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 더 아름다운 청도의 대표사찰.
청도 운문사를 찾다.
월성중학교 2학년 6반 김민욱
갑작스럽게 카메라가 또 고장 나(내 손에 들어온 카메라 중 무사한 게 없네) 당분간 예정이던 답사를 모두 취소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친구분들이랑 1박 2일로 펜션을 가신다고 하기에 가족이 다 같이 갔다. 그렇게 겨울날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갑작스럽게 운문사 행이 결정되었다. 평소에 운문사를 무척 가고 싶어 했지만, 카메라도 없고 아무런 사전준비가 안 돼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그리하여 어머니 휴대폰을 빌려서 일단 사진을 찍었다. 근데 뭐 크게 카메라와 차이는 없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 대작갑사라는 이름으로 초창되었다가 여러 중수를 거쳐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운문선사라고 사액을 내리면서 운문사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 중 하나이다. 물론 오랜 친구(비록 6개월이지만) 카메라를 두고 왔지만 들뜬 마음으로 운문사로 간다.
(눈 내린 운문사의 담.)
(청도 운문사 전경. 건물에 눈이 쌓여서 설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눈 내린 눈밭. 햇빛에 비쳐서 더 하얗게 보인다.)
운문사는 가지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입구에는 호거산 운문사라고 적혀있다.
운문사 입구를 거쳐 처음 만난 건물은 바로 만세루. 저번 2012 하계 국토순례 때도 직지사에서 본 건데 큰 절에는 이런 만세루를 짓는 것 같다. 정말 한눈에 보기도 힘들 정도로 길다. 여름에 저기서 쉬면 딱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운문사 정문.)
(운문사 일대. 아직 눈이 곳곳에 남아있다.)
(운문사 만세루. 길쭉한 건물 안에 북 하나가 바깥에서 보인다.)
(만세루 현판. 뒤로 대웅보전 현판이 보인다.)
만세루 뒤에는 승려분들의 수행공간이 있는데 여기는 출입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만세루 옆에는 삼층쌍탑과 대웅보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대웅보전은 만세루 뒤에도 있다. 더 이상한 건 쌍탑 앞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이 아닌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원래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게 정석이지만 말이다. 원래 여기는 비로전이지만 대웅보전 현판을 달고 있는 자세한 연유는 잘 모르겠다(그냥 원래 대웅보전으로 사용했다가 새 대웅보전을 지은 이후로도 현판 갈기 귀찮아서 그런 건가 하고 추측만 하고 있다.)
(운문사 삼층쌍탑과 비로전. 탑에는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어서 멋을 한층 더 한다.)
삼층쌍탑은 비로전을 중심으로 양옆에 세워져 있다. 형식은 가장 전형적인 신라형식 탑이다. 탑은 몸돌을 길게 하지 않아서 안정적이고 풍만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처마를 살짝 들어 올려서 경쾌한 느낌까지 느껴진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 동탑. 위의 노반은 최근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 서탑. 팔부신중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비로전은 다포양식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비로전 앞에는 사자 상이 암수 한 쌍이 자리 잡고 있다. 상당히 귀엽게 잘 조각된 것 같다. 비로전은 하루빨리 원래 이름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비로전. 왜 대웅보전이란 이름을 쓰고 있을까?)
안내도를 보니 작압전이란 데가 있어서 찾아가 본다. 비로전 바로 옆이었는데 그냥 작압(鵲鴨)이라고만 적혀있었다. 원래 허락 없이는 경내를 촬영하면 안 되기 때문에 밖에서 촬영했다. 작압전 내에는 한 스님께서 기도를 드리고 계셨고 양쪽으로 사천왕 석주와 석불상이 놓여 있었다. 제대로 봐야 하는데 어머니께서 급히 부르시길래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왜 작압전이라고 이름을 지었는 지 궁금하다. 작압전 앞에는 돌들을 층층이 쌓아서 담을 만들어 놓았다. 가끔 한국의 멋 같은데 소개되는 그런 담 같다.
(작압전. 한 스님께서 기도하고 있고 어둡지만, 석조불상이 안에 보인다.)
