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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꽃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양산박
철마는 달리고 싶어 하듯 대간꾼들은 더 걷고 싶어 하는 백두대간이 마주한 벽 - 진부령
2019년 11월 9일 토요일 백두대간 46 회차 신선봉 마산봉
사니조은과 함께
백두대간 46 회차 : 진부령 – 마산봉 – 벙풍바위 – 천지봉 암봉 – 대간령(큰새이령) – 신선봉 – 화암재 - 화암사
산행거리 : 약 18 km 산행시간 : 약 10 시간
램블러 기록 :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780052
yskim :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85030/1781705
거리 22.5 km
소요 시간 11h 8m 31s
이동 시간 9h 16m 55s
휴식 시간 1h 51m 36s
평균 속도 2.4 km/h
최고점 1,225 m
총 획득고도 1,052 m
난이도 보통
백두대간 (白頭大幹) 46 – 신선봉 마산봉
진부령에 서서
양산박
벌써 끝난건가 백두대간길
마산봉 너머 진부령
이제 반틈 왔는가보다
향로봉 너머 금강산
산줄기 어렴풋이 보일 듯 말 듯
저곳엘 가야 하는데
백두대간 산줄기 반으로 접는다
진부령 고갯마루
아쉬운 마음도 반으로 접는다
옷차림 : 두꺼운 옷차람, 방한모, 장갑 준비했으나 산행을 진행하면서 등산셔츠만 남기고 다 벗음.
뒷풀이 : 용대리 식당에서 황태해장국
프로로그 : 홀로 한 산행
회사 직원 따님이 일요일에 결혼식을 한다 하여 부득이 하루 앞당겨 혼자서 산행을 하기로 했다. 마침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사니조은과 연락하여 오랜만에 산동무와 함께 금요일 밤에 만나 이동한다. 백두대간을 하다 보면 이처럼 일정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조사나 출장이 주된 이유가 되는데 나도 그 동안 몇 번 빠진 구간이 있어 한가한 시간이 되면 “땜빵”을 다녀올 예정이다.
금요일 저녁 10시 30분에 잠실역에서 사니조은을 만났다. 아직 미시령에서 북진을 할지 아니면 진부령에 차를 두고 남진을 할지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원통을 지나 설악휴게소에 들렀다. 간단한 물품을 사고 한갓진 곳에 차를 세우고 ‘차박(車泊-차에서 잠자는일을 사니조은은 그렇게 불렀다)’에 들어갔다. 일기예보에 서울이 영상 3도까지 내려갈거라는 등 마치 설악산에서 동장군이 기다리고 있다가 덮칠 것처럼 말하는지라 옷을 잔뜩 껴입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침낭까지 챙겨 왔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안대를 쓰고 지루한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잘 태세를 갖추었으나 낯선 곳에서 그리 쉽게 잠이 들리가 없다. 최대한 정신을 몽롱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버티다 보니 그나마 옆사람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잠꼬리를 잡았나보다. 옆자리에서 자던 사니조은도 나랑 비슷한 상황이었던지 라면을 끓이겠다고 문을 열고 나간다.
한계리 설악 휴게소에서 이른 아침으로 라면을 먹는다.
아직 새벽 4시 30분밖에 안되었다. 주유소 화장실을 들르고 하늘을 보니 겨울 별자리가 초롱초롱 빛난다. 산행하는데는 날씨가 중요하다. 버너에 불을 붙여 라면을 끓인다. 바람도 불지 않아 버너가 제법 화력을 발휘하여 금방 물이 끓는다. 보통때 같으면 아직 잠자리에서 혼수상태로 까무러쳐 있을 시간인데 이렇게 낯선 곳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먹는게 참 신기하다. 라면에 김치는 서양사람들이 즐겨 먹는 ‘햄앤치즈’처럼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다. 뜨거운 면발을 한 번 호 불고 입안으로 빨아들인 다음 혀로 한 바퀴 살짝 돌리고는 깊숙히 삼켜 뱃속으로 넣는다. 아삭한 총각김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입을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삽시간에 라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국물까지 마셔 아침을 마무리한다.
