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탕하게 자식 출가시켜.
그 인물됨에는 어머니가 있어.......
스님의 어머니. 정겨운 말이기도 하고, 왠지 어색한 표현이기도 하다.
스님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승려가 아닌지라 어머니가 존재한다.
스님의 어머니 가운데, 자식을 승려로 만들고 싶은 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는 부정적이다.
승려의 삶이 쉽지 않은 인생길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자식이 원하는 길이라고 인정하고, 호탕한 마음으로 자식을 출가시킨 모친이 있다.
바로 명나라 4대 승려 가운데 한분인 감산 덕청의 어머니다.
감산德清 덕청憨山(1546~1622)이 소납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은 중국 선종 사찰을 순례할 때이다. 육조 혜능의 도량인 남화사 조사전, 혜능의 진신상 옆에 감산의 진신상이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것을 친견하였다. 이후 감산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스님의 <감산자전>(대성역, 여시아문)을 수여번 읽었다. 이 자서전을 읽으면서 스님을 흠모하게 되었는데, 그 인물됨에는 바로 어머니가 있었다는 점이다.
감산은 안휘성 금릉 전초全椒 사람이다. 덕청은 감산대사로 칭한다. 자는 징인澄印, 시호는 홍각선사弘覺
禪師이다. 감산의 모친은 평생 관음 기도를 하였는데, 어느 날 밤 꿈에 관음보살이 동자 하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감산을 낳았다. 아홉 살에 감산은 사찰의 학당에 다니며 공부를 하였다. 그곳에서 감산은 <관음경> 독송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한다(能救世間苦)’라는 구절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스님에게 책을 빌려 그 경을 모두 외웠다. 그런 뒤 모친에게 <관음경>을 독송해주자,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감산이 열 두살이 되자, 부친은 신부감을 구해 아들과 정혼시키려고 하였다. 스님은 아버지에게 승려가 되겠다고 하였고 부친이 반대하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 아이를 키운 것은 자기 포부를 펼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합시다. 아이를 사찰로 보냅시다.”
이렇게 어머니의 격려로 감산은 열두살에 출가하였다. 스님의 자서전에 보면, 출가한 이래로 부모님을 만났다는 기록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흔 네 살이 되는 해에 스님께서 대장경을 한질 가지고 출가 본사인 보은사를 다니러 갔다. 스님이 보은사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은사의 보탑寶塔이 방광하였고, 대장경을 맞아들이는 날에는 탑에서 빛이 다리를 놓은 것과 같았다. 당시에 스님네들이 불을 밝히지 않아도 어두운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탑에서 방광하고,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접한 어머니는 사람을 보내어 ‘언제쯤 집에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사적으로 보은사에 온 것이 아니니, 어머니가 처음 만난 것처럼 헤어질 때도 기뻐한다면 이틀 밤을 집에서 잘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기별하였다. 어머니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어찌 이별할 때 슬퍼하겠느냐. 한번 보기만 해도 되는데, 이틀밤이라니!’라고 하였다. 스님은 집으로 가 어머니를 만났다. 그날 저녁에 문중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한 어른이 스님께 물었다.
“배를 타고 오셨나, 뭍으로 오셨나?”
어머니가 스님 대신 대답했다.
“배를 타고 왔든, 뭍으로 왔든 그걸 왜 묻소.”
질문한 사람이 다시 물었다.
“어디서 오셨나?”
어머니가 다시 대답했다.
“공중에서 왔소.”
스님은 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저를 공부시키기 위해 냉정히 내치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요.”
“저와 헤어진 뒤 제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이 스님이 북두칠성 밑에 있다고 해서 밤마다 스님을 위해 북두칠성에게 치성을 드렸어요. 그러다가 스님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스님 생각을 끊었는데, 이렇게 스님을 뵈니 화신이 내려온 것 같아요.”
사흘째 되는 날, 스님이 어머니와 헤어지는데, 어머니는 처음 만날 때처럼 즐거운 모습이었다. 스님은 그제서야 ‘어머니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감산이 쉰살이 되었을 때, 스님은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게 되었다. 스님이 유배를 가는 길녘 난징(南京)에 도착했는데, 어머니가 강가로 마중나왔다. 모자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스님이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많이 걱정하셨지요.”
“죽고 사는 것이야 정해져 있지요. 나 자신도 걱정하지 않는데, 스님을 왜 걱정합니까? 나는 스님의 진심을 믿습니다.”
밤새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어머니가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은 도道로서 몸을 잘 가누고,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번에 스님과 헤어지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겠네요. 기쁜 마음으로 가시고, 뒤돌아보지 마세요.”
감산과 모친에게 있어 이 만남은 그들 생애에 마지막이었다.
[ 불교신문 4월 30일자 ]
첫댓글 참으로 귀감이 되는 어미님의 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