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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그리던 발칸반도를 다녀왔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이 아직은 이름도 생소한 발칸반도를 다녀와서 사진으로 보여준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모습이 늘 머리속을 맴돌아.. 마음으로 벼르다가 5월 하순 10일간의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이는 자연경관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셧터만 누르면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되는 아름다운 경관과 서울근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맑고 청명한 날씨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여기 그 여행의 기록들을 올립니다.^^ 1 . 드보르보니크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드보르보니크로 가는 길 버스 차창에서 본 풍경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부르며 극찬했던 두브로브니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히는 아드리아해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다도해처럼 많은 섬으로 인해 파도가 거의없고 온화한 날씨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유럽인들이 선망하는 휴양지로 이름난 곳이라 합니다. 평균 높이 25M 폭 6M 길이 2KM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아직도 중세도시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발칸전쟁(유고 내전)으로 도시가 훼손되어 1991년에는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오르기도 했던 곳이랍니다. 유럽에 아시아를 최초로 소개한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이곳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드보르보니크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스지르산 전망대에서..
우유빛 대리석이 깔린 중앙대로인 "플라차"거리입니다.
이제 성벽위로 올라가 봅니다.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경이 그림같습니다.
다시 시가지로 내려 왔습니다. 거리의 악사와 한가로운 관광객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자유시간의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꽃보다 누나"란 방송프로로 인해 유명해진 "부자카페"를 찾아 보려고 주민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자기를 따라 오라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는데.. 힘겹게 찾아가보니 다른 카페였습니다. "부자카페"가 뜨니까 또다른 카페가 생겨 성업중이었습니다. 드디어 힘들게 입구를 찾았습니다. 이곳이 부자카페라는데.. 바닷가로 내려가 전망을 봅니다. 한쌍의 연인이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유람선을 타려고 항구로 왔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섬 주변을 돌아봅니다. 난공불락의 성답게 견고하게 지어졌습니다. 오직 나풀레옹에게만 정복되었을 뿐이랍니다. 앞이 바다이고 뒤는 척박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것은 요즈음의 홍콩과 같이 해상무역이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에서 멀리 터키와 서유럽을 잇는 지중해의 깃점에서 이곳은 해상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고 합니다. 무역이 흥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도시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단단한 돌이 없었던 이곳에서 저 성을 쌓기 위해 항구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통행료로 돈보다 좋은 돌을 요구하여 저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일부 글은 이종헌 지음의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이번 여행기는 정병호 지음의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에서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
첫댓글 한마루님 그림같은곳이네요!
우~~~~와^^
좋아요~~더보여 주실거죠~~~???
감사합니다.^^
사진작업이 되는 대로 이 곳에 계속하여 올리겠습니다.
멋~진곳을 다녀오셨군요~^!
한컷 한컷이 마치 엽서 같슴다요~
넘나 아름답습니다~~!!
여행내내 맑고 청명한 날씨덕에 사진을 찍으면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되더군요..^^
그 어느 여행 때 보다 많은 시진을 찍어 사진을 선별하는 그 후유증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동유럽..멋진곳이군요.
눈이 시원한 사진으로 보는 마음을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가보고 싶어집니다.ㅎ
동유럽과 발칸반도의 역사가 의외로 깊더군요..
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아직도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었는데..
옛 것을 되도록이면 살리려는 그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건물이 전쟁통에 일부가 남을 정도로 파괴되어도 그일부를 살려 전체를 복구한다고 합니다.
카페에 사진을 올리지 않았지만, 많은 관광객이 찾는 드보르보니크에서도 발칸전쟁 때 폐허가 된 건물들을 아직도 복구치 않고 방치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