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육의 그림 / 불교 31. 정선, ‘사직송’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즐거우면 네가 즐겁다
▲ 정선, ‘사직노송도’, 종이에 연한 색, 61.8×112.2cm,
고려대학교박물관.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픕니다.” 유마경
검지손가락 첫째 마디에 뾰두라지가 났다. 처음에는 모기에 물린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게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벌겋게 부풀어 오르더니 급기야는
손가락을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타자를 칠 수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뭔데 이렇게 아프지. 들여다보니 그다지 크지도 않았다. 완두콩만 했다.
겨우 완두콩만한 뾰두라지 때문에 이 큰 몸의 신경이 온통 그 아픔에 집중돼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긴 암세포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데
목숨을 빼앗지만 말이다. 새삼 손가락과 발가락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조선왕조 유구함 상징 ‘사직송’
뿌리 깊은 나무 강인함 그려내
최근 사직 흔들리는 사건 많아
나부터 사람의 도리 실천해야
정선(鄭敾:1676-1759)의 ‘사직노송도(社稷老松圖)’는
사직단(社稷壇)에 있는 소나무를 그린 작품이다.
왼쪽 상단에 단정한 필체로 ‘社稷松(사직송) 元伯(원백)’이라고 쓰고
‘謙齋(겸재)’라는 도장을 찍어놓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원백(元伯)은 정선의 자(字)이고, 겸재(謙齋)는 그의 호다. 그림은 매우 단순하다.
전체 화면에 소나무 한 그루를 그렸을 뿐 배경은 생략했다.
소나무는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우람한 위용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휘어지고 뒤틀어진 몸통으로 겨우겨우 바닥을 짚고 일어선 듯 노쇠하다.
그마저도 힘겨워 지지대에 의지해야 고개를 들 수 있는 늙은 소나무다.
12개 받침대의 부축을 받는 노송은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가지가 찢어지고
부러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보은 속리산 법주사 앞에 있던 정이품 소나무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무가 사직단에 있는 소나무란다. 한국에는 소나무가 참 많다.
소나무를 그린 그림도 많다. 김홍도, 이인문, 이인상, 이재관, 이명기 등이
모두 멋진 소나무 그림을 남겼다.
이들 작가들이 그린 소나무는 모두 한결같이 기품 있고 우람하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그런데 정선은 조선 소나무의 멋진 외모를 포기하고
굳이 오랜 연륜이 느껴지는 사직단 소나무의 사실성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그가 진경산수화가(眞景山水畵家)라서 그랬을까.
사직단은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오곡의 신인 직(稷)의
두 신위(神位)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토지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다.
국가와 민생이 안정되고 난 후에야 왕실이 있고 권력도 있는 법이다.
사직단은 국가체제가 확립된 삼국시대 때 설치된 후
나라나 조정(朝廷) 또는 왕조(王朝)를 상징하는 예배공간으로 중요시되었다.
정선이 소나무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뜻은 조선왕조의 유구함이었다.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결코 죽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의 강인함이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뜨거운 햇볕도 내리쬐고 심한 바람도 불고
때론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도 있다.
그 변화무쌍한 외압을 소나무는 온전히 맨 몸으로 견뎌야 한다.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가 싫다하여 버리고 떠날 수도 없다. 사직도 마찬가지다.
사직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나라가 싫다하여 이민을 가 버리면 끝이 날까.
그럼 나는 대한민국 사람과 무관한 사람이 되는 걸까.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이 싫다 하여 버리고 떠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버릴 수도 없고 버려서도 안 되는 것이 사직이다. 우리의 삶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시작할까. ‘사직노송도’의 소나무처럼 시작하면 된다.
‘사직노송도’의 소나무는 세 갈래로 뻗어 있다.
세 갈래 중 오른쪽 두 갈래는 살아있고 왼쪽 갈래는 이미 말라 죽었다.
과연 그럴까. 왼쪽으로 뻗은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러진 듯한 마디에서 새싹이 돋았다.
죽지 않았다. 겉은 상처 입었어도 속은 살아 있다.
그렇게 사직은, 우리의 삶은 이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를 생각하며
다시 소나무를 들여다보면 늙은 나무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다.
숙연해진다. 한 사람의 인생도, 한 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남의 인생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이치가 이와 같다.
