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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종풍이 뭐냐?”
5월 화엄법회는 어린이날 다음날인 6일로 대체휴일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며 열차표가 매진이었다.
이날 부산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노포역에서 대선스님을 만나서 큰스님을 친견하러 화엄전에 갔다. 일부러 마루로 나오신 큰스님께서 <야곰야곰 증도가 6권>을 완간하고 “그동안 화주까지 하느라고 고생했다”고 하셨다.
<야곰야곰 증도가>가 3년만에 제6권으로 완간되었다. 큰스님의 전반기 법문들이 꼼꼼하게 수록된 책이라고 생각되어서 많은 분들이 소장하고 읽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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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도 깊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화엄전 유리창 바깥의 풍경들이 수시로 움직였다.
큰스님께서 대선스님을 앞에 두시고 <108자재어 사경집>을 펼치시고, 초파일날 법회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건지 족집게 과외를 하듯 한 구절 한 구절 짚어서 교수법을 시범해 보이셨다.
요즘 큰스님은 책읽어주는 유튜버들을 통해서 <모비딕>도 들으시고 <돈키호테>도 들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제일 권하고 싶었던 책은 얼 나이팅게일의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는 책이라고 핸드폰을 열어서 보여주셨다.
그동안 큰스님은 방에서 넘어지셔서 허리가 몹시 아프신데도 병원에 가는 일조차 번거로워서 몇 주를 참고 낫기만을 기다리셨다고 했다. 아프신 중에도 유튜브 화엄법회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셨고, 백여 분 이상의 스님들을 접대하셨다고 했다.
수불스님의 은사스님이신 범어사의 지명스님이 열반하셔서, 전날에는 초재법문을 하러 오신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도 화엄전을 찾으셨다고 했다.
원래 영결식에는 차비도 안 주는데, 범어사에 수많은 스님들이 각자 시간을 들여서 많이 오신 것은 제자스님이 그만큼 복을 많이 짓고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십회향품의 선근공덕을 법문하시면서 큰스님께서 여러 날에 걸쳐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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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중에 송광사 방장이신 현봉스님도 열반을 하셔서, 5월 4일 유튜브 화엄경 법문에서 다음날 송광사 방장스님의 영결식에 많이들 가서 참석을 하라고 일러 주셨다.
“동참해 주는 것도 큰 불사입니다. 동참해서 자리를 함께 해 준다고 하는 사실이 아주 큰 불사고 또 복짓는 일입니다. 공덕 닦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유튜브 방송을 개설해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는 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힘이 나고요. 한줄이라도 화엄경 공부 더하고 사는 것 이것이 저의 아주 원대한 꿈입니다.”
또 ‘부처님께 바른법 듣기 위하여 스스로 이 몸을 바쳐가며 시중을 들고’라는 경전 구절을 읽어주시면서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셨다. 그 대목을 짧게 녹취했다.
성철스님의 현지시자
‘부처님께 바른 법 듣기 위하여 스스로 이 몸을 바쳐가며 시중을 들고’ 이 구절이 있네요.
이번에 범어사 수불스님의 은사스님 영결식 때문에 5일 동안 내방에 거쳐간 스님들이 100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런데 마침 해인사 선원장 스님인 원타스님이 또 자기 조카뻘 되는 원택 스님의 상좌를 데리고 내한테 인사시키러 왔어요 근데 왜 왔는고 하니까 그 스님이 원택 스님이 맡아서 운영하던 백련암을 상좌에게로 물려줬다, 옆으로 물려주지 않고 바로 밑으로 직계 상좌에게 물려줬다 그랬어요.
그래 “아마 앞으로 무슨 인사 올 일이 있으면 이 사람이 올 겁니다. 그러니 스님 그렇게 아십시오.” 하고 인사를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원타스님 보고 그랬어.
“원타스님, 스님이 해인사 주지하기는 쉽지만 아마 백련암 주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해인사 주지는 아무나 하지만 백련암 주지는 어렵다, 그러면서 백련암 주지한테 말하기를 “니 성철스님의 법이 스며 있는 백련암을 이제 맡았는데 백련암의 종지종풍이 뭐냐?” 그래 물었어요.
백련암의 종지종풍이 뭐냐? 그랬더니 “아이 뭐 저야 죽으나 사나 돈오돈수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썩 내놓더라고요.
