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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행46- 제주도 삼성혈, 천제연폭포
아침에 백성원해장국 맛집으로 갔습니다. 해장국이 맛있게 하고 또한 게장도 반찬으로
주었습니다.
삼성혈(三姓穴)은 제주도 칼호텔과 제주도 민속자연박물관 사이 송림 가운데 위치한 3개의
구멍입니다.
고(高),양(梁),부(夫)씨의 사당의 건시문입니다. 1964년6월10일 사적134호로 지정되었습
니다.. '모흥혈'이라고도 합니다. 탐라국 개국의 전설이 있는 유명한 곳입니다. 태고 시대에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의 3신이 이 세 웅덩이에서 태어나
사자(使者)가 데려온 3처녀를 배필로 맞아 살면서 탐라국을 세워 제주도의 개조가 되었다
합니다.
현재도 3웅덩이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사당(祠堂)·비석이 있다 1526년 제주목사 이수동이
양·고·부씨의 후손들에게 혈제를 지내게 하면서 치제가 시작되었다. 1698년 삼을나묘를,
고려사 고기(高麗史 古記)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탐라는 남해 가운데 있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삼신인이 땅에서 솟아나니 그들은 바로 을라 삼형제이었으니 화살을
쏘아 떨어지는 곳을 도읍으로 정하기로 하고, 맏이를 양을나, 버금을 고을나, 셋째를 부을나
라 하였습니다. 세사람은 거친 들판을 돌아 다니며 사냥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붉은 진흙으로 봉한 나무 상자가 동쪽 바닷가로 떠내려 온 것을 발견하고 나가서 열어
보니 그 안에 또 석함(石函)이 있고 붉은 띠에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한 사람 따라와
있었습니다. 석함을 여니 푸른 옷을 입은 처녀 3명과 망아지, 송아지와 오곡 씨앗 등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에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벽랑국 사신입니다. 우리 왕이 이 세 왕녀를 낳고 이르되 서해
한가운데 있는 산에 신자(神子) 3명이 강생(降生)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려는데 배필이 없다
하시고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 왕녀를 모시게 하였습니다.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大業)을 이룩하시옵소서"하고 홀연히 구름을 타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3명은 나이 차례로 나누어 배필을 삼고 샘물이 달며 땅이 기름진 곳에 나아가서 활을 쏘아
터를 정하니 양을나가 사는 곳을 제일도(第一徒),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이도(第二徒),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삼도(第三徒)라 하고 비로소 오곡을 파종하고 또한 망아지와 송아지를
기르니 날로 부유하고 번영하였습니다.
王朝實錄(왕조실록 42~P.163)에 의하면 영조5년(1771)에 高漢俊(고한준)등이 主上(주상)께
奏請(주청)하는 상소문에도 良高夫(양고부)로 썼다. 또한 李丙燾(이병도)著의 韓國史(한국사)
에도 良高夫(양고부)요, 金泰能(김태능)著의 濟州島史論攷(제주도사논고)에도 良高夫(양고
부)라 했으며 國史大事典(국사대사전)•한국사대사전 등에도 良高夫(양고부)라고 기록하였
으며, 玄容駿(현용준)著 「濟州島神記(제주도신기)」에도 良高夫(양고부)라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제주목(濟州牧)" 본주(本州)는 전라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그 주(州)의 고기(古記)에
이르기를,“태초(太初)에는 사람과 물건이 없었는데, 신선[神人] 세 사람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다. 지금도 주산(主山) 북쪽 기슭에 ‘모흥(毛興)’이라 하는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곳이다. 맏을 ‘양을나(良乙那)’, 둘째를 ‘고을나(高乙那)’ 세째를 ‘부을나(夫乙那)’라고
하였습니다.
삼성혈을 보고 용두암으로 갔습니다.
용담2동, 공항 북동쪽 해안에 있는 영두암은 제주관광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공항과 가장 가까운 관광지로 해외여행자나 단체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입니다.
용이 포요하며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형상을 따 용두암이라 이름지어졌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인근 계곡 용연에서 살던 용이 승천하려다가 돌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의 높이가 10m, 바다 속에 잠긴 몸의 길이가 30m 쯤 된다고 하니, 괴암을 응시하고
있자면, 정말로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상상을 할법도 합니다.
