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뒷 트렁크 부위와 조수석쪽 휀다 부분의 도색만
명도,채도,반사각,실색상 등 도색에 관련된 모든 것이 틀리게 보이는
내 차의 상태에 할 말을 잃은 뒤로는 말이다. 색깔은 그렇다 치고
심한 잡음은 찾아볼 수 없던 차에서 삐그덕거리는 청각적인 고통까지
주행중에 선물받아야 하니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지경이다.
그래서, 국제유가도 배럴당 40달러선에서 와리가리하는(?) 마당에
다소는 부담스러운 지금의 애마를 처분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유가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조금 낮은 배기량의 승용차를 다시 구입하든지
규제가 풀려서 경유 승용차가 출시되면 그때 다시 오너 드라이버가
되기로 결정을 하고선 사실상 마지막 여행을 갔다 온 셈이다.
땡전 한 푼 없이 떠나는 무전여행도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지만
한창 여름인 7월의 초하루처럼 흙먼지 날리는 길에 야릇한 보슬비가
떨구어지는 묘한 날씨 속에 혼자 떠나는 근거리 드라이브도
그에 못지 않은 상당한 운치가 있다.
집을 출발해 오이도역을 거쳐 인천 소래포구와 부천으로 갈 수 있는
국도쪽으로 나가서 먼저 주유소에 들렀다. 고장난 유류계 덕택에
미리 가솔린을 탱크에 가득 채우고 가뿐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면서
계기판의 트립 미터를 0 으로 돌려놓았다.
과연 오늘은 얼마나 장거리를 운행할 것인가? ...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흥시 신천동과 포동을 지나 부천 소사구로
들어설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36분. 좁은 편도 1차선 도로를 달려
어느새 서울과 맞닿은 부천과 서울의 시계 부근의 오정구 원종동에
다다랐을 때는 어느새 집에서 출발한 지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원종동에서 조금 더 서울쪽으로 직진해 김포공항 옆길로 들어섰다.
대한항공의 화물청사와 아시아나 항공의 캐터링센터가
눈에 들어오고, 어느새 공항과 시내로 향하는 갈림길인 삼거리. ..
좌회전을 받아 김포공항 청사내로 진입했다가 다시 우측으로 빠져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유일한 동행자, 누비라를 올려놓았다.
인천공항 개항 이후로 한 번도 구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얼마나 웅장한 경관이 펼쳐질 지 내심 기대를 하며 120-140킬로미터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편도 4차선의 넓은 직선형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몇년 묵은 체중이 다 내려가는 듯 했다.
약 35킬로미터를 달려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가는 길목.
신공항 하이웨이 톨게이트 표지가 보이고, 요금이 징수된다.
소형차의 통행료는 6,100원. 상당히 비싸다. 거리에 비해, ...
톨게이트를 통과해 5분쯤 달렸을까. ?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후미에 프린팅된
점보기가 인천공항의 활주로 중 어느 한 곳으로 착륙하는 장관이
눈에 들어온다. 비행기는 직접 타는 것도 좋지만 이착륙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이 더 장관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진다. 국내선에서 볼 수 있는 보잉727, 737
이나 MD-82, F119 같은 100명이 약간 넘는 정원의 중소형 항공기가
아니라 300-500명이 탑승하는 점보제트기가 바로 눈앞 지척에서
웅장한 자태를 한껏 뽐내며 착륙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10여분을 더 주행한 후에야 겨우 인천국제공항 경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트로피칼류의 열대과일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함께
현대적인 감각의 웅장한 공항 건물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간은 흐린 듯한 날씨도 분위기 형성에 일조했을 것이다.
도착과 출발, 단기주차와 장기주차로 나뉘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경내 도로망의 이정표를 따라 단기주차장으로
향한 나는 다시금 첨단 시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주차장별로 입구
의 센서를 이용하는지 아니면 자동차가 출입할 때 하중을 체크하여
압력계로 제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는 많이 봐가지고 ㅡㅡ;)
주차가능대수가 디지털 방식의 실시간 계수기에 의해 제공되고
있었다.
잠시 차를 주차시켜 놓고 공항내 출발 청사로 들어갔다.
