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좌우편에 두 강도도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상황에 놓였는데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고 한 강도는 예수님께 믿음을 보여 말하길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의 답변인즉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원" 은 무엇이며 또한 무엇보다
"오늘" 이라는 현재시제는 무었인가? 너무 이상하지 않는가?
예수님께 믿음을 보인 강도가 죽게 되면 그 영혼이 오늘이라고 하는
그 즉시 예수님과 함께 저 천당에라도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살게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으며 부활후 40일만에 승천하셨다.
그런데 시편 110:1에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라고 하심을 볼 때,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마자 천국에서 그 영혼이 복락을 누리심이 아니었다.
원수는 마귀이다. 마귀로 예수님의 발등상 되게 한다는 말은 마귀를 짓밟아
진멸한다는 뜻인데, 그리 되게 하기까지 하나님 우편에서 기다리는
형국이므로 천국이든 낙원이든 아직 아니다.
때문에 예수님께 호의를 보인 강도는 물론 예수님까지도 당장 천국
혹은 낙원의 복락을 누리는 게 절대로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면 "오늘" 이라는 현재시제는 언제이며 "낙원" 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먼저 오늘이라는 시제를 알기 위해서 마16:28을 상고할 필요가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는 마귀로 예수님의
발등상 될 때가 된다. 즉 21세기 벽두인 오늘날 마귀가 발등상(짓밟혀)
되어 천년동안 무저갱에 던져졌을 때
예수님이 마침내 지상천국의 왕권을 가지고 오시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그 당시에 예수님을 둘러선
사람들을 향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왕권행사는 재림 때인 오늘날인데 왜?
이천년전 예수님을 둘러선 그 당시적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
이란 표현을 하셨는가 이다.
그 당시 "여기 섰는 사람 중"에는 시제로서 재림 때인 "오늘" 이라는
현재형을 함축하고 있다 하겠다. 그 당시적의 "오늘" 이 아니고
오늘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우리시대를 말씀하신 오늘인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오신 독생자로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한 몸이다. 그리고 하나님 및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해 계시는 분으로서, 창조는 언제나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 창조이므로 미래에 되어질 궁극적 본질적 창조완성의
때를 뜻하여 "오늘" 이라는 표현을 쓰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항상 계신 분이었다.
그리고 우리인간 피조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후부터 지금까지 영원했다.
즉 우리 육체는 수명을 다하면 죽어 썩지만 영혼은 불멸성이요, 불멸성인
영혼이 시대마다 육체를 입고 다시 지구상에 태어나는 윤회와 환생이라는
뜻에서다.
그러므로 "여기 섰는 사람중에 죽기 전에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님을
볼자가 있을 것" 이란 그 당시적 사람들의 죽기전이 아니고, 21세기 오늘날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죽기 전에 볼 자를 말씀하신 것이 된다.
이는 오늘날 택한자들의 육체의 구원을 위해 환난날을 짧게 감하신다는
말씀과 문맥이 상통하고 있다 하겠다(마24:22).
말씀을 깨달으면 영생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말씀을 깨달은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환난날이 길어진다면 말씀을 깨달은자(택한자)의
육체의 짧은 수명 때문에 육체가 구원을 받지 못할 터이므로 환난날을
짧게 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같은 배려에 의해 택한자들은 오늘날 그 육체가 죽기 전에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두고 “여기 섰는 사람중에 죽기 전에” 즉 “오늘” 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믿음을 보인 강도도 이천년전의 오늘이 아니라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21세기 오늘을 말씀하신 것이 된다.
이천년 전 예수님이 오늘날 다시 환생하여 오시듯이 강도도 오늘날
다시 윤회하여 오고,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도
재림 때 오늘날 다시 모두 윤회하여 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 윤회와 환생을 통하여 영혼의 생명이 항상성(恒常性)이므로
저 과거 이천년 전에도 이천년 후의 일을 "오늘" 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말을 더 간단히 증명하고자 한다면 전도서 9장 5,6절에
“무릇 산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됨이라” 라고 했듯이
강도가 이제 십자가형에 의해 죽게 되면 무의식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가 윤회하여 오늘날 깨어나면 무의식 상태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그것이 곧 오늘에 이루어지는 낙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강도에게 왜 천국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낙원" 이란 표현을 하셨는가?
오늘날 예수님이 오시면 천국과 낙원이 수평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성취되는데 그 과정은 이렇다.
구원자 메시야가 오신다고 해도 인류의 구원이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 열매가 있고, 나중 둘째 열매가 있다. 즉 첫째 부활자들이 있고
나중 둘째 부활자들이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첫 열매 144000만 왕과 제사장이요,
천년통치체로서 먼저 그들의 육체가 불멸의 몸(구원)을 입게 된다.
예수님이 왕중 왕이라면 택한자들은 보좌왕(각료급들) 들이다.
이같이 육체가 불멸성을 입기 때문에 예수님을 수장으로 한 택한자들은
최초로 영생의 지상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된다.
그리고 그 나머지 인류는 천년동안 천년통치체에 의해 영적 교육을 받고
천년통치 끝에 둘째 열매(둘째 부활)로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이때는
온 인류가 누리는 지상천국의 완성이다.
따라서 택한자 144000 외의 나머지 인류는 영생을 받기까지는
천년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아래와 같이 알려준다.
<계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 )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한다고 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144000 외의 나머지 지상거민이 아직 천년이
차기까지는 영생을 받지 못한다는 뜻에서 죽은 자들이라고 했던 것이다.
즉 나머지 인류는 천년동안 지금처럼 낳고 죽고 다시 낳고 죽곤 하는
윤회의 삶을 뜻하여 죽은 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천년통치 동안
나머지 인류는 어떤 삶을 누리는지 다음기록을 보자.
<사65:20-25>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때에는 백세에 죽은자가 아이라고 했고 사람들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다고 했으니 장수를 누림을 알수 있으며 어떠한 재난도 걸리지
않고 복락을 누림을 알 수 있다.
인간피조물 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먹이사슬에서도 피흘림이 없이 식물로만 먹이를 삼기 때문에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수한이 있음을 보니
이들에겐 아직 영생의 천국이 아니고 죽은 자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동안에 이 세상거민들의 삶이 위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예수님이 강도에게 말씀하신 “낙원” 을 뜻한다.
강도 노릇한 자기죄의 응보로 죽게 된 상황에서 아무리 예수님께 호의를
보였으나 이 강도는 택한자가 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으로부터 그가
천년통치를 받는 백성이 되리라는 예언으로서 재림 때 오늘의 “낙원” 을
약속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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