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핵에는 '염색이 잘되는 물체'란 뜻을 가진 염색체(chromosome)가 있는데, 염색체에는 주성분인 단백질과 DNA라는 유전자가 돌돌 말리고 배배 꼬여 꾹꾹 눌려 있다. 근데 'chromosome'이라는 영어 단어를 뜯어 보면 'chromo'은 '색소, 색깔', 'some'은 '몸, 어떤 물체나 물질'로 역시 '물이 잘 든다'는 뜻이다. 즉, 헤마톡실린이나 카민 등의 염기성 색소에 염색이 잘되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염색체
염색체가 없는 생물은 없는데, 수와 형태는 생물의 종류에 따라 일정하다. 하등한 원핵생물에서는 핵막이 없어서 하나의DNA가 벌거숭이 형태로 세포 내에 포함되어 있지만 고등한 진핵생물의 염색체는DNA이외에 리보핵산(RNA), 단백질 및 소량의 지방이나 다당류가 첨가되어 긴 끈 모양의 구조인 염색사로 핵막이 있는 세포핵 안에 포함되어 있다.
사람의 체세포 핵 하나하나에 든 각각의 46개의 염색체에는 내림 물질인 유전자가 들어 있다. 46개 중 22쌍의 염색체를 '상(常)염색체'라 하고 나머지 둘(XX, XY)을 '성(性)염색체'라 한다. 46개의 염색체 꾸러미를 꽉꽉 채운 유전자를 모두 이으면 무려 183센티미터나 되고, 3만 개 남짓의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는데 알기 쉽게 말해서 그 유전자의 30,000분의 1이 한 개의 유전자인 셈이다.
염색체에 전좌(轉座), 중복(重複), 결실(缺失) 등의 구조적 이상이 일어나면 일종의 돌연변이가 생겨난다. 전좌의 경우에는 내장이 좌우로 자리를 바꾸는 '내장역위(內臟逆位)', 중복은 손가락이 하나 더 많은 '다지증(육손이)', 결실은 손가락 마디가 하나 적은 '단지증' 등이 생길 수 있다. 염색체 수가 하나 더 많은 경우로 대표적인 것이 다운증후군(Down'ssyndrome)이다.
염색체에 전좌, 중복, 결실 등의 구조적 이상이 일어나면 내장역위와 같은 돌연변이가 생겨나게 된다.
어쨌든 이 유전자의 신통력으로 아들, 딸, 친탁, 외탁, 됨됨이 같은 내림을 한다. 염색체 23개는 어머니(난자), 23개는 아버지(정자)로부터 받았으니 두 본새를 반반씩 닮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씨 도둑질'은 못 한다는 것이 아닌가. 부모와 자식 간에는 각각 2분의 1, 조부와 손자는 4분의 1, 형제자매는 4분의 1(2분의 1×2분의 1), 사촌 간에는 16분의 1(4분의 1×4분의 1)을 닮아서 촌수가 멀어질수록 유전자의 짙기가 묽어지고 엷어진다. 그래서 '한 대가 삼천 리'란 말이 있는 것이다. 가깝고 먼 이런 인연 관계를 근연도(degreeofrelatedness) 또는 혈연도라 한다.
그럼 남녀의 유전자 근연은 어떤가. '남녀 구별은 있으나 차별은 없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남녀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유전자까지도 얼추 0.1퍼센트의 차이를 보인다. 침팬지와 사람의 유전자가 어림잡아 1퍼센트가 다른 것을 감안할 때, 0.1퍼센트는 에누리해 보더라도 자못 무시 못할 수치이다. 때문에 주례사에 노상 '서로 다름을 인정하라'고 신신당부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같은 종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언제나 염색체 수와 모양, 크기 등이 똑같은데 이를 핵형(karyotype)이라 한다. 신기하게도 핵형이 다르면 수정되지 않는다. 사람의 핵형에서 1번이 10마이크로미터로 제일 크고(길고), 22번이 2마이크로미터 정도로 가장 작으며, X염색체는 7번과 비슷하다. Y염색체는 20번의 크기와 거의 같아 3마이크로미터 정도로 X염색체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3만 가지 유전자 중에서 대략 454개가 들었으며, 그중 항원 형성, 혈액 조절, 리보솜 합성 등 열댓 가지 기능밖에 못 한다. 그러나 정소 형성을 결정하는 고유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다시 아들로부터 손자로 이어지는 '남성'을 결정한다. 이처럼 각각의 염색체에 어떤 유전자가 들었는지를 밝혀내 지도로 작성한 것이 바로 유전자 지도이다. 거기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일일이 다 새겨져 있다.
남성을 특징짓는 Y 염색체의 경우 계속 퇴화가 일어나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고, 사람의 모든 체세포가 똑같이 46개의 염색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적혈구나 상피세포의 경우 처음 생길 때에는 핵(염색체)이 있었으나 성숙하면서 없어져 버리고, 근육세포(근섬유)는 다핵세포라서 염색체가 몇 곱절이 들어 있으며, 재생 중인 간세포는 사배체(4n=92개) 상태이고, 골수에서 생겨 나중에 혈소판이 되는 거핵세포(megakaryocyte)에는 보통 체세포의 4, 8, 16배나 되는 엄청나게 큰 염색체가 들어 있는 경우도 간간이 있다.
분열 중기(metaphase)는 염색체가 반으로 갈라져서 제각기 양극으로 이끌려 갈 채비를 하는 시기라 염색체의 크기나 모양들을 관찰하기에 으뜸이다. 이 무렵이면 이미 염색체나 유전자도 배가 되어 있으며, 후기에 반반씩 가지런히 딸세포(낭세포)로 전해진다.
보통 세포가 분열을 끝내는 데는 통상 30여 분이 걸리며, 세포 분열 시간도 으레 밤 11시 이후부터 새벽 1시까지가 최상이라 이때가 역시 염색체 관찰의 적기이다. 흔히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햇귀(첫 햇살) 보기 전에 모든 유전자가 발현할 준비를 끝낸다고 하니 밤잠을 푹 잘 자야 무럭무럭 자라고, 유전자 수선도 서둘러 하여 병도 빨리 낫는다. 세포 분열로 생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죽거나 손상된 세포를 보충하기 때문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야말로 유전자를 이용한 건강 관리법으로는 그만인 셈이다.
세포 분열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다. 이 시기에 푹 숙면을 취해야 유전자 수선 등이 원활히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