성철스님 계통의 제자들이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돈오돈수 선불교를 평생 선양하셨는데 그걸 하지 않고 다른 소승불교를 한다든지 위파사나를 한다든지 아니면 뭐 근본불교라든지 상좌부불교를 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도 오고 가고 상당히 이야기들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내가 ‘자네가 성철스님 정신이 살아 있는 백련암을 맡았으면 백련암의 종지종풍이 뭐냐’ 이렇게 대뜸 물은 거죠.
그러면서 또 한 가지 덧붙이기를, 해인사 선방에 있을 때 성철스님이 방장으로 큰절에 내려오면 내가 현지시자라고 하는 것을 했는데 “니 현지시자라는 말 아느냐?” 그랬어요.
“현지시자라는 말 처음 듣는데요.”그래.
“성철스님이 백련암에 계시다가 큰절로 내려오시면 큰절에서 시자는 내가 맡아서 했다. 그게 현지시자다.”
그러면서 성철스님 머무는 조사전에 청소도 하고 군불도 때고, 오시는 날짜가 정해져 있고 하니까
“오시면 편안히 머무시다 가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준비를 해드리는 역할을 내가 한다. 내가 백련암까지 따라 올라가거나 그러진 않고 큰절을 내려오면 그때부터 내가 담당이고 너거는 손을 뗐다.” 그런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여기 ‘부처님께 바른 법 듣기 위하여 스스로 이 몸을 바쳐가며 시중을 들고’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또 한마디 붙였지. “내가 왜 현지시자를 자원해 했는지 아느냐? 성철스님은 공부 많이 하셨는데 성철스님에게 불교가 뭔지 알아보려고 했다.”
‘스님 불교를 내가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어요.
이런 것도 이런 기회에 다 기록해 놔야 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그랬더니 ‘종경록을 많이 읽어라.’ 그랬어요
“영명연수(永明延壽)선사의 종경록 그게 100권인데 그걸 많이 읽어라, 그리고 또 일본 학자 우정백수(宇井佰壽)라고 하는 사람의 불교대전이라고 하는 아주 두꺼운 책이 있는데 그걸 많이 읽어라. 그 두 가지만 잘 읽으면 불교가 제대로 정의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너도 이 이야기를 듣고 잘 기억해 놔라. 종경록 백 권 우정백수 불교대전 그 두 가지 소개를 받느라고 내가 그렇게 현지시자 노릇을 우정 지원해서 했다.”
그랬습니다.
그런 이야기도 이번 범어사의 영결식 덕택에 주고받고 했어요. 옆에 또 딴 스님들도 많이 있었으니까 그 스님들도 들어서 참고하라고 내가 이야기를 했죠. 불교대전은 문제가 있죠. 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행자로 오는 사람에게 ‘야 이거 읽어’ 하고 던져 주니까 일어로 된 책인데 일어를 알아야 뭘 읽지, 일어공부하려고 아둥바둥 애를 쓰니까 제대로 안 되거든. 그래서 도로 속가에 내려가서 일어공부한다고 학원 다니고 하는, 도대체 그런 폐단도 있고 그랬습니다.
성철스님이라고 해서 모든 걸 현명하게 잘 알아서 제자들에게 지시한 건 아니예요. 그건 참 잘못된 지시였습니다. 그 근기를 맞춰가면서 해야지 무조건 그걸 읽으라고 해놓으니까, 일어도 모르는 아아들에게 그 두꺼운 일어로 된 전문서적을 읽으라고 해놓으니까 그거 독파하려고 도로 속가에 가가지고 일어학원에 다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개인 이야기를 가끔 한번씩 이렇게 하면 혜명화 보살님이 저의 법문기록 내용들을 희귀한 것들을 녹취해놓고 하는데 녹취거리가 생겼죠?
-無比스님, 2024년 5월 22일 유튜브 염화실TV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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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문수선원 5월 법회 시작 전에 입승스님이 대중스님들께 조금 격하게 함께 공부하기를 권하는 말씀을 하셨다.
“뇌가 터져서 죽어버리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죽는 그날까지 신심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찾아보니 바로 전날인 5일, 비가 몹시 오는 날, 송광사 방장스님의 영결식을 입승스님이 집전하셨다.