정선이 그린 소나무는 반송(盤松)이다. 반송은 원산지가 한국으로
소나무과에 속한 상록교목이다. 키는 10m까지 자라는데
줄기 밑동에서 굵은 가지가10~30개 정도 갈라져 나와 만지송(萬枝松)이라고도 한다.
진경산수화가 정선이 사직단에 있는 소나무를 실제로 보고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규모는 다르지만 현재도 사직단은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 해 있다.
정선이 그린 ‘사직노송도’는 찾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
그 때문일까. 최근 들어 국가와 민생의 근본인 사직이 흔들리는 것을 수시로 보게 된다.
다시 사직단에 반송을 심으면 사직이 굳건해질까.
유마거사가 병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문수보살에게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하자,
문수보살은 여러 보살들과 비구들, 하늘의 신, 사람들과 함께
유마 거사가 사는 베살리성으로 들어갔다.
문수보살이 유마 거사에게 물었다.
“병환이 어떠십니까? 병이 조금 차도가 있습니까?”
유마 거사가 말했다.
“일체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픕니다. 만약 일체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에 들어가는 것이요, 생사가 있으므로 병이 있는 것이니,
만약 중생이 병을 여의면 보살의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비유하면 어떤 장자가 외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이 아프면 부모도 아프고,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의 병도 낫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 사랑하기를 아들같이 하므로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병이 낫습니다. ‘병이 왜 생겼냐?’고 제게 물었는데,
보살의 병은 대비심(大悲心) 때문입니다.”
최근 나라 안에서 가슴 아픈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세월호 사건이 대표적이다.
어떤 사람이 얘기했듯 우리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제대를 몇 달 앞두고 총기를 난사한 임병장 사건을 비롯해
상관의 폭행과 구타로 목숨을 잃은 윤일병 사건,
구타에 시달리다 전역당일 자살한 이상병 사건 등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발생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기막힌 사건들이었다. 이런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야 하는
내가 혐오스러울 정도다.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줄 알면서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히 그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조금만 돌려보면 사건의 책임이
꼭 그 가해자들에게만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선장의 모습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나 또한 그 사람처럼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행여 내가 다칠까봐 전전긍긍한 채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고
짓밟으며 앞으로 달려오지 않았던가.
내가 당한만큼 되갚아주겠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강하고 강한 사람에게 굽실거리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내가 한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애써 변명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 되면 나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아니, 오히려 더했을 거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좋지만
나는 꼭 살아야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나야말로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닌가.
세월호 선장이고 윤일병의 가해자가 아닌가.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자는 게 아니다.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변명하자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학생들과 윤일병이 아픈 손가락이라면
세월호선장과 이병장도 같은 손가락이다.
다만 그들은 조금 더 나아갔을 뿐이고 나는 덜 갔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섭다. 내 안에도 세월호 선장과 윤일병 가해자와 같은
악한 본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만 먼저 살고자하는 이기심과 탐욕과 어리석음이
그들과 똑같은 밀도로 농축되어 있다. 세월호사건과 군부대 구타사건은
특정인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아니 정확히 나의 책임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어떤 책임의식을 느끼고 살고 있는가.
어떤 행동으로 사죄를 하고 있는가. 여전히 말 뿐이지 않은가.
내 안에는 여러 가지 본성이 담겨 있다. 착한 본성 못지않게 악한 본성도 내재되어 있다.
비록 이 가슴 속에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 들어있다 해도
아직은 다겁생래 지은 업장 때문에 내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들어 새삼 옛 현인(賢人)들이
왜 그렇게 간절하게 마음 공부하기를 당부하셨는지 절절히 이해된다.
마음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으니 한 시도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예전에는 남의 언어로만 들리던
여리박빙(如履薄氷)이란 단어가 마치 머릿속에 조각해 넣은 듯 실감난다.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라는 뜻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단어다.
발밑을 잘 살피라는 뜻이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변해야 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공자(孔子)는 ‘시경’ 삼백편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라 했다. 우리가 지식을 쌓고 교양을 갖추는 것이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도리는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
정선의 ‘사직노송도’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우리 모두는 노송처럼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니 연결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것이 사직단의 의미가 희석된 시대에
다시 소나무를 심는 행위고 다른 사람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병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 몸에 붙어있는 서로 다른 열 개의 손가락이다.
아니 한 뿌리에서 자란 서로 다른 가지다.
2014년 8월 27일
출처 :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