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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전야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겸해서 책 추천 글을 준비했어요.
이 서평이 올해의 마지막 감상문이 되겠네요.
이번 작품은 제가 여태 읽어보지 않은 작가, 그리고 나라에서 온 소설입니다.
홍콩의 작가가 쓴 거더라고요.
도서명: 마술 피리
저자: 찬호께이
*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사이트 도서관 9번 문학에 3번 추리 코너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나는 동화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해 이야기를 애정한다. 어릴 때 잠자리 침대에 누워서 ‘아빠한테 한 장만 더!’를 조르던 아이였다. 그래서 독서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최근에 확 꽂힌 그림책 여러 권을 동대문도서관에서 구하지 못해 좀 한이 쌓이기도 했다. 아니, 야! 어떻게 한 권도 구하지 못할 수가 있어? 다섯 권 중 한 권은 대출 나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고. 복본을 만들어두는 게 도서관 운영의 정석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현장은 다를 수 있다는 거 이해하니까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복본이 없는 것도 넘어갈 수 있어. 그런데 네 권 중 하나는 있을 줄 알았단 말이야! 그래도 <산타클로스를 만난 펠릭스>는 인기 시리즈라는데 걔는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집 근처에 다른 도서관 있었으면 진작 갈아탔다, 내가!
이런 스트레스 요인 때문인지 동화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을 보자마자 곧장 다운받았다.
그렇다. 이번 작품은 바로 그 동화를 모티브로 한 추리물이다. 홍콩의 작가 찬호께이의 단편집 《마술 피리》가 오늘 소개할 책이 되시겠다.
참고로 ‘마술 피리’라고 하기에 나는 처음에 오페라 <마술 피리>를 추리물로 각색한 줄 알았다. 마음 속에 어린이가 산다는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의 유명한 그 오페라 말이다.
1791년 빈에서 초연된 오페라 마술 피리는 모차르트 3대 걸작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와는 달리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오페라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애석하게도 실제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중학교 음악 시간 때 오페라 대본의 일부분은 읽은 적 있다.
하지만 찬호께이의 소설 [마술 피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그림 형제의 독일 설화집에 수록되어 있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남자>에서 모티브를 삼은 추리소설이다. 아니, 그럼 이거 책 제목이 좀 잘못된 거 아니야?
사진 설명: 독일 하멜른 1602년에 지어진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 집이라고 해도 오두막 같은 것을 떠올리면 안 된다. 독립문을 연상시키는 문과 고딕 양식으로 된 지붕, 그 위를 장식한 조형물들이 저택 같은 포스를 풍긴다. 사진이 흑백이라서 좀 아쉽다고 시력 있는 분이 그러더라.
출처: 책 《마술 피리》 작가 해설 부분에서
《마술 피리》, 오페라 아닌, 동화 속 범죄사건 추리 파일
소설의 주인공은 라일 호프만과 한스 안데르센 그린 콤비이다. 어째 이름이 참 친숙하다. 동화가 모티브인 만큼 캐릭터 이름도 그에 걸맞은 네이밍 센스를 발휘한 걸까?
여하튼 호프만은 영국의 백작위 귀족이고 법학박사 출신인데, 특이하게도 외지를 다니며 각 지역의 전설을 수집하는 것을 취미이자 낙으로 삼은 사람이다. 한스는 무예를 갖춘 호프만의 충실한 보디가드이자, 또 서기이고, 동시에 하인이기도 한데, 그의 시점에서 스토리가 펼쳐진다. 작품이 단편집이라 이야기는 총 세 편이다.
“이런, 안타깝게도 한발 늦으셨습니다. 이 지역에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같은 영웅은 없어도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에 관한 전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인은 사라지고 끔찍한 범죄사건만 남았답니다. 선생님이 오싹한 범죄 기록이나 비극 극본을 쓰신다면 그럴 듯한 사건이 하나 있는 셈이지만요.”
첫 번째는 호프만 박사의 고국으로 설정된 영국의 동화, <잭과 콩나무>를 모티브로 한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이다.
여행길에 올랐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호프만 박사와 한스는 숲에서 벌집 탓에 말이 도망가 버려 노숙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다행하게도 걷고 걷고 또 걸어서 마을을 발견해 여관을 잡는 데까지 성공한다. 친절한 여관 주인에게 말을 붙이던 중 마을에서 화제가 된 사건, 일명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에 대해 전해 듣는다.
