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내내 나와 내 자신의 불협화음으로 심신이 시름시름 앓으며 봄날을 놓치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날씨도 마음도 맑음이다. 이른 오후 업무를 밀쳐두고 훌쩍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랑꾼 샤갈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4월 한 달 내내 충주 공예 전시관에서 ‘샤갈과 20세기 마스터 피스전’이 전시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이팝나무 가로수에 하얗게 꽃이 피었다. 마치 흰 눈이 내리듯이 이팝나무 꽃이 바람에 흩날린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내린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내가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기에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중에 분명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무리 샤갈의 작품 중에서 동명의 그림을 찾아도 없었다. 김춘수 시인이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제목으로 시를 발표했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도 샤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명하게 각인이 되었다. 시의 모티브가 된 ‘나와 마을’ 이라는 샤갈의 그림에도 눈은 정작 한 송이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눈 내리는 마을’ 이라고 상상 하는 것은 샤갈이 캔버스에 아름답게 뿌려놓은 흰색의 마술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