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은 비슬지맥과 청룡지맥을 따라 그 맥이 대구 도심 앞에까지 이어왔으며 ‘대구읍지’엔 성불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입에서 입으로 불리어진 보통명사 '앞산'이 나중엔 고유명사 ‘앞산’으로 굳어졌을 것.
대구(大丘)라는 지명도 신라시대 ‘달구벌’‘달구불’이라 불리던 종래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큰 언덕’ ‘넓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대구사람들은 팔공산을 아버지산으로 부르고,앞산을 어머니산으로 부른다.
앞산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남구 수성구 달서구에 위치하고, 공원내에는 크고 작은 8개골과 수많은 암자와 등산로가 얽혀 있다.
큰골엔 한국전쟁 때 낙동강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낙동강 승전 기념관’과, 충혼탑도 있다.
산을 올라 처음 만난 대덕산은 산의 모양이 달처럼 덕기가 있다 하여 ‘대덕산’이라 불리어졌고,고산골은 신라말 후사가 없는 왕이 고산사를 짓고 백일기도를
하여 왕자를 얻은 후 고산골이라 불렀다.
그 후 고산사는 자식 없는 부녀자들의 기도처가 되었지만 임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61년 법장사를 중건하면서 흩어진 석탑의 잔해를 모아 3층탑을 복원하였다.
또한 앞산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일화가 곳곳에 스며 있다.
파군재에서 패한 왕건이 숨어든 곳이 지금의 은적사(隱跡寺)이고, 안지랑골 왕굴로 거처를 옮겼다가 유성사(留成寺)에 편히 머물러 나중에 유성사 이름이
안일사(安逸寺)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달배골 임휴사(臨休寺)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름들이 그러한 전설을 담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대구 시민들은 집앞산인 앞산을 올라 체력단련은 물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야간산행도 가능하니 얼마나 좋으랴.
나는 회심의 답사지로 ‘앞산마애불’을 염두에 두고 올랐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음은 물론이고,누구에게 어떠한 보호도 받지못하는 외로운 마애부처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그 부처님을 친견하기로 하였다.
산행코스: 달서구 청소년수련관-임휴사-대덕산-앞산-산성산-앞산마애불(U턴)-용두산토성-고산골 (5시간)
클릭하면 큰 지도
낙동정맥의 사룡산(683m)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비슬지맥이다.
이 비슬지맥이 비슬산(1,084m)에 이르면 주능선이 'T'자형으로 나뉜다.
비슬산에서 남동으로 꺾이는 비슬지맥은 밀양 방면으로 나아가고 북동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은 청룡지맥이다.
이 청룡지맥이 약 17km 거리에 이르러 빚어 놓은 산이 앞산(658.7m)이다.
앞산에서 더 나아가는 청룡지맥은 대구 서쪽으로 휘어 그 여맥을 금호강에 가라앉힌다.
네비엔 "달서구 청소년수련관"을 입력시킨다. * 청소년수련관은 너무 많아서 무슨무슨 청소년수련관(원)을 분명히 입력시켜야 한다.
유료 터널인 앞산터널을 빠져나오면 이내 왼쪽으로 하차지점인 '달서구 청소년수련관'과 육교가 보인다.
우리는 U턴하여 수련관 안으로 들어왔더니 정면으로 도로를 건너는 육교가 보인다.
달서구 청소년수련관에서 현수교로 올라가는 목계단과 육교가 보인다.
화장실도 이용하고,산으로 직접 붙을 수도 있고,대형버스도 댈 수 있으니 단체산행 들머리로서는 딱이다.
현수교로 오르면서 돌아본 모습.
나무계단을 오르자 도로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현수교가 보인다.
현수교를 건너면 대덕산자락이 길게 마중나와 있다.
미적 감각을 최대한 살린 현수교를 건너면 좌측으로 100여m 이동을 하여야만 임휴사 표석을 만난다.
현수교에서 바라보는 앞산터널.
임휴사표석을 만나...
임휴사로 오르면...
우측으로 이정표가 대덕산을 가리킨다.
대덕산 1.4km 방향으로 일행들은 우루루 숨어들고...
다른 방향으로 잡은 이정표
우리는 우선 임휴사로 오른다. 임휴사를 탐방하곤 주차장 바로 아래의 가까운 들머리로 붙는다면 아까 그 지점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될 터.
임휴사 주차장 바로 아래의 등산로 푯말
임휴사(臨休寺)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전설을 품고있는 천년고찰이었지만 몇 해 전에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고찰로서의 그윽한 맛은 없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웅전엔 염불소리와 기도객들의 모습이 숭엄하다.
새로 지은 듯한 반야당(般若堂)의 모습.
반야당 현판
활짝 열린 십육나한전(十六羅漢殿)의 계단을 올라선다.
