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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성인께서 말씀하셨다
길이 아닌 곳에 가지 말라고...
이러함에도 오랜만에 반 동가리 호미지맥길과 한 동가리 삼태지맥을 찾아본다
수년 전에 이 길을 걸으며 산꾼을 반겨 주었던 늙은 소나무들
이제는 소나무 재선충으로 인해, 단단하고 무거워 보였던 철갑옷을 모두 내려놓았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길게늘어 트리고 힘겹게 허공을 받치고 있다
앞으로 이 길에 선다면 사철 푸른 소나무 대신 꼬마 도토리 6형제( 상수리, 신갈, 갈참, 굴참, 떡갈 졸참나무)를 더 친숙하게 만나게 될 것 같다.
호미대왕 개념도
호미 지맥길 포항 인근으로는 소나무들은 대부분 고사하고 그나마 우람하고 튼튼해 보이는 소나무가 있어 담아 본다.
소나무 재선충은 1980년도에 부산항으로 들어와 무려 30년 지난 지금까지 2조 원을 투입했으나 재선충을 전혀 잡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소나무가 죽어야 끝이 날지... 정부에서 뭐라도 좀 강력하게 해 봤으면 좋으련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 그 푸름을 잃지 않았던 소나무들, 소나무가 짙푸른 옷을 벗는다면 한국의 산은 어떻게 될지...
언젠가 천지가 요동칠 때 대반전이 있을 거라 믿는다
택배 해주신 대영호 지부장님
저녁 7시 무렵에 논산에서 대구로 오신 깽이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포항에 도착하니 포항 버스 터미널 앞에 대영호 지부장님이 미리 오셔서 기다리고 계신다.
먼 길 떠나기에 앞서 포항시내의 친절한 사장님께서 운영하는 곰탕집에 들어가 때늦은 식사를 마치고 나온다
산길을 걷거나 도로길을 걷거나 늘 많은 사람분들께 신세를 지게 되는데 한결같이 고마우신 분들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대영호 지부장님의 자가용으로 포항 구룡포 삼거리를 지나 호미곶에 도착해서 어디 마땅한 곳 노숙할 정자가 보이지 않아 상생의 손 인근에 내려 잠잘 곳을 찾아간다.
텅 빈 호미곶 광장에는 파도 소리는 높고 밤바람은 다소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찾는 이도 없다.
상생의 손 옆에는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던 24시간 편의점도 불 끈 지 오래된듯하고 텅 빈 광장을 둘러보니 멀리 보이는 의자에 누군가 배낭을 배게 삼아 머리맡에 두었고 무릎담요?를 푹덮고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분이 보인다
그동안 길을 걸으며 수많은 노숙을 해봤지만.
찬바람 부는 곳에서 노숙한다는 건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누워서 편하게 잠자기가 힘든다.
행여나 누가 찾아올까!
아니면 보따리 도둑맞을까? 눈은 감고 귀는 반뜨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차가운 밤바람에 텅 빈 곳에서의 노숙은 뱃속에 오장(五臟)중에서 간(肝)만 꽉 들어차 있어야 가능하기에 혹시나 싶어 "달빛님" 하고 부르니 "네" 하고 여성분이 일어나신다.
어디던 아무 거리낌 없이 누워 잘 수 있는 사람이라면 면도날 보다 더 날카로운 정신을 가진 분일 것 같아 급 호감이 생겨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어디 바람 불지 않는 "호미곶 여행자 센터 "건물로 구석진 곳에 돗자리를 깔고 짧은 잠을 청한다.
*멀리 의정부 수락산 인근에서 오신 달빛님 마음이 달빛을 닮아 너무 고우셨던 분이다
깽이님이 가지고 오신 침낭을 넓게 폈어 달빛님이 함께 덮으시고 저는 그 옆에 침낭을 펴고 잠을 청한다.
노숙은 언제나 눈은 감고, 귀는 반쯤 열어둬야 서로가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모기 소리와 가끔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떠드는 소리 그리고 앙칼진 고양이 울음소리로 인해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보따리 정리하고 파도 소리 들리는 상생의 손 인근에서 포항의 출사표님을 만나서 인사를 나눈다
출사표라 하면 국내의 정치인들이나 각 지역의 지방 단체장들이 큰 뜻을 두고 뭔가 이루고자 할 때 출사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닉네임이 예사롭지 않아 산행하면서 혹시 "중국 삼국시대 때 촉(蜀)의 유비 사후(死後)에 제갈량이 아들 유선에게 적어 올린 글이 아니냐?" 하니 맞으시단다.