깔끔한 건물 외부와 더불어서 청사 내부도 상당히 정갈하고 잘
정돈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외환은행 현금자동지급기에서 약간의
현금을 뽑아들고 잠시 공항내부 구경을 했다. 언제든 이곳에 다시
와 그때는 꼭 비행기를 타고 이역만리 타향으로 나가는 꿈을 꾸며
아쉽지만 마음에 썩 들었던 건물을 뒤로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강화도로 가자!
서울에서는 올림픽대로를 타고 오다 바로 453번 지방도를 타면
빨리 갈 수 있는 강화도였지만 일부러 인천 시내를 통과하는 길을
택해 가보기로 했다.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서울쪽으로 가지 않고
영종대교의 다리 상판 아래에 붙어 있는 또 하나의 하부도로를 거쳐
북인천 인터체인지로 접어들었다.
(영종대교는 다리 상판위로 왕복 8차선의 고속도로가 만들어졌고,
다리 상판의 아래쪽에 또 다시 조그마한 다리를 만들어 왕복 4차선의
고속도로가 형성되어 있다.)
그렇게 바다 위로 가로놓여진 영종대교를 건너자니
지난 98년 월미-영종간 도선요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신공항 건설자재를
싣고 다니던 화물선이 오가는 율도에서 내 첫 애마 파란색 마티즈를 화물선에 몰래 싣고
영종도로 건너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정말 새파랗게 어렸고, 혈기왕성한 젊음으로 모든 걸
해결하던 그런 나이, 스무살이었는데. ... ...
영종대교 개통 이전의 영종도는 그야말로 외딴 섬이었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으면 인천 월미도로 나오는 도선이 끊어져
놀러갔던 커플들도 꼼짝없이 발이 묶여버린다는 전설(?)의 섬 영종도.
이제는 영종대교와 영종도 신공항의 개항으로 인해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옛 이야기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이렇게 역동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또 다시 경부고속철도가 하나의 역동적인 그 흐름을 이어가게
될테지.
이런 영종도는, 고즈넉한 일몰의 장관 속에
아련한 추억을 잔뜩 머금고 있는, 나의 과거로 가는 또 하나의
출입구이기도 하다.
인천은 부산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접안도시이다.
부산이 거대한 현대적인 첨단 물류항구의 그것을 자랑한다면,
인천은 서해 바다의 얕은 수심과는 대조적으로 뱃사람들의
깊은 애환에서 베어나오는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지중해에 있는 리스본항이나 보르도항의 정취가 인천의 그것과
유사한 것 같다.
수출입 화물을 실은 대형 컨테이너 트레일러들이 오가는 넓은
시내도로를 거쳐 강화도로 건너가기 위한 길목, 강화대교까지
가는 동안은 황홀한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졌다.
중간 중간 늠름한 모습의 해병대 헌병들이 불심검문을 하고 있었고
일어난지는 꽤 됐지만 북한과의 서해 교전으로 인해 삼엄해진 경비와
군기가 그대로 베어나는 모습들이었다.
강화도에 들어서서는 바로 우측으로 빠져 화도돈대와 광성보를
통과하는 해안순환도로로 접어들었다. 이때가 벌써 저녁 8시라
그런지 빠져나오는 반대편 차선은 차들이 밀리고 있었지만 나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30분 정도를 주행하자 광성보 견적지 입구 3거리가 나타났고
우회전을 하자 큼지막한 현수막에 "장어구이 정식" 이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마침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나 얼른
차를 돌려 광성보 입구의 장어구이집으로 들어서게 됐다.
일인분에 만오천원이나 하는 장어구이 정식을 시키자
가마솥을 닮은 용기에 나무 뚜껑까지 얹은 영양돌솥밥과 갖가지
반찬들이 장어구이와 함께 쏟아져 나온다. 그야말로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혼자 식사하는 것은 처량함을 두 배로 증폭시키는
촉매가 된다. 특히나, 이날처럼 어디론가 집에서 멀리 떠나왔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는 환경에서는 말이다.
( 그래서 총각 처녀들은 혼자 장거리 여행을 자주 가면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는 믿지 못할 속설이 있다. 그래도 나는 늦게 결혼할 것 같
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왠일인지 ? )
어쨌거나 인두껍 상판대기에 철판을 깔고 커플 혹은 가족끼리
나들이나온 쌍쌍의 인파가 던지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걱대며
참 맛있게도 장어구이 정식을 즐겼던 것 같다.
