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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우토5 - 우토성을 보고는 아마쿠사섬으로 가기위해 버스를 타다!
2025년 12월 7일 구마모토 시내 스이도쵸역 (水道町駅) 에서 A선 타사키바시
(田崎橋) 행 전철을 타고 9정거장을 서쪽으로 달려 구마모토역 (熊本駅)
에 도착해서 우토시로 가기 위해 이코카 카드를 개찰구에 터치하고는 들어갑니다.
기차는 남쪽으로 달려서 우토에키 (宇土駅 우토역) 에 내려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는
우토조아토 (宇土 古城 (宇土城跡) 에서 내려 미터기 요금 1,100엔을 주니
영수증을 발급해 주는지라 받고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우토성 혼마루에 들어섭니다.
혼마루에는 잔디가 깔려 있는데 오늘이 일요일인 탓인지 노인들이 3팀 정도가 파크
골프를 치며 즐기는 모습을 잠시 구경하는데.... 우토시는 구마모토현 동남쪽에
위치하니 우토반도가 "떠 있는 땅(浮土)" 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토는 고대 히고국의 일부였으며 1048년에 기씨 (紀氏) 일족이 우토씨(宇土氏) 를 칭하는 무사 집단
을 형성했고,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는 키쿠치씨 (菊池氏) 일족이 우토씨를 칭하며
우토성 성주가 되었으며 센고쿠( 戰國 전국) 시대 아키타다 (名和顕忠) 가 우토씨를 이어 성주가 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는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가 24만석 다이묘로 근세 우토성을 축성했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속했기 때문에 참수 당했고, 영지는 가토 기요마사 (加藤清正)
에게 주어져 폐성이 되었다는데 유키나가는 가톨릭 대명으로도 유명하며 일가족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 小西行長) 의 세례명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 이며
조선 무역을 독점하던 쓰시마국주 소 요시토시의 장인이니, 독실한 가톨릭(기리시탄)
신자로.... 사위 소 요시토시를 비롯한 병사들 역시 세례명의 기리시탄으로 구성 되었습니다.
1587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린 바테렌 추방령(バテレン 追放令) 때에 개역당한 우콘을 섬에 숨겨
주고 추방령의 부당함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간언하였으며 히고 남반부 우토(宇土),
야시로(八代), 마시키(益城) 3군 20만석을 받아... 1589년 우토성을 쌓았으나 지금은 성토만 남았습니다.
성에서 내려와 우토역까지 걸어가는데.... 고니시가 쌓은 근세 우토성은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우토씨
(宇土氏) 가 처음 쌓았던 옛 우토 성과 함께 보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과 같아서
"학성"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며...... 이때 동원한 아마쿠사 제도의 다섯 고쿠진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히고국 (구마모토현) 중부를 차지한 가토 기요마사의 도움을 받아 토벌하고 아마쿠사
1만석도 유키나가의 차지가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훗날 조선으로 공격을
계획하던 히데요시가 의도적으로 유키나가를 히고 땅에 영지를 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무렵 아마쿠사 (天草) 섬은 총인구 3만명 가운데 무려 2만 3천명이 가톨릭 신도로..... 60인 가량의
신부와 30개의 교회가 있었으니..... 일명 '그리스도의 섬' 으로 훗날 '시마바라 봉기의 땅' 이 됩니다!
시키 씨 (志岐氏) 영지 시키에는 선교사의 요청에 의해 화가이기도 했던 이탈리아인 수도사 지오반니
니콜라오가 파견되어 그의 지도 아래 성상학교 (聖像学校) 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이곳에서는
성화 및 성상 제작을 위한 유화, 수채화, 동판화등 서양 미술을 가르치며 아울러 제작도 이루어졌습니다.
학교는 훗날 분로쿠 3년 (1594년) 에 아리마 반도 (有馬半島) 하치라오 (八良尾)
의 세미나리오 와 합쳐졌고 규모도 더욱 늘어났으며, 이들 예수회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한 것이 독실한 기리시탄이었던 유키나가 였다고 합니다.
히고 북부 25만석을 받아 다이묘가 된 가토 기요마사와는 이후 사이가 나빠졌으니 열렬한 니치렌종
신자로 알려져 있던 기요마사를 피해 도망친 천주교 기리시탄들을 유키나가가 자신의
영지로 받아들여 보호해주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서로 틀어지기 시작하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야욕을 감지한 유키나가는 전쟁을 막고자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자, 7천명
직속부대와 소 요시토시 5000명, 마쓰라 시게노부 3000명, 아리마 하루노부 2000명,
오오무라 요시아키 1000명, 고토 스미하루 700명등 1만 8700명을 이끌고 제1선봉으로 부산에 상륙합니다.
