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121]
16:47:10
박진성조회 6267 추천435 비추천0
10월 20일
4년 전 오늘 10월 20일. 나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된 날이다. 정확하게 기억한다. 어떤 날짜는 기억이 아니라 인식이 아니라 피부로 기억된다. 이즈음이 되면 나는 이상한 감각이 몸에 기어다니는 걸 실감한다. 가령 정수리에 압정 같은 것이 박혀 있는 느낌이 심장으로 배로 다리로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린다.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날씨를 자랑하는 이 계절의 기후는 내게 고통이 되었다. 어떤 밤엔 이불을 돌돌 말고 어서 지나가달라고 끙끙대다가 새벽을 맞곤 한다. 정말 지옥이 되었다.
나에 대한 기사가 몇 차례 나가는 동안 기자들이 묻는 것은 대개 이런 거였다. 한 명도 아니고 왜 복수의 여성들이 당신을 무고했냐고. 지인들이 궁금해 하던 것도 그거였다. 몇 번 강조해서 말을 했는데 이상하게 그 부분에 대한 답변만은 누락되었다. ‘돈’ 때문이었다. 나는 그 여성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단톡방에서까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최초로 허위 폭로를 했던 여성은 ‘돈’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애초에 나를 'B시인‘이라고 지칭했던 그 여성은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했다. 판결문에 적시되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여성은 수강료를 전혀 내지 않는 자신에게 더 이상 시작 지도를 해주지 않자 섭섭함을 느끼고 원고를 압박하기 위해 트위터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점, 실제로 A 여성은 음해성 트위터 글을 올린 뒤 원고와의 대화에서 돈을 요구하기도 한 점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부분 적시사실은 허위로 봄이 상당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가합 504355 판결문 중.)
A 여성과 나는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시 창작 지도를 위해 대부분의 대화를 카카오톡으로 진행했는데 “용돈주세요”, 이런 말을 자주했다. 이상했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A 여성이 실명을 공개하자 “나도 당했다”는 폭로가 계속 나왔다. 어떤 여성은 전화를 해서 500만 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와 만났던 사실을 폭로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정말 지옥이었다. 무려 11년 전에 만났던 여성이 폭로하는 일도 있었다. 명백한 마녀사냥이었다.
10월 21일. 이 폭로들을 취합해서 H일보 H기자가 기사를 썼다. 제목은 무려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이었다. 즉각 해당 기자에게 전화해서 따졌다. 만나지도 않은 미성년자를 어떻게 성추행하냐고. 그리고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C여성, D여성, E 여성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여성들이 성관계 직후 보낸 문자들을 캡처해서 보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다음엔 호텔에서 해요”, “그때 왜 입에다 안 해 줬어요”, “저는 이제 제주도로 가요” 등등. 기사에 반영해 달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니까 ‘2차 가해’ 운운하면서 기자는 나의 발언권을 박탈했다. 기사는 계속 수정됐다. 애초에 없던 나의 입장이 기사 말미에 더해졌다.
그렇게 기사 하나가 나오고 한겨레, 스포츠서울 등등. 계속 기사가 나왔다. 나에 대한 취재는 단 한 건. '뉴스페이퍼-문학신문'의 이민우 기자가 나를 만나러 대전에 온 게 전부였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도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방송사 3사 메인 뉴스에서 나의 이름과 나의 얼굴과 함께 성폭행범,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떠돌아다녔다. 극단의 상황이 되면 인간은 극단으로 비현실감을 느낀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나는 TV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실신했다.
2016년 10월은 그렇게 보냈다. 무언가 뚫어지게 보다가 실신, 그것의 반복이었다. 그 여성들도 해마다 10월이 되면 나처럼 통증을 느낄까. 그 기자들도 해마다 10월이면 나처럼 환상통을 느낄까.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새벽에 일어나 벌컥벌컥 물을 마시곤 한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이렇게 꾹꾹 눌러 쓴다.
그게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를 쓰고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내고 싶다. 간신히 연애시집 <하와와, 너에게 꽃을 주려고>를 냈는데 그 시집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기약 없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두 권 분량의 시집 원고를 보고 있다. 고치고 다시 쓰고, 할 수 있는 게 사실 이것밖에 없다.
이 가을 나의 바람은 정말 그것 하나뿐이다. 그 바람 하나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누구든 살아 있으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살아야겠다.
- 시인 박진성 올림.
[베댓]
결국된다
18:22:03
이렇게 조금씩 하나하나 털어내세요ㅜㅜ 함께 할께요!!
Tmany
20:50:17
글을 주욱 읽어보니 버티신게 대단하십니다ㅠㅠ
기운내세요!!응원합니다!!
🎗한가한그네❤️
16:50:14
아....정말 어찌 견디셨을지 감히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그래도 드릴 수 있는 말은 꼭 견뎌내시라는 말뿐입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이번에 저녁의 아이들과 하와와 너에게 꽃을 주려고 시집을 샀어요.
저녁의 아이들에 있는 '제라늄' 을 몇번읽으면서 시집 찍은 날을 몇번이고 봤어요.
'나비'를 읽으며 결혼과 사랑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힘내세요
여러 커뮤니티에서 가끔 시인님 글을 보았습니다.
사셔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혐오와 극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불꽃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바람을 지피고 땔나무를 던져넣는 자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시인님이 느끼신 비현실감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환상통이 아마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될 것 같고, 이미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있겠죠.
그래도 살아서 다행, 또 다행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