이쯤에서 소설의 소재가 된 원본 <잭과 콩나무>의 내용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가능성은 적지만, 이 동화 내용이 아리송한 분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라고 여겨주시면 좋겠다. 동화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에 잭이라는 소년이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살았다. 그런 어느 날, 집이 너무 가난해 어머니는 잭에게 유일한 재산인 소를 팔아오라고 시킨다. 잭은 길에서 소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돈은 없고 돈보다 더 귀한 신비한 콩이 있다고 말한다. 잭은 무슨 정신인지 그 말에 홀딱 넘어가 콩과 소를 바꾸고 만다. 잭의 어머니는 화를 내며 콩을 창 밖으로 던졌는데, 이튿날 그 콩이 거대한 콩나무로 자라나 하늘 높이 솟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잭은 콩나무를 타고 구름 위 거인의 집으로 올라가지만 어린애를 잡아먹는 거인을 피해 숨는다. 그리고 거인의 아내의 도움으로 금화가 든 주머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날에는 황금알을 낳는 암탉을, 마지막으로는 저절로 연주되는 마법의 하프를 얻게 된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프를 들고 도망칠 때 잠자던 거인이 눈을 뜨고 콩나무를 타고 잭을 쫓아오기 시작한다. 땅에 내려온 잭은 도끼로 콩나무를 잘랐고 거인은 떨어져 죽었다. 보물을 얻은 잭과 어머니는 그 뒤 행복하게 잘 살았다.
단순한 모험 이야기 같으면서도, 자기 재산 빼앗기고, 죽기까지 한 거인은 무슨 죄인가 싶은 감상이 들게 하는 동화였다. 어린애를 잡아먹는다는 설정이 잭의 도둑질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기능한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원작에서는 잭이 부자가 되지만, 소설 속에서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정은 비슷하다. 잭이 콩을 얻고, 콩줄기가 자라고, 거인의 집에 가고, 금화와 황금알을 낳는 닭과 혼자 연주되는 하프도 나온다. 하지만 끝에 가서 동화의 세계는 현실로 확 뒤바뀐다. 바로 거인의 아내가 잭을 강도치사죄로 고소해 소년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호프만은 사건을 청취하고 묘하게 ‘콩줄기’에 집착하며 콩나무가 어떤 방향으로 넘어가서, 어디쯤 쓰러졌고, 거인은 어느 지점에서 추락사했는지 등을 캐묻는다. 그리고 마을 법정에 난입해 교묘한 언변으로 교구 사제를 재판에 끌어들여 소년의 심리를 잠시 파투놓는다. 빼어난 미모를 가진 잭의 어머니, 마을의 유지와 판사, 살해당한 대장장이 거인, 그의 아내이자 고소인 거인 부인까지 얽힌 가운데, 과연 거인 살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소년 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동화 속에서 현실로 불려나온 사건에 진상은?
“그 끔찍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죽을 거예요……. 선생님! 저 좀 구해주세요! 선생님! 저…… 제 남편이 저를 죽일 것 같아요…….”
두 번째 이야기는 프랑스의 동화, <푸른 수염>을 소재로 한다. 바로 ‘푸른 수염의 밀실’이란 제목의 단편이다.
겉보기로는 전설 및 민담 수집 여행이지만, 사실은 밀사로 프랑스에 파견됐던 호프만 박사와 한스는 펑펑 내린 눈 때문에 며칠간 숲속 폐가에서 머물렀던 참이다. 그런데 이제 슬슬 눈이 그쳤고 내일이면 떠날 수 있겠다며 낙관하던 때, 돌연 설원을 질주하며 날뛰듯이 달려오는 흑마를 발견한다. 그 말 위에는 양장 차림의 귀부인이 안장도 없이 고삐를 놓친 채 말의 목을 껴안고 있었다. 어찌저찌 부인 쥐디트를 구하고 보니, 그녀는 난데없이 자신의 남편 드 레 남작에 대해 말하며 구조 요청을 한다. 그리하여 호프만 박사와 한스는 그녀의 친한 오라비로 위장해 쥐디트의 성으로 잠입하기로 한다.
