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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호 목사 헨리 테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동양의 고전을 통해 개인과 영혼이 신성하다는 생각에 깊이 감동한 소로우 자연으로 가다.
김흥호 선생이 본 소로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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깬 정신은 업(業)과 그 결과(生死)를 초월할 수 있다.
별을 모래로 하는 깊은 하늘에다 낚시를 던지고 싶다.
소로우(Thoreau)는 말한다.
나는 하나의 종교나 철학을 택하지 않는다.
나는 바라마나 비슈누나 불타(佛陀)나 대령(大靈; Over-Soul)이나 신이나 다 받아 들인다.
헨리 테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1817년 7월 12일~1862년 5월 6일)는 미국의 철학자·시인·수필가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미국 콩코드에서 죽었다.
하버드 대학 졸업 후 가업인 연필 제조업, 교사, 측량 업무 등에 종사했지만 평생 일정한 직업에 정착하지 않고
곧 학업에 매진했다.
'자연'의 저자인 초월주의자 랄프 왈도 에머슨 등과 친분을 맺었다.
자비 출판한 첫 작품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 일주일》(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1849년)은 젊어서 세상을 떠난 형과 선상 여행을 정리한 수필로 당시의 사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작 《월든 - 숲속의 생활》(Walden, 1854년)은 2년 2개월에 걸친 숲에서 혼자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그 사상은 이후 시대의 시인과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간디가 아프리카에 가서 인간 해방을 위하여 힘을 기를 때에 그의 길잡이가 된 것은 미국의 소로우 였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톨스토이 농장을 세우고 하루에 한 끼를 먹 으면서 진리파지(眞理把持)의 길을 걸은 것은 소로우가 월든 ( Walden) 호숫가에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서 자기를 탐구하는 데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월든 호숫가에서 2년 2개월 동안 자기 탐구에 몰두하였다.
사해(死海) 호숫가에가서 40일 금식하는 그리스도처럼 그는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숫가에서 금욕생활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을 찾았다.
그 것은 모든 힘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마음이 깨끗한 자는 신을 본다고 한다.
그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자연으로 갔다.
자연은 그에게 있어서 한없이 깨끗한 곳이다.
자연 가운 데서도 월든 호수는 한없이 깨끗하였다.
월든 호수는 그에게 하나의 순수하고 투명 한 금강석이었다.
이 금강석을 통하여 그는 신을 보려고 한 것이다.
1845년 29세에 그는 출가를 하였다.
월든 호수는 순수성(純粹性)과 투명성(透明性) 그대로였다.
그것은 하늘의 빛이요 신의 물방울이었다.
그는 월든 호수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수많은 세대를 지나면서 수많은 민족이 이 호수의 물을 마시고 이 호 수를 찬양하고 이 호수의 깊이를 상상하면서 지나갔을 것이다.
그 물은 언제나 푸르고 투명하다.
이 물은 마르는 샘이 아니다.
아마도 아담 하와 가 낙원에서 쫓겨나던 봄날 아침에도 월든 호수는 존재하였을 것이다.
안개 같은 봄비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물위에 수많은 오리 떼와 백 조들이 호수의 깨끗함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월든의 수면은 다소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물만은 언제나 깨끗하여 지금 보는 빛깔을 그때도 지녔을 것이며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오직 하 나뿐인 호수였다.
그것은 하늘의 이슬이 모여서 내린 성지(聖地)이며 기 억할 수도 없는 많은 문학의 시신(詩神)들이 즐겨 마시는 생명의 샘이었 다.
그리고 옛 황금시대에 어떤 요정들이 이 호수를 다스렸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월든 호수는 콩코드지방의 면류관에 빛나는 최고의 보석이다.
소로우가 월든으로 나간 것은 이 보석을 통하여 신을 보기 위해서였다.
호수 에 비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기 위해서 그는 매일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호수 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현대인의 마음이 물질문명과 사회체제 때문에 너무도 더 러워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사회제도와 물질문명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개인의 존엄은 월든 호수처럼 빛나야 하며 개인의 마음 은 월든 호수처럼 맑아야 한다.
개인은 자주적인 입장을 가지고 독립독보의 정신 을 견지하면서 우주적으로 긍정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소로우에게는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 이전에 우주적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소로우는 월든을 통해 서 우주의 배후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월든은 소로우의 성경이며 월든은 신의 계시이다.
이 투명한 물을 통하여 신을 직관하고자 하는 것이 월든 호숫가로 떠 나는 소로우의 희망이었다.
