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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살았던 압구정동을 떠나 패션 디자이너 이정우 씨가 새로 정착한 곳은, 그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맘에 들었다는 방배동 서래마을. 창의적 아이디어와 특유의 감각으로 재탄생한 이정우의 집은 인테리어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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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의 딸로 시작되었지만 독자적인 행보로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디자이너 이정우 씨. 그녀 자신이 패션 트렌드 세터 그 자체였기 때문에 패션과는 담쌓은 듯한 행색의 에디터도 평상시보다는 신경 쓴 차림으로,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는 이정우 씨의 집을 찾았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톡톡 튀는 빠르고 젊은 말투와 전혀 꾸미지 않았음에도 드러나는 그녀 특유의 생동감을 접하고 보니 그녀에 대한 기초 정보 하나가 떠올랐다. ‘1957년생’. 그 또래 사람들과의 커다란 간극을 참아내지 못하고, 미련퉁이처럼 결국 묻고야 말았다. 어쩜 그리 젊어 보이세요,라고. “그럼, 나이를 덕지덕지 붙이고 살까요?(웃음) 자세히 보면 저 주름 많아요. 저녁만 되면 얼굴이 처지는 것을 실감하고요. 사진은 진짜 거짓말 안 하는데, 2년 전에 찍은 사진만 해도 지금과 많이 달라요. 젊어 보인다고 생각하시는 건, 제가 젊은 게 아니라, 제 ‘스타일’이 젊어서 그런 걸 거예요.” 아닌 게 아니라, 몇 년째 고수 중인 긴 생머리에 뱅 스타일 헤어 그리고 자신만의 감각으로 믹스 매치하는 패션 스타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몸을 더 부려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적극적인 생활 스타일, 끊임없는 독서로 닦여진 정신세계까지. 인터뷰가 진행되면 될수록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젊어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3개월에 걸쳐 시간을 쪼개고 쪼개가며 꾸몄다는 그녀의 집은, 집주인만큼이나 젊고 활기찼다. 지어진 지 4년 된 빌라. 원래 노부부만 살았던 이 집은 막 지어진 것처럼 깨끗했지만 화이트 일색인 그 집에 그대로 들어간다는 것은, 디자이너인 그녀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제각각이 되어버린 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하게 담아보고자 오랫동안 정든 집을 떠나기로 한 원래의 의도와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입었을 때 몸에 착 달라붙는 옷처럼, 가족 구성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착 달라붙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약간의 손질은 필수였다. 이정우 씨가 제일 먼저 결정해야 했던 것은, ‘범위’에 관한 것. 새것과 마찬가지인 집을 어느 선까지 손댈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제가 화려해 보이니까 사람들은 보통 절 사치스럽고 낭비벽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물론, 아름다운 것을 입고 보며 자랄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물건이 가장 비싼 것인지 딱 보면 알아요. 만약 가장 비싼 것으로만 집을 꾸미라고 하면 누구보다 자신 있어요. 하지만, 실제 생활인으로서 저는 그렇게 못해요. 돈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제 양심이 허용치 않아요.”
대리석 바닥을 나무 바닥으로 교체하고 싶은 욕구를 살며시 짓누르고, 쓸모 없게 짜여진 뒷베란다 세탁실을 휴식 공간으로, 화이트 벽면을 개성껏 바꾸는 것만으로 ‘범위’를 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집을 꾸미는 단계에서 이정우 씨가 세웠던 원칙은 모두 3가지. 기호에 맞으면서도 싫증 안 나고 경제적일 것. 시즌마다 새로운 트렌드가 선보패션과는 달리 인테리어는 변화를 주기 쉽지 않은 분야라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한 그녀는 그래서 예산(Budget)은 낮추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5년 동안 사용한 B&B 소파는 커버링만 해서 계속 사용하기로 했고, 가구 구입과 짜맞춤을 위해 논현동 가구점을 비롯해 헌인릉, 성남가구단지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
“한번은 수입 원단집에서 커튼 견적을 내봤는데 견적만 2천만원이 나오더군요. 물론 아깝지 않게 그 돈을 지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먼지를 잘 흡수하는 커튼은, 수시로 빡빡 물빨래를 해서 햇빛에 쨍하니 말려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제 성격에, 드라이클리닝을 해줘야 하는 실크 커튼은 말이 안 되는 거죠. 또, 창에 ‘2천만원’을 걸어놓고 나면 변화를 주고 싶어도 아까워서 꾹 참고 오래오래 걸어둬야 하지 않겠어요?” 결국 이정우 씨는 동대문에서 직접 천을 떠서 저렴하게 커튼을 맞췄다. 패브릭엔 도가 튼 그녀의 안목이었으니 이 집과 잘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커튼들이 더욱 빛나는 것은, 그녀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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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맨틱 그리고 모던함의 믹스, 이정우의 침실 창에는 화이트 롤스크린을 달고, 안쪽에는 동대문에서 직접 끊은 하늘하늘한 패브릭으로 커튼을 만들어 달았다. 겨울이 오기 전, 이 커튼 대신 벨벳 커튼을 만들어 변화를 줄 예정이라고. 한쪽 벽면에는 거실 테이블 그리고 미니 홈바와 같은 컨셉트의 그린색 유리 테이블을 배치, 화려한 패턴이 가득한 방 분위기에 살짝 딴지를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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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극적 반전, 천장에 색을 칠해 포인트 주기 전혀 손을 대지 않았던 안방 욕실. 이사 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단다. 어떻게 포인트를 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천장을 붉은색으로 페인팅하는 것. 스스로도 무척 흡족해했던 아이디어라고. 샤워부스 안에 비즈를 매달아 로맨틱한하게 꾸민 것도 눈여겨볼 것.