진부령을 들머리로 산행하기로 했다. 처음 시작하는 구간이 마을을 통과하는 것이라 어둠속에서 지나쳐도 괜챦을거라는 생각이다. 새벽 5시가 좀 넘은 시간인데도 차에 있는 온도계는 영하 1도를 가리킨다. 좀 더 있다가 날이 밝으면 출발하자고 했지만 딱히 앉아서 기다리기가 더 불편하다.
진부령 (陳富嶺 530)
아직 어둠에 싸인 진부령고개는 적막강산이다. 찬 바람이 휭하니 불어온다. 진부령 미술관에는 강원도가 배출한 우리나라 최고의 화가 이 중섭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른 새벽 거리는 썰렁하고 군부대를 지키는 위병소 불빛 아래 당직병들의 작은 움직임만이 어둠을 흔든다. 하늘에는 아직도 별들이 반짝인다. 진부령 백두대간 이름돌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아직 설악산권인가 ? 반달곰이 지리산이 있는 저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백두대간길이 흘리마을을 지난다.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멍청이 아니 멍멍이 너는 백두대간을 알기나 하니?
길을 건너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는다. 겨울철 별자리인 오리온 자리는 분명 남쪽에 자리잡고 있을 터인데 우리가 가는 방향은 오리온 자리를 뒤로 하고 오히려 북쪽을 향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아스팔트 포도를 따르던 길이 잠시 산길로 들어갔다가 다시 도로를 만나고 또 마을길을 지난다. 이렇게 여러 차례 마을길을 들락거리다가 광산초등학교 흘리 분교를 지나면서 비로소 풀밭길을 걷게 된다.
대간길은 광산초등학교 흘리 분교 뒤로 돌아야 하는데 나는 편안하게 아스팔트를 따라 걷는다.
알프스 리조트
7시 30분 눈앞에 거대한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다른 사람들이 쓴 산행기에서 눈에 익은 알프스 리조트 건물이다. 1976년 문을 연 후 2006년 4월 경영악화로 폐업했고 그 이후 2008년 ㈜알프스 세븐 리조트가 인수하여 재개장 영업을 하려 했으나 시공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무산되어 현재상태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도 건물이 낡아 흉물처럼 보인다.
폐허가 된 알프스 리조트 뜰에는 주목이 자라고 있다. 이제 리조트 건물도 운명을 달리해야겠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남측시설을 싹 들어내고 새로 건설하라" 최근 북한의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를 둘러보고 관계자들에게 지시한 내용이라고 한다. 1998년 처음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고 2003년에는 금강산 리조트가 완공되면서 육로관광이 진행되었다. 그러다 2008년 소위 ‘박왕자 씨 피살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책이 없으면 관광을 중단하기로 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냉각되었으며 이제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대부분의 시설이 20년 정도 오래된 것이며 10년 정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되었으니 건물의 상태가 어떠할 지 가히 짐작이 간다.
어쩌면 이 알프스 리조트 못지 않게 흉물스러운 모습일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의 금강산 리조트야 그렇다 우리의 법이 미치지 않는 북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는 엄연히 대한민국 땅인데 왜 이런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지 참 답답한 노릇이다. 리조트 뜰에는 동부산림청에서 심은 듯한 주목이 1미터 정도 자라나 있었다.
마산봉(1052)
백두대간 산길은 알프스 리조트 뒷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진부령에서 4 km 떨어져 있다. 멸종위기 1급인 산양과 2급인 삵 등 자연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대간령~미시령 구간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급격히 높아지는 산길이 잠시 숨을 고르다 다시 바위 비탈길로 이어지더니 마산봉 정상에 이른다. 바위로 이루어진 이 봉우리는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남진(南進)팀에게는 처음 만나는 봉우리이며 북진(北進)하는 사람들에게는 긴 산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봉우리로서 그 의미가 크다.
대간령~미시령 구간 출입금지 팻말을 왜 여기에 세워서 미리 겁을 주는건가요?