소로우가 쓴 월든Walden은 1장 독서, 2장 소리, 3장 고독으로 제1부가 여름으로 시작되고, 농장, 높은 법칙, 이웃으로 제2부인 가을에 들어가고, 난방으 로 겨울이, 그리고 봄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고,애벌레가 고치가 되고,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듯이 소로우가 월든에서 기대하는 것은 정신 적 부활이었다.
그는 자기의 헌 책상 판자에서 깨어 나오는 빛나는 벌레를 보면서 이렇게 적어간다.
뉴잉글랜드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는 케네티컷의 각 주(州)에서 그리고 매사추세츠주 농가의 부엌에서 60년 동안이나 쓰던 능금나무로 만든 헌 밥상에서 아름다운 벌레가 깨어 나왔다.
이 밥상이 만들어진 해보다도 훨씬 전에 그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을 때에 낳아 놓은 알이 깨어 나왔다는 것이다.
아마 커피 끓이는 주전자의 따뜻한 온기에 깨어 나온 것일까.
나무를 뚫는 벌레의 소리가 몇 주일 동안이나 들려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월든 호숫가의 작은 집에서 소로우도 깨어 나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로우는 얼마나 간절히 밥상 속을 뚫는 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였을까.
만일 인간이 자기 자신의 천성(天性)의 가장 희미한 암시(暗示)에 끊임 없이 귀를 기울인다면 확실히 어느 땐가는 그것이 자기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소로우는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자기 안의 소리를 듣고자 하였다.
그것은 궁 극적인 실재의 내적 소리였다.
소로우는 나의 생활의 참된 수확은 마치 아침 하 늘과 저녁 노을처럼 손에 잡기가 어렵지만,그러나 내손에 붙잡힌 하늘의 별 가루와 내 마음에 비춰진 하늘의 무지개는 우주를 뒤흔드는 거문고처럼 세계에 넘 쳐 흐를 것이다.
확실히 소로우의 작품 "월든: 숲 속의 생활"에는 거문고 소리처럼 천성의 암시가 넘치고 있다.
그의 직관력을 통하여 보인 자연의 밑바닥에는 빛나는 정신의 별빛이 빛나고 있다.
소로우에게는 구상화된 밝은 자연의 세계와 자연을 넘어서는 초자연의 세계가 언제나 같이 숨쉬고 있다.
소로우에게 있어서 자연은 객관화된 정신이요,초 자연의 상징이며 맑은 영혼은 자연을 통하여 언제나 신을 볼 수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기계적인 자연이 아니요,유기적인 자연이며 영적인 힘이 충만한 것이다.
그것은 일체를 정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청정한 영혼은 청정한 자연을 통하여 청정한 신을 볼 수가 있다.
정신이 자연과 하나가 될 때에는 육욕적인 일체는 깨끗하고 순진한 것으로 탈바꿈을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보다 높은 법칙을 제공하며 이 법칙에 순응할 때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의 방법으로 자기가 믿는 신에게 자기의 육체라는 신전을 건축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대리석 신전으로 육체적 신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조각가요 화가요 건축가다.
우리의 살과 피와 뼈가 그 재료인 것이다.
거룩한 정신은 인간의 얼굴을 깨끗하게 하고 보다 높은 법칙은 인간의 몸을 튼튼하게 한다.
육체와 영혼의 결합은 모든 사람 이 바라는 길이다.
보다 높은 생활로 나아가는 것은 모든 정신생활의 근본 방향이다.
소로우가 이렇게 자연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에머슨의 덕이다.
20세에 하버 드 대학을 나온 소로우는 2년 동안을 에머슨과 같이 살게 된다.
콩코드의 현인 (賢人),에머슨의 초절(超絶)주의(Transcendentalism)는 소로우의 영혼 깊이 스며들어갔다.
에머슨의 초절주의는 동양사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에머슨에 게 베다는 모든 종교적 감정을 내포한 것이었다.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 ,超絶主義)란19세기의 미국 뉴잉글랜드의 작가와 철학자들이 벌인 운동을 말합니다. 이들은 모든 피조물이 본질상 하나이고, 인간은 본래 선하며, 가장 심오한 진리를 밝히는 데는 논리나 경험보다는 통찰력이 더 낫다는 믿음에 기초한 관념론 사상체계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의 초절주의, 특히 콜리지와 토머스 칼라일이 굴절한 초절주의,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 인도와 중국의 경전등을 바탕으로 뉴잉글랜드 초절주의자들로 하여금 해방의 철학을 추구하게 만든 원천이었습니다.