위나라와의 결전을 앞두고 임금에게 올린 글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아침은 간단하게 아메리칸 스타일로 빵으로 해결하고
한때 칠렐레 팔렐레 돌아다닐 때 그때는 가장 젊었는데 세월이 흘러 오늘은 내가 나이가 가장 많으니
이제는 어디 가서 어리광 부릴 나이는 아닌 듯 영글어 고개 숙여야 할 때로 보인다
태어나면서 어미로 부터 모든 지식을 갖고 태어난 사람없고
살면서 경험하고 배우는 거
그래서 한자리에서 배우는것 보다 세상을 다니며 배울수 밖에 없다.
해군 군부대가 있는 고금산 옆 계곡이 초입이지만 초반부에는 길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고
간단하게 몸 풀기로 동그라미 그리듯 둥글게 알바 한번 해준다.
임도길에 올라와 만나는 간판
호미지맥길은 임도길이 길게 이어지니 산꾼에게 있어 이런 길보다 더 편한 길이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임도파라 하며 편안하게 길을 걷는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길에
손에 들고 가는 렌턴과 마빡이 붙이는 렌턴이 서로 다르게 불을 밝히지만 결국 앞을 밝히는 건 같다
임도길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이 편안하니 다 같이 렌턴을 끄고 걸어가 보자며 불을 끄게 하니 처음에는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 정도로 어두웠지만 10미터 20미터 걸어갈 때마다 점점 더 밝게 보인다.
마치 설탕이나 소금이 물의 녹듯 결국 그렇게 자연 속으로 서서히 녹아든다.
전쟁터에서 총, 칼 보다 더 중요한 은박돗자리
은박돗자리 없는 싸움이 힘들다
은박돗자리를 깔고 편안히 쉬고
발산 봉수대 전망대에 올라
오늘은 포항지역에 비는 오지 않지만 구름이 많고 내일 울산지역에 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망대 높은 곳에 올라왔지만 일출은 그저 꿈인듯하다.
전망대
조그만 텐트가 세동이 보이는데 행여나 우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 조용히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발산 봉수대
읽어 보시고
이번 산길에 무지원으로 진행하기에 오늘 지나게 될 호미곶에서 경주 토함산까지 60km는 각자 햇반 3개씩 준비해 오셨고, 내일 먹을 양식은 마우나 CC 그곳에서 잔치국수를 먹는 것으로 정했다.
포항산꾼 출사표님은 반찬을 많이 준비해 오셨고.
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산 아래에서 벌초 차량이 한 대, 두 대 시간을 두고 올라온다.
은박 수라상을 두 번 정도 치우다가 결국 가능한 한 빨리 먹고 일어선다
장거리산행은 평소 집에서 먹던 산해진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밥은 언제나 야전에서 먹는 게 최고이고, 요즘은 벌초시즌이니 잘만하면 지나는 길에 과일이나, 막걸리도 한잔 정도 얻어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소나무 단풍이 제일이라
지맥길에서 본 한국의 산화는 온통 죽은 소나무들로 가득한데 그동안 뚫릴 것 같지 않던 철갑의 방패를 두른 소나무가 살고자 울부짖는 비명소리로 산 전체를 울리고도 남을듯하다
사철 푸르러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마음이 쓰이는데
여성 두 분께서는 가을이라 그런지 울긋불긋한 소나무 단풍이 참 좋다고 말씀하신다.
두 분의 순수한 감성이 참 좋다
좋은 걸 보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물기 없이 메말라 죽은 소나무의 붉은 기운도 마치 살아있듯 그렇게 보인 듯 하니 꿀밤이라도 한대 찰지게 때려주고 싶었다가도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금오산 방향과 어느 집안에서 깨끗하게 한 벌초
동산 공원묘지에 들러
커다란 진댕이가 배를 드러내고 누웠는데 쓰다듬으니 아주 좋아한다
추석 아래 공원묘지 벌초 때문에 일하시는 인부들이 계셨고 인사를 드리니 사무실에 물이 있다며 마시고 가란다
물 한잔하고 커피 한잔 타서 마시고 나온다
*훗날 이 길을 지난다면 참고하시기 바란다
산꾼의 뒷모습은 나의 뒷모습과 다를 바 없으니 타인을 통해서 나를 보는듯하다
마치 거울처럼 거울이 참 묘한 것이 거울을 보다 보면 가끔 내가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넌 누구?
이게 나야?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포항시와 구룡포를 열결 하는 동해안로 도로 위
석리 마을 뒷산인 200봉에서 큰 사고 난다
후미에서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 혹시 뱀에게 물렸나 싶어 가보니 달빛님 얼굴에 피가 많이 흘러내린다.
무슨 일인지 여쭈어 보니 쓰러진 커다란 소나무의 날카로운 가기를 보지 못해 이마를 부딪쳐 많이 찢어졌다고 하신다.
