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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
페이스북 같은 SNS 이용자들 상당수가 타인이 올리는 자랑 섞인 일상들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가, 페이스북 속 글들은 우리에게 한마디로 일상의 '예고편'과 같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용자들이 올리는 그런 자랑스러운 순간들은 살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장면들인데, 그 글을 올린 당사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순간들보다 별일 없는 순간들이 훨씬 많이 일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그런 글들 역시 별일 없이 빈둥거리는 와중에 읽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순간들만 골라 모아놓은 예고편은 거의 모든 장면이 재미있지만, 본편에는 재미없는 장면들이 수두룩하듯이 말이다. 이렇듯 SNS나 미디어 등 세상으로 연결되는 많은 매체들은 타인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모아 우리에게 보여주기 마련이고, 극적이지 않을 때가 훨씬 많은 우리들은 그런 매체들을 접하며 삶의 지지부진함을 실감하기 마련이다.
그런 삶의 '별것없음'을 찬미하는 영화가 나타났다. 그것도 사람이 나이 드는 속도를 곁에서 실시간으로 따라감으로써, 삶을 편의로 왜곡하거나 변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할리우드 감독들 중 유독 '시간'에 많은 흥미를 보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영화 <보이후드>를 통해 제목 그대로 '소년기'에 해당하는 6세~18세의 시기를 한 편의 영화에 담는 시도를 한다. 한 영화에서 수백년의 세월도 오가는데 고작 12년이 대수냐고 할 수 있겠으나, 이 영화에는 가정된 시간이 아닌 실제로 흘러간 시간이 존재한다. '12년이 흐른다고 치자'고 하지 않고 실제로 흘러가는 12년 세월을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할 때 어렸거나 덜 나이 들었던 배우들은 한 해 한 해를 거쳐 영화가 끝날 때 어느덧 12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다. 별다른 사건 없이, 일상의 조각들이 흐르는 시간의 끝에 사람이 자라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인생을 살 듯 영화를 본다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걸 <보이후드>는 입증한다.
6살 소년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은 엄마 올리비아(패트리샤 아퀘트),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와 함께 텍사스에 살고 있다. 두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은 엄마 올리비아는 대학교를 나와 돈을 벌기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온 가족이 이사한다. 엄마 올리비아는 대학교 교수, 이라크 참전 군인 등 여러 새아빠를 만나고, 그로 인해 집도 자주 옮기게 된다. 그러나 엄마와 이혼해 떨어져 살고 있는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는 늘 메이슨과 사만다를 주말만 되면 오래된 차를 끌고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빠 메이슨 시니어는 비록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볼링도 치고, 야구장도 가고, 캠핑도 다니면서 엄마가 바쁘게 생활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세상 경험을 시켜준다. 어디든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하는 하루하루이지만, 그 속에서도 메이슨은 그렇게 눈에 띄게 엇나가지도 않은 채 차근차근 성장해 나간다.
줄거리랍시고 설명하는 게 머쓱할 정도로 <보이후드>에는 이렇다 할 사건의 줄기가 없다. 그것은 영화가 이 소년을 성장시키는 '무엇'이나 이 소년이 이렇게 성장하게 되는 '이유' 같은 것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6살 꼬마였던 메이슨이 18살 대학 새내기 청년으로 자란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소년의 자람이라는 것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에 남기는 여운은 그 어떤 사건보다도 거대하고 깊다. 감독이 시간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건너뛰게 마련인 영화의 장치를 활용해서 성장이라는 사건을 보여줬다면 이 정도의 울림을 주진 못했을 것이다. 12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것과 가장 가까운 질감으로 표현해 냈기에, 그 결과 12년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2시간 45분짜리 영화에서 경험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기에 이런 울림이 가능했던 것이다. 감독이 성장의 시간을 영화 한 편에 옮겨 오는 방식은 그만큼 새롭고, 동시에 끈질기다. 그렇게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읊고 칭찬하지 않고서는 이 영화의 가치에 대해 풀어내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몇 개월 간 극 중 인물들을 위한 세계를 구축해 놓듯, <보이후드>에는 무려 12년 간 극 중 메이슨 가족을 위한 세계가 구축되어 있다. 주인공 메이슨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1인 1역을 연기하고, 설사 어떤 역할이 중간에 모습을 감춘 뒤 몇 년 뒤에 나타난다 해도 예전에 그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다시 등장한다. 매년 3~4일 정도 시간을 내어 촬영했다니 그렇게 고생은 아니었겠다 싶지만, 처음 불러모았던 그 배우들을 그대로 1년 후 다시 불러모은다는 게 스케줄 등 각종 변수를 계산하는 데 있어 결코 녹록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메이슨 역의 엘라 콜트레인을 비롯해 주요 배우들에게 12년의 촬영기간동안 영화 내용에 영향을 미칠 큰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끈기와 천운이 합작한 완벽한 결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쩌면 지금의 완성물이 실은 온갖 변수들이 생기면서 감독이 유연성을 발휘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감독의 섬세한 솜씨는 더더욱 경탄스러운 수준일 것이다.) 이런 감독의 요청에 화답해 12년동안 의리를 지키며 자신들의 나이드는 과정을 아낌없이 내보인 에단 호크와 패트리샤 아퀘트 등 베테랑 배우들, 그리고 자신의 성장기 일부를 기꺼이 한 편의 영화에 맡긴 메이슨 역의 엘라 콜트레인의 뚝심도 칭찬하고 싶은 대목이다.
