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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전설이 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성악가로서 절정을 달리던 1977년이었다. 당시 그는 서울의 최고급 호텔이었던 소공동 조선호텔에 묵었다. 180kg에 달하는 거구의 테너는 엄청난 몸집과 달리 청각은 매우 예민했던 모양이다. 그는 소음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호텔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소음은 일정시간 마다 보일러가 가동되면서 생긴 것이다. 하지만 별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에서 투숙객이 지하 기관실 소음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청력이 극히 민감하지 않은 이상' 감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등장하는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마라'(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잘 부를수 있는 성악가는 많다. 하지만 그 아리아로 감동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테너는 흔치않다.
파바로티가 즐겨 부른 네순 도르마를 듣다보면 온 몸에서 전율이 돋는다. 테너 음역대에서 거의 최고음이라 할 수 있는 '3 옥타브 도(C5)'음을 의미하는 '하이C'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깊고 풍부한 성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그의 공연 도중 눈물을 흘리는 관객은 흔하고 더러는 기절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파바로티가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성악가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화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파바로티'라는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클래식으로 음악 차트 올 킬 신화를 만들었다.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한 테너로 첫 손꼽히는 파바로티는 클래식, 팝 등 장르를 뛰어넘어 문화계에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파바로티의 압도적인 가창력은 알아도 인간 파바로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 '파바로티'는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빈치 코드> 시리즈와 <뷰티풀 마인드> 등을 연출한 아카데미 4관왕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파바로티'는 파바로티의 삶과 음악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오페라였다"라고 평한 론 하워드 감독은 오페라의 3막 구조를 영화에 녹였다고 했다. 하지만 거장(巨匠)의 의욕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영화는 오페라만큼 극적인 감흥을 주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파바로티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지도 못했다. 다만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표현과 가창력만큼은 극장 문 밖을 나와서도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의 이름 옆에는 '하이C의 제왕', '천상의 목소리'라는 닉네임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이벤트의 황제'라는 수식어도 추가하고 싶다. 엔리코 카루소이후 최고의 성악가로 불리는 것은 가창력외에 특유의 엔터테이먼트 기질도 한몫했다. 테너로서 전성기가 지날 즈음 그는 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쓰리테너 공연을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성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LA다저스 스타디움에 수만명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환호하는 장면은 성악가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990년 로마월드컵에서 쓰리테너가 첫 선을 보인이후 라이브앨범으로는 기네스 기록을 세울 만큼 엄청난 성공을 기록했다. 이때 파바로티는 '걸어 다니는 금전출납기' 라는 말을 들을 만큼 떼돈을 벌었다. 물론 자선공연도 했다. 스티비 원더, 퀸, U2, 셀린디온등과 함께 '파바로티와 친구들'을 결성해 전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거대한 자선콘서트로 명성을 날렸다.
파바로티는 못 말리는 바람둥이기도 했다. 1961년 9월 30일 아두아 베로니와 결혼해 세 딸을 얻었지만 그는 무수한 바람을 피웠고 2003년 12월엔 자신의 딸들보다 어린 35살 연하의 개인비서 니콜레타 만토바니와 염문을 뿌려 결국 이혼하고 만다. ( 파바로티는 결국 막내딸 뻘의 만토바니와 재혼해 자녀를 갖는데 후일 가족들은 5천억원에 육박하는 재산을 놓고 떠들썩한 법정싸움을 벌인다)
파바로티는 태생이 낙천적인 사람이다. 영화속 파바로티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처럼 슬픈 노래를 부를 때 외에는 늘 웃는 얼굴이다. 그의 긍정적인 천성이 드러난다. 성악가로서 단 한 번도 좌절을 겪은 적이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오페라무대에서 늘 최고였기 때문이다. '곰돌이 푸'를 연상시키는 뚱뚱한 몸매에 수염이 가득한 자상한 얼굴, 위트가 넘치는 언변과 제스처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쓰리테너와 파바로티오 친구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이벤트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었다.
론 하워드 감독은 파바로티 가족들과 연인은 물론 함께 공연을 했던 성악가 그리고 음반사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반복적으로 삽입해 파바로티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전기영화의 문법에 충실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파바로티의 삶도, 노래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인터뷰 때문에 노래는 중간에 끊기기 일쑤고 그의 삶은 너무 밝은 면만 부각됐다. 파바로티의 복잡한 사생활을 보면 그도 그의 가족도 늘 행복하지는 않았을 터다. 웅장함과 아름다운 울림과 서정적인 표현력이 담긴 파바로티의 절창을 듣기위해 어렵사리 시간 맞춰(파바로티는 상영관도 적었고 그나마 하루 한차례 상영됐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겐 다소 아쉬운 영화다. 차라리 지루한 인터뷰를 반쯤 덜어내고 넋을 잃고 듣게 되는 공연비중을 높였다면 감동은 증폭됐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영화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