넓은 정상 마루 한 켠에 마산봉 1,052 미터라는 이름돌이 세워져 있고 그 곁에는 부서지다 남은 바위가 덩그라니 서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아침 9시 날은 밝을 대로 밝았지만 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탓에 새벽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까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던 향로봉이 또렷이 보이고 그 너머로 그리운 금강산 마루금이 생생하다.
뒤로 돌아 설악산 쪽을 바라보니 귀때기청봉을 비롯한 서북능선이 또렷하다. 짐작컨데 여기서 금강산과 설악산까지의 거리가 얼추 비슷할 것 같다. 그러나 금강산은 짐승들마저 멋대로 넘나들 수 없는 금단의 땅이요 설악산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니 정신적인 거리는 천지차이다.
흘리마을 뒷쪽으로 향로봉 마루금이 달리고 그 끝 너머로 아 ! 그리운 금강산 !
금강산을 조금 더 당겨본다. 작년 요맘때만 해도 곧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
남쪽으로는 설악산 서북능선 산줄기가 낯 익은 봉우리들을 보여준다. 귀때기청봉 그리고 남설악의 가리봉과 주걱봉이다.
요 앞에 있는 봉우리는 병풍바위 그 다음 산줄기는 황철봉 그 너머로 대청봉과 중청봉이다.
발 아래 흘리마을이 잠에서 깨어나고 그 뒤로 향로봉 산줄기다.
마산봉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속하는 남쪽 5개 봉우리(향로봉, 칠절봉, 동굴봉, 마산봉, 신선봉) 중 제2봉에 속한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마산봉이 금강산에 속해 있는 것이다. 서북능선 좌측으로 능선 끝에는 대청봉과 중청봉이 저항봉 너머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우리가 설악과 금강의 중간쯤에 서 있다는 느낌이 확연해진다.
병풍바위
발 아래 방금 지나온 흘리(屹里)마을을 감상하고 마산봉을 내려선다. “금강산이 일만이천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는 말이 다 과장된거 같아요” 마산봉을 내려오면서 사니조은님이 금강산 등줄기를 본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정말 왜 꼭 집어서 1만 2천봉이라고 했을까. 조선시대 민비가 무당의 말을 믿고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마다 비단 한 필, 쌀 한 섬씩 공양해야 했다는 얘기가 있는걸 보아 예부터 사람들은 금강산 봉우리가 만 이천 개라고 믿었던 것 같다. 일만이천 봉우리가 다 차면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울산바위가 그자리에 주저앉았다는 얘기도 있다. 어쨋거나 남북이 서로 화해하여 나도 금강산에 가 봉우리가 몇 개인지 살펴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마산봉에서 잠시 내려선 산길은 우거진 수풀 사이로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로 향한다. 중간에 ‘빗금치기’하는 우회길이 있지만 우리는 가파른 봉우리를 찾아 오른다. 오른쪽으로 조금 트인 곳에 얼굴을 삐쭉 내밀고 보니 온통 털진달래 밭이다. 그 너머로 이어진 바위 봉우리가 위용을 과시한다.
병풍바위 봉우리에 서니 다시 한 번 광활한 조망이 밀려온다. 남쪽으로는 앞으로 가야할 신선봉과 상봉을 지나 황철봉 너머로 설악산 화채봉이 뚜렷이 보이고 대청과 중청은 정수리 상투꼭지만 보인다. 서북능선으로는 귀대기청봉과 안산까지 분명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 가리봉과 주걱봉이 선명하다.
털진달래 나무 군락 위로 병풍바위가 우뚝 서 있다.
병풍바위에서 바라본 신선봉, 상봉 그리고 황철봉
황철봉 뒷쪽으로 대청봉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왼쪽으로 뾰족한 화채봉 오른쪽으로는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이다.
넘실대는 산줄기 사이에 멀리 용대리가 보인다.
이제 잎을 떨군 신갈나무는 회색빛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은 돌병풍이 펼쳐져 있다.
철모르는 철부지(不知) 털진달래 - 그냥 한 번 만용을 부려보는 거니? 아니면 정말 자신 있는거니?