/모름지기)
내가 숲 속이나 호수를 사랑한다면 나는 브라만 교도임에 틀림이 없다.
영원 한 숙명, 끊임 없는 보상,헤아릴 수 없는 얼 힘(靈力), 절대의 침묵 이런 것들이 그들의 신조다.
소로우는 미국 문학사상에서도 가장 동양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 다.
그의 사상에는 인도와 중국이 진하게 들어 있다.
소로우는 말한다.
나는 하나의 종교나 철학을 택하지 않는다.
나는 바라마나 비슈누나 불타(佛陀)나 대령(大靈; Over-Soul)이나 신이나 다 받아들인다.
(*비슈누:힌두교신의 하나.불타(佛陀):불교 석가모니/모름지기)
그는 에머슨의 서재에서 동양적인 것을 탐독했다.
마누법전ManuSmrti,공자어록,사서(四書),불교경전등을 읽었다.
물론 서양고전,영국 시 를 읽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소로우는 특히 공자의 인간다운 태도에 깊이 감명 을 받았다.
공자의“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것 이 아는 것이다”라는 말에는 깊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인도 사상에서 그는 수도자의 고독과 침묵에 깊이 동의를 표하였다.
그는 자연철학자요,초절 주의자요,신비가가 되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은 인도의 민족 서사시"바가바드 기타"였다.
바가바드 기타는 신의 찬가로서 마하트마 간디가 가장 사랑한 것이다.
모든 국민이 후세에 자기 자신을 기념하게 하는 것은 집이 아니라 사색의 힘 이다.
동양의 모든 유적보다 바가바드 기타는 한없이 고귀하다.
매일 아침 나는 고대 인도의 서사시 바가바드 기타의 위대하고 우주적인 철리(哲理)로서 나 자신의 지성을 목욕시켰다.
사랑보다도 재물보다도 명예보다도 진실을 사랑하는 소로우에게 동양의 고전은 진실한 책이요 지혜의 샘이었다.
월든 호숫가에서 그는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인도의 철학을 사랑하는 내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우파니샤드를 사랑하였다(*우파니샤드:힌두교 성현들의 사상집/일시무시)
사색에 의하여 사람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깬 정신은 업(業)과 그 결과(生死)를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사상과 감정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을 수 있다.
나의 경험이 아무리 격렬할지라도 나는 나의 일부분이 나의 경험을 보고 있 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나의 일부분이라기보다는 나의 경험에는 참여하지 않은 방관자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그대도 아니요,다만 인생 연극을 보는 관객인 것이다.
연극이 끝나면 관객은 사라진다.
인생극이란이 관객에게는 하나의 허구요,하나의 상상된 작품에 불과하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우리도 하나의 관객으로 이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소로우에게 있어서 인도는 명상의 나라다.
그의 일기에 동방의 세계를 바라 보니 거기는 일체가 정적(靜寂)에 휩싸여 있다.
아라비아, 페르샤, 인도는 명상 의 나라다.
마누법전에 의하면 브라만 교도는 누구나 나이 들면 산에 들어가 고요히 명상하고 일체의 욕심을 끊고 살아갈 것을 명하고 있다.(*마누법전:고대 인도의 법전/모름지기)
브라만 교도는 생활을 위해서 민중의 대화 속에 끼어들면 안 된다.
부정을 떠나고 술책을 버리 고 장사꾼을 멀리하고 승려의 생활을 본받아야 한다.
혼자서 고독한 장소에서 언제나 영혼의 신성(神性)을 위하여 명상하라.
소로우는 명상을 통해서 시간의 초월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가 빛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새 소리도 들리지 않고 또한 시간 가는 줄 전혀 모르게 되었다.
그 때가 소로우에게는 가장 좋은 때였다.
몸 전체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며 피부의 모든 털구멍이 기쁨을 흡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상한 자유로 자연 속을 왕래하면서 그 일부분이 되고 마는 것 이다.
사람들은 진리의 세계를 멀리 태양계 저쪽에 아니 더 멀리,별 저편 에 그리고 옛날 아담보다 이전에, 또는 훗날 마지막 사람 뒤에 있는 것처 럼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하고 숭고한 영원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도 지금 이 순간 여기에 계시다.