“자기의 철길을 자기가 내는 사람들”이라고 용학스님이 몹시 바쁜 부처님 오신 날을 코앞에 두고도 문수강당의 화엄법회에 참석하신 분들을 찬탄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三
[托法進修成行分 第三]
[成行因果周]
[第八會 一品 二千行門]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一
四 . 普賢菩薩의 二百答
1. 二十門의 十信答
반갑다. 오늘은 교재 323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17번째 ‘보살의 십종무피염심’ 대목부터 할 차례다. 지금 이세간품 이백 가지 질문에 대해서 이천 가지 응답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 제16번 ‘보살의 열 가지 삼세를 앎’이라고 하는 대목까지 했었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보살의 십신 답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이라.
(17) 菩薩十種無疲厭心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發十種無疲厭心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供養一切諸佛호대 無疲厭心하며 親近一切善知識호대 無疲厭心하며 求一切法호대 無疲厭心하며 聽聞正法호대 無疲厭心하며 宣說正法호대 無疲厭心하며 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無疲厭心하며 置一切衆生於佛菩提호대 無疲厭心하며 於一一世界에 經不可說不可說劫토록 行菩薩行호대 無疲厭心하며 遊行一切世界호대 無疲厭心하며 觀察思惟一切佛法호대 無疲厭心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疲厭無上大智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고달프지 않은 마음을 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모든 선지식을 친근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모든 법을 구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이니라.
바른 법을 듣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바른 법을 말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일체 중생을 부처님의 보리에 두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이니라.
낱낱 세계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내면서 보살의 행을 행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모든 세계에 다니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온갖 부처님의 법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데 고달프지 않은 마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여래의 고달프지 않은 위없는 큰 지혜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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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무피염심(十種無疲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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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열 가지 무피염심이라. 무피염심을 다른 말로 대별하면 보현행원이라고 하고 ‘허공끝이 있사온들 이내소원 다하리까’ 하는 대목을 흔히 무피염심이라고 한다.
‘피로하거나 싫증 나는 것이 없음’이 상징하는 것은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안다’ 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겐 싫증이나 피로함이 없다.
번뇌는 본래 없다.
6조스님 말씀을 빌리자면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요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라’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컨대 본래 없는데 우리는 본래 있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멸에 따라서 치덕거리니까 너무 힘이 든다.
그런데 본래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아 이것이 보현행원으로 가는 이세간이다’ 하는 것을 안다.
세간의 탐진치를 떠나서 하는 행동, 그것을 즉지번뇌무기라.
번뇌무기(煩惱無起), 무생,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진심도 일어나지 않는데 번뇌가 어디에 있느냐?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냐, 그 어디에 일어나는 것이 있느냐?’ 육조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능엄경을 보더라도 ‘5음이 여래장이요 6입이 여래장이요 12처가 여래장이요 18경계가 여래장이다, 세상 모든 것이 여래장이다’라고 딱 집어서 세상 모두가 ‘부처님의 창고다, 연화장세계다’ 라고 해놨다.
소동파도 자기의 게송에서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이라고 한 것처럼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본래 없다’ 일체 유위법이 여몽환포영이다.
이것을 아는 것을 무피염심이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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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발십종무피염심(發十種無疲厭心)하나니 : 열 가지 고달프지 않은 마음을 내느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위공양일체제불(所謂供養一切諸佛)호대 :여기부터 네 구절은 상구보리에 해당한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데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고달프지 않은 마음이라.
상구보리(上求菩提)라고 하는 것은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다.
이 두 구절을 중선봉행(衆善奉行)이라고 한다.
그 뒤 제악막작(諸惡莫作)은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이다. 흔히 줄여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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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네 구절은 상구(上求)가 되겠다.
친근일체선지식(親近一切善知識)호대 : 또 모든 선지식을 친견하는데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구일체법(求一切法)호대 : 일체법에 모든 법을 구하되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고달프지 않는다.
그 말이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는 구절들이다.
이런 강의시간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을 되새김질하고, 돌아보고, 완전히 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모른다’라기 보다는 ‘가끔씩 까먹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모여서 공부하는 것이다.
바른 법, 정법을 듣는 데 무피염심이라.
