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그린 데탕트(green détente) 정책의 의미와 한계
이로운넷, 정범진 편집위원,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이사장, 2023.03.05.
1.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은 취임 6개월이 경과된 2022년 11월에 발행된 통일부의 35쪽 분량의 정책자료집 비핵 평화 번영의 한반도: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급작스럽게 당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당선에까지 이르게 된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고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대외관과 이북에 대한 시각은 폭과 깊이에서 이전 대통령 후보나 당선된 대통령들의 정책보다는 무게감이 덜 한 것도 분명하다.
후보 시절의 공약이나 발언, 취임 이후 연이은 연설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초기에는 불분명해보였던 정책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형식과 내용을 갖춰가고 있다. 기조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을 계승하고, 전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 또는 폐기하고 있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취임 직후 대북 정책은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전 정부 정책과의 연속성을 강조했던 적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보여진 것은 없다. 드러난 것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전임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고 할까요?
어찌되었든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은 ① 튼튼한 안보, ② 「담대한 구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실효적 해결, ③ 원칙 있고 실용적인 남북관계 추구, ④ 자유민주적 평화통일 기반 준비 등을 통해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② 「담대한 구상」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고 있는지, ④ 자유민주적 평화통일 기반 준비에서 언급한 통일의 상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다.
일단 「담대한 구상」은 이북이 핵문제 해결을 위해 전향적으로 나온다는 전제 하에 협력할 수 있는 초기 조건의 완화, 규모와 영역 면에서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이북에 제안했던 내용보다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의 지원과 협력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이나, 이북의 수용 여부와 함께 아직은 수사적 차원 이상의 내용을 담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④ 자유민주적 평화 통일 기반 준비’는 이북의 반발은 물론 다분히 논쟁적이며 상당한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 등장과 함께 ‘자유 민주주의’ 가치 수호, 이를 위한 가치동맹 구축, 국제적 연대 등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고 있다.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 행한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는 단골로 등장한다.
이는 이북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의 미래 통일상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한정하면서 이북에 대한 흡수 통일 의지를 보다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당연히 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이북의 불신과 반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이전에 대북 화해 정책을 펼쳤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역시 미래의 통일상은 이북 중심의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한국 중심의 시장경제, 자본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이었지만, 윤석열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흡수통일 의지를 표명했던 적은 없다.
이는 국내적으로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을 갈라치는 전략의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임 초부터 국정 지지도가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남북의 체제 대결 구도를 동원해 이북을 퇴행적 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북과의 화해 협력을 추구하는 세력을 고립시켜 비우호적 여론을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로 읽혀진다.
2. 윤석열 정부의 그린 데탕트(green détente)
우선 그린 데탕트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어의 green은 녹색 즉 환경이나 생태를 의미하고, détente는 원래 프랑스어로 ‘긴장 완화’를 말한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동서 간의 긴장이 완화되어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태나 또는, 그것을 지향하는 정책을 의미한다고 옥스퍼드 사전에 정리되어 있다. 남북 간의 긴장과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없는 상태에서, 전 지구적 문제인 생태나 환경 협력을 남북이 진행해 정치군사적인 긴장 완화로까지 나아가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린 데탕트 정책은 윤석열 정부가 처음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고 이전 정부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추진되었던 정책이다.
현시기 남북 간에 처음부터 정치군사적인 문제를 의제에 올리면 비핵화라는 문제에 걸려서 진전이 어려운만큼 거부감이나 해법 찾기가 보다 수월(?)한 환경이나 생태적 현안들을 협력 의제로 올려서 긴장 완화와 협력 국면으로 나아가보자는 기능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충분히 모색해볼 수 있는 사업이고 나름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식량난에 고통받는 이북의 농업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에서부터 관련 인프라 조성, 접경지역에서의 생태 조사 및 연구 활동, 산림자원 조성 및 솔잎혹파리 방제 등의 방역 활동, 강과 하천에 대한 남북의 공동 이용과 관리, DMZ 평화시‧평화생태공원 조성 등 실로 다양한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이전 정부의 기존 협력 방안들이 경제 성장이나 환경 생태 등에만 집중된 측면이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데탕트는 이북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 등 인도적 지원까지 염두에 둔 확장된 정책이라는 평가(나용우, 2022년 6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회의 발제문)도 있지만 썩 동의하기는 어렵다.
3. 윤석열 정부 그린 데탕트 정책의 과제
윤석열 정부의 그린 데탕트 정책은 아직 미완성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린 데탕트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물론 이것이 정책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국정과제에 언급된 내용, 그리고 대통령의 국내외 연설, 통일부의 정책자료집과 대통령 보고 등을 통해 전문가들이 그린 데탕트로 개념화하고 이의 내용을 제안하면서 채워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그 구체적 내용과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여러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구체적 제안과 내용이 없으니 평가할만한 것도 아직 없다. 어쩌면 현재 고조되고 있는 긴장 국면을 핑계 삼아 제안 없이 남은 임기를 채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현시기 긴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보다 구체적인 제안이 진정성에 근거하여 제시되고 남북이 이의 수행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일이 연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가만히 있는 것은 최악의 대처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남이 하면 북이 대응하고, 북의 대응은 남의 후속 대응으로 이어지며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지극히 우발적인 사건이 작은 충돌로 이어지고, 작은 충돌은 언제라도 국지전이나 전면적인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말 남북은 서로의 행위를 문제 삼아 상대방의 공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있었다. 3월부터 예정된 한국과 미국의 군사훈련도 그 규모와 횟수, 질적인 측면에서 과거를 이미 능가하고 있다.
당연히 남과 북은 공히 서로를 자극하는 긴장 고조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국제 질서에서 누가 누구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금방 끝날 것으로 보였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남북의 체제 대결은 이미 끝났다고 선언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상대방만 자극하고, 제안의 진정성만 훼손될 뿐이다.
주먹을 쥐고 상대방과 악수를 할 수는 없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 의사를 거두고, 협력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DMZ와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될 윤석열 정부의 그린 데탕트 제안이 의미 있는 사업이 되려면, 이북의 비핵화를 입구에 놓아서는 안 된다. 비핵화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전제가 아니라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흡수 통일 전략도 거두어야 한다. 통일의 상은 우리가 아닌 미래 세대가 결정하는 것이다. 기후 붕괴 시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남북의 협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린 데탕트가 그 몫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보수나 진보를 불문하고 역대 정부들이 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내놓았고,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안들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그린 데탕트, 남북의 생태협력을 통한 긴장 완화 방안은 그 마중물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린 데탕트가 실제로 진행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전문가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 당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조치를 기대해본다.
출처 이로운넷(https://www.eroun.net)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