여기 지금이야말로 흘러가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이 이상 더 존엄한 것은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진실에 나를 내맡겨 그것이 내 속으로 젖어들 어 오게 할 때에 비로소 숭고한 것, 고귀한 것을 파악할 수가 있다.
우주는 끊임없이 조용히 우리들의 사색에 대답한다.
우리가 일찍 시작하건 늦게 시작하건 길은 우리를 위하여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명상 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떨까.
인생이란 얕은 시냇물에 불과하다.
거기서 나는 물을 마시면서 그 밑에 바닥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를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얕은 시냇물은 언젠가는 말라 버릴 것이다.
그러나 영원은 마르지 않는다.
나는 깊은 곳에서 물을 마시고 싶다.
별을 모래로 하는 깊은 하늘에다 낚시를 던지고 싶다.
소로우에게는 고독처럼 좋은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잡담을 하지 않고 시간 을 보낼 수는 없을까.
자기 자신의 생각만으로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할 수는 없을까.
공자는 진짜로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고하지 않았는가.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모름지기)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독특한 정신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빠져나갈 수 있다.
나는 대부 분의 시간을 고독하게 보내는 것이 건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 이라도 함께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기분이 산만해 진다.
나는 고독을 사랑한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얼마나 더 넓은지 모른다.
월든의 특징은 개인의 존엄성,완전성,독립성 그리고 자연과의 융합이라는 일원론적 우주관이다.
그것을 위해서 고독과 명상이 필요하다.
그는 맹자의 진실한 사람은 자기의 본성을 알고(知性) 자기의 본성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안다(知天)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자기 밖에서 자기를 찾으면 안 된다.
사람들의 결점 은 자기를 잊고 남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소로우는 동양의 고전을 통해서 개인과 영혼이 신성하다는 생각에 깊이 감동 하였다.
영혼은 자기를 증거한다.
영혼자체가 유일한 자기의 위로다.
내 안에 있 어서의 최고의 증거인 자신의 깬 영혼을 막아서는 안 된다.
너 자신을 알라.그리 하면 하늘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만일 육체에 머무를 때라고 해도 진선과 진미를 명상할 때에는 신성이 될 수가 있다.
참으로 인간의 본성이란 신성한 것으로서 지상에 사는 짐승과는 다르며 신이 라고 불리는 천상의 존재와 맞먹는다.
모든 것이 내 속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萬物皆備於我).(*만물개비어아(萬物皆備於我):만물이 나에게 준비되어 있다/모름지기)
인간의 형상은 신성인데 그것을 참으로 드러내는 이가 성인이다.
『 마누법전』은 모든브라만교도에게이렇게명한다.
보이건 안보이건 모든 자연은 신안에 있으니 확실히 눈을 뜨고 보라.
이런 말 에 영향을 받아서 인도의 늙은이들이 숲 속에 들어가듯이 소로우도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신중하게 살기 위해서다.
인생의 근본 적 사실에만 직면하고 그것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내가 정말 배울 수가 있을까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내가 죽을 때에“이것이 산 것이 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숲으로 가는 것이다.
나는 거기서 깊이 생 각하고 인생의 모든 의미를 깨달아 인생이 아닌 것은 무엇이나 내던지는 용감한 스파르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거기서 인생의 귀한 것을 찾아 내가 맛볼 뿐만 아니라 내세에 그것을 가지고 신 앞에 보여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서 숲으로 간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그는 매일 아침 목욕을 하였다.
아침은 자연 자체와 같이 언제나 순진 무구하여 나의 생활을 시작하기에 가장 유쾌한 때다.
나는 그리스 사람처럼 마음 속으로부터 새벽(元曉)의 여신을 사랑한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종교적 의식이다.
옛날 중국 탕왕(蕩王)의 목욕탕에는“매일 너를 새롭게 하라(日新又日新). 그리 하여 날마다 날마다 그것을 되풀이 하여라.”라는 뜻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한다.
나는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아침은 영웅의 시대를 다시 살려낸다.
먼동이 터올 즈음 내가 문과 창 을 활짝 열어놓고 앉아 있을 때 내 방을 빠져나가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모기 한 마리의 날개소리는 영광에 빛나는 어떠한 나팔소리보다도 내 마음을 더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마치 호메로스의 진혼곡 같고 일리 아드나 오디세이 못지않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방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 이다.
거기는 무엇인가 우주 적인 것이 있고 이 세상에서 다할 수 없는 활력과 풍요로움이 있는 것이다.