입법계법에는 이 무피염심의 대표적인 왕의 이름을 뭐라고 했는가? 아주 악독한 왕, 무염족왕이 있잖은가.
무염족왕, 아나라왕이라고 한다.
그다음 네 구절은 하화중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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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정법(聽聞正法)호대 : 바른 법을 설법하는 데 있어서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대표적으로 우리 어른스님의 8시 통근길이 있다.
‘8시 통근길에 유튜브를 보세요’
어른스님이 80화엄경강설 책을 다 마친 후에, 제가 대신 인터뷰를 할 때, 아나운서가 저의 생각을 물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다.
“스님 필생의 불사 같습니다.”
“스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제자가 스님을 평하기는 참 외람되고 할 수는 없지만 태양이 휴가가는 것 봤습니까?”
구름이 끼나 오늘처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태양은 안 뜨는 날이 없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자기 혼자 돌다가 밤도 있고 낮도 있고 게으르기도 하고 부지런하기도 하다.
요즘 제가 어른스님 그늘에서 계속 살펴본 바로는 ‘태양에 가버린 사람’ 입장에서는 밤과 낮이 없는 것 같다. 무피염심이다.
어른스님 요즘 주특기가 미끄러고 자빠지고 구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미끄러지셔서 한 20일 동안 허리가 불편하셔서 꼼짝달싹을 못하셨다. 보살보다 더 위대한 게 엄살이다. 화엄살인가 엄살인가? 스님도 멀쩡하게 밥 잘 자시고 할 일 하시다가, 우리가 올라가면 ‘아이 여기 좀 찔러봐라’ 하신다.
하여튼 그 노곤한 몸으로도 우리가 볼 때는 도저히 귀찮아서도 안 할 일을, 매일 유튜브 법문을 하신다.
참 신기하다.
정확하게 정법속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가슴에 담아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모양이다.
그런 어른스님께 우리가 제일 잘해드리고 보답해드리는 것은 화엄경을 공부하는 일이다.
스승의 은혜나 부모의 은혜는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으로 남게 된다. 여러분들이 계속 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을 저도 가지고 있다.
저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어른스님 때문도 아니고 불교 화엄경을 지켜나가야 되기 때문이다.
종정스님이 어제 어른 스님께 오셔서 인사도 하셨다.
어른스님이 종정스님한테 ‘화엄경을 조계종의 소의경전으로 삼도록 종정스님이 힘써 주세요’ 그렇게 말씀하셨다.
화엄경이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 되는 것은 간단하다.
원래 송광사가 조계총림이기도 하고 보조국사가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해서 후대에는 태고 보우가 중흥조로서 선종을 선양시켰지만, 보조(普照)라는 말씀이 화엄경에도 나오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보조 지눌스님이 화엄법사로 통한다.
화엄경이 조계종 소의경전이 되는 길은 문수강당에서 죽으나사나 화엄경을 계속 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화엄이 득세를 하면 거기서부터는 ‘하지 말라’ 해도 될 것 같다.
원효스님 의상스님 해인사나 범어사나 부석사나 화엄사나 그 외에도 화엄이라고 하는 우리 의식문 같은 것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 말법시대일수록 화엄의 종지를 더 펴야 된다.
특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세간품은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이 대목이 바로 하화중생이다. 하화중생을 화엄경에는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말씀드린다.
우리가 흔히 법화경에서 4보살이 이야기한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그 구절을 네 명의 보살을 등장시키면서 법화경에 딱 추려놓았다.
법화경은 백화점의 선물세트와 같다. 아주 깔끔하다. 질서정연한 선물세트같이 종합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일본 음식같기도 하다. 법화경 28품도 보면 14품씩 딱 잘라서 적문(迹門) 본문(本門) 이렇게 나눠놨지 않은가?
화엄경은 조금 방만하다고나 할까, 순수하다고나 할까, 재래시장 같다. 화엄경에는 모든 상품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있다. 규격화되지 않고, 물론 규격화된 것도 많지만, 화엄경은 순수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화엄경은 우리 한국 사람들 성정에 잘 맞는 것 같고 조선 핫바지 비슷하다.
선설정법(宣說正法)호대 : 선설정법호대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무피염심하며
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 데 있어서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무피염심이라.