한 세계의 시간이 12년동안 흐른다는 전제를 유지하고자 첫째로 이와 같이 일관된 캐스팅과 배경의 틀을 만들어 놓았다면, 두번째로 한 것은 그야말로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시간의 '건너뛰기'가 아닌 '흐름'을 보여주는 일이었을테다. 일부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 한 살 한 살 메이슨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영화가 챕터를 나누어 두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나 역시 내심 그러했지만, 실제로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영화는 연도별로 챕터를 구분하지 않았고, 관객이 시퀀스와 시퀀스의 구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얼마 간의 시간동안 몇 년이 흘렀는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은 쥐도새도 모르게 흘러간다. 더구나 서양 아이들이 워낙 발육이 남다르기에 1년만 지나도 부쩍 커서 관객들에게 갑작스러운 성장에 대한 괴리감을 줄 수도 있는데, 이 괴리감 역시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을 통해 시간과 시간 사이 공백을 두면서 최소화시킨다. 어느덧 일관된 템포처럼 1년 단위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메이슨의 성장을 목격하지만, '쟤가 언제 저렇게 컸지?' 하는 격세지감이 아니라 어떤 해에는 목소리가 굵어지고 어떤 해에는 수염이 듬성듬성 나는 한뼘한뼘의 자람에서 꾸준한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는 정도에 머물게 된다. 그 결과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토실토실하던 꼬마 시절과 훌쩍 큰 청년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언제 이렇게 컸지?'라는 놀라움이 아니라 '어느덧 이렇게 컸구나'라는 아련한 애정이 어느새 메이슨을 향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감독이 소년기의 세계를 만드는 세번째 방식은 철저히 소년의 시선에서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영화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서, 메이슨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의 일은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메이슨이 여러 곳을 머물렀다 떠나는 와중에 만나는 인물들이 뒤에 어떻게 되는지 역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함께 그림 그리고 놀았던 동네 형이나 엄마 올리비아의 두번째 남편인 대학교수의 자녀들로 허물없이 지냈던 아이들처럼 메이슨에게 각별했을 이들도, 불시에 헤어지고 난 이후에는 소식을 들을 길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이사와 전학, 졸업과 입학을 소년기에 수차례 겪어 본 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아득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내가 어떤 나날들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았을 어린 시절에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이, 헤어짐을 겪은 뒤에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두 다 알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어릴 때 소꿉친구처럼 놀았을 친구들도 어른이 되어 보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부도 묻기 힘들만큼 아득히 떨어져 있음을 문득 느끼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 대다수에게 신기루처럼 남아 있을 어린 시절의 인연들과 추억들의 모습을, 영화는 철저히 메이슨의 시선만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실감나게 재현한다.