가격에 비해서는 양이 그다지 많지 않아 조금 불만스러웠지만 말이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나온 시각은 어느새 밤 9시 30분.
강화도까지 와서 혼자 밥을 먹은 관계로 아마도 근처 테이블에 있던
커플들에게는 두고두고 가십거리가 되어서 씹힐 것이란 생각에,
주차해뒀던 차를 빼면서 절로 웃음이 났다.
해안순환도로를 마저 돌까 하다가 차를 돌려 강화도 산골 구석에
있는 마을 구경을 하기 위해 들어서자 정말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던
귀뚜라미 소리와 뻐꾸기 소리(아니 여기도 뻐꾸기 날리는 놈이? ㅡㅡ;)
가 나를 반겨주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척박한 시골이 아니고서야 절대 누릴 수 없는 자연의 선물과 은혜를
한몸에 받은 셈이다.
잠시 차를 세우고 밤하늘에 별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약간은 습한
땅을 밟고 내려서 보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흐린 날씨로 인해
잔뜩 찌푸린 하늘과 먹구름만이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내가 세운 철칙대로 절대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이번에는 서울쪽으로 접어들기로
작심하고선 올림픽 대로를 타기 위해 453번 지방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인천광역시에 편입된 강화도를 빠져나와 99년에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 무던히도 욕먹어가며 코스 연습을 했던 자동차운전학원이
있는 김포를 지나치게 된다.
김포는 멀면서도 가까운, 또 한편으론 가까운것 같으면서도 먼
신비한 땅이다. 왼쪽으로는 바닷물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또 한강물이
서해 바다로 흘러드는 강 아닌 바다, 바다 아닌 강이 흐르고 그 주변
땅은 모두 철책으로 둘러싸여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일산신도시에서 파주 통일동산을 거쳐 해마다 명절이면 실향민과
관련된 뉴스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문산의 판문점이나 임진각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야릇한 곳이다.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는
않지만 나는 이런 민족 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상당히 좋아한다.
김포에서 서울로 진입하자 바로 김포공항쪽으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턴 거의 지리멸렬한 주행이 계속되었는데
빗줄기가 시원하게 흩부리는 가운데 즐거운 SBS 라디오를 들으며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시계는 너 혼자 잘 놀다 왔냐는 듯 무던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유람은 즐겁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따라 외가집이 있었던 영덕의 풍광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은 왜일까? ...
비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곳에 가기 위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음에 안타까워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야트막한 강둑에 지어진 일제시대 단층 벽돌 슬라브조의
건축물에 뒷문으로 나가면 포항, 경주의 형산강과 맞물려
동해 바다로 들러들어가는 지방하천인 오십천이 흐르던
그 옛날 외가집에서의 추억이 마치 영화가 끝난 후 조용한
음악과 함께 올라가는 출연진과 스텝들에 대한 자막처럼
아스라히 내 마음속의 부유물로 가라앉는 새벽이다.
인천 일대 기행후기 끝.
Laysys
P.S :
금주 기행의 주행거리는 285킬로미터.
나의 3대 애마가 좋은 주인 만나서 오래오래 더 달릴 수 있게
빌어주세요들. ; 다음주 수요일에 새 주인을 찾아간답니다. ;
첫댓글 여행.... 그러고보니, 올해들어선...아무데도 안 간것 같어.. 속상하고 우울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싶었던 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여름에 정동진을 다녀온 후론.아무데도. 못간듯..날씨..좀 풀리면.. 나도..어디든지..가야지.. 누가 추천좀.. 해줘.. ㅋ
박혜진이라는 사람이 누군데-_-? ...부천 오정동에서 조금만 더 오면 우리집이었네. 나도 좀 데려가지-_- 나도 여행 한번도 못갔다. 그러지말고, 우리 다같이 가자니까-_- 휴... ㅠ_ㅠ
아, 친구들하고 하는 카페랑 여기 두군데에 올리다보니 내용상 좀 이해가 안갈만한 부분이 있었군. 사실 드라이브하면서 친구들 집을 기점으로 해서 돌았는데, "부천에는 누구구구가 살고 있다"는 빼놓고 김포공항은 깜빡했나보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