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복음 21 : 18 - 19
제목: 베드로가 죽은 이유
일시: 2015. 8. 16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주님이 베드로에게 원하신 것은 삶이 아니라 생명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지만 늘 “뭐 그런 사람”이라는 찜찜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늘 함량이 떨어지는 것 같고 불안한 사람이다. 물위를 걷는 주님을 따라 자신도 물위로 걸었으나 곧 풍랑을 보고 빠져 들어간 우스운 사람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다고 하자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함으로 오히려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는 책망을 받았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해 놓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종자들이 툭 던지는 말에도 겁을 먹고 주님을 3번씩이나 부인했던 자이다. 그리고 주님이 돌아가시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옛날로 다시 돌아간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갈릴리로 다시 고기 잡으러 갔던 한심한 베드로를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를 야단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숯불을 피우고 떡과 생선을 준비하셨고 아침 식사를 대접하셨다. 그런 다음 아주 차분하게 물으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을 물으신다. 아예 큰 소리치면서 “3년 동안 배운 게 이거냐?” “인간적으로 너 그럴 수 있느냐”했으면 더 시원했을텐데, 베드로는 뭔가 주님이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아 몹시 긴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주님이 베드로에게 아침도 주시고 소리도 높이지 않고 차분히 말씀하시더니 역시 베드로에게 강력한 예언을 하신다. 죽음이다. 베드로의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베드로의 죽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18절을 보라.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결국 베드로는 기원후 60년대 중반 경에 벌어진 네로 황제의 핍박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로마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초대 교회 시대의 유명한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주님같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도 과분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는 고통을 자청했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것이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무슨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고 “사활을 걸고” 한다고 한다. 즉 죽음을 불사하고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일을 낼 수 있다. 생명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하는 사람은 바로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후회와 아쉬움이 없다. 그렇게 해서 이루었다면 그것 역시 값지고 그렇게 했는데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미련 없이 손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올인하는 사람이다.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다. 한알의 밀알이 죽어야만 되는 것을 보여주셨다. 사도바울도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라고 고백하면서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해 죽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베드로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선언을 하신다.
II. 삶보다 생명이 더 수준이 높은 것이다.
사는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한 수 높은 것이다. 사람들은 자꾸 더 잘 살 생각을 한다. 그러나 잘 죽을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성숙한 것이다. 전도서를 보라.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도서 7:2).
죽음이 돋보이고 위대하기 위해서는 멋지게 살아야 한다. 영양가 있는 죽음이 되기 위해 삶이 아까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 버릴 것이 돋보이려면 버릴 것을 값지게 만들라. 바울이 자신의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하는데, 그가 버린 것은 꽤 쓸만한 로마시민권, 학식, 집안배경 등이었다. 그러한 것을 과감히 버리니 더 돋보이는 것 아닌가! 내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내가 높아 있어야 한다. 겸손할 수 있는 찬스는 높아 있을 때이다. 겉으로 볼 때는 자랑하는 것이 더 화려해 보여도 겸손이 자랑보다 한수 위다. 귀한 시간을 목사님이 내어 주셨다고 한다. 내 시간을 귀하게 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없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바쁜데 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다른 이들에게 내 시간이 값지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귀한 시간들이 되어야 한다. 헌신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이 더 이상 드릴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사르밧과부를 보라. 그가 가진 것은 마지막 남은 통에 가루 조금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생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드렸을 때 가장 값진 것이었다. 두렙돈을 성전헌금궤에 넣던 가난한 과부를 보라. 주님이 평가하실 때 그 과부는 가진 전부를 넣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 살아계시는 동안 많은 사역을 하셨다. 아픈 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눌린자를 위로하셨다. 또한 제자들을 삼으시고 그들을 훈련하셨다. 