그렇다고 메이슨의 삶이 단지 그의 주관적 시선만으로 일궈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년기는 홀로 서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고, 부모와 같은 주변 사람들과 환경의 영향을 다분히 받을 수 밖에 없는 시기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메이슨의 눈에 비친 세상과 사람들의 모습 또한 성실히 그려낸다. 메이슨의 심리에 마냥 몰입할 거라 예상했던 이 영화에서 가족들이 겪는 시간의 흐름을 만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고단한 싱글맘에서 만학도로, 자유분방한 삶을 꿈꾸는 지식인에서 까다로운 교수님으로 변해가는 엄마. 정치적 의견도 적극 피력하며 자유로운 예술혼을 추구하는 청년 같은 아빠에서 생계와 꿈을 함께 일궈가는 가장으로, 그리고 새로운 아이를 낳으면서 한층 안정을 얻게 되는 아버지로 변해가는 아빠. 어릴 땐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와 춤을 신나게 따라하더니 클수록 낯을 가리게 되는 누나. 이런 가족의 모습은 메이슨의 곁에 늘 붙어다니진 않지만 항상 어른거리는 정도의 거리에서 머물고 있고, 그런 어른들의 모습이 메이슨의 불확실한 앞날에 어느 정도의 단서는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침공, 오바마-매케인의 대선 경쟁 등 당대 미국의 주요 사건들과 콜드플레이, 브리트니 스피어스, 레이디 가가, 고티에 등 당대의 뮤지션과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첫 출간일 같은 당대의 문화적 이슈들까지 깨알같이 끼어든다. 영화는 그 어떤 것도 메이슨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당대의 세상을 둘러싼 갖가지 요소들은 잔잔한 가랑비처럼 메이슨의 1년 또 1년을 촘촘하게 채워간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영화가 그렇게 사소한 하루하루들로 쌓아 온 12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큰 감동을 주는지 명확한 이유를 말하기는 사실 어렵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과거의 어떤 순간과 현재가 이루는 명확한 인과관계 같은 것이 아니다.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온갖 순간들이 그 어떤 인과관계와 상관없는 듯 시간을 따라 이어진 끝에 현재가 완성되는, 그 설명하기 힘든 경이로운 경험을 영화를 통해 만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메이슨에게 별다른 시련을 주진 않았지만(불량학생들의 접근이나 실연 같은 클리셰에 가까운 통과의례는 제외하고), 나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어른으로 어엿하게 성장해 있다. 꼭 어떤 사건이나 전환점을 겪어야만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메이슨과 사람들, 세계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순간의 조각들이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한층 의젓해져 있는 메이슨으로 연결되는 순간을 볼 때의 감동. 그것은 곧 별 것 없다고 믿었던 가장 보통의 우리들의 삶을 향한 감동이기도 하다. 영화 속 순간순간을 별 사건 없이도 분주히 따라가다 보니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듯, 어떻게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지금의 우리가 서 있다. 맞을 땐 느낌도 없지만 다 맞으면 흠뻑 젖어있는 가랑비 같았던 그 시절을 거울처럼 비추어 놓은 영화를 보면서, 나도 한편의 멋진 영화를 이미 살아내어 어른이 되었구나. 굳이 결정적인 사건이나 굵직한 전환점이 아니더라도 그 시시콜콜한 순간의 조각들이 철길처럼 모여들어 지금의 나로 이어졌고 앞으로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성장의 순간들이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추억 속의 철로처럼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지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보이후드>가 위대한 영화인 이유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래서 우리의 삶이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도 우리가 겪은 그대로의 삶이 이미 위대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로써 이 영화는 돋보이는 삶을 사는 몇몇을 위한 영화가 아닌, 그리 돋보이지 않는 어제와 오늘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된다. 우리는 옆집 아이가 어떻게 커가는지 이웃에서 살면서 지켜보듯 넘겨다 보면 될 일이고, 그렇게 아프지도 빛나지도 않는 아이의 삶이 켜켜이 쌓여 어른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감탄한 아이의 삶에 자연스럽게 내 소년기가 투영되면, 역시나 그렇게 아프지도 빛나지도 않았던 내 소년기는 어느덧 경이로운 빛을 머금고 돌아온다. 그토록 위대한 신비를 품은 삶과 시간의 흐름을 사실 2시간 4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완벽히 그려낸 것도 용할 정도다. 이처럼 누구나의 삶과도 같은 영화 <보이후드>는 간직하고서 그리울 때 문득 장면 장면 뽑아다 떠올려 보고픈, 순간은 흘러갔어도 여전히 내 것인 자람의 기억처럼 더는 없을 소중한 영화다. 12년, 그 사이의 간헐적 시간동안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예측불가성마저 오히려 흡수하며 흘러가는 시간의 결을 만들어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자신의 단 한번 뿐인 성장기를 이와 같은 걸작 영화로 지닐 수 있게 된 엘라 콜트레인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보낸다.
+ 메이슨이 아빠 메이슨 시니어와 캠핑을 하던 중 '<스타워즈>의 속편이 나올까?'라는 주제의 대화가 잠깐 전개된다. 이에 "나오기 힘들지 않겠냐. 그러려면 뒷이야기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라는 대답이 나오는데, 아시다시피 지금 그 뒷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스타워즈>의 일곱번째 이야기는 제작 중이다. 이때만 해도 정말 <스타워즈> 속편이 나올 거라고 예상은 못했겠지만, 불현듯 웃음짓게 하는 적절한 타이밍의 대사였다.
+ 이름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메이슨의 누나 사만다 역의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딸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라이브톡 내용에 따르면, 그녀는 어린 시절 영화에 출연하고픈 열망이 강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분야로의 흥미가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극중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