3 소파 뒤편에 책장을 짜 넣은 거실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파와 책장 사이, 소파 뒤쪽으로는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등받이 없는 빨간 소파를 두었다. 서재를 따로 만들 수 없어 짜낸 아이디어로, 이정우 씨가 ‘장식장’이 아닌 ‘서가’라고 부르는 곳이기도 하다. 책장 앞 할로겐 램프의 각도도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볼 때 책에 조명이 딱 떨어지도록 맞춰놓았다! 그녀가 집에 있을 때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앞동에서 들여다보이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커튼을 쳐놓고 살 수만은 없어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바로 베란다에 덩굴 식물을 키워 ‘자연 커튼’을 조성하는 것. 베란다에 데크를 깔고 커다란 화분 예닐곱 개를 들여놓았는데, 늘상 초록을 볼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4 둘째아들 방 앞쪽에서 바라본 거실 거실벽을 사이에 두고 거실과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는 복도 양쪽으로 책장을 짜 넣어 서재를 만들었다. 무채색(책장과 거실 벽지)과 빨간색 소파의 색상 대비가 감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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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과 강렬한 원색, 앤티크풍 나무 가구와 유리 소재, 직선과 곡선을 절묘하게 매치한 그녀의 집을 보면서 ‘집은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촬영 당일 집주인인 그녀의 패션을 보면 더 확연해진다. 커다란 무늬가 있는 블랙 톱에 7부 청바지를 받쳐 입고 기자를 맞아주던 그녀는, 촬영을 하겠다고 하자 공단 소재의 옷을 걸치고 나왔다.
“제가 입는 옷들이 전부 비싼 것만은 아니에요. 물건을 살 때 기준은 보통 1백 달러 정도고, 10~20달러짜리 옷도 많지요. 옷을 잘 입고 싶다면, 딱 3가지만 유념하면 돼요. 많이 보려고 노력할 것, ‘난 저 옷이랑 안 어울려’라는 강박관념을 떨쳐낼 것, 과감하게 용기를 내 시도해볼 것.”
‘유행’을 타기만 하면 헤어스타일과 패션스타일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라도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이미 흔한 광경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를까를 고민하고, 이정우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을 하고 싶었던 그녀에게 이것은 언제나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중 하나다. 그것은 집도 마찬가지. 남들과 똑같은 집은 그녀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집을 꾸밀 때 인테리어 잡지를 그다지 참고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 색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 오히려 과일, 꽃, 요리 사진을 열심히 보았을 뿐이다.
“의상학과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항상 강조해요. 독창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패션 잡지, 패션 카탈로그는 웬만하면 보지 말라고. 디테일을 자꾸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카피’하게 되니 오히려 다른 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그곳에서 영감을 얻으라고요.” 붉은색 조각타일로 마감된 미니 홈바, 거실 한 켠의 서재, 덩굴나무로 가꾼 베란다에 가벼운 패브릭 매치까지. 이처럼 그녀의 집이 보기 드물게 참신한 데는 디자이너로서 대쪽같은 자존심을 지닌 이정우 씨의 개성이 반영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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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침실 옆 프라이빗 룸 꽃무늬 벽지와 노란색 나비장, 화려한 샹들리에, 하나 둘 모아온 향수를 하나 가득 진열해놓은 장식장까지 각각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지극히 화사한 침실 옆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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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현관에서 바라본 거실 온통 하얗기만 하던 벽면은, 개성 있는 회색 벽지로 깊이감이 느껴진다. 이정우 씨의 안목으로 선택되고 자리를 잡은 가구들 역시 그녀의 패션 공식인 믹스 매치를 따르고 있다. 예를 들면 나무 재질 소가구들은 유리로 마감된 테이블과 적절히 배치하고 무채색 공간엔 화려한 색상의 가구를 두는 것 등. 그 결과 집 안은 단조롭다거나 오버한다는 기분 없이 절묘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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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정우 씨가 상당한 살림꾼이며, 지적이며, 자신과 인생에 대해 객관적이고도 폭넓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지면에 다 풀어놓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 승승장구하며 살았을 것 같은, 패션 디자이너 이정우의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약간 언밸런스한 느낌. 디자이너가 아닌 인간 이정우가 궁금했다.
