종사님이 계신 익산쪽을 향해 절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식들이 “생활종교라더니 미신아니냐?” 따지니까 락타원님이 “나도 대종사님이 못 드시는 것은 안다. 하지만 지금 절을 하는 것은 내 정성이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자식들도 할 말이 없다. 대종사님이 나중에 들으시고 “락타원은 교양이 있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자식들은 부모의 그런 것들을 보면서 크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 앞에서 이기적으로 욕심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느냐? 베푸는 모습을 보이느냐?
한겨레 조현 기자를 일주일마다 보는데, 그 사람을 보며 놀란 일이 있다.
자기 집에 한 달에 한 번씩 사람들을 초대해서 모임을 한다. 내가 한 번은 초밥을 공양했다. 그랬더니 다음에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근데 가서 봤더니 자기가 손수 밥을 짓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 차리고, 또 장을 봐서 정성스럽게 대접을 했었다.
‘나도 이렇게까지는 못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고 밤에 둘이 같이 앉았는데 자기 집안 얘기를 해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손님이 많이 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왜 그러냐 했더니 아버지가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불러서 식사를 주는 것을 보고 자랐다고 한다. 요즘은 친척이 와도 밥 달라고 하면 싫어한다. 그런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니까 40이 넘은 남자가 자기가 다 준비해서 당연하게 기쁘게 생각하며 준비를 하더라.
‘아 이것은 나보다 심법이 낫구나.’ 참 심법이 좋다.
어렸을 때의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만약에 조현 기자 아버지가 각박하게 했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을 것이다.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부처님과 가까이하면 자연히 보는 것은 부처님의 행동이요 듣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깨닫는 것은 부처님의 정법이다. 물들어서 습관이 된다. 환경은 습관을 만든다. 조현 기자는 그런 환경 속에서 당연시하며 습관이 되었다. 아버지가 저녁마다 술 마시면 자식이 보고 배운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면 자식도 보고 배운다. 그게 환경이 습관으로 변화된 것이다.
정산종사님은 환경을 제3의 천성, 습관이 제 2의 천성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를 더 해야한다. 성품이 제 1의 천성이다. 제 1의 천성은 대, 2는 소, 3은 유무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성품이라는 것은 지공무사하고 누구나 같다. 다 본래 갖추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람마다 달라지느냐? 바로 그 사람이 소자리에서 어떤 습관을 어떻게 길들어왔느냐에 따라서 모습이 결정된다. 습관이라는 것은 한 마음 한 마음,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이고 모이고 모이다보면 생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이 환경이다. 환경을 깨끗하게 했느냐? 몸을 청결하게 했느냐? 머리를 면도를 구두를 속옷을 깨끗하게 했느냐? 차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안다. 환경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습관이 그렇다는 것이고 마음이 정돈이 안 된 것이다.
대종사님이 예전에 개성교당이라든지 하단교당이라든지 말없이 한 번씩 가신다. 가서 화장실까지 다 보신다. 그래서 “이게 다 니 마음이다” 하고 혼낼 것은 혼내셨다. 저도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책상도 가끔 어질러지고 방이 어질러졌다.
대종사님은 깜깜한 밤중에도 방에서 물건을 다 찾을 수 있었던 분이다. 제가 모시던 교무님도 아주 칼 같이 정리를 하셨다. 너무 심해서 인간미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사람이라는 것은 환경이 정리가 되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머리카락만 짧게 쳐도 자세가 달라진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이게 환경이라는 것이다. 특히, 남자들은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
환경은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만들어 가는 것도 있다. 락타원님은 대종사님 같은 생불을 가까이 하다보니 그 나이에도 하루에 7~8시간을 수양하시고 경전을 한 시간 공부하시고, 절대 눕지 않고 수행을 하셨다. 그래서 그 자녀도 출가하고, 또 그 자녀도 출가하는 것이다.
게가 “나는 옆으로 걷지만 자식에게는 너는 똑바로 걸어라.” 고 한다고 한다.
엄마가 티비보면서 “너는 공부해라.” 하면 자식이 공부 잘 하겠습니까?
내가 내 부모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내 자식에 모델이 되기도 한다. 자기 불공을 말하고 싶다. 주위를 달라지게 하고 싶으면, 자기 불공을 잘해야 한다. 국가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한다고 하며 자기 불공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아직 아닌 것이다.
이번에 교무 훈련을 갔는데, 다른 교당 교무님이 충격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느닷없이 어떤 사람들이 보자고 전화가 왔다. 봤더니 대종사님 영정과 법사단 법위증과 법복과 교전을 들고 왔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그 교당에 돌아가신 교도의 물건이었다. 이 분은 시집도 안 가고 조카들을 키우셨다. 조카들 데리고 교당에 한 번씩 오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무님께 “교무님 걱정마세요, 저 죽으면 이 아이들이 대신 또 잘 할 거에요!” 했다고 한다. 당신은 법강항마위였다. 죽기 전에 가장 어린 조카에게 집도 물려줬다. 그런데 그 조카는 그 집에 와보지도 않고 이사올 사람들에게 모든 물건을 다 치우는 조건으로 싸게 주겠다고 하고 돈만 빼갔다. 그런데 이사온 사람들이 불자였다. 도저히 이것을 내버릴 수가 없어서 교당으로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 교무님이 “걱정마세요”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런데 죽고 나니 아무도 안 오더라.