<합장>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앙으로 그 양 옆으로 16아라한(阿羅漢)이 열좌(列坐)하고 있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깨달은 이를 나한이라고 한다.
십육제자를 모신곳이 십육나한전.
이제 갈 길을 재촉한다. 아까 보았던 주차장 바로 아래의 등산로 푯말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면 우리 일행들이 올랐던 길과 만난다.
데크 계단을 올라 뒤돌아보면 아까 우리가 올랐던 '달서구 청소년수련관'이 보이고...
상인동 지역이 훤히 보인다.
가까이에 임휴사도 내려다 보인다.
하도 전망이 좋아 내키지 않는 걸음.
대덕산 고스락을 올라선다.
대덕산 이정표의 '청소년수련원'1.8km는 '대구 청소년수련원'을 말하는 듯하고,우리가 올라온 '달서구 청소년수련관'은 '달비골 관리소' 1.7km인 듯.
한낮 기온이 올라간 달구벌을 바라보며 일행들은 전망좋은 그늘진 곳에 오손도손 모였다.
그리고 대구 시가지를 내려다 본다.
이 능선길은 '대구 청소년수련원'에서 올라오는 길.
도심속의 녹색 쉼터는 두류공원.
살짝 당겨보니 성당못이 보이고,그 뒤로 '대구예술회관'이 보인다. 못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 카톨릭대학교.
능선을 타고 암봉전망대를 넘으면 시설물이 있는 앞산정상이다.
가까이 청룡산 너머로 지형지물이 특이한 최정산인 듯.
살짝 당겨본다.
암봉 전망대에 선 산객.
서서히 달아오르는 한낮 태양을 머리에 이고...
암봉 전망대에 올라선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임에 틀림없다.
한동안 떠날 줄을 모르는 일행
앞산 정상은 지척이다.
왕굴 이정표에선 패스.
팔공산 방향.
앞산 시설물과 멀리 최정산
'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라는 동요의 모순을 알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나무를 심으면 숲이 우거져 소리를 흡수하기 때문에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덕산 정상 1.1km,앞산 전망대 1.3km
앞산 정상은 시설물이 차지하고 있어서 철조망 앞에 초라한 간이표석이 있다.
정상에서의 의장대사열 버전의 세러머니는 너무 화려(?)하다.
철조망과...
경고판.
앞산 전망대와 케이블카 갈림길을 지나...
산성산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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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돌아본 앞산의 모습.
이정표
앞산 정상의 구실을 마다하지 않는 헬기장.
돌아본 모습.
산성산 방향
정자에서 내려서면...
삼국시대 고분 유적이 있고...
고분 유적과 출토 유물 안내판.
'大邱宜山'님의 표식기에 '성북산(595m)'이라고 적혀있다.
포장도로인 앞산순환도로에 닿아 산성산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걷다가 좌측 산자락으로 올라서 보지만 다시 내려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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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팀을 고산골 방향으로 내려가도록 시그널을 갈아놓고...
산성산 아래 안내판에 선다.
산성산은 어디에 있는가? 저 쪽 안테나가 선 낮으막한 고스락이 긴가?
달비고개~용계초등학교 숲길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청룡지맥은 달비고개에서 청룡산으로 이어지고...
안테나가 선 이곳은 가짜 산성산이다.
아무런 표식이 없음은 당연하고...
'항공무선표지소'가 있는 저 봉우리가 산성산이렷다.
비슬산과 청룡산 방향으로 청룡지맥을 가리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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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골 방향으로...
능선을 이어간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진행방향
용두산토성으로 내리닿는 능선 끝자락의 대구 시가지와 능선 우측으로 수성유원지.
스텐레스 장식품이 있는 이 지점의 이정표(산성산 1.3km,고산골 2.4km,용두골 1.9km)가 앞산마애불로 내려가는 지점.
용두골로 방향을 잡는다.
바위들이 가로 막아선 능선을 따라...
시선이 닿는 저 뭉툭한 봉우리가 氣가 모인 용두암(龍頭岩 352m)인 듯.
어떤 이는 용두암이라고 하고,또 어떤 이는 범바위라고도 부르는 암봉에 올라섰다.
이 바위 아래에 우리가 찾아나선 마애불이 있을 것이다.
자료를 훑어보아도 그 흔한 자료하나 발견되지 않고, 다만 매일신문(2009년 1월23일자)에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 있을 뿐이다.
마애불은 산성산에서 용두산으로 내려가다 용두골 방향으로 능선을 갈아탄 등산로 352m암봉 밧줄 아래에 대구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상은 정동향인 수성구 파동 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부처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길이가 90㎝, 발 아래 연화대좌의 폭이 73㎝, 전체 높이는 121㎝, 폭은 81㎝다.