용두암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서쪽으로 100m 쯤 떨어진 곳이 적당하며, 바다가 잔잔한 날보다
파도가 심하게 몰아치는 날이 적격입니다. 마치 천지개벽이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신의 노여움 속에 용이 '으르르' 울부짖으며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듯 하기도 합니다.
용두암의 전설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내려옵니다. 제주 용담동 바다 깊은
곳에 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긴 세월 용이 되고 싶은 꿈만을 키우며
어둠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둠에서 이겨내야 하는 세월이 천년이라던가? 이무기는 그저 꿈틀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번쩍번쩍 빛나는 비늘과 날카로운 발, 그리고 멋진 수염과 커다란 눈을 가진 용을
부러워했습니다.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람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천년이란 세월도, 빛을 볼 수 없는 어둠도 모두 이겨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승천하던 날. 드디어 번쩍이는 푸른빛 비늘과 길다란 수염, 그리고 날카로운 발을
치켜들고 하늘로 기세등등 승천하는데 그만 한라산신이 쏜 화살에 맞아 다시 바다로 떨어
지고 만 것입니다. 바다에 떨어지던 용은 긴 세월 참고 참은 바람이 물거품이 됨에 억울하여
차마 죽지 못하고 머리를 바다위로 지켜들어 포효를 하다 바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억울한 울음을 우는지 입은 크게 벌리고 눈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바다도
용의 안타까움을 아는지 유독 이곳의 바다는 잔잔하게 숨죽이고 있습니다
용두암 옆의 아래에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사람들에게 판매를 합니다.
방앗간앞에 참새가 못 지나가듯, 해녀가 잡은 해산물 앞에 Lee Brothers가 그냥 못갑니다.
ㅎㅎ
5만원어치의 행복감을 얼굴로 표현합니다. 특히 멍게 좋아하는 이태완부인, 부산 바닷가에서
자라난 이병철부인 또한 브라질해변에서 가끔 낚시로 고향 향수를 달랜 이병철선수
캘리포니아 몬추레이에서 전복 잡고 다녔던 이태완선수 그저 쳐 먹느라 정신없습니다.
고추장을 쳐 먹습니다.ㅎㅎㅎ
공항이 가까워 바닷가에 비행기가 솟구쳐 오릅니다.
해산물을 먹고 용현계곡으로 갔습니다. 옛날 용이 살았다는 용연(龍淵)이라고 하며 제주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한천하구에 깊은 계곡형태로 물이 맑고 질풀러서 취병담(翠屛潭)
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주위경관이 수려하여 영주12경중에 "용연야범(龍淵夜泛)'의
장소로 제주의 부임한 목사들은 밤의 용연에서 뱃노리를 즐겼다고 합니다. 하천 양쪽 벽이
주직절리로 약 10m의 V자형 깊은 계곡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을 이룹니다. 겨울철만 제외하고
뱃노리를 즐길수 있습니다.
던킨도너츠집이 있어 도너츠와 커피를 마시며 즐겼습니다.
던킨 도너츠(Dunkin' Donuts)는 미국 도너츠 가게로 프랜차이즈 기업입니다. 1950년
매새추세즈 주에서 윌리엄 로젠버그 가 설립하여 현재 전세계 6,200개 점포에서 2,700만명
고객이 방문한다는 조사결과 토대로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와 좋은 빵을 굽는 체인점"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던킨도너츠는 베스킨라빈스, 미스터 도넛과 함께 던킨 브랜드의 자회사
계열에 속하고 있습니다.
정주석과 정낭에 대한 설명입니다.
주상절리 입구의 소라에서
제주 중문·대포 해안 주상절리대(濟州 中文·大浦 海岸 柱狀節理帶)는 서귀포 대포동에 있는
주상절리 해안으로 그 가치가 높아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443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제주중문 ·대포해안주상절리대는 서귀포시 중문동 ·대포동 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습니다.