배낭에 든 의약품으로 소독부터하고 지혈을 하고
진통제도 드린다
그리고 포항지부의 매화고문님께 급 연락을 드리니 자가용 한 대를 보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신다
달빛님 이마를 보니 최소 여덟 바늘 이상은 꿰매어야 할 것 같다.
첫 산행에서 고운 이마에 이처럼 붉은 훈장을 달고 가시게 해서 죄송한데 달빛님께서 더 차분하게 대처해 주셔서 마음이 놓인다
잠시 후 대영호 지부장님께서 집안 벌초를 미루시고 조항산 아래 장승백이로 와주시겠다고 하신다
조항산에서 본 포항시 방향
조항산 정상을 지나며 달빛님을 급하게 병원으로 모셔 가야 하기에 이틀간의 일정은 여기서 끝내까 하고 깽이님께는 계속 진행하라니 본인도 여기서 끝내겠다고 한다.
깽이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 두 분께 연락을 드려 호미지맥 트랙 있으면 보내달라고 말씀드리니 카톡으로 트랙을 각각 보내주셨다.
혹시나 싶어 출사표님, 깽이님께 호미지맥의 트랙을 별도로 깔아 드리고 서로 상의해서 나머지 길 진행하라고 말씀드린다.
임도와 도로를 번갈아가며 진행
버려진 군용 차량
다시 숲으로 들어가고
오~~ 벌초하시는 분들을 만나
어느 집안에서 벌초를 마치시고 등로에서 막걸리 한잔 하신 듯하여 인사를 드리며 "어느 문중의 산소인데 이렇게 깔끔하게 하셨냐?" 하니 평산 신씨란다
오우 "고려 개국공신이며 팔공산 공산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전사한 자랑스러운 신숭겸 장군의 후손"
마침 깽이님도 평산 신씨이고 해서 조상 이야기 마당을 깔아본다. "여기 계신 아가씨도 평산 신씨라"며 말씀드리니 "무슨 파 냐?"라고 묻는다. 그래서 깽이님이 "무슨 파"라고 말씀드리니 같은 집안이라며 "아버지 돌림자가 뭐냐"고 묻는다.
깽이님은 35대손 어르신들께서 34대와 35대손이란다
어르신들께서 웃으시며 급 반겨주셨고
깽이님께서 오라버니들께 배꼽 인사를 드리니 동생이라며 커다란 배와 포도 한 송이를 챙겨주셨다.
어느 집 담벼락 아래 앉아서 얻어온 배와 커다란 포도 한 송이를 갈갈이 해부해서 먹는데 대영호 지부장님과 이글스님께서 인근에 도착하셨다며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오라 하신다
장승백이에서 올라오신 지원팀
그냥 오라고 하셨는데 커다란 수박과 김밥 그 외 음료수를 사 가지고 오셨다.
지원팀과 상의하니 이글스님께서 달빛님을 포항 병원으로 모시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두 분과 함께 계속 진행하라고 한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
저는 김밥을 좋아하지 않아 김밥 두 알과 음료수를 마시고 콜라 두병을 배낭에 더 넣는다.
이곳에서 대영호 지부장님은 벌초하러 가시고 달빛님은 이글스님처럼 포항 병원으로 향한다.
장승백이 고갯마루에 예전에 없던 군부대 철대문이 굳게 닫혀 있고, 이 커다란 군부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대문 옆에 "급한 용모가 있으면 벨을 누르라"는 안내 글이 쓰여있어 깽이님이 대문 열어 달라고 초인종을 꾹꾹 눌러도 대답이 없다. 아마도 군부대 안에서 군인들이 감시 카메라를 보고 있다가 어떤 꼬맹이 와서 장난치는가 싶어? 대꾸를 안 하는 것 같다.
오늘 한껀해서 저를 즐겁게 하나 싶었더니 역시나다.
장승배기 석장승
정문에서 왼쪽 도로 따라 돌아가면 길게 쳐진 철조망과 함께 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지인에게 받아온 트랙을 보면 군부대 사격장 철문을 통과는 했는데 철문을 타 넘었는지 어떻게 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호미곶에서 토함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통과가 힘들 것 같고 반대로 토함산에서 호미곶에서 진행하다 보면 군부대 사격장 안으로 들어와서 이곳에서 철문을 타 넘은 것처럼 보인다.