하루 속에서 가장 기억되어야 할 때는 바로 아침이다.
이때야말로 내 속에 있는 어떤 부분이 눈을 뜨는 때다.
시녀들의 기계적인 흔들음에서가 아니라 각자의 수호신에 의하여 조용히 눈을 뜨는 때다.
공장의 종소리가 아니라 천체가 연주하는 음악의 파동과 대기에 가득 찬 향기에 의하여 어젯밤 잘 때보다도 훨씬 높은 생활 속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이때에 비로 소 어두운 밤에 무르 익은 정신의 열매가 아침 빛보다는 더욱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침이 없는 하루란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
새로운 아침에 일찍 신성한 오로라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벌써 인생에 절망한 사람이며 더욱 어둡고 내리막길을 걷는 인생들이다.
감각생활의 부분적 휴식 뒤에 인간의 영혼은 다른 기관과 같이 매일 아침 새로운 활력으로 되살아난다.
이때 수호신은 그것이 얼마나 고상한 생활을 해낼 수 있는가를 다시 시험해본다.
모든 기념할 만한 일들은 아침에,아침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지혜는 아침과 같이 깨어난다고 베다 속에 적혀 있다.
시와 예술 인간행위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기념할 만한 것은 아침시간에 시작 된다.
사상은 활력이 넘치고 기운이 태양과 같이 떠오르는 사람은 하루가 그대로 아침인 것이다.
하루의 일이 어떤 종류의 것일지라도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깨어있는 순간은 언제나 아침이다.
아침에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먼동이 트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잠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잠을 떨쳐버린 사람은 무슨일이나 해낼 수 있다.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몇 백만 명이 깨어나가지만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몇 백만 명 가운데 한 사람 정도가 겨우 일어나고 있으며 신성한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억만 명 가운데 한 사람 정도가 깨어 있을 것 이다.
깨어 있다고 하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다 깬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소로우는 1817년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필 장사로서 그는 대학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뉴욕에 간 일이 있다.
20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콩코드의 성자 에머슨을 만나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21세에 형 존과 같이 학교 를 세우고 가끔 지방 순회강연을 시작했다.
22세에 형과 같이 콩코드와 메리맥 강변을 답사하고 23세에는『다이얼』잡지에 시와 수필과 논문을 싣기 시작했다.
24세 때부터 26세까지 직접 에머슨의 집에 함께 살면서 공부하고 작품을 써『다 이얼』지에실었다.
27세에에머슨의조수가되어『다이얼』지를편집,『 다이얼』지 외에『보스톤』지, 『민주평론』등에 논문과 시를 발표하였다.
28세에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연필공장을 열심히 돌보았다.
29세 3월부터 월든 호숫가를 답사 7월 4 일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명상 생활을 했다.
30세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감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31세 9월 6일에 월든 호수를 떠났다.
그 후 에머슨 집에서 또 한해를 살면서『그래함』지(誌)에 칼라일을 소개하였 다.
32세에 여기 저기 강연을 다녔고 33세에『콩코드와 메리맥 강 위의 한 주간』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34세에 캐나다를 방문하고 36세에『캐나다의 미국인』을 발표하였다.
38세에 『월든』을 출판했다.
38세에 케이프 코드를 방문하고 39세에 월트 휘트먼을 만나 게 된다.
40세에 메인을 방문하여 존 브라운을 만난다.
41세에 화이트산과 모내드녹 산에 올라갔다.
42세에 에머슨과 같이 존 브라운을 옹호하였다.
브라운은 링컨 이전에 무력 으로 노예 해방을 실천한 용사였다.
에머슨은 브라운의 순교정신은 교수대를 십 자가로 빛낼 수 있었다고 격찬하였다.
소로우는브라운을 변호하기 위하여 세 편 의 수필을 쓰고 브라운에게 반감을 가지는 민중들에게 옹호 강연을 하였다.
1800년에 태어난 브라운은 젊어서부터 노예해방운동에 열중하다가 55세에 그는 가족들과 같이 노예제도 지지자와의 전투에 들어갔다.
56세 때는 캔사스 접 경에서 30여명을 지휘하여 노예지지자 21명을 포로로 삼았으며, 가을에는40명 을 가지고 250명의 노예제도 지지자와 격돌하여 승리를 거두고, 58세에는 11명 의 노예를 해방시켰으며, 여름에는5인의 흑인을 포함하는 46인의 부하들과 자 유주를 건설할 목적으로 헌법을 만들고 정부를 조직하고 브라운은 총사령관이 되어 59세때 포토막 강을 건너 하퍼즈 훼리에 있는 정부 무기고를 점령하게 되었 다.