발아래 병풍바위 건너에는 산줄기가 파도치듯 넘실거리고 그 끝에 용대리 풍력발전기들이 이정표처럼 서 있다. 이미 가을을 뒤로 한 나무들은 겨울맞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 회색빛 가지만 비단폭처럼 펼쳐보인다. 군데군데 소나무 잣나무 숲이 비단폭에 수 놓은 듯 살아서 움직인다. 지나온 길 저 편으로 흘리마을이 멀어져 있고 그 뒤로 커다란 산줄기 끝에 아직도 향로봉과 그 너머 금강산이 아련히 따라온다.
너무 여유를 부리는거 아녀? 얼렁 가야지 ~
병풍바위로 가려진 곳에 철없는 털진달래가 한 무리 피어 있다. 지금이 11월이니 이미 무서리도 내리고 밤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기온인데 저렇게 철없이 피어나면 어떡하려는지, 꽃이라서 보기에는 예쁘지만 한 편으론 걱정이다. 그래도 힘있을 때 즐기라고 한 마디 격려하고 진달래와 작별한다.
천지봉 (암봉)
내리막길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스틱을 짚고 조심해서 걷는데도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수 백 년은 자라났을 법한 고목이 우뚝 우뚝 서 있는 숲길을 걷는다. 새벽에 먹은 라면이 소화가 다 되었는지 뱃속에서 작은 허기가 느껴진다. 병풍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오름이 시작되기 전 평평한 곳에 나무 벤치가 놓여져 있다. 시간에 쫒기지 않는 산행은 이래서 참 좋다. 배낭에서 빵과 커피와 과일을 꺼내놓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씹어 삼킨다. 산을 좋아하는 사니조은님과 산행을 함께 한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작년 10월에 현오님과 함께 설악산 화채능선을 함께 오른 이후 설악산을 숱하게 같이 다녔다. 산행의 목적이 나와 비슷하고 발이 잘 맞아 좋다.
짧은 휴식 후에 작은 오름이 이어지고 우리는 다시 광활한 조망처에 섰다. 램블러 지도에는 천지봉 – 암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정상에 있는 잣나무에는 여러 산꾼들이 걸어둔 표지기가 나부낀다. 유명한 산꾼인 준.희님이 걸어둔 표지판에는 889.0 m 라고만 표시되어 있어 정말 천지봉이라는 봉우리 이름이 올바른건지 의문을 가져본다. 요즘은 산악회나 개인이 밑도 끝도 없이 산이름이라고 표시해 놓은 것이 많다 보니 작은 의심병이 생겼나보다.
천지봉 또는 암봉이라 부르는 산 봉우리다.
저 아래 대간령을 지나고 산줄기를 따라 신선봉 그 너머로 또 상봉을 넘어가야 한다.
설악에 오면 넋을 잃는다. 아니 여기는 설악이 아니고 금강산이여 ~
가을 문턱을 넘어 이제 겨울로 치닫는 계절이다. 산은 언제나 아름답다. 곧 눈이 저 산을 덮어주겠지.
천지봉에서 바라보는 신선봉은 거대하다는 느낌을 던져준다. 발 아래 대간령에서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조금 평지성 오르막을 지나면 왼쪽으로 작은 암봉 두 세 개 넘어 그 끝에 우뚝 솟은 것이 신선봉이겠다. 눈으로 신선봉 오르는 길을 따라 가본다.
대간령(샛령)
천지봉에서 대간령으로 내려가는 길이 너덜겅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얼기설기 켜켜이 쌓여 있으나 미끄럽지 않고 바위가 잘 고정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너덜겅길이 끝나고 가파른 내리막 흙길을 내려가니 대간령이다.