강아지 풀
강아지 풀은 자세히 보면 곡식 중에서 조와 많이 닮아있는데 크기만 다를 뿐 형제지간이며 친척으로 어엿한 곡물의 초상이다
강아지 풀이 다 익으면 손으로 훑어 손바닥으로 비비고 후~~ 하고 불면 씨앗은 남고 찌꺼기는 날아가는데, 언제든가 아무튼 예전 호랭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우리 조상님들께서 밥 지을 때 쌀과 보리를 함께 넣어 밥을 해 먹었던 식물로서 길가나 밭고랑, 어디든 잘 자라는 풀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길가에 자라는 강아지풀 씨앗을 훑어 밥 해보시면 달달하니 맛있을 것 같다
군부대 철조망이 길게 이어지고 등로는 아주 좋고
오르막길에 군부대에서 쓰던 국방색 자일이 길게 처져있다
삼봉산
굵은 소나무가 빨갛게 변해 버렸으니 붉은 단풍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붉은색이 아무리 정열적이고 곱다고 한들 소나무의 푸르름만 못하다. 이미 죽은 소나무는 지금은 붉게 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낙엽은 떨어지고 철갑옷 역시 벗겨지기 마련이다.
출사표님이 앞서 가시면서 거미줄을 모두 제거하셨고
오늘 저녁에 토함산 주차장까지 가야 하는데 깽이님과 소나무 이야기만 한다
야생 버섯 2천 종 중에서 약 20%가 독버섯인데 봄부터 가을까지 양지, 음지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았는데
이 녀석은 제주 감귤을 닮았고 버섯 발아래 조그만 새끼를 두었다
아름드리의 소나무와 푸른 이파리
다음에 가면 고사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겼을지
곳곳에 죽은 소나무가 많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고
오후 5시 50분 무렵에 성황재 도착
매화누님, 이글스님께서 달빛님과 함께 와주셨다
달빛님은 치료를 잘 마치시고 저희들 얼굴 보고 의정부로 간다며 다시 찾아주셨는데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멀리서 힘들게 찾아주셨는데 "지켜주지 못해 제가 더 죄송하고 미안한데..."
이글스님과 달빛님은 포항역으로 가시고
매화누님은 저녁 준비해서 토함산 주차장으로 다시 오신다고 댁으로 가시고 저희들도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울산지부에서 조운님께서 토함산 주차장으로 얼굴 보러 오신다며 연락 오셨는데 언제 그곳에 도착할지 몰라 오지 말라고 하니 늦어도 좋으니 기다린다고 하신다.
이렇듯 늘 민폐만 끼치니 앞으로 어딜 간단 말인가!
추령으로 가는 길에
함월산에서
달을 머금은 산이라지만 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어둠이 좋아 렌턴 불을 끄고 잠시 앉아 하늘을 보니 어둡기만 하다
수랫재
예전에 마차가 다니던 길에서 유래되었는데 수랫재 넘으면 용연 폭포나 감은사지 그리고 이견대가 있는 경주 감포에 도착한다
통일신라시대 신문왕이 돌아가신 부왕(父王) 문무왕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 위해 행차하던 수랫재로 신라시대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경주 감포와 경주, 그리고 포항시 남구 장기면을 이어주던 고갯마루로써 한때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던 곳이다.
이 길은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장례 행차길이며, 문무왕 하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용와 왕 그리고 광명과 피리이니 용이 왕이 되고, 왕이 용이 되어 신라의 천년광명(千年光明)으로 나라를 밝히던 길이다
*신문왕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뒤를 이은 681년에 신라 제31대 왕으로 즉위하셨고 국가 제도를 정비하여 새로운 통치기반을 마련하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여 국가의 전성기와 문화적 황금기를 만든 분이다.
우측으로 모차골 물은 덕동호를 지나 경주시내를 통과하는 경주의 젖줄이며 형산강에 합류하는 북천줄기이다
497봉을 지나며
추령에 도착하니 밤 11시 25분
혹시나 두레박을 멸종 시켰다는 수도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나무계단 오르기 앞서 잠시 누워본다.
그리고 출사표님을 토함산 정상으로 먼저 올려 보내고 깽이님과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는데 잠은 왜 이렇게 오는지.. 그리고 둘 다 물 한 모금 씩만 남은 상태다.
아껴가며 먹는데 그것마저 아껴야 할판
사실 배낭 깊은 곳에 물 한병 숨어 있지만 그 물은 소고기 육포와 함께 숨 넘어가기 전에 절대 꺼내지 않는"있는듯 없는듯"한 비상용 물이다.
얼마 전 한여름에 부산-서울 왕복하고
곧바로 강화-서울 걸었더니 무릎에 데미지가 쌓여 오르막 오를 때 통증이 심해 걸음이 늦고 무엇보다 잠이 온다
산행에 있어 배고픔과 졸음이 찾아올 때 진짜 산행의 맛이라면 맛일까?