이 시점에서 원작 <푸른 수염>의 내용을 소개해야겠다. 혹시 몰라 아버지한테 시험 삼아 이 이야기를 아는지 물었는데, 들어본 적 없다고 하니 잠시 원작을 언급하는 게 낫겠다. 덧붙여 이 동화는 책으로 보지 않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접한 건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기억하고 있는 줄거리는 이렇다.
옛날에 무섭게 생긴 귀족이 살았는데 수염이 기이한 파란색이라 사람들은 그를 ‘푸른 수염’이라고 불렀다. 몇 번이나 결혼했지만, 여자들이 결혼한 뒤 남편의 기이한 생김새를 참지 못하고 달아났기 때문에 푸른 수염은 계속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느 평민의 두 딸에게 구애했고, 작은딸이 청혼을 받아들여 푸른 수염의 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느 날 푸른 수염이 멀리 다녀와야 한다면서 성의 열쇠를 새아내에게 맡겼다. 그리고 어떤 방이든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되지만 지하실 문은 절대 열면 안 된다고 당부한다. 아내는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남편이 떠나고 친구들을 초대해 집안 구경을 시켜줄수록 지하실이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더는 참을 수가 없어 그녀는 약속을 깨고 지하실 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많은 여자 시체를 발견하고 만다. 전부 푸른 수염의 전처로, 도망친게 아니라 푸른 수염한테 살해당한 거였다. 아내는 너무 놀라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이때 열쇠에 핏물이 묻고 마는데, 그것이 증거가 되어 남편 푸른 수염에게 약속을 깼다는 것을 들키고 만다. 푸른 수염은 부인을 죽이려 하고, 그녀는 마침 자기를 찾아온 언니에게 도움을 청한 뒤, 죽기 전에 탑에 올라가 기도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시간을 끈다. 푸른 수염이 더는 참지 못하고 탑에 올라가 아내를 죽이려고 할 때 아내의 두 기사 오빠가 도착해 푸른 수염과 결투를 벌인 끝에 승리한다. 아내는 푸른 수염의 유산을 가족에게 나눠줘 언니와 연인의 결혼을 돕고, 자신도 다른 신사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도 든 생각인데, 역시 이 동화(?)는 너무 현대적이다. 그러니까, 범죄자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오늘날 히트한 미스터리 소설과 유사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나마 <잭과 콩나무>보다는 권선징악적이기는 하다. 그래도 그렇지, 웬 으스스한 살인마가 나오질 않나,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는 지나치게 미성년 관람 불가 딱지 아닌가?
좌우간 소설도 이런 원작의 요소들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그렇지만 군데군데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성에 지하실에는 정말 시체가 있었다. 그것도 쥐디트와 똑같은 백금발의 머리칼을 가진 여자들이 있었는데, 막상 호프만과 한스가 조사차 내려가니 시체는 없었다. 열쇠가 진짜 붉어지긴 했는데, 그게 정말 혈흔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핏자국인지 뭔지는 물로 닦아내도 안 지워지고, 오히려 더 붉게 번지기만 한다. 그 커다란 성에는 상주하는 하인이 요리장과 집사 딱 둘뿐이다. 인력 대비 살림을 보면 말도 안 되는데, 그들의 행동 역시 뭔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 정원에는 독초가 있고, 전대 남작의 죽음도 숨은 내막이 있어 보이며, 그의 방에서는 호박 보석 세 개가 발견되는 등 수수께끼와 단서는 쌓여만 간다. 과연 푸른 수염을 한 남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에게 살해 위협을 느끼는 아내의 결말은? 으스스한 범죄 스릴러인 이 이야기는 과연 끝까지 범죄 스릴러로 남을 것인가!
“코펜산을 넘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다들 산기슭 북쪽 평지나 성 서쪽 강을 따라 들어온다고요! 마녀가 있으니까요!”
이 책의 마지막은 ‘하멜른의 마술 피리 아동 유괴사건’이다. 소설의 원제목이 되기도 한, 그리고 작가가 제일 공을 들인 듯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이야기인데, 독일의 미스터리한 실화이자 민담 <하멜른의 피리 부는 남자>를 근간으로 한다.