일체중생, 중생무변서원도를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치일체중생어불보리(置一切衆生於佛菩提)호대 : 일체중생을 불보리에 두는 데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고달프지 않는 마음과
어일일세계(於一一世界)에 : 낱낱의 세계에
경불가설불가설겁(經不可說不可說劫)토록 : 시간과 공간을 탓하지 않고, 시대를 원망하지 않고, 시대를 극복하는 정신 상태, 공간을 극복하는 정신 상태, 환경을 극복하는 정신 상태가 수행자의 길이다, 이렇게 써놨다.
일일세계가 어떤가?
아주 지저분한 세계도 있고 맑은 세계도 있다. 빼딱한 세계, 엎어진 세계, 자빠진 세계 등 많이 있지 않은가?
길고 짧은 세계, 옹졸한 세계도 있고, 양심 없는 놈들하고 살아 가야 할 때도 있고 포악한 세계도 있다.
그 세계에 불가설불가설겁토록 1불 2불 3불 4불 5불 이종선근(而種善根) 이어무량천만불소(已於無量千萬佛所)토록
행보살행(行菩薩行)호대 : 보살행을 행하는 데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고달프지 않은 마음.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드는 것만 하고 끝내버리지 않는가?
그 네 구절은 하화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다.
십회향품에는 그렇게 해놨지 않은가?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 마지막으로 실제회향이 딱 이렇게 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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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일체세계(遊行一切世界)호대 : 모든 세계를 다니는 데
무피염심(無疲厭心)하며 : 고달프지 않은 마음과
관찰사유일체불법(觀察思惟一切佛法)호대 :온갖 부처의 법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데
무피염심(無疲厭心)이 : 고달프지 않는 마음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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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편안히 못 머무는 것은 우리의 중생 심보가 악독해서 편안하게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
조금 전에 법성도가 새겨진 핸드폰 고리를 하나씩 나눠드렸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의상스님이 만든 여러분에게 익숙한 법성게 부적이다. 의상스님의 천 년 부적인데, 저는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일단 돈오돈수(頓悟頓修)가 된다. 돈이 많이 들어온다. (대중 웃음) 정말로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난다.
그래서 실험해 봤다.
여러 가지로 해서 봉투도 만들고 그랬는데, 할 때마다 이상하게 너무 많이 불어난다. 세 배에서 한 열 배로 불어난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데 가만히 보니까 어른스님도 그러신 것 같다.
어른스님하고 저는 화엄경 외에는, 절을 운영한다든가 하는 일이 전혀 없다. 그런데 책을 보시하고 이런 일들이 늘 넉넉하다.
“스님 어려워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는데?”
저도 가만히 보니까 한 번도 힘든 적이 없는 것 같다.
법성게는 32구절인데 법성도에 30구절만 나와 있다.
안 보이는 두 구절 열넉 자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안 보이는 열넉 자가 보이면, 여러분들은 빚을 거의 갚고 이자를 뜯어 먹으면 된다.
“스님 저는 부처 안 됐는데요?”
이런 분들이 계시다. 그분들은 악독해서 안 된다.
업장이 소멸되면 어떤가? 원금 다 갚고, 할부 다 갚으면 어떤가? 그 뒤부터는 본전이 챙겨지고, 이자가 생기고 자꾸 불어난다.
‘아 내가 빚을 어느 정도 갚았구나’
그때부터는 무엇을 해야 되겠는가?
앉으나 서나 화엄경, 죽으나 사나 화엄경, 자나깨나 화엄경이다. 그렇게 화엄경을 하다 보면 빚은 얼추 갚아지는 것 같다.
부처님 경전 읽었는데, 업장이, 자기 양심이 참회 안 되겠는가?
결석하신 분들은 악독하다. 확실하다.
금강경에도 그 구절 그대로 나온다.
선세죄업(先世罪業)이 응타악도(應墮惡道)나, 자기의 복력으로서는 악도에 떨어질 것을, 겨우 턱걸이해서 인간 세상에 왔잖은가. 어디 같은 취급을 받으려고 하는가.
턱걸이해서 예비합격한 것 아닌가? 합격대기자다.
내가 남에게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받더라도,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이면 즉득소멸이니라.
업장이 소멸되면 거기서부터는 돈 되는 일밖에 없다.