이 불상은 육계(부처 정수리에 불룩 솟아오른 부분)가 뾰족하고 귓밥이 어깨선까지 늘어진데다 옷자락이 연화대좌까지 내려와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조선후기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대구박물관 강삼혜 학예연구사는 "마애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웃는 표정을 짓고 있으며 바위의 암질이 좋지 않은데도 비례가 좋고, 조형미가 뛰어나 일반인의 솜씨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약수 경산지부장(대구 미래대 교수)도 "부처의 손 모양 등을 봤을 때 약사여래불인지, 석가부처인지 알 수 없고 정확한
제작 연대도 좀 더 구체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하고 색다른 양식의 표현들이 곳곳에서 보여 학문적 연구가치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서빨리 학문적 규명을 통하여 문화재로서 자리매김 되었으면 좋겠다.
마애 부처님의 보일듯말듯한 미소와 알듯모를듯한 표정은 아직 이름하나도 부여받지 못한 님의 속마음이라도 헤아려야만 할 것같다.
가까이 보면 목에 삼도가 선명히 보인다.
가칭 '앞산마애불'에서 내려다 보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마애 부처님의 눈아래 펼쳐진다.
아직 이름도 부여받지 못하고,아무런 안내판도 없는 '앞산마애불'을 간다고 하니까 선뜻 따라나선 두 여성회원분.
무명의 부처님을 친견한다고 하니 함께 답사해주신 일일회원 두 분이 고맙다.
'앞산마애불'은 가칭 '용두암(龍頭岩 354m) 아래의 가는 밧줄이 매여진 비탈진 곳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사진은 답사를 마치고 다시 올라오는 모습.)
'GPS월드'에선 범바위(352m) 표식을 달아 놓았다.
딱 50분 만에 아까 그 갈림길에 다시 올라왔다.
이 지점의 이정표
이제 다시 용두산으로 내려간다. 진행방향 능선으로 가르마가 갈라져 보인다.
사각정자를 지나면...
전망대 포토 죤.
우리가 내려갈 능선 자락이 보인다.
포토 죤에선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
조금 내려가다 만난 이정표
능선은 계속 이어지고...
고산골 갈림길.
아무렇게나 쌓은 돌탑군을 지나...
고속도로같은 넓은 산길을 내려서면...
고산골 갈림길을 만나고...
흩어진 돌무더기들이 널려있는 용두산토성을 만난다.
이곳은 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길목으로서 산간 계곡의 입구가 되는 곳이다.
그 축조 방법이 달성과 유사하므로 원삼국이거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토성의 규모는 남북의 길이가 150m, 최대폭 약 50m, 둘레가 약 400m로서 길게 뻗어 내리는 산기슭 하단에 돌기(突起)된 구릉(丘陵)을 정점으로 해서
그 둘레에 타원형으로 성벽을 쌓은 형식이다.
돌기된 구릉을 길게 신천(新川)과 평행하고 있으며 특히 동편은 신천과 접하면서 높은 단애를 이루고 있어서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지세다.
성벽의 축조는 산맥의 위쪽과 하단쪽의 사면으로 이어지는 곳에 평지의 망루처럼 놓은 석벽을 쌓았으며 사면은 급경사면이므로 성내 도로를 겸한
토석혼합(土石混合)의 성벽을 쌓았다.
이 성의 내부에는 장기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평지나 지천(池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달성이나 검단토성(檢丹土城)처럼 취락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이 부근 일대에 살고 있던 집단들이 전시(戰時)에만 일시적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인용>
안내판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혼합(土石混合)이다.
삼각점이 있고...
또다른 안내판이 있다.
야트막한 봉우리의 이름치곤 너무 거창한 이름 용두산이다.
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섰다.
우리 차는 고산골에 대형주차장이 없어 먼 곳('보성대덕2차아파트' 옆 지하차도 위)에 주차되어 있단다.
버스가 임시 주차하고 있는 지점.
우리가 내려온 날머리를 돌아본다.
카페 '산'을 지나고...
안내판의 현위치를 담는다.
고산골을 지나 대로를 한참이나 걸어서...
우리 차가 대있는 지점에 합류하였다.
도심속 산에선 주차난이 제일 심각하다.
모든 회원들이 차를 찾느라 애를 먹은 모양이다.
그러나 도심지에서 이만한 조건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다소 불편한 점은 어쩔 수 없을 것.
앞산공원 전승기념관 앞에는 대구 출신 이윤수님의 시비(詩碑)가 있다.
波濤(파도)
海風이 앗아가는 봄을 어루만지며
외로이 모래밭에 엎드려
모래알을 헤인다
億劫(억겁)日月
밀려 갔다 밀려 오는 波濤(파도)처럼
아 아 !
헤아려도 헤아려도 헤아릴 수 없는
人間 삶의
사랑과 슬픔과 苦惱(고뇌)의 씨앗들
波濤되어 밀려 온다.
-석우(石牛) 이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