북쪽으로는 진부령 남쪽으로는 미시령이 있어 그 중간에 위치한 고개라는 의미로 큰새이령 또는 샛령이라 불렀다 한다. 동해쪽으로는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로 내려간다. 천지봉에서 보았던 도원저수지가 있는 마을이다. 그 반대 방향인 인제쪽으로는 마장터로 내려간다. 옛날 고성과 인제에서 넘어와 마장터에서 해산물과 농산물을 교환하는 장터가 있었다 한다. 이 고개는 경사가 심하지 않은데다 경사가 완만하여 중로(옛날에는 길을 마차가 다닐 수 있는 大로, 마차는 다닐 수 없으나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中로 그리고 사람만이 넘나들 수 있는 小로로 구분했다 함)로 이어졌는데 미시령과 진부령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였다 한다.
나와 기꺼이 동행해준 사니조은님. 산이 그렇게 좋아유?
대간령(大間嶺 큰새이령)에는 산신각과 주막이 있었다 한다. 1970년대 미시령과 진부령에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간성군수와 인제군수가 대간령에서 만나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고갯마루에는 작은 돌탑 두 개 서있고 그 주변에는 돌담이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곳에 주막이 있어 고개를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가곤 했다 한다. 고개에서 산객 한 명을 만났다. 인제에 산고 있다면서 박달나무 쉼터에서 마장터를 지나 올라왔다고 한다. 인상이 좋은 산님에게 부탁하여 사니조은과 함께 사진을 남겼다.
신선봉 (神仙峯 1,024 m)
대간령에서 미시령까지는 비법정탐방로이다. 비법정(非法定)이란 말은 참 애매한 용어다. 길은 길인데 법적으로 허가되지 않은 길이라는 뜻이다. 국립공원 관리인에게 적발되면 과태료를 내야한다. 어찌보면 설악산 구간에는 법적으로 허가된 구간보다 금지된 구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백두대간길만이라도 허가제든 신고제든 규제를 완화해주면 좋겠다. 어짜피 지나가야 하는데 법을 어긴다는 불편한 심기를 안고 이른 새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몰래 걷다 보면 준법정신은 무뎌지고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양심의 가책을 달래며 금줄을 넘는다. 한낮이 되면서 기온이 올라가자 한 꺼풀씩 옷을 벗다 보니 셔츠 한 장만 남았다. 겨울 모자를 쓴 이마에선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비탈길을 올라 이제 많이 올라왔겠지 하고 안도하는데 역시 우리나라 산은 정상석을 봐야 비로소 정상이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눈 앞이 트인 안부는 헬기장이고 그 앞에는 또 다시 태산이 버티고 있다. 뒤돌아 지나온 병풍바위와 천지봉 능선을 바라보며 헬기장 마른 풀을 자리삼아 잠시 노닥여본다. 오면서 휴게소에서 사 온 막걸리가 맛이 없다는 사니조은에게 콜라를 권하니 맛있다며 받아 마신다.
이렇게 편안하게 산행을 즐기지만 여기는 휴전선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전방지역이다. 곳곳에 방공진지가 많이 눈에 띈다.
산너머 산 고개 너머 또 고개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 산의 모습이다. 이제 안부에 올라 신선봉에 다가가 본다.
크지 않은 신갈나무 숲 나무 및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누가 언제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
이 산에는 팥배나무가 많다. 새들이 호강하겠다.
안부에 올라 좌틀하여 저 돌산 봉우리를 지나 신선봉에 올라야 한다.
키 큰 나무가 없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빨간 열매가 눈에 띈다. 이 산에는 유독 팥배나무가 많이 보인다. 콩알만한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 있어 꽃이 없는 계절에 단풍과 함께 산행을 즐겁게 해 준다. 굵은 열매를 하나 따서 입에 넣으니 신맛보다 단맛이 먼저 혀에 와 닿는다. 이제 눈이 내리고 땅에 주워먹을 것이 없어지면 새들에게는 귀한 먹거리가 되겠다.
오른쪽 키 작은 신갈나무 숲 나무 아래 잔풀과 나무덤불이 깔끔하게 깍여 있다. 불이 나서 탄 것인가 자세히 보았지만 불탄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분명히 낫으로 베어낸 자국이다. 누가 왜 이 넓은 면적을 손질했는지 모르겠다. 단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군사 혼련이지만 역시 내 상상력으로는 풀지 못할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산을 오르면서 길 가에 수 많은 방공호를 본다. 모두 산 아래쪽을 보고 있는데 배수시설 등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요즘 아무리 평화를 노래하고 교류를 얘기하지만 북한과 인접한 이 곳은 최전방이니 군인들의 수고가 요구되는 지역이다.