친척의 읍소를 외면하지 못하고 독일을 방문하게 된 라일 호프만 박사와 한스 안데르센 그린은 마침내 귀성길에 오른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것으로 인해 난처한 상황에 놓인 호프만 박사의 심기는 편하지 않다. 그는 평소 관심을 갖던 민담과 전설 수집도 하지 않고 곧장 영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독일의 한 마을에 당도하게 된다. 도중에 산에서 만난 수상쩍은 피리 부는 남자가 “사기를 당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긴 마을, ‘하멜른’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충고가 무색하게 마을은 꽤나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꼬마들이 조직한 일명 ‘하멜른 기사단’도 퍽 귀엽고 말이다. 물론 인심이 무척 야박한 지주가 옥에티이기는 해도 그럭저럭 무난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뿐, 마을에서 아이들이 한둘씩 실종되기 시작하고, 코펜산에 산다는 마녀 이야기가 떠오르며, 마을에는 점차 갈등의 씨앗이 번지게 된다. 호프만 박사와 한스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자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고, 지주를 만나는 등 조사를 하지만, 한스가 경솔하게 뱉은 말과 밤중에 들린 피리 소리로 인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코펜산의 마녀 이외에 새로운 범인 후보가 부상한다. 그는 바로 호프만과 한스에게 마을의 위치를 알려준, 마을에서 홀대당하고 쫓겨나기까지 한 피리 부는 남자였다.
이 대목에서 혹시 모르니 작품의 근원이 된 원전을 좀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이야기는 동화이기도 하지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내가 그 사실을 접한 건 TV 프로 ‘서프라이즈’를 통해서였다. 여하튼 이야기의 서사는 이렇다.
옛날 하멜른이라는 마을에서 쥐가 극성을 부려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남자가 마을로 들어와 쥐를 없애줄 수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렇게만 해주면 사례하겠노라 약속하고, 남자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의 쥐가 줄줄이 달려 나와 그의 피리 소리를 따라 강가로 가서는 물로 뛰어드는 게 아닌가. 주민들은 그 광경을 보고 놀라며 신기하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사건이 마무리가 되자 돈이 아까웠는지, 아니면 남자의 피리가 불길하게 여겨졌는지, 보수를 지급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피리 부는 사나이는 화를 내며 마을을 나간다. 며칠 뒤 주민들이 예배당에 모여 있을 때 붉은 사냥복을 입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마을로 들어와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 쥐가 아니라 마을 아이들이 피리 연주를 따라, 그것을 부는 남자를 따라 코펜산으로 들어갔다. 다리를 저는 아이 하나만 다른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해 유일하게 남았다. 주민들은 그제야 아이들의 실종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복수임을 깨달았다.
어른들의 그릇된 행실로 아이들만 피해를 입은 이야기의 전형이다. 부연하자면 이 이야기, 즉 130여 명의 아이들이 실종된 사건의 원인으로 자연재해 및 전염병, 인구 증가로 인한 이주, 십자군 모집 등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고 한다.
작가 찬호께이는 그 원전을 토대로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당연하지만 기본 골자는 동일하다. 하멜른에 쥐가 들끓었던 것도,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 쥐 떼를 강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것도, 보수 한 푼 못받고 쫓겨난 것도 원본 이야기와 같다. 단지 요소요소에 원전과는 다른 창작 요소를 삽입했을 뿐이다. 가령 유괴당한 남매의 이모가 주장하는 코펜산의 마녀라든가, 어째 수상한 행동거지를 보이는 지주의 딸 등이 그렇다. 과연 하멜른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유괴 사건의 감춰진 사정은 무엇일까? 라일 호프만 박사와 그의 하인이자 경호원, 그리고 서기인 한스 안데르센 그린이 마주한 진실은?
사진 설명: 독일 하멜른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 옆에 있는 골목의 모습이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붕겔로젠 거리’라고 한단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길이기 때문에 17세기부터 어떤 음악 활동(투어 등)이든 이 골목을 지날 때는 아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소리를 멈추는 게 기본 에티켓이란다. 참고로 이 사진도 흑백이다.
출처: 책 《마술 피리》 작가 해설 부분에서
판타지한 동화에 현실을 감이한 추리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동화가 있는 《마술 피리》
“일단 우리가 아는 사실에서 증거를 찾고,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때 모르는 걸 탓하자고. 오로지 주님만 진상을 아시겠지. 우리는 실마리를 통해 추측하고 그 속의 가능성만 따져볼 수 있어.”
