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본 영화가 '와일드'다. 원작은 500쪽이 넘는 에세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런닝 타임 120분으로 찍어냈다. 원작의 구체성이 생략된 이 영화는 pct라는 장장 4300킬로 트래킹 코스를 완주하는 92일간의 이야기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줄창 걷는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엘콘도 파사가 주인공이 겪는 '슬픔의 황야'를 잘 받아낸다. 원작없이 본 게 다행이다. 원작이 아니라 그것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력이 놀랍다. 원작에 근거하되 원작을 초월하는 것은 다른 문제. 이것은 자본이나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소화하는 관점의 문제이지 싶다. 원작의 간섭없이 잘 봤다는 것을 강조한다. 때로, 원작도 원작이라는 이름의 트라우마가 된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영화다. 당분간 영화는 보지 않아도 되겠다. 사랑을 거푸 할 수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