위로 오를수록 바닥에 깔린 돌들이 점점 커진다.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은 너덜겅이다. 신선봉까지 두 개의 큰 바위 봉우리를 지난다. 기이하고 절묘한 모습을 한 바위 꼭데기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서 산을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위에 앉아 맛난 간식을 먹으며 한껏 여유도 부려본다. 바위 아래에는 아직도 빨간 마가목 열매가 지천으로 달려있다. 사람의 손길이 덜 닿는 그래서 신선들이 여유있게 노닐 수 있는 그런 산 봉우리이다. 금강산 제1봉이다.
바위 모양도 각양각색 이건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곳곳에 마가목 열매가 아직도 많이 달려 있다.
너는 무너지고 있는 중이니? 태곳적 너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마치 쌓다 만 돌탑같다.
구름타고 가는 신선 기분 나나요?
난 이런 모양의 돌산을 보면서 옛날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본다. 금강산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면 설악산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뾰족한 암봉이 우뚝우뚝 서 있는 그런 모습이다. 설악산의 1275봉을 위시한 공룡능선의 옛모습은 어쩌면 대청봉처럼 생겼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건 것이 귀때기청봉처럼 큰 돌 조각으로 무너져 내리고 지금의 천불동계곡이나 공룡능선처럼 바위 뼈대만 남게 되었을 것이다. 신선봉은 귀때기청봉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그리고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풍화가 더 진행되면 공룡능선처럼 땅 속에 박혀 있는 뼈대가 남아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후손들을 만날 것이다.
오후 2시가 넘어 신선봉 정상에 도착했다. 커다란 돌이 켜켜이 쌓인 그 위에 큰 반석이 절묘하게 누워있다. 바위에 아크릴로 만든 판을 붙이고 그 위에 ‘신선봉 1204 m’라고 산 이름을 적어 놓았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인데다 주변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으니 사방 팔방으로 조망이 탁 트인다.
“난 이런 한적한 산에 올라 멋진 풍경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사니조은이 아름다움 풍경을 보며 감격에 겨워한다. “이런 곳에 오지 않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음악을 듣던가 영화를 보던가 아니면 뭐든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겠지요” 하고 말하고 나니 맞장구는 못칠 망정 초치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건 진리다. 누구나 똑같이 공평하게 주워진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누리면 그만이다. 그런 모든 것이 각자가 탁난 복이요 또한 짊어져야 할 몫이다.
이제 금강산은 구름이 가려버렸다.
이제 신선들이 노닐 시간이다. 상봉에 신선들이 UFO를 타고 내려앉을 모양이다.
신선봉에 올라 제일 궁금한 것은 북쪽인 금강산 방향이다. 이 신선봉부터 시작하여 마산봉을 넘어 진부령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칠절봉(1,172.2), 동굴봉(1,300)을 지나 남한 최북단 백두대간 봉우리인 향로봉(1,296.3)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은 마산봉과 병풍바위 능선까지만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향로봉 능선은 구름에 가려져 있다.
구름띠를 따라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고성군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발 아래 도원저수지만 빼꼼이 보인다.
뒤를 돌아 앞으로 진행할 상봉쪽을 바라본다. 동해에서 생겨난 구름이 큰 무리로 산을 타고 오르는데 상봉 정상을 다 덮어 버렸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는 예측할 수 없는가 보다. 이제부터는 신선들의 시간인가보다. 신성한 곳에 감히 되도 않는 인간들이 올라와 노닥거리는데 신선들 마음이 상했나보다.