남극에 사는 "턱끈 펭귄"인양 졸면서 토함산으로 오르는데
턱끈 펭귄은 번식기 동안 4초간 잠을 자다가 깨기를 반복을 하는데 하루 만 번 정도 쪽잠을 잔다고 한다. 왼쪽 눈을 감으면 우뇌가 자고, 오른쪽 눈을 감으면 좌뇌가 잠을 자고 그렇게 포식자들을 방어하며 미세수면을 취한다.
이놈의 잠 귀신은 거지 같은 산꾼이 뭐가 좋다가 눈꺼풀 위에 초막을 짓고 못살게 구는지
꾸벅꾸벅 졸다 보니 토함산 갈림길이다
갈림길에 거북이 등껍질 같은 무거운 보따리를 벗어놓고 토함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나비인양 날아갈 것 같다
토함산
국립공원 경주의 산들은 산이 부처이고, 부처가 곧 산인곳이다.
도심형 국립공원이며 전통과 가문을 중요시하는? 경주시내를 기준으로 8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지만 150곳의 절터와 120곳의 석불, 그리고 100기의 석탑을 간직한 남산지구가 있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은 토함산 지구가 있다.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은 낙동정맥길에 만날 수 있는 영남 알프스의 첫 지붕 격인 고헌산 서봉이다.
토함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포항지부의 매화고문님 대영호 지부장님, 조운님, 진주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미역국과 김치찌개를 가지고 오셨다.
초저녁에서 새벽까지 기다려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리고 점심 겸. 저녁, 아침 겸으로 쌀구경하고
늦은 시간이라며 누님, 진주님 "얼른 집으로 가세요!"라며 보내듯 인사하고 (새벽 2시 10분 무렵) 저는 맨땅에 돗자리 깔았고, 깽이님은 버스 승강장에 출사표님은 화장실로 가서 50분 정도 자고 가기로 한다.
새벽 03시에 일어나 매화누님과 진주님이 챙겨놓으신 물과 콜라 그리고 바나나를 배낭에 넣어 다음 길로 행한다.
지겨운 아스길을 지나 도착한 가짜 조양산 (초월산)
진짜 조양산은 이곳에서 250미터 더 가면 나오며
이곳 산 아래에는 숭복사지 절터가 있었는데 숭복사는 오래전에 없어졌고 지금은 넓은 절터 중앙에 동, 서로 쌍탑(雙塔)이 서로 마주 보며 서있다.
지금의 원성왕릉(괘릉)에 있던 곳에 곡사(鵠寺)를 옮겨와서 숭복사라 하였는데 최치원이 옮기게 된 배경과정을 "초월산 대숭복사비"에 상세하게 기록해 두셨다.
최 선생은 신라시대 6두품 출신으로 12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6년 만에 당나라 과거시험에 빈공과(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르는 시험)에 장원급제를 한 인물이며, 신라에 귀국한 후 비석에 남긴 네 편의 글이 있는데 이를 사산비명(四山碑名)이라 부른다
사산비명은 충남 보령의 성주산 아래 성주사지 대낭혜화탑, 경남하동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경북문경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이곳 경주 초월산 대숭복사비명, 모두 왕명(王命)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신라불교에 있어 중요한 세분의 고승의 행적을 비문에 옮긴 것으로, 숭복사지비는 파손되어 다시 복원했으나 나머지 세 곳의 비명(碑名)은 모두 우리나라 국보로 알려져 있다.
볼품없는 산이지만 최 선생의 4 산비명중 한 곳이 이곳 조양산 아래에 있다.
오늘도 산길은 옆에 두고 그 아래 임도길로 진행
예전에 없던 풍력 발전기 옆으로
첫 번째 삼태봉에 도착
두 번째 삼태봉
어느 부지런한 주민께서 빗자루로 등산로를 싹 쓸어 놓으셨는데 마치 춘향이 꽃단장을 한 듯 먼 길 찾아온 이를 반긴다
식전 댓바람에 이런 호사가 있나 싶어 "어느 분인지 복 받을 겁니다" 라며 허공을 향해서 인사드린다
관문성(關門城)
관문성은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수도 경주(慶州)를 방어하기 위해 신라 성덕왕 때 4만여 명의 인원을 동원해서 만든 12km의 성(城)으로써 울산지역에서 경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을 지키던 곳이다
이곳은 산아래 관문을 지키기 위한 보조 성으로 보이는데 실제 경주와 울산을 이어주던 관문(關門)은 산아래 6대 광역시 중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흐르는 울산 동천을 건너 경주시 외동읍 문산리와 울산시 북구 속심이 마을을 연결하는 고갯마루가 실제 천년고도 서라벌로 들어가는 관문(關門)이다.
