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탕춘대능선,
차마고도를 다녀와서!
만남은 하늘의 뜻이고 인연은 사람의 뜻이라고 한다지요.
사업상의 인연이든 남녀가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하자는 인연
이든 당사자인 양자(兩者)가 합의를 이룰 때까지는 서로가 양보
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면서 배려하지 않으면 이루기 어려운
것이 인연입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원만한 인연이
이뤄질 때까의 과정(課程)은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
를 예고하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공들여
완성한 결과물을 소중히 가꾸면서 아름다운 삶에서 얻어지는 고운
추억을 만들어가야겠지요.
추억은 인연에서 비롯되기에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하루에도
열 두번씩 변할 수 있다는 소용돌이치는 사람의 마음이라선지 한결같음
을 이어가지 못하는 인연이 있는가하면 어떤 요인이 작용을 해도 무던하게
한 인연의 페이스를 이어가는 인연도 있으니 신뢰와 배신의 가치가 다르게
느껴지나 봅니다. 좋은 인연에서는 애정을 낳고 우정을 낳고 인정(隣情)을
낳습니다. 사람이 마지막 가는 더이상은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지경인
막다른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사람사는 이치되로 살아
오지 못했음이라고 합니다. 물론 완전한 신이 아닌 부족함 투성이인 인간
이기에 그릇된 생각으로 인하여 오류투성이인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자책을 하고 잘 못 살아온 삶을 뉘우치고 후회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고 신의 경지(境地)에
도달한 마음이 아닐런지요?
불광동(佛光洞) 역사
면적 4.51㎢, 인구 6만 8215명(2008)이다.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속한 동이다.
동쪽의 종로구 구기동, 서쪽의 대조동·갈현동, 남쪽의 녹번동, 북쪽의
진관외동과 접해 있다. 동 이름은 이곳에 있던 불광사에서 유래한다.
근처에 바위와 크고 작은 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 있다 하여
붙여진 자락인 동 인근에는 여러 개의 사찰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북부 연은방 지역이었다. 1914년 박석동·
사정동· 관동을 합하여 경기도 고양군 불광리라 하였고, 1949년
서대문구에 편입되었다. 1950년에 불광동으로 바뀌었고, 1970
년 불광1·2동으로 분동이 되고 2동이 다시 2·3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1979년 은평구 관할로 되었다. 법정동인 불광동
은 행정동인 불광1~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광1동은 북한산 자락에 있어 자연경관이 좋고, 종로구와 접해
있어 도심으로 집중하는 많은 교통량을 분산시키는 교통의 요지이다.
불광2동과 3동은 통일로와 연서로를 연결하는 일반 주거지역
이고,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을 중심으로
상업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옛 지명으로는 박석고개, 독바위골, 수리봉, 돈노리, 연신내,
어수물터(어수정), 이감수, 관텃굴, 새장골 등이 있다.
갈현동과 불광동을 양편에 끼고 구파발로 넘어가는 고개를 박석고개
또는 박석현(薄石峴)이라고 하는데, 이 부근에 궁실(宮室)의 전답이
있어서 궁전(宮田)에 나가는 사람에게는 땅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돌을 깔았던 것이 그대로 박혀 있어 박석고개가 되었다 한다.
다른 유래로는 풍수지리상 지맥을 보호하기 위하여 돌을 깔아 놓았다
고도 한다. 관텃굴은 장희빈(희빈 장씨)의 아버지 장형의 묘가 있어서
관을 두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관동이라고도 한다.
수리봉은 북한산 비봉 아래에 있는 봉우리인데, 모양이 수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수리봉 밑에 있는 마을을 돈노리라고 한다.
출처 = 은평구청 홈페이지
독바윗골
은평구 불광동에 있던 마을로서, 수리봉 부근에 바위 모양이 독과
같이 생겼으므로 독바위라 하고, 그 바위가 있는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독바윗굴 · 독박굴 · 독박골이라 하고, 한자명
으로 옹암동(甕岩洞)이라고 하였다. 인조반정 공신들이 이곳에서
모여 모의하였다고 전한다.
탕춘대(蕩春臺)
종로구 신영동 136번지에 있던 돈대로서, 연산군 11년(1505)
이곳에 탕춘대를 마련하고 앞 냇가에 수각을 짓고 미희들과
놀았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영조 27년(1751) 가을에 영조
는 탕춘대에 거둥하여 활쏘기로 무사를 뽑고, 29년(1753)에
탕춘중성(蕩春中城)을 새로 쌓고, 30년(1754)에 탕춘대를
고쳐 연융대라 하고 홍상서(洪尙書)를 시켜 신영동 172번지
세검정 위 길가에 있는 바위에 ‘연융대(鍊戎臺)’
석자를 새겼다. → 연융대바위 [바위]
가고싶은 내고향/조미미.66
고향이 그리워도 갈수없는 내고향
철없는 그옛날의 첫사랑을 못잊어
물제비 날아드는 꿈을 그리며
사람에 전해볼까 바람에 전해볼까
그리운 마음
나루터 언덕위에 내고향을 그리며
소리쳐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고향
꽃잎에 새겨보는 옛임의 이름
뱃사공 노랫소리 뱃사공 노랫소리
나를 울리네
2018-12-17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