동화에는 어느 정도 판타지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마법의 콩이나 신기한 열쇠, 수상쩍은 마녀 내지는 사람이나 동물을 홀리는 피리 연주가 없더라도 이야기 구성 자체가 판타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안은 까닭이다. 생각해보시라, 아무리 애가 철이 없어도 그렇지 누가 콩 몇 알과 소를 바꾸겠는가. 웬 미친 사이코페스 귀족과 결혼한 평민 아가씨 이야기도 그렇다. 그런 남자, 요컨대 귀족이고 돈도 많은데 인성은 살인마인 남자를 만난다, 그것도 평민이? 확률적으로 너무 터무니가 없지 않나? 참고로 명예와 부, 그리고 인성까지 두루 갖춘 남자와 평범한 여자의 결혼도 현실성 없기는 매한가지겠다. 마술 걸린 악기, 혹은 마술 같은 이적을 일으키는 연주가도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로부터 시작해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인데, 이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함이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유리컵 하나 깨는 게 과학적인 이적의 전부니까.
무엇보다 동화의 판타지함은 마지막이 권선징악이요, 주인공에게 해피앤드,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피해를 당한 주인공이 복수라도 통쾌하게 한다는 부분이다. 우리의 현실은 주인공은 주인공 보정도 없이 맨날 당하고 까이고 복수도 못하는 ‘찌질함’이니까. 어쩔 수 없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동화’를 놓치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에는 우리에게는 없는 판타지라도 있으니까.
그런데 홍콩의 작가 찬호께이는 그 동화를 사실적으로 변주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했다. 판타지함을 사실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건 얼핏 생각해도 쉽지 않은 작업임이 분명하다.
판타지, 곧 환상을 실제로 있을 법한, ‘이거 가능할 것 같은데?’ 싶은 이야기로 꾸며서 쓰는 것도 물론 힘든 일이다. 내가 하고 있어서 안다. 판타지 소설 쓰면서 생전 관심도 없던 물리학이나 광학, 클라드니패턴, 이태리어나 불어까지 찾아본 전적이 있으니까.
판타지가 완전 순수 ‘구라’라는 건 안다. 알기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싶다. 이렇게 현실성을 삽입하다 보면, 또 모르지 않은가. 기적처럼 현실이 될지도...... 나는 이런 바람으로 대리만족의 이야기를 쓴다.
하지만 이런 판타지, 즉 환상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작업이다. 판타지에게 논리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 판타지 자체를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거인을 대체 무엇으로 얼버무릴 것이며, 마법의 콩은 무엇으로 근거를 얻게 할 것인가 하는 난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법으로 해결한다’는 보호막을 걷어찼으니, 그만큼의 여백을 ‘사실성’이 채워야 한다. 미신이나 전설 등이 아닌, 저 위의 호프만 박사의 대사처럼 우리가 아는 사실, 곧 지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를 소재로 했다는 이 《마술 피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읽는 내내 참 흥미로웠다. 그리고 독서하면서 작가가 동화의 요소는 그대로 차용하되, 현실성 있게 잘 변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과 콩나무>에서 마법의 콩은 콩의 덩굴진 특성을 따와서 변주해 현실성을 부여했고, 혼자 연주되는 하프는 오르골의 원리로 마법을 걷어냈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거인 같은 경우 말단비대증, 일명 거인병으로 현실성을 부여했을 것 같다.
<푸른 수염>의 피가 지워지지 않는 열쇠는 당시의 무역 특산물 나무를 빌려와 판타지 요소를 지웠고, 남작의 푸른 수염 역시 염색이라는 근거로 마법적인 면모를 벗겨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남자>에서는 실제 설화를 바탕으로 한 데서 그치지 않고 역사적 인물 ‘도도 크나프하우젠’까지 등장시켜 그야말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런 변주가 다른 동화에서는 또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감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야기는 세 편의 단편뿐이다. <신데렐라>나 <인어공주> 등 동화는 무수히 많은데, 호푸만 박사와 한스 콤비의 후속작 없나?
하지만 《마술 피리》를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드는 구석도 있었다. 가령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모자인데, 하룻밤 사이에 자란 식물을 콩인지 다른 식물의 넝쿨인지 못 알아본 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 있겠다.