저에게 가끔 사람들이 “교무님 걱정마세요. 저 믿으시죠?” 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쩔 수 없이 외국에 나가고, 고시 준비를 하고, 지방에 내려가고.. 하지만 걱정마세요. 전 원불교 때문에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환경이 어떤 것이냐면, 마음은 생주이멸한다. 생겼다고, 머물렀다가, 떠났다가, 사라진다. 환경 즉, 유무자리에 의해서 다 바뀐다. 전무출신하겠다고 했던 사람이 원불교를 떠난 경우도 봤다. 그럼 그 때 거짓말 했느냐? 아니다. 그 땐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 그래서 떠나고 사라져 버린다. 마음이라는 것은 잡고 잡고 또 잡고, 챙기고, 챙기는 것이다. 지금 이 마음을 신뢰한다는 것은 마음의 이치를 벗어난 것이다.
돈 빌릴 때 안 갚으려고 빌려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체적으로 곧 갚아주겠다고 하며 빌려간다. 그런데 상황이 변한다. 사업이 안 좋아질 수도 있지만 그 때의 마음이 달라진다. 사업이 잘 되도 ‘에이 그냥 떼먹어야지.’ 이게 마음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변하는 것이다. 챙기고, 챙기지 않으면 순류를 타고 내려가 버린다. 5년 수행했어도 5달만 안하면 더 많이 내려간다. 챙기는 것은 역류이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한 마음 방심하고 한 마음 챙기지 못하면 더 많이 강급한다.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는 단계는 보통급, 특신급, 법마상전급이다. 자기가 자기를 속인다. 속은 줄도 모르고 속는다. 그래서 스승님의 말씀이나 법에 계속 대조를 해야한다. 왜 그러느냐? 상전급까지는 자기가 객관화가 안된다. 좋은 말로는 주체적이라고 하는데 그게 결국 아상이다. 아상에 바탕한 판단이다. 객관적 판단이 되지 않는다. 성품자리를 보아서 하는 판단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항마위 이상이다. 그 전에는 항상 자기 중심이다. 그동안 자기 모습을 보면 다 공감할 것이다.
우리가 교당, 훈련을 가까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 고등학생들에게 교당에 잘 못 나오면 부모들에게 방학 때 여름 겨울 훈련이라도 꼭 가게 하라고 당부한다. 그것마저 안 하면 대학 들어가서도 안 된다.
정선교우님은 훈련을 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은 훈련 때 미꾸라지처럼 빠진다. 공부와 훈련에 관심이 없으면 오래가기가 힘들다. 관념적이다. 공부와 훈련에 관심이 있고 가까이 한다는 것이 진급을 이루고, 성불도 할 수 있다.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의 식성까지 닮으셨다고 한다.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은 체형부터 말투까지 너무 다르지만, 너무 닮으셨다. 닮아지려고 노력하셨다. 외적인 모습을 닮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마음 정성 신심이 더 중요하다.
대종사님은 락타원님의 생각을 수정해 주신 것이다.
첫째는 형식 중심의 불교 → 깨달음
둘째는 불상 장엄 중심의 불교 → 진리신앙
셋째는 내세 극락 현세 기복 → 생활불교로서 사실불공
그 아래 변의품 17장을 보면 탑을 도는 것은 사실 육신의 탑을 마음이 돌아라 하는 것은 육신의 철 없는 요구를 마음으로 잘 바라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몇 번을 돌면 아들을 낳고.. 이렇게 생각한다. 앞에 있는 미신을 뒤에 있는 진리적 사실, 나아가 성불·깨달음으로 인도해주셨다.
그럼 앞에 있는 것은 나쁜 것입니까? 이것도 좋다.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대종사님 가까이 밥이라도 먹어서 인연이라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뒤쪽까지 승화시켜줘야 한다. 이게 원불교법을 만난 것이다.
옷도 바치고 불사도 하면서 인연이 걸리는 것이다. 다 깨닫고 인과의 이치를 다 알고 불사하겠다? 이것은 아니다. 불사의 이치를 몰라도 신심으로 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반이상 그렇게 복을 짓는다. 다른 사람의 권장과 권유로 복을 지은 것이 일생 죽을 때 남는 것이다. 그래서 신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주체적으로 하겠다.’ ‘앞에 있는 부분들은 다 아니다.’ ‘깨달음이 중요하지 옷 바치고 밥 먹는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생각해보면 옷 바치고 밥 먹는게 나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앞에 것을 빼고 뒤에만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 앞에 것을 하면서 뒤에 있는 것도 한다. 어른들보면 앞에 것을 잘 한다. 젊은 사람들은 잘 안 한다. 입을 싹 씻어버린다.
락타원님이 계셔서 서울 교당도 생기고, 구타원님이나 묵산님 융타원님 등 많은 대단하신 분들이 출가하셨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첫댓글 강연해주신 정선교우님, 설법해주신 김제원교무님, 타이핑해주신 지영교우님, 함께 하셨던 청년 교우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
깔끔히 정리하셔서 올려주신 호겸교우님도 감사합니다 ^^
정선교우님,교무님,지영교우님,호겸교우님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__)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