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州崔烈坤서울市敎育監路祭祭文
경상도에서는오늘날도제문을지어읽습니다.
작은 아버지 영전에 올립니다.
내 생에 횃불 같은 작은 아버지는
우리엄마 시집 올 때 겨우 여섯 살 난
철없는 막내 시동생이라 아들처럼 정을 주고 살뜰히 보살피셨지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성주농고 졸업하고
서울대도 충분히 갈수 있는 실력이나
집안 형편 생각하여 성균관대를 선택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과 동시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시고
이화여대 졸업하신 창녕성씨 집안 출신
하늘이 맺은 배필과 부부의 연을 맺으시니
어지신 숙모 또한 며느리 된 도리를 다해
제삿날이 다가오면 며칠 먼저 내려오셔서
어머니를 도우시며 효우를 다하셨지요.
작은 아버지 내외분은 서울생활 중에도
농번기에 바쁜 우리엄마 부담 덜어드리려고
일찍 홀로 되신 할머니를 여름 한 달씩은
해마다 서울로 모시고가 효도를 다하셨고
서울 막내 아들네 집을 다녀오신 할머니는
"서울에 비하면 대구는 고령장보다 작더라."고
우쭐해하시며 동네방네 자랑 하고 다니셨지요.
중풍으로 십년을 고생 하신 할머니는
칠십구세에 돌아 가셨는데 병석에서 자주
“막내아들이 보고 싶다 보고 싶다.”하셨고
그럴 때면 삼촌내외분께서 법산 까지 다녀가셨는데
가실 때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정치입문 바라시던 아버지의 염원과 달리
문교부와 서울대학교의 교육행정직을 거쳐
서울시 교육감으로 공직을 마치시고
전국 퇴임교사 모임인 '삼락회'를 창립하셔서
퇴임교육자의 여가시간을 풍요롭게 하셨지요.
작은 아버지는 평생 일기를 쓰실 만큼
성실하셨고
뛰어난 필력으로 여러권의 저서도 내셨지요.
칠십오세에 일본 히로시마대학에서
최고령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으로
진정 닮고 싶은 나의 멘토이신 작은아버지
아버지께서 못 다 이루신 꿈이었던
오암서원 복원사업을 마무리 하시고
법산 마을과 오암서원을 가로막은
너른 대가천에 튼튼한 다리를 놓아
일가친지 불편을 구석구석 찾아 해결하며
소소한 집안일은 늘 이 질녀를 믿고
의논해주시던 자상하신 작은아버지
강철같이 영원 하실줄 알았던 어른이
노환으로 일년이 넘도록 병상에 계신 중에
폐렴으로 위중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나
아버지와 삼촌이 무엇이 그리 다르다고
미거질녀는 코로나와 제 소임을 핑계로
작은 아버지의 병간호 한번 살뜰히 한 적 없어
죄스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지경인데
뜻밖에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대고지변을
이렇게 당하고보니 하늘에 닿을 불효를
어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옵니다.
생전 집안 대소사에 막힘없이 물꼬를 트시고
사회적으로도 누구나 우러러 볼 지도자의 길을
걸어오신 작은 아버지께서 오늘 이다지도
황망히 가시면 아우 종하나 무지한 저는
앞으로 살아가며 큰일을 당했을 때
누구에게 묻고 의지 하여야 할지 막연할 뿐
이 세상에 다시없을 우리 작은 아버지
혼령이 계신다면 분명 저 세상에서도
편안하고 좋은 곳으로 가실 줄 믿으며
이 불효한 질녀가 횃불같은 작은 아버지 영전에
서럽고 죄스런 마음에 두서없이 몇 자 올립니다.
신축년 삼월 스무날
진성 이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