동천을 사이에 두고 우측에는 묵장산 그 옆에 형산강 최장의 대곡천(울주 반구대 암각화)과 낙동정맥의 험준한 고헌산이 버티고 있어 울산에서는 동천 따라 속심이 마을로 경주로 갈 수밖에 없다.
자장율사께서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 후 646년에 완성한 경주 황룡사 9층목탑에 부처님 사리 100과 중 일부를 봉안하셨고 나머지는 속심이 마을을 넘는 관문을 통해 울산의 태화사 탑, 그리고 통도사 금강계단에 봉안하셨다
그 당시 자장의 행로를 생각해 보면 월성(月城)에서 원고개(원성왕릉 있는 곳)를 지나 동천길 따라오다가 관문을 지나 울산 태화사로 들어가셨을 걸로 생각이 든다.
지도 참고
대영호 지부장님을 닮은 인형
이곳에서 산이 운영자님과 보라님을 만나서
마우나 오션 포장마차에 들어가니 여주인장께서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며 무척 반가워하신다.
"아지메 제가 가끔 찾아오는데.. 잔치국수 다섯개요"하니 거의 곱빼기 수준으로 담아 주신다.
이 많은걸 어찌 다 먹나 싶다
포장마차에서 잠시 쉬다가 산이 지부장님의 길안내를 받으며, 늦가을에 오면 아주 좋을듯한 단풍나무 숲을 함께 걷는다.
파군산
신라 때 멀리 창원지역을 거점으로 한 굴포국이 울산을 공격하자 왕께서 친히 이곳에 나와 군사를 주둔시키고 적을 물리쳤다는 그산이 이산이다.
굴포국이 신라군과 한판 붙어볼까 찾아왔으나 본전도 못 찾고 갔는데 훗날 다시 찾아오지 않았을 듯하다
완전 개구쟁이
"이분과 두 번 다시 산길에서 만나지 않겠노라" 했는데 무슨 역마살인지
10월 정기산행 때, 7만 년 전에 떨어진 운석공을 걸으며 그 당시 인류가 머릿니 잡아먹던 시절을 생각해 보시겠단다
진행하다 보니
마른하늘에 꽃 비가 내린다
이런 비는 실컷 맞아줘야 하는데
산이 지부장님께서 우의를 입으면 비가 싹 그치고
덥다고 벗으면 비가 내린다.
그러다 비옷을 입으면 다시 그치고...
전생에 비와 연관이 있으셨나
괜히 옆에 있다가 같이 덤티기 쓰는 건 아닌지
무룡산에 도착하니 진주님과 조운님이 달달한 아이스커피를 들고 배달 오셨는데 늘 고마운 분이다.
6대 광역시중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가 울산 아니던가?
울산시를 가운데 두고 동쪽을 지키는 청룡의 기운을 지닌 무룡산
태화루 아래에 용금소라는 곳에 울산의 중앙을 지키는 황룡
그리고 서쪽을 지키는 용으로는 태화강이 흐르는 선바위 아래 백룡담에 백룡이 살고 있다고 전한다.
한때는 낙동정맥 삼강봉(三江峰)에서 호미길이 분기되고 그 길에 토함산에서 월성으로 가는 기운이 너무 장대(長大)했기에 천년의 기운(氣運)을 간직하게 했고, 고려와 조선을 지나며 한때 기운이 사라진 줄 알았으나 현대에 들어와 조양산 삼거리(삼태지맥분기점)에서 두 기운을 다시 만들어져 하나는 호미지맥 무장봉에서 운제산을 거쳐 포항제철소(포스코)로, 또 하나는 삼태지맥에 만나는 무룡산 아래 연봉 1억이라는 현대 자동차로 기운이 내려앉았다
다만 포스코는 요즘 중국산 철강 때문에 조금 힘들게 버티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 마음 아프게 한다
커피타임
무룡산에서 임도길 따라 진행해 가운데 고개 도로에 내려오니 보라님께서 수박을 준비해 오셨다
정자에 앉아 이야기 나누다가 저녁 무렵에 마칠 듯하여 일어난다
진주님, 조운님, 산이 지부장님은 대왕암이 있는 날머리로 가시고 이제는 보라님의 안내를 받는다
차가 임도길 오르고 내리다가 꼬루 박았는지 길옆 계곡으로 멀쩡한 귤이 수십상자는 족히 넘을 듯 버려져 있다
몇 알 주워 두 분께 드리려니 보라님과 깽이님이 손사래 치며 야단이다.