그러나 그의 사역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죽음이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당신은 인생을 사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비로소 주님은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죽음을 경험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그것은 죽음을 따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다.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오늘날도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그것은 십자가의 길이다. 그것은 사망의 길인 것 같지만 달리 말하면 생명의 길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음이 생명으로 반전된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진리는 계속 선포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하는 것이다. 교회는 돈을 어떻게 벌게 하는가가 축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를 가르치는 것이다. 어떻게 똑똑한 사람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보가 되고 어떻게 이익을 보느냐가 아니라, 손해보면서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어떻게 나를 채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를 비우느냐를 말한다. 어떻게 사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는가를 말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것이 한수 위인 것이다. 있어야 손해보고 있어야 돈도 쓰고 있어야 비우고 생명이 있어야 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III. 베드로의 죽음의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 그 타이틀이 걸려 있어야 한다. 생명을 바치는 올인하는 삶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타이틀에 다 운명이 결정된다. 결국 우리는 죽는다. 어차피 죽을 것 벌벌 떨다가 죽지 말고 내가 먼저 용감하게 의도적으로 죽어라. 죽는 이유에 신경 쓰지 말고 무엇을 위해 죽느냐가 중요하다. 죽음의 날을 기다리지 말고 죽음을 도전적으로 맞이하라. 즉 죽음을 결과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쑥스러울 정도로 목적있는 죽음을 죽으라. 그렇게 살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주님은 죽기 위해서 오셨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죽은 것이다. 죄의 벌로써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죽게 될 때 순교가 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나이가 31살 때에 이토히로부미 이등박문을 하얼빈역에서 암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형선고가 된 후에 안중근의사의 어머니가 말했다. “응칠아(아호이다) 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 앞에 보여준 것이다.... 일본 최고 지도자 이등박문을 죽인 너를 일본 정부가 살려 둘 리가 있겠느냐? 기왕에 죽을거라면, 애초에 죽기로 한 일이라면 항소도 하지 말고 항고도 하지 말고 살려고 몸부림 하는 인상을 남길 필요가 없다. 혹시 늙은 애미를 남겨놓고 내가 먼저 죽는 것이 동양 유교 사상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망설일까봐 미리 일러 둔다. 조 마리아여사가.” 그리고 사형집행은 3월 26일 이루어졌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고 오키나와를 지배했다. 그런데 한국은 독립을 한지 70주년이 되었고 오키나와는 일본이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왕국으로 1879년 일본의 오키나와 현으로 편입이 되고 일본이 통치를 한다. 한국은 1910년 8월 29일 이완용이 전면에 서서 한일합병을 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천황에게 양도한다”는 조약이다. 그런데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카이로회담(1943년)에서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개석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것으로 한국과 같은 나라의 독립에 주도 역할을 장개석이 했다. 그 회의가 포츠담선언을 통해서 한국의 독립이 확인이 되었다. 왜 오키나와는 가만히 있고 한국의 독립을 인정한 것일까? 장개석의 마음속에는 “한국은 독립을 하려고 투쟁을 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윤봉길의사의 일이었다. 윤봉길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연회가 열리는 홍커우공원에서 단상에 오른 일본의 수뇌부를 공격하기로 생각하고 도시락과 물병을 가지고 갔다. 물병을 투척하여 사람들을 암살했고 자결용이던 도시락을 터뜨렸으나 불발하여 잡히고 말았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같은해 12월 19일 일본에서 총살형을 당해 죽게 되었다. 당시 나이 24세. 당시 장개석은 중국의 100만군인도 해 내지 못한 일을 젊은이가 했다고 하고 별관심도 없던 대한민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여는데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리고 카이로 회담에서 류큐는 언급하지 않아도 조선의 독립을 찬성하게 된 것이 바로 “죽음을 각오하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IV. 광복 70주년이 어제였다. 어제는 그 축하의 일환으로 독일교민 체육대회와 광복절행사를 했다. 라이프찌히라는 이름을 타이틀로 걸고 열심히 운동했을 것이다. 장하게 우승을 했다. 안중근의사나 윤봉길의사들 그들의 죽음은 최선의 삶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 나라가 광복을 맞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순국이었다. 그들은 더 오래 살고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31살 24살의 나이로 죽었지만 우리에게 더욱 강렬한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을 타이틀로 죽은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산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타이틀로 살게 되면 그것은 순교자의 명예이다. 우리는 가문의 명예를 걸고, 라이프찌히의 명예를 걸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걸고 하나님 나라의 명예를 걸고 살아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명을 사용할 것인가가 우리의 삶을 귀하고 가치있게 만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