이리하여 정부군과 대치하게 되어 결국 잡혀서 처형된 것이 추운 겨울이었다.
소로우는 브라운을 변호하여 브라운은 인간 부정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라 고 했다.
인간의 존엄은 정부의 권위보다도 더 높다.
브라운처럼 용감하게 인간 성의 존엄을 위하여 일어난 미국인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 모든 사람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미국인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진짜 죽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정말 산 사람 아니면 정말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브라운이 죽음으로 미국에도 비로소 진짜 죽음이 있게 되었다.
브라운이 어 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런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가장 훌륭한 금강석이 필요하였다.
그는 노예를 구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보내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 람들은 그를 교수형으로 처하고 말았다.
그는 기독교적인 순교자요 훌륭한 퓨리턴으로 자유를 위하여 전사한 사람이다.
소로우는 개인의 자유를 국가의 권력보다 더 높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개인 을 더럽히는 사회를 그는 언제나 거절하고 개인의 존엄을 가장 숭배하는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우리들은 다같이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깨어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기계적 수단이 아니고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에 의하여 자기의 생활을 높여가 는 인간의 힘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아무리 사람이 자고 있을지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밝아오는 새벽을 믿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나 는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좋은 것은 개인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소리뿐이다.
개인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밝히는 것만이 인간이 완성될 수 있는 유일한 길 이다.
진실한 책을 진실한 정신으로 읽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월든 호수처럼 한없이 순수하고 한없이 심오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영혼을 언제나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마음에 그리고 한없이 존엄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가치를 최고로 높이는 길이다.
43세에 다시 모내드녹산에 올라가 야영을 하였다.
44세에 폐병에 걸려 미네 소타로 요양을 갔고 45세 고향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다.
이해에『월든, 숲 속의 생활』이 재판되었다.
■ 이 글은‘서양철학 우리 심성으로 읽기3’에서 발췌했습니다.
■ 매주 일요일 오전 이화여대內교회에서 김흥호 선생의 강의가 있습니다.
저자: 현재 김흥호: 다석 유영모 선생께서 내리신 호는 현재.
1919년 2월 26일 평양에서 부친 김 성항과 모친 황성룡 사이의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출생.
1944년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 졸업. 1 9 5 6 ~ 1 9 8 4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및 교목실장. 미국 버틀러대 대학원 종교사학 석사. 1 9 8 6년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 1996년 이화여대 명예 철학박사.
아유르베다와 마음 : 의식의치유, 지혜로가는길 2
데이비드프롤리저_정미숙역_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刊_ 15,000원
인도의 전통의학 아유르베다를 심리학적인 면에서 고찰하고, 아유 르베다로 마음[의식]을 치료하는 요법을 알려준다.
아유르베다 교재 와 요가의 가르침 등을 통해 현대 사회에 걸맞는 마음과 몸·영혼 등에 대한 아유르베다의 견해를 살펴본다.
아유르베다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소개하면서도 입문서 이상의 전문적인 정보들을 함께 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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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Walden):
미국의 헨리 테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수필집(1854)입니다.
원 제목은 "월든:숲속의 생활 Walden;or, Life in the Woods"입니다.
1845~47년 매사추세츠 주 콩고드 숲 작은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 생활을 했던 작가 자신의 실험생활을 기록한 글 입니다.
극도로 단순한 생활 속에서 노동과 자연관찰, 깊은 사색을 표현했습니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2년간의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지은이의 반생에 걸친 관찰과 사색의 집대성이며,많은 비평가들에게 '죽음과 재생의 신화'로 불려왔습니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격언풍의 표현, 역설, 반어, 과장, 생략, 논리적인 비약, 엉뚱한 비유, 완곡 표현이라는 복잡한 수사적인 기법 구사와 더불어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힘을 지니고 있는 문체입니다.
이 책은 지은이가 세상을 떠난 후,점차 그 평판이 높아져 미국문학 최고의 걸작 중 하나 라는평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의 고행은 미국 물질문명의 발전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여 문명을 부정하고 재산과 사회적 연관을 버린 채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생활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구했습니다.
사회로부터 절연된 완전한 자급자족적 생활을 공언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발상이라 비판받았으나, 물질문명의 병폐가 심각한 현대에 미국 물질물명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지적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