여기 안주차법은, ‘만일 보살들이’ 할 때 ‘만일’ 영어의 ‘if’ 문장은 ‘거의 90프로 될 가능성이 없다’ 이렇게 보면 된다.
그런데 ‘만일’을 뚫고 우리는 지금 화엄경을 공부하고 있다.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기만 한다면
즉득여래무피염무상대지(則得如來無疲厭無上大智)니라 :부처님의 고달프지 않은 위 없는 큰 지혜를, 여래의 고달프지 않은 무피염심, 무피염심이라고 하는 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바로 무피염심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정등정각이 무엇이냐? 번뇌가 본래 없다는 것이다. 번뇌무기, 무생이다. 불생불멸을 확실히 깨달아 버리면 싫어하는 것도 없고, 사실 그렇다면 ‘돈 벌리는 것도 없겠네요’ 그 말이 맞다.
돈 벌리는 바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잃을 바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로, 늘 부자처럼 산다.
눈에 세포가 있는데 신경도 있다. 환하게 본다. 신기하잖은가? 귀가 있다. 환하게 듣잖는가? 신기하다. 피가 저절로 돌고 사람의 육체만 보더라도 신기하고 정신은 더 신기하다.
그것은 이다음 대목에 나오는데 ‘신통’이라고 해놨다.
제대로 쓰는 것을 신통이라고 해놨다.
어쨌든지 번뇌가 일어나는 바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피염심이다.
우리는 번뇌에 찌달려 살기 때문에, 악독하기 때문에, 싫증이
자주 난다. 넘어가겠다.
(18) 菩薩十種差別智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差別智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衆生差別智와 知諸根差別智와 知業報差別智와 知受生差別智와 知世界差別智와 知法界差別智와 知諸佛差別智와 知諸法差別智와 知三世差別智와 知一切語言道差別智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廣大差別智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차별한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모든 근기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업과 과보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태어나는 차별을 아는 지혜와, 세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이니라.
법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모든 부처님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모든 법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세 세상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일체 말하는 길의 차별을 아는 지혜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광대하게 차별한 지혜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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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십종차별지(菩薩十種差別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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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지의 차별은 남을 차별해서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고 알맞게 방편 지혜가 있다, 이런 말씀이다.
어른한테는 어른에게 딱맞게 어른처방이 있고, 아이한테는 아이처방이 있다.
미친개에게는 약을 주면 안 된다. 몽둥이로 다스려야 된다.
그러니까 몽둥이로 두드려 팰 사람은 두드려 팬다.
6조스님은 ‘상벌이 분명하다’라고 해석을 해 놓았다.
상 줄 사람, 벌 줄 사람이 분명하다, 다른 말로는 인과역연( 因果亦然)이다. 인과가 분명하다.
우리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죽으나 사나 자나 깨나 화엄경이니까, 허물이 있으면 화엄경, 화엄경이 알아서 할 것이다.
일엽편주에 싣는 것이 아니고 화엄경에, 그냥 반야용선에 우리를 실었기 때문에 가고 안 가고는 화엄경 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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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차별지(有十種差別智)하니 : 열 가지 차별한 지혜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차별한 지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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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지중생차별지(所謂知衆生差別智)와 : 1번 소위 중생의 차별을 아는 지혜이니라.
지제근차별지(知諸根差別智)와 : 2번 모든 근기의 차별을 아는 지혜다. 사과나무에게 대놓고 ‘감 달려라’하면 안 되지 않는가. 역할이 따로 있다.
지업보차별지(知業報差別智)와 : 업과 과보, 업보, 인과를 아는 지혜와
지수생차별지(知受生差別智)와 : 태어나는 차별을 아는 지혜와
지세계차별지(知世界差別智)와 : 세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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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법계차별지(知法界差別智)와 : 법계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지제불차별지(知諸佛差別智)와 : 모든 부처님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자세한 건 여러분들께서 다시 되새김질하고 공부를 하시기 바란다. 진도 차원에서 좀 빨리 진행해 나가겠다.
지제법차별지(知諸法差別智)와 : 모든 법의 차별을 아는 지, 유위법과 무위법을 통틀어서 일체제법이라 한다.
제법의 무아를 완전히 꿰뚫어야 차별지가 된다.