약 3.5km에 이르며, 용암의 표면에는 클링커가 형성되어 거친 표면을 보이나, 파도의 침식에
의해 나타나 있는 용암단위(熔岩單位)의 중간부분을 나타내는 그 단면에서는 벽화와 같은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잘 발달되었습니다.
주상절리의 크기는 키가 큰 것은 20m 내외로 발달하며 상부에서 하부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고
다양한 형태의 석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식애를 따라 발달한 주상절리는 주로
수직이나 수평인 곳도 있으며 주상체의 상부단면은 4-6각형입니다. 해식작용으로 외형이
잘 관찰되고 서로 인접하여 밀접하게 붙어서 마치 조각 작품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제주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현무암 용암이 굳어질 때 일어나는 지질현상과 그 후의
해식작용에 의한 해안지형 발달과정을 연구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질 자원으로서
학술적 가치와 경관이 뛰어난 곳입니다.
이 해안은 주상절리 해안으로 육각기둥 모양의 절벽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파도가 높은 날
에는 더욱 웅장하며 예전에는 사람 출입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통재를 합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것인데, 기둥의 단면은 4각~6각형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가 급격히 냉각되면 큰 부피변화와
함께 수축하게 됩니다.
이때 용암이 식으면서 최소한의 변의 길이와 최대의 넓이를 가지는 "육각기둥"의 모양으로
굳는 경향을 보입니다. (원은 선의 길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같은 길이 대비, 다른
도형보다 넓이가 크지만 원으로는 빈틈 없이 조밀한 구조를 생성할 수 없다.) 수축이 진행
되면서, 냉각중인 용암표면에서 수축이 일어나는 중심점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지점들이 고르게 분포하면서, 그 점을 중심으로 냉각,수축이 진행되면
다각형의 규칙적인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균열들이 수직으로 발달하여
현무암층은 수천 개의 기둥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용암의 두께, 냉각 속도 등에
따라 높이 수십 m, 지름 수십 cm의 다양한 모습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막혔던 가슴이 탁트이도록 시원스레 부서지는 파도, 신이 다듬은 듯 정교하게 겹겹이 쌓은
검붉은 육모꼴의 돌기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중문관광단지 동부지역 해안가의
주상절리대는 자연의 위대함과 절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제주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50호입니다. 파도가 심하게 일때는 높이 20m 이상 용솟음 치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천혜의 절경으로 인해 테마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명소입니다
엘에이는 팜츄리가 많아서 눈에 익습니다.
Palm Tree의 멋진 모습을 이곳 제주도에서 볼수가 있었습니다.
나랑 닮은 돌하루방. 돌하루방중에서 이 돌하루방은 다른것에 비해 눈이 큽니다.
하루방은 제주도 사투리로 할아버지를 뜻합니다.
옛날 제주도에 목사가 부임해 왔습니다. 제주에는 큰 성문이 네개가 있었는데 성문을 지키는
것이 관의 큰일중에 하나였습니다. 사람대신 성문을 지키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목사는
큰 돌기둥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성문뿐만 아니라 마을과 마을 경계를 돌기둥을 세워서
경계하는 표시를 하였습니다. 단순한 돌기둥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사람들은 목사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고민하던 목사가 잠이 들었을때 꿈에 왠 금빛 옷을 입은 사람이 나와서
말을 했습니다. 이 제주에서 가장 진실된 석수에게 돌기둥을 사람모양으로 세기게 하여
세워두면 적의 침입이 없고 도둑질이 없어지고 마을이 편안해질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목사는 사람을 시켜 모든 석수를 불러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중 그어느 조각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목사는 길을 가다가 어떤 집앞에 작은 조각들이 놓여져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목사는 문에다 귀를 대고 집안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집에는 늙은어머니를 모시는 석수가
살고 있었는데 따뜻하고 효성어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목사는 그곳에 사는 석수를
불러 돌조각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석수는 뜻밖에 할아버지 모습을 한 조각을 만들었
습니다. 할아버지 모습을 본 목사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꿈속에 나왔던 금빛 옷을 입은
사람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목사의 명으로 제주 곳곳에 그 조각상이 세워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조각상이 세워지고 난 다음 도둑이 없어지고 난리가 사라졌습니다. 목사는 이
조각상을 우석목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조각상이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믿고
고마운 마음에 할아버지라는 뜻 하루방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을을 지켜주고 재액을 없애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세운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하르방 할방 하루방은 제주도 방언입니다.