이런 건 그저 모르게 주워 드려야 하는데 아깝다
깽이님과 보라님
군부대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임도 따라 진행하는데 등로가 좋아도 너무 좋고 임도길 따르다가 염포산 전망대에서 당고개로 향한다
산길 마루금으로 들어오니 무당거미와 이름 모를 거미가 집을 지어 얼굴에 척척 감기니 이 느낌 참 거시기 하다
이런 곳에는 깽이님을 앞장 세워야 하는데 이제는 뭐라 해도 약발이 안 듣는다
당고개
횡단보도를 건너서
염포산 오름길에 본 미륵 바위
염포산에 올라오니 진주님과 조운님께서 올라오셨고
서로가 친구 삼아 이야기 나누며 대왕암으로 향한다
울산대교 전망대와 방어진 체육공원을 지나 동구 원봉동에서 도로길 2km를 지나서
대왕암 공원
울산 울기등대 가는 길에 만나는 꽃무릇 군락지를 지나 대왕암을 찾아간다
울기등대
대왕암 일몰
여기서 삼길샘과 이산경표 트랙을 끄고시간을 확인하니
깽이님이 예매한 울산ㅡ대전ㅡ논산 기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궁댕이 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다시 돌아 나온다
동해안에서 빼어난 경치 몇 곳을 곱으라면
설악을 품은 양양 낙산과 하조대
금방이라도 촛불 밝힐 것 같은 동해 추암
경주 양남의 주상절리
그리고 대왕암의 전설을 간직한 이곳이다
대왕암
신라 효성왕(34대 제위기간 5년)때 일이니
어느 왕이나 그랬던 것처럼 왕비와 앙숙이던 후처(파진찬 영종의 딸)
왕이 후처를 총애하자 왕비가 질투에 눈이 멀어 후처를 죽여 버렸고, 이에 불만을 품은 후처의 아버지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왕비의 세력에 진압당하게 된다. 이에 왕권은 약화되어 신하들도 꼴도 보기 싫다고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이곳 대왕암에 수장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이 있으니 문무대왕의 부인이셨던 왕비(자의왕후)도 죽어 호국의 용이 되고자 경주에서 27km 떨어진 이곳 대왕암에 묻혀 있다는 설이 있다.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둘다 가짜인지... 알길 없다.
이제 집으로 향하며
이틀간 도와주셨던 포항 대영호 지부장님, 매화누님, 이글스님
울산지부의 산이 지부장님, 진주님, 조운님, 보라님
그리고 함께 걸어 주셨던 달빛님, 출사표님, 깽이님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방장님과 함께 걸어 영광이었습니다. 훗날 걷는 길에서도 방장님 편히 오실 수 있게 거미줄은 제 담당입니다^^. 깽이님도 수고하셨고 달빛님도 치료 잘하시고요. 무지원산행인줄 알고 반찬 많이 가져갔는데 지부 대선배님들의 지원덕에 중.장거리입문하고 이런 호사는 처음 겪어보았네요. 존경을 담아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회복 잘 하시고 추석연휴 가족.친지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만나서 반가웠구요
올해말쯤 좋은곳으로 모시고 갈테니 그때 한번 더 뵙기로 하겠습니다.
방장님~ 안녕하셨지요?~^^..
가입하고 딱 5년째에 첫 산행이었고,
j3발자취에 제 발걸음도 보태고 싶었지만,
이마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방장님의 글과사진으로 남은 그길따라 걸으며 그길에 남겨진 역사이야기를 읽으며 결국 산도 길이며 길은 사람인가 싶기도 합니다..
방장님과 같이 걸어보고 후기를 읽어보니,
사람을 중시여기는 방장님의 마음이 더 잘 보이는것 같습니다..
밝아오기전 어두컴컴한데 랜턴을 끄고 자연속으로 스며들듯 걸어가시던모습은 인상적이셨습니다..
임도파의 생각또한, 멋지셨구요..
함께한 산행은 영광이었고 무엇보다 배려의
마음을 많이 배워와 저역시 따뜻한 기운을 많이 채웠습니다..
수박등 먹을거 한아름 가져오신것도 감사한데
포항시내병원으로 빠르게 안내해주셔 치료를 받게해주신 포항지부장님과 병원, 성황재, 포항역등 차로 이동시켜주신 이글스님..
성황재에서 역시 김밥등으로 기다려주셨던
매화고문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죽어가는소나무임을 알려줘 무심하게 팩트를 날려주셨으나 당황할까봐 7바늘이면 된다라는말로 안심시켜주었던 출사표님,
주변을 환한 미소로 웃으며 살펴주던 깽이님
짧았지만 함께한 산행에 즐거웠습니다..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고 댓글내용이 너무 길었습니다..
저에게 흉터는 남을겁니다..
그래도 살아가는데, 산에가는데,
지장은 없을거기에..이만하길 감사하게
여길겁니다..^^..