상봉 (1,242.6)
안개가 온 산을 다 덮어버리기 전에 상봉에 오를 생각으로 서둘러 신선봉을 내려온다. 헬기장을 지나 바위 사이로 길이 희미하다. 그리고 돌길이 끝나고 흙길을 뛰다시피 걸어 화암재에 내려서는데 이미 안개는 코앞까지 다가와 온통 시야를 가려버린다.
화암재 고갯마루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이대로 상봉으로 오른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길을 걷게 될 것이다. 화암사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아직 남아있는 단풍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화암사로 내려가는 길 나무 위에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를 쪼며 긴 정적을 깨운다.
화암재 고개마루에서 잠시 갈등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안개 낀 상봉을 버리고 단풍 핀 샘치골 계곡으로 내려간다.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을 미완으로 남겨두고 화암사가 있는 샘치골로 하산을 결정한다. 계곡 중간부분까지는 급격한 내리막이 이어지고 쌓인 낙엽이 발길을 잡는다. 간간이 너덜겅도 나타나고 큰 나무 우거진 숲길을 지나 마침내 단풍나무 숲에 이른다. 진한 붉은색 단풍이 아직도 우리가 가을 한 가운데 있음을 일깨워준다.
화암사 절에 들르지 못하고 밑으로 내려오니 현판에 “금강산 화암사”라고 쓰인 일주문이 나타난다. 속초 택시를 부르려다 절에서 나오던 차를 보고 손을 흔드니 우리 앞에 서면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가까운 택시 정류장인 델피노 골프장까지 차를 태워준 보살님 덕분에 산행을 편안하게 마무리한다.
아름드리 신갈나무가 원시림을 이룬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밟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그리고 불타는 단풍 ! 올 해는 더 이상 단풍을 보지 못알 줄 알았었는데 아직도 이 계곡에는 가을이 조금 남아 있다.
금강산 화암사 - 내 언제 또 다시 찾아와 오늘 남겨놓은 대간길을 걸어가리라.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인사하리라.
델피노 골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미시령 터널을 지나 진부령까지는 금방이다. 터널 이용료(1,600 원)를 합쳐 25,000 원을 계산했다. 차를 타고 용대리 백담사 입구로 와 황태해장국으로 저녁을 먹고 오후 6시 30분쯤 출발하여 9시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차는 밀리지 않았고 운전하는데 졸음이 밀려와 칠정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이렇게 마지막 골인지점으로 치닫는 백두대간 종주 마산봉 구간을 무사히 마쳤다. 안개 때문에 화암재 ~ 미시령 구간은 남겨두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첫댓글 지인 경사가 있어 하루 먼저 다녀온 산행일기 올려봅니다.
22기진부령 축하드립니다 ^^
ㅎ수고하셨습니다 ~
박형, 벌써 졸업시즌이 다가옵니다. 2년전 계방산에서 백두대간 소개를 받고 대간산행을 결심했었는데 참 세월이 빠르기만 합니다. 여러모로 격려와 도움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한 박형이 전국 산야를 떨돌아다니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도 건강 유의하고 즐겁고 안전한 산행 하세요.
하루 먼저 가셨었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네. 꼭 가야할 행사라서 하루 앞서서 산에 다녀왔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백봉령에서 뵙겠습니다.
산행 전 라면 한 그릇으로 몸을 녹이고, 정신을 가다듬고 좋으네요.대간령 지나 그 바위는 대장님께서 큰바위라고 명명하셨다고 합니다.^^
설악산에 단풍이 지고 나니 산악회 차량들이 다 남쪽으로 가서 그런지 설악산 휴게소가 텅 비었더군요. 그 모퉁이에서 끓여먹는 새벽 라면 맛이 끝~~내 줬어요....ㅎ
큰바위라 함은 이걸 말하는 건가요?
어두운 새벽에 지나가서 자세히는 아니지만, 그것으로 보여집니다.
맞아요.. 그 바위가 확실히 커서 그런지 눈에 잘 띄더라구요. 이 바위가 버티고 있어줘서 천지봉이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과 산행을 하지 못해 섭섭했었는데 먼저 탐방을 하셨군요.남진을 하셨네요,
산행기 잘 봤습니다. 다음 구간에서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