즉 돌 하루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입니다.원래 고유이름은 우석목, 벅수머리였습니다.
돌하루방이라는 말은 근래 토속적인 멋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것입니다. 돌하르방은 수호적인
기능과 주술적인 기능 그리고 위치표식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돌하루방의 모자를 보면
그 모자의 모습은 남성 생식기를 본뜻것입니다.그것을 숭배하거나 그것 수효를 많아지기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돌입니다. 제주도의 예전에는 바람, 돌, 여자 많아 삼다도라고
할 만큼 여자의 비율이 남자보다 많아 남자를 위한 상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돌하르방'은
근래에 생긴 명칭으로 1971년 문화재이름으로 채택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어졌습니다.
돌하르방 만드는 석공예 명인 장공익(82, 제주도 한림읍)옹께서는 금능식물원을 운영하시며
"현무암은 질긴 돌이지, 더 오래 매달려서 만들어야 돼. 그런다고 더 잘만들수 없는거지.
많이 만들수도 없고, 그게 제주도의 돌하르방이야, 사람들은 그 노력을 잘 몰라" 27살때부터
장공익 옹은 돌하르방을 만들기 시작하여 55년을 함께 해 왔습니다.
제주에는 조선시대때 만들어진 돌하르방이 45기가 있습니다. 그중 단연 명작은 1754년
제주목사 김몽규(金夢圭)가 관아앞 관덕정에 세운 돌하르방입니다. 관덕정 돌하르방은
장승의 기본 도상대로 퉁방울 눈에 주먹코를 하고 한손은 가슴에 한손은 배에 움켜주고
머리엔 벙거지를 쓰고 있다. 게다가 고개를 6시5분 또는 6시5분전으로 비스듬히 숙이고
몸을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약 80도로 비틀어 정면정관(正面正觀)을 파괴했습니다. 지역과
시대를 넘어 누구나 좋아하는 형상이 되고 마침내는 제주도의 마스코트로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는 서귀포에 있는 폭포입니다. 천제교(天帝橋) 아래쪽에 상·중·하의
3단 폭포로 이어져 있다. 천제연 제1폭포는 길이 22m, 수십m의 소를 이루며, 이 물이 흘러
내려 다시 제2·제3의 폭포를 만듭니다. 폭포의 양안 일대에는 난대림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한국에서는 희귀식물인 송엽란(松葉蘭)·담팔수((膽八樹) 등이 자생합니다.
천제연(天帝淵)제1 폭포는인 수심 21m의 못을 이룬 물이 연못을 이루고있습니다.천제연
제1폭포는 평상시에는 절벽처럼 보이나 우기에의해 비온후 물줄기가 형성되어 폭포가 되는
건천(乾川)이다. 제주도에는 이와같이 비온후 물줄기가 형성돼 폭포가 되는 엉또폭포가
있습니다. 천제연의 주위 절벽은 주상절리입니다.천제연 제2폭포 및 제3폭포는 천제연
제1폭포와는 다르게 늘 폭포수가 흘러 계곡의 장관을 이룬다.
이폭포는 제2폭포입니다. 천제연 연못물과 지류가 제2폭포를 이루고 제2폭포를 거쳐서
제3폭포를 다시 이룬후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폭포마다 형성되어 있는 연못에서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천제연 주변 난대림 안에는 지방기념물 제14호로
별도 지정되어있는 담팔수,솔잎란등 희귀식물 자생하고 있습니다.
천제연 2폭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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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마다 제주도에 갔어도 한라산 등반에 치중하느라~~
땡규!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을 알려줘서 고맙네
ㅎㅎ1969년 여름방학에 전윤길이랑 가고 약10년전에 가고 3번째..근데 가는데만 가니까 이번에 처음 간곳도 많아요.
35년전에 본 제주 풍경 잘 보았네.
나는 70이 되어 꼬부랑이되었으니
人生無常일세...
이풍원 박사 수고하셨어요..
35년이면 많이 변했을꺼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