방장님..호미곶 노숙은 아마도 방장님께서
오실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았던거 같습니다..여러모로 저때문에 애많이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즐거운..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만나서 반가웠구요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큰데...
불미스런 일만 생기지 않았어도 좀 더 긴 시간을 함께 했을텐데 아쉬움이 많은 하루였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긴시간을 함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배병만 방장님
다음에는 더 한층 반가운 만남이 될거같습니다..
이마에 새긴 산모양으로 짧은 산행에 추억담도
웃음꽃으로 필거같습니다~ ㅎ
전화로 챙겨주셨던 안부와
마음써주심에 제가 더 죄송했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무탈한 걸음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난
방장님 후기에서
왜 삿갓 방랑기 내음이
풍기는 걸까요.
읽을수록 흠없는 섬김과 인연과
자연이 길이 그대로 와닫네요~
저의
인생관이
사람成 싾지 않기.
사람으로 울타리 치지 않기인데.
방장님의 후기에서
많은 인연을 보며
결국 남는건 사람 관계임이 한 편부럽기도합니다.
부상입으신 달빛만땅님
먼곳까지 가셨는데ㅜㅜ
빠른회복 기원합니다^^
정기산행
잘읽었습니다~
풍성한 한가위되시길기원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산길을 지날때 늘 조심하면서도 사고가 나서 긴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달님을 생각하면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좀 더 조심하는 산길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예전에 호미 화암추 산행코스에서
100넘는 코스로 호미지맥 삼태지맥으로 이어지면서 많은분들과함께 클럽 산행하던 기억이 나네요
임도로 이어지면서 편안한 구간으로
세월이지나고 호미대왕 110 적은 인원으로 진행하시는데 달빚님의 부상으로 많이 놀라셨겠네요
차후에 갈기회가되면 가봐야죠
수고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찾는 사람도 없는듯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임도길이 되어 걷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주말에 정맥은 잘 다녀오셨는지
아무도 다친 사람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동해안 걸음이라 바다를 많이 볼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ㅋㅋ 후기 초반 부상으로 마음 조렸는데 다행이 씩씩하신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ㅎㅎ 저도 작년 지태 때 웬수같은 세걸산 가는 길에 이마를 쓰러진 나무에 찍혀서 흉터가 생겼었는데 오래 가다라구요! 얼른 흉터가 낫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래도 방장님과 걸으셨으니 부럽구요!^^
정이 느껴지는 지원! 너무 멋지고 부럽습니다.ㅋㅋ 깽이선배는 같이 벌초하셨어야 했는데~ㅋㅋ
암튼 후기 잘봤습니다.
다들 명절 잘 보내시구요!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글 감사합니다.
비 오는날 이라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따뜻한 꿀차한잔으로 아침을 열어 갑니다.
산에서 바다로,
힐링과 고통이 수반된 인생사와 같은 산행,
그래서 힘들지만 돌아서고 나면 또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달빛님 빠른 쾌차 기원합니다. 그리고 깽이님, 출사표님 수고 많았습니다.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방장님.
어제 정맥 길 잘 다녀오셨죠
시간 되시면 저녁때 커피 한잔 하러 오시기 바랍니다.
편한 도로길 110km인줄 알았는데
산길이 어마어마 하군요.
방장님께서도 110km 가기전에 긴장하시는지요...
무거운 배낭멘 채 잠도 못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나뭇가지 풀숲 헤져가며 남이 안가는 험한 길을 110km나 걸으시는 방장님 깽이님 출사표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갔다온 후 항상 함께 걸은 듯 한 생생한 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몇몇곳만 조금 그렇고 나머지는 임도 길이라 걷기에 아주 좋았답니다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얼굴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저도 노숙할때는 불편하고 긴장해서 깊은 잠은 못 잤는데 차박하면부서터 많이 편해졌습니다.
렌턴 저는 마빡도 손도 아닌 허리에 찹니다.
에구~달빛님 이마에 큰 부상을 당하셨네요ㅠ
다행히 방장님의 빠른 대처로 여러분들이 신경써 주셔서 잘 치료받고 귀가하셨네요.
깽이님 꼬맹이였군요 ㅎ
강아지풀 씨앗이 그런 용도도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졸음 얘기 하시니 저도 세명이 지맥할때 서서 졸다 걷다를 반복하던 기억이 납니다.
방장님 호미대왕 110km수고하셨고 즐겁고 편안한 추석명절 보내십시요^^
깽이는 아주 귀여운 꼬맹이죠
재미도 있고...
그저 친구처럼 지내기는 깽이님같은 분도 없을 정도 입니다.
글 감사드리며 지맥길 안전하게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