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마우스
金 鶴
거실의 탁자 위에는 미키 마우스 한 쌍이 서 있다. 언제 보아도 그 차림, 그 표정이다. 미키 마우스에 눈을 주면 미국이 보인다. 미키 마우스에 시선이 닿으면 로스앤젤레스와 디즈니랜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테마 파크의 원조이자 미키 마우스로 유명한 디즈니랜드는 지금까지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너무도 잘 알려져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동화적인 꿈의 세계,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는 요정의 놀이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디즈니랜드다. 디즈니랜드는 미국의 부(富)와 20세기 과학문명의 첨단기술이 어우러져 인간 내면의 꿈과 환상의 세계를 현실로 바꾸어 놓은 곳이다.
미키 마우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다 머뭇거리는 듯한 인상이다. 이 미키 마우스가 우리 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1980년대 후반, 2주일의 여정으로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돌아다니다 마침 디즈니랜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기념품가게에서 1달러를 주고 산 것이 바로 이 미키 마우스 한 쌍이다. 키는 내 엄지손가락 크기보다 조금 작고, 몸무게는 탁구공보다 약간 무겁다. 수컷은 빨간색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모습이고, 암컷은 빨간색 스커트 차림에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마주 잡은 단아한 모습이다. 둘 다 노란색 신발을 신고 있다. 암컷은 머리에 노란색 리본을 매달았다. 언제 보아도 귀엽고 앙증맞은 자태다. 이 미키 마우스를 보노라면 미국이 생각나고, 미국 여행길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온갖 기억들이 추억의 창문을 열고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3박 4일을 구경해야 한다는 디즈니랜드를 한나절에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본 그 기억도 되살아난다.
미키 마우스는 쥐를 사람처럼 의인화한 형상이다. 그러나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생쥐처럼 찍찍거리며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다. 그래도 미키 마우스와 나는 침묵 속에서 무언의 교감을 나눈다. 올해는 병자년, 쥐의 해다. 올해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사내아이나 계집아이 모두 쥐띠를 갖게 된다. 쥐는 음식을 훔쳐먹거나 사람에게 병균을 옮기는 등 나쁜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지만 쥐라고 단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쥐에게서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있다. 쥐의 부지런함, 쥐의 저축성, 쥐의 왕성한 번식력 따위는 쥐의 장점으로 삼음직하다. 어디 그뿐인가, 쥐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앞날을 예시하는 영물이 바로 쥐다.
우리 조상들은 쥐가 농사의 풍흉(豊凶)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감하는 능력을 지닌 동물로 여겨 왔다. 쥐가 배에서 내리면 파선을 예고하는 것으로 믿었다. 어부들은 쥐를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높이 받들 정도였으니까. 다른 나라의 경우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다산(多産)과 간신의 상징으로 생각했고, 중국에서는 겁쟁이나 수탈자로 여겼다. 또 기독교에서는 쥐를 탐욕자나 악마로 매도하고, 유태교에서는 위선자로 폄하했지만, 힌두교에서는 사려 깊은 동물, 앞날을 예견하는 동물로 숭상하기도 한다.
독 안에 든 쥐,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쥐 본 고양이, 고양이 죽은 데 쥐 눈물만큼, 쥐꼬리만하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쥐뿔도 모른다. 물에 빠진 생쥐 같다. 쥐도 새도 모른다. 쥐띠는 밤에 나면 잘 산다 등 쥐와 관련된 속담은 많기도 하다. 이것을 보더라도 인간과 쥐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서는 쥐를 잊고 산다. 미키 마우스가 아니었더라면 쥐라는 동물이 우리 주변에 있는지조차 잊을 뻔했다. 단독주택에서 살 때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하수구를 드나드는 쥐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다. 또 화단을 배회하기도 하고, 화단에 땅굴을 파는 녀석들도 있었다. 낡은 한옥에서 살던 시절, 어느 방이건 천장은 쥐들의 놀이터요, 운동장이었다. 체육대회에 참가할 쥐들이 밤마다 합숙훈련을 하는지 달리기, 높이뛰기에 여념이 없었다. 즐거워 뛰노는 쥐들 극성에 얼마나 밤잠을 설쳐야 했던가.
미키 마우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쥐가 생각난다. 쥐를 떠올리면 절로 이규보의 '주서문(呪鼠文)' 한 구절이 연상된다.
"육축(六畜)에 있어서도 각각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은 사람을 태우는 일을 맡고, 소는 짐을 싣거나 밭을 가는 일을 맡으며, 닭은 새벽을 맡아 한 가정에 이바지한다. 그러나 너 쥐에게 물어 보자. 과연 무슨 책임을 맡고 있느냐? 그리고 누가 너를 육축의 하나로 생각하느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주방에 들어가 도둑질이나 하는 것은 너도 잘 알 것이다. 무릇 도둑이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인데, 너는 내 집안에 살면서 도리어 주인을 해치려 드는 것은 무슨 뜻이며,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놓고 멋대로 쏘다니면서 밤새도록 잠을 못 자게 구는가? 대낮에도 부엌에서 방으로, 외당에서 내당으로 돌아다니며 부처님께 바치고 신을 섬길 음식을 네놈들이 먼저 맛보고 있는 것은 웬일이냐?"
올해는 쥐의 해, 이 쥐의 해는 앞으로 12년 후에나 또 돌아온다. 그러나 쥐의 해인 올해에는 '쥐잡기의 날' 행사쯤 그만두면 어떨까 싶다. 쥐의 해인 올해는 '주서문'만 읆조릴 일이 아니려니 싶다. 쥐가 아니면 이솝우화의 '시골 쥐와 도시 쥐'라는 교훈을 어떻게 얻을 수가 있으며, 흰쥐가 아니면 인간의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의학 실험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호돌이가 '88서울 올림픽을 상징하고 무돌이가 '97 무주 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를 상징하듯 미키 마우스는 미국을 대변한다. 미키 마우스는 영원히 미국의 마스코트로 남을 것이다.
쥐의 해에 마주보는 미키 마우스는 더욱 더 친근감을 갖게 한다. 미키 마우스는 소중한 나의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