지삼세차별지(知三世差別智)와 : 삼세의 차별을 아는 지와
지일체어언도차별지(知一切語言道差別智)가 : 일체의 어언도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절이다.
음성교체라고 말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말은 소리가 아니라 말은 뜻이다. 어언도는 뜻을 잘 안다는 것이다.
말이 하나의 소리 같으면 일본말을 하든지 중국말을 하든지 한국말을 하든지 상관이 없겠지만, 말은 뜻이 흐르고 있다.
문자에 뜻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뜻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라고 한다.
‘남에게 뜻을 잘 전달하고자 그 언어를 선택한다’ 이렇게 볼 수가 있다. 일체 말하는 길의 차별을 아는 지혜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광대차별지(則得如來無上廣大差別智)니라 : 즉득, 좀 이따가 하는 것이 아니고, 즉득 그 자리에서 여래의 무상한 최고의 광대한 차별한 지혜를 의미한다.
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근상분별이라고 한다.
차별을 다른 말로는 분별이라고 하는데 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의 변재능력이 뛰어난 것을 여기서는 차별지라고 말한다.
완벽한 지혜를 차별지라고 해놨다. 다른 말로는 일체종지라고도 한다. 차별종종 종류별로 완전히 아는 것을 차별지의 완벽한 것을 가지고 지금 설명해놨잖은가.
그래서 지혜의 변재가 뛰어나서 중생심을 따라서 아주 알맞게 유인해서 꼬이듯이 적당하게 주는 것이다.
받아들일 태세도 안 되는데, 이런 콘센트에 2만 볼트를 갖다 탁 꽂아버리면 전기장판이 박살나 버린다.
100볼트는 100볼트, 200볼트는 200볼트, 220볼트는 220볼트 충분히 어프로치 시켜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됐나?’‘됐다’ 해서 화두도 안 된 사람한테 아이보고 ‘니는 와 못 깨치나’ 이러면서 눈을 막 쪼개버리고 이러면 골치 아프다.
화엄경도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는 사람한테 앉아가지고 ‘화엄경 보라’ 그러면 터져 죽어버리잖는가.
그러니까 여기서 차별지라고 하는 제근기를 안다고 하는 것은 중생심을 따라서 거기에 아주 알맞게 처방하는 것이다.
약에서 어른들 처방을 뭐라 하는가? 큰 대자를 써서 대방이라고 한다. 어른들이 약을 세 알 먹는다면 아이들은 몇 알 먹어야 되겠는가? 한 알 먹든지 반 알을 먹든지 해야 된다.
그런데 요즘 제가 강당에 와보면 치문반 다룰 게 따로 있고 대교반이 다룰 것이 따로 있는데, 우리 학감스님이 얼마나 볶아버리는지 치문반이 죽어버리려고 한다.
여기 와 계신 학감스님이 ‘크게 안 볶았는데요?’ 한다.
잠깐 여담을 하고 가겠다.
치문반이 하도 말을 하니 기가 차서 “누가 문제 있노?”하고 제가 신기해서 물어봤다.
“스님, 입승스님이 이렇고.”
입승스님에게 불만 있고
“아이고 못된 스님이네, 또 누가 문제 있노?”
“찰중스님에게 문제가 있고”
“아이고 큰일 났네, 왜 스님 마음을 몰라 주노? 또 누가 문제 있나?”
“학감스님이 어떻고 제 말도 안 들어주고.”
그런 얘기들을 가만히 다 듣고 나서 제가 뭐라고 했겠는가?
“니가 문제다. 스님이 문제다.”
이러니까
“저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래, 문제 없는 게 문제다.”
그래서 그 문제를 언제 깨닫겠는가?
내가 볼 때 졸업할 때까지 못 깨달을 것이다. 이제 스물 열덟살 짜리인데 아마 환갑 진갑 다 지나 나중에 보면 ‘아 그때 학감스님 너무 고마운데’이럴 것이다.
몰라야 치문반이지 알면 치문반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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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기의 철길을 자기가 내는 사람들”...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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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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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몰라야 치문반이지
알면 치문반이겠는가?
자비하신 말씀!
모르니 배우지
알면 배우겠는가?
자상하신 가르침따라
화엄경 공부하는 공덕
모두 회향하기를...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