또 ‘푸른 수염의 밀실’도 하나 의아한 구석이 있다. 읽다 보면 내용상 드 레 백작 남편이 성을 샅샅이 뒤질 만한 동기가 나온다. 서재며 창고며 그런 곳을 살피는데, 왜 그 와중 지하실은 빼놓았는가 하는 점이 궁금하다. 일단 뭐 숨기거나 은닉하기 좋은 장소 중 하나 아닌가? 나라면 거기부터 훑었을 것 같은데.
물론 이런 맹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 싶다. 일단 이런 전재가 없다면 이야기 전개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잭의 엄마가 콩나무 덩굴이 수상하다고 의심했으면 아들이 그거 타고 올라가게 그냥 두었을 리 없다. 드 레 남작이 지하실에서 찾던 걸 발견했다면, 쥐디트가 기겁하며 성을 뛰쳐나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소의 헐거움이 느껴질지라도 찬호께이의 《마술 피리》는 읽는 재미가 좋았다. 16세기 말, 미신과 전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르네상스 문화와 지성이 빛을 발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를 반영하듯 탐정 역할의 호프만 박사는 이성적으로 단서를 찾아 동화적인 사건을 풀이한다. 작품 요소요소에 섬세하고 철저한 고증으로 중세시대 미신이 자아내는 어두운 분위기를 되살려낸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한스는 서기답게 사건들을 기록하는데, 그 와중 이야기를 재구성해 동화를 만드는 모양이다. 글 속에서 그런 뉘앙스가 풍겼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순서는 역순이다. 시점상 마지막 단편이 가장 처음에 배치되어야 하고, 그 뒤에 프랑스와 영국이 나와야 시간 흐름에 맞다. 하지만 스토리의 전개를 고려한 의도적인 연출인지, 아니면 단순히 마지막 이야기가 길어서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저 글을 집필한 순서대로 단편을 배치한 건지는 몰라도, 작가는 이야기를 거꾸로 배열해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마치 한스의 수기를 읽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 잒가가 이야기 속에 암시해놓은 또 다른 이야기를 유추하고 찾는 것도 이 책을 독서하는 데 흥미 요소가 됐다.
사진 설명: 독일 하멜른 현재의 배저강의 모습이다. 강과 전원의 풍경, 나무들이 흑백 풍경화처럼 보인다.
출처: 책 《마술 피리》 작가 해설 부분에서
“선량한 거인과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에서 한스가 남긴 대사인데, 나는 이 부분에서 오스카와일드의 어떤 이야기를 연상했다. 거기서도 거인이 나온다. 바로 <심술쟁이 거인>이라는 동화 비슷한 거다.
“벨, 벨 드 레입니다. 아름답다는 뜻이지요.”
‘푸른 수염의 밀실’ 끝에서 밝혀지는 쥐디트의 본명이다. 이 이름이 숨겨진 동화를 연상하는 데 확실한 쐐기를 박았다. <미녀와 야수>라고, 거기 여주인공 이름도 ‘벨’이라지, 아마.
“이모의 사주를 받은 어머니가 숲에 자기들을 버리려 한다는 걸 요하네스가 엿들었을 때, 저는 강가에서 조약돌을 주워놓으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숲으로 데려가면 길을 따라 돌을 떨어뜨리라고요. 그러면 나중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하멜른의 마술 피리 아동 유괴사건’ 말미에 나오는 풀이 대사인데, 이 문장만 봐도 작가가 숨겨놓은 동화가 뭔지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꿈, 내 어린 시절의 로망, 과자집이 나오는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을 말이다.
이렇게 소설 내용에서 또 다른 동화의 요소, 근거, 등장 플롯을 파헤치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했다. 엄청 깔끔한 원고 교정을 보면서 속칭 ‘왕건이’로 통하는 대박 오타 찾아냈을 때의 쾌감과 닮은 듯.
작품 《마술 피리》에 대한 총평을 적자면, 어딘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동화를 추리와 엮어 재구성한 부분에서 메리트가 있는 책이었다. 동화 애호가라면 일독을 권한다.
첫댓글 올해 좋은 글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도 멋진 글로 다시 만나 뵙기를 기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