(운문사 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여기저기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급하게 부르셨다. 그렇게 대웅보전에 들어가 보았는데 20명 정도 돼 보이는 비구니 스님이 염불을 외우고 계셨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모여서 염불을 외우는 장면은 처음 봤다. 어머니께서는 사시공양이라 하여 부처님께서는 하루에 한 끼를 드시는데 이 사시 공양을 하는 때가 부처님께 식사를 올리는 때라고 하신다. 정말 숨소리 하나도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평소에 그냥 취미로 108배를 하는데 정말 여기서 하니 꿈만 같았다. 경건함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되는 이 장면을 도대체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운문사에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만세루와 어느 조형물, 그리고 대웅보전. 뒤로 지룡산의 기암괴석이 보인다.)
(대웅보전. 새로 지은 듯한 느낌이 많이 난다. 사시 공양 장면은 경내 촬영금지라 찍지 못했다.)
경주는 눈이 잘 안 와서 설경을 느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108배를 하고 대웅보전을 나서는데 눈에 들어온 만세루는 정말 지금까지 본 모든 절건물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저번에 본 영화 '광해'에서 첫 장면에 나온 종묘의 눈 맞은 모습이 생각났다.
(눈 내린 만세루. 웅장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만세루 내부. 사방이 공개된 공간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도 처음 본다.)
운문사 내부에는 천연기념물도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풍성한 소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처진소나무라 하여 다른 소나무들과 달리 나뭇가지들이 아래로 처져있다. 전설에 의하면 한 고승이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게 자라서 이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이런 전설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나무나 고목들에서 으레 만나게 되는 굉장히 보편적인 전설이라 실망했다. 하지만 나무 자체는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특히 나무 안을 보면 정말 한 나무가 아니고 조그만 숲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진짜 신기하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 높이는 낮지만 차지하는 면적은 정말 넓다.)
(처진 소나무의 눈꽃. 물방울이 흐르다가 딱 멈춘 것 같다.)
(처진 소나무 내부. 마치 작은 숲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관람을 마치고 나가려 하는데 곳곳에 펼쳐진 설경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눈내린 운문사, 정말 아름답다.
(운문사. 오른편 문은 불이문으로 문 안은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다.)
(운문사 나가는 길. 만세루와 작압전, 관음전 등이 양 옆으로 서있다.)
(줄사철나무. 굴뚝을 칭칭 감아 올라가 있다.)
나가기 직전 입구에는 비석이 서 있었다. 바로 원응국사의 비다. 고려 인종 때 운문사 중창에 크게 이바지하여 국사의 비가 있는 것이다. 원응국사는 왕의 왕사로 있다가 93세에 입적했다. 그러자 인종은 원응이란 시호를 내리고 국사로 추대했다. 여러 명찰을 가면 꼭 이런 국사의 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국사는 아무나 되지 않고 정말 드물게 나왔다는데 왜 흔하게 느껴지는 걸까?
(원응국사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운문사를 나와서 점심을 먹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운문호가 계속 보였다. 산들 사이에 있는 운문호가 아름답기는 했지만, 저 운문호 때문에 사라진 집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당 가는 길에 바라본 기암괴석. 저 바위의 이름은 무엇일까?)
거의 사실상 올해 마지막 답사다. 마지막 답사는 원래 박물관을 가려 했으나 카메라 고장으로 포기하고 어쩌다 보니 여기 운문사에 가게 되었다. 사실 운문사는 기대보다는 조금 모자랐다. 절의 상당 부분은 승려수행공간이라 출입이 불가하고 시간상 사리암이나 북대암 같은 암자들은 둘러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흰 눈으로 뒤덮인 설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사시 공양을 봐서 더 뜻깊었다.
청도의 대표사찰 운문사. 비구니스님들만큼이나 아름답고 기품있는 그런 사찰이다.
-여정-(2012. 12. 23. 日)
펜션(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남)→ 운문사(운문사 입구→ 만세루→ 비로전 앞 삼층석탑→ 비로전→ 작압전→ 대웅보전→ 처진 소나무→ 원응국사비)→ 운문댐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처음에는 그냥 취미삼아 갔던 개인답사가 어느새 답사부 답사 만큼이나 글에 대한 인기가 많네요.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욱아!
이러다 정말 문화 유적에 대한 박사가 되겠구나.
앞으로도 큰 포부를 가지고 그 꿈을 실현할때까지 부단한 노력을 하기 바란다.
운문사 하니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그리고 비구니 스님과 처진 소나무 등이 떠오르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다가 운문사까지 답사를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