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Berliner Morgenpost, 4. 2, 15면 2단, M. R. Entress -
한국의 남서부에 위치한 대도시 광주에서 열리는 제4회 광주 비엔날레는 특이한 예술 전시회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한국의 경우 개인적, 집단적 생존 투쟁에 매진하는 요즈음에 감행하기 어려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공개적인 휴식을 취하고 사색과 정신적 일탈을 우선시하는 의미의 '멈춤(PAUSE)'이 바로 한국 최대의 예술 축제인 이번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이다.
하지만 6.29일까지 열리는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아시아적 세계관의 뿌리로 복귀하는 것만이 중시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완경 예술감독 등 이번 광주 비엔날레 기획팀은 예술가들에게 20세기의 잘못된 사회적, 경제적 구상들에 대한 대안적 사고 구조들을 창출하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즉 광주 비엔날레의 '멈춤'이라는 주제는 비디오레코더의 '멈춤' 단추와 관련된 것이다.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 있어 유일하게 한국적 내지 아시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구상들을 촉구하는 적극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특히 세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통화 위기를 겪으면서 지반이 상당히 흔들리는 경험을 했었다.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완성된 작품의 전시보다는 대체로 예술 작품의 제작 과정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지는데, 방문객들은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예술가들, 그리고 작업의 흔적과 기록들을 만나게 된다.
더 이상 예술 매체가 메시지가 아니며, 이제는 미학적 의무 이전에 윤리적, 사회적 의무가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책임성있는 예술 행위의 극명한 사례로서는 코펜하겐의 예술가 그룹이 보여준 '슈퍼플렉스'(Superflex)라는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진정한 아이디어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술가 그룹은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보통 가정을 위한 미니 바이오가스시설을 고안했는데, 리버풀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TV 송신시설을 제작한 바 있다.
광주 비엔날레의 4개 전시홀에는 이와 같이 미학적 진보뿐만 아니라 사회적 진보에 기여하는 협력 형태의 작품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읽을 거리, 컴퓨터의 활용, 책장을 넘기고 관람객들이 직접 찾아내야 하는 것이 많이 전시되어 있으며, 각 전시물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단순한 관찰보다는 참여적 태도를 요구한다. 중간 중간에 관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 형태의 전시공간(파빌리온)들이 있는데, 이 전시 공간들에서 관객들은 단순한 긴장의 완화보다는 오히려 지각을 요구받는다.
방문객들은 올라프 니콜라이가 제작한 나이키 신발모양의 거대한 설치물에 들어가 볼 수도 있고, 모토히코 오다니스의 비디오 설치물 "9호실"에서는 거울들 사이에서 무한한 추락의 공포를 만날 수 있으며, 세계적인 볼거리들을 담은 이슬람의 벽화들 사이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또 춤을 출 수도 있고, 샤마니즘적인 록 퍼포먼스를 구경할 수도 있으며, 필리핀의 단편 영화들을 감상하고 일본의 만화들을 읽고, 에술가들의 요리를 맛보는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멈춤(PAUSE)'이라는 프로젝트(프로젝트1)외에 다른 세가지 프로젝트는 다소 주변부에 마련되어 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상무대 부지였던 5.18 자유공원은 원형이 다시 복원되어 이번에 전시장(프로젝트3)으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방문객들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다 돌아보려면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5.18 자유공원의 이 전시장에서 50여명의 한국 예술가들은 감옥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에 접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