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임병식rbs1144@daum.net
인생이 무엇인가.
사람의 한 생은 길게 잡아도 100년이다. 소동파는 박박주에서 백년은 순간이고 만세도 바쁘게 지나간다(百年瞬息/萬世忙)고 했다. 그런 삶을 살다가는 인생. 또다른 인생을 노래한 말에 다산선생의 어느 시구(詩句) 도 잘 표현하고 있지 않는가 한다.
'보름달뜨면 구름잡주 끼고 (월만빈치운(月滿頻値雲)꽃이 활짝피면 바람이 불어댄다 (화개풍오지(花開風誤之). 그것이 인생살이가 아닌가 한다
. 당나라 시인 진자앙(陳子昻)은 인생을 이렇게 말했다. ' 앞전 옛사람을 볼 수 없고/ 뒤로 오는 사람도 불 수 없다'라고. 일찍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인지한 것은 어떤 움직임이었다. 다섯 살때 처음으로 기차를 탔는데 움직이는 건 기차가 아니고 바깥풍경이 움직였다. 그럼으로 생각해 보면 그 지각자체도 바로 인식한 것이 아니다.
그날은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읍내 장을 따라나섰는데 기커먼 기차가 오르니 처음은 한번 움찔하더니만 마냥 제자리에 있는 데 눈앞으로 전신주가 다가오고 이어서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사물이 움직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월이 흐르는 속도가 10대 때는10km로, 20대와 30대에 가속이 붙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찍이 문학을 붙들었다. 소질 여부를 떠나 자연스럽게 원고지를 가까이 하고 문학동네를 기웃거리게 되었다.
생각하면 어쭙잖고 치기어린 얘기지만, 나의 10대 때의 문학 열정은 자못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끈 선망의 잡지 '학원' 이 있었는데 운좋게 두차레나 입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유명대학 백일장과 고교생 작품공모에서 각각 2,3등에 입상하게 되었다.
같은 또래로서 글을 쓰는 학생으로 아동문학가 정채봉과 소설가 최명희가 있다. 정채봉은 당시 광양농고를 다니고 있었고, 최명희는 전주기전여고를 다녔는데 학원의 '우리네 동산'문예란에서 작품으로 자주 만났다.
당시 생각나는 건 정채봉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최명희는 글평을 해주시던 김동리, 최정희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문장이 유려하고 구사력이 뛰어나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 일이 있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정채봉도 가고, 최명희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렇지만, 정채봉은 아동문학가로 일가를 이루고 그녀 또한 '혼불'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나는 지금껏 무얼 했는지, 후회가 남기만 한다. 세월을 아껴 쓰지 못하고 허송해 버린 대가이다.
최근 전라북도에서 최 작가를 기리기 위해 소위 최명희 문학상을 비롯하여 그녀의 거리를 조성한다는 말을 들었다. 기쁜 한편으로 자신은 세월을 유용하게 쓰지 못한 것이 대차대비표로 나타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도 하다. 하나, 그녀는 세상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았기에 받은 평가이니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을 것이다.
인생을 생각해 본다. 누구나 살면서 풍파를 겪는데 어떻게 유종의 미를 거두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인생을 생각하자니 문득 어느 평범한 연탄배달부가 하던 말이 스쳐간다. 그가 어느날 TV에 출현하여 대담 중에 이런 말을 했다.
, "인생은 오르기가 어렵다는데, 연탄배달은 내려가는 길이 더 어려워요" 그 말에 감탄했다. 듣고서 곰곰이 새겨 보니 그만한 진리도 인생철학도 없었던 것이다.
'인생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어렵다.' 이 말은 사람이면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흔히 노욕( 老慾) 때문에 곤경을 치른다. 코끼리가 머리에 달고 다니는 상아 때문에 화를 입듯이 사람은 자고로 욕심이 화를 부른다. 내려오는 길이 미끄러우면 넘어져 상처가 나거나 불구가 되기 십상이다. 반드시 브레이크 점검은 필수이다.
사람은 살아가며 너무 낙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완벽한 것은 없다. 동물들을 보면, 뿔이 있는 짐승은 이빨이 강하지를 못하고 이빨이 강한 놈은 또한 뿔이 없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게 공평할 진데,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룸을 두고 너무 크게 마음 상하며 살 필요가 있나 싶다. 문제는 어떤 삶을 사느냐일 것이다. 고대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룬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의 문제다"라고 . 그렇다면 나도 마땅히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자괴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무언가를 실천하는데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보내는 세월의 체감은 대체로 나이에 비례한다는데 최근에 들어보니 그 속도가 70KM쯤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여생은 그리 오래 남아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이즘 들어 특벌히 눈여겨지는 것이 있다. 인물에 대한 평가인데 위나라 사람 이극이 한말이 귀에 꽂힌다. 다섯가지인데 첫째, 불우하던 시절 어떤 친구와 사귀었나. 둘째, 부유할 때 누구에게 나누어주었나. 셋째, 지위가 높아졌을 때 누구를 등용했나. 넷째, 궁지에 몰렸을 때 바른 방법으로 헤쳐 나갔나. 다섯째, 가난할 때 남의 것을 취하지 않았나.하는 것이다.
백 번 지당한 말씀이 아닌가 한다. 늦었지만 나도 그것을 배워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사는 동안은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사후에 이름 없이 무명작가로 남을 지라도.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