“열성엄마 덕에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죠. 고등학교(그녀는 경기여고 63회 졸업생이다)와 대학교(이대 약대)도 엄마가 선택했는데, 전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별 불만이 없었어요. 전공에 미련이 없었으니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죠.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그제야 ‘현실’이 보이더군요.”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고 6년간 바지런한 주부로 살면서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뒤늦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7년, 나이 서른에 어머니 이영희 씨의 일을 돕기 시작하고, 파리컬렉션을 준비하면서 타고난 자신의 재능과 진정 원하는 일을 만나게 되었던 그녀는, 훨훨 날고 싶어도 주변이 온통 ‘제약’투성이였음을 가슴 아프게 깨달았다고 한다. “어쩌겠어요. 원하는 것을 찾았는데, 처한 환경에서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늦은 출발인 만큼 패션계에서 누구보다 힘들었을 게 분명했던 디자이너(게다가 그녀는 오트 쿠튀르 감성의 디자이너 아니던가!)로서의 여정. 이정우의 이름으로 다섯 번의 파리컬렉션과 오트 쿠튀르 참가, 작년 뉴욕 소호에 부티크까지 오픈한 쉽지 않은 그 과정에서 자신을, 인생을 철저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 제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해요. 과잉보호로 자라면서 갖게된 약점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제 능력의 한계(제 옷은 대중의 감성과는 안 맞아요!)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요.” 다른 엄마들이 조기교육에 목숨 걸 때도, “네 인생은 네 거야”라고 아이들을 세뇌(?)시키며 운동만 다양하게 시킨 데는 자신의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이 바탕이 되었다. “스포츠맨십은 평생토록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고, 잘하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해주잖아요. 공부 잘하는 것은,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것처럼 ‘특기’일 뿐이라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공부를 잘하면 더 나은 기회를 얻는다는 것 정도만 설명한 적은 있지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를 자꾸 환기시켜주며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믿었던 이정우 씨. 파리와 서울을 오가느라 아이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늘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지만, 두 아들은 자신이 바라던 대로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한다(그녀는 팔불출이라고 불려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자립심 있고,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아는 사람으로 말이다. 한때 힙합 그룹 ‘X-large’ 멤버로, 케이블 TV VJ로 활동하기도 했던, 현재는 미시간대학에서 비즈니스를 공부 중인 큰아들 준호는 지금도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 중인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자신을 강하게 키워준 엄마가 고맙다고 한단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보통 2가지 부류로 나뉜다. 자신의 경험을 되새길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전자는 다음엔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지만, 후자는 알면서도 과거를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같은 세월과 같은 분량의 경험을 겪었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의 깊이는 비교할 수 없게 된다. 패션 디자이너 이정우.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만 평했지만, 약점을 보완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아갈 만한 파워를 지닌 사람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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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드와 그레이가 감각적으로 대비된 곳 기존 주방가구의 붉은 톤 문짝과 색감이 잘 어울려 선택된 회색 톤 벽지. 주방 벽면만으로 한정하려다가, 연결감을 주고 싶어 거실 벽면까지도 이 벽지로 도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붉은색 식탁의자는 포인트가 된다. 원래 세탁실이던 식당 옆 베란다 공간은 바닥을 돋우고 벽면에는 붉은 톤 조각타일을 붙인 뒤 직사각형 테이블을 놓아 미니 홈바로 활용 중이다. 식당 벽면에 천장 높이로 서 있는 그릇장은 붙박이장 업체에 의뢰해 짜 넣은 것. 문짝뿐 아니라 다른 한쪽 면까지도 유리로 마감한 것은 국내에선 처음 시도된 것인데 이 역시 이정우 씨 특유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밀고나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8 올리브 그린으로 페인팅한 둘째아들의 방 원하는 벽면 색상을 위하여 직접 페인트를 배합했을 정도로 섬세한 면이 있는 둘째아들의 방.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 중이다. 화이트 문짝을 떼낸 자리에 알루미늄 프레임 문짝을 맞춰 달고 벽면은 올리브 그린으로 매치해 지극히 모던한 기분이 드는 공간이다. 9 도서관 서가처럼 만들어진 드레스룸 두 아들에게는 “역시 엄마는 디자이너다워”라는 찬사를, 남편에게서는 “방 하나를 못 쓰게 만들었구먼”이란 탄식을 얻었던 드레스룸. 양쪽 벽면(이 중 한쪽 벽면은 이미 붙박이장이었음)에 붙박이장을 짜 넣고, 방 중앙에 양쪽으로 열 수 있는 붙박이장을 짜 넣은 것. 이때 중앙의 붙박이장은 옷이 아닌 소품을 넣을 수 있는 선반장으로 디자인해 폭이 깊지 않다. 원래 있던 붙박이장의 문짝도 다른 붙박이장과 같은 문짝으로 통일했음은 물론이다. 이 드레스룸의 탄생으로 그동안 박스 속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옷가지들이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되었단다. | | | |
첫댓글 사진이 부분부분 보이네요쇼파뒤에 책꽂이 인상적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