고니시는 십자가를 앞세우고 유교 나라 조선 침공의 선두에 섰는데, 그후 세키가하라 전투 패배후 자결을
금지하는 기리시탄의 가르침에 따라 할복을 거부하고 포르투갈 왕비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리타로 부터 선물받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이콘을 들어 세번 머리 위로 대고 난 뒤에 참수됩니다.
유키나가의 가족들은 전부 기리시탄이니 아버지 고니시 류사, 어머니 와쿠사 (막달레나), 부인 기쿠히메,
아들 고니시 히데사다, 딸 다에( 마리아) 에다가 사위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 (다리오) 등이며....
조선 소녀 줄리아도 기리시탄이 되었으니, 오늘 400여년전에 이 성에서 살았던 기독교인들을 생각합니다.
양딸 줄리아 오타는 고니시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고아 소녀를 여기 규슈 우토성
(宇土城) 에 데려와 처인 기리시탄 쥬스타에게 맡기니.... 소녀는 1596년 5월
베드로 모레홍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으니 줄리아는 세례명으로..... 유키나가
사후 이에야스의 시녀가 되었다가 막부의 기리시탄 탄압으로 유배되어 사망했습니다.
“오다 줄리아” 가 유배 생활을 했던 도쿄 남쪽 고즈시마 (神津島) 는 매년 5월 셋째주
토일요일 “줄리아 축제” 를 열고 있으니, 성당과 고즈시마 마을에서 주관하는
연례 행사로 도쿄에서 180km 떨어진 뱃길 인데도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일본의 밴드“서던 올 스타스” 가 작사· 작곡한 노래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 입니다.
돌아가라 나의 푸른 새 메마른 느릅나무의 가지 곁으로
네가 없는 오오 세상 속은 아침 해 조차 떠오르지 않아
불타라 여름의 십자가 남쪽하늘 높이
밤의 어둠을 비추는 별자리는 눈물의 상들리에
마치 무지개처럼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
사랑의 끝을 알리듯이 찢겨진 나의 로자리오
그리고 조선땅 진해 웅천왜성에서 일요일이면 일본 병사들에게 미사를 집전했던 세스페데스
신부 는 조선에서 잡혀간 10만에 가까운 전쟁포로 중에서 노예가 되어 마카오등지로
팔려가는 조선인 남녀 2천여명을 구출하여 영세를 주고 가톨릭 신도 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때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에 속했기 때문에 참수당하고 가토씨가
거두니 우토성을 대대적으로 공사해 완성시켰는데, 1국 1성(一国一城)령으로 폐성당했고 가토씨 2대를
이어 코쿠라에 있던 호소카와씨가 히고로 옮겨오면서 에도시대가 끝날 때까지 호소카와씨의 지배를 받습니다.
가토 가문이 개역된후 호소카와 유키타카 (細川行孝) 를 번주로 하는 우토 지번(3만 석) 이 설치
되었으며, 유키타카는 성하 마을의 수질 개선을 위해 돗토리 상수도 (轟上水道) 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칸다 상수도· 오다와라 상수도에 이어 일본 상수도 역사상 특필할만 하답니다.
메이지유신 폐번치현 이후 구마모토현 우토군에 속했으며, 현 히고은행의 전신인
큐슈상업은행의 본점이 위치하는 등 구마모토현 남부에 상공업의
중심지였으며 1954년 우토정등이 합병하고 1958년에 우토시로 승격되었습니다.
시내버스는 구마모토 버스(熊本バス) 와 큐슈산코 그룹 산하 큐슈산코버스(九州産交バス) 에서 운행
하며 고속버스로 구마모토에서 우토, 미스미(우키) 를 경유하여 아마쿠사로 가는 '아마쿠사호'
(あまくさ号) 가 있으며 철도로는 JR 큐슈 가고시마 본선과 미스미선이 지나며 중심역은 우토역입니다.
우토시(宇土市) 는 일본 구마모토현 중앙부에 위치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성시(조카마치) 로
알려진 시이니 중세부터 교통의 요지로 여겨져 호족들이 그 지배를 둘러싸고
싸움을 계속해 왔다고 하는데 근대 이후에도 구마모토현의 상공업 거점 중 하나로 이어집니다.
우토반도의 북부를 차지하고 서부는 아리아케해와 접하며 오코시키 해안은 일본의 물가 100선
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기후는 연중 온난하며 근대에는 규슈 상업은행
(히고 은행의 전신) 과 화력 발전소에... 성냥 공장 등이 건설되어 상공업의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걷다보니 너무 멀다는 생까이 드는지라 좀 전에 택시 운전수에게서 받은 요금 영수증
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좀 전에 우토성에서 내렸던 사람인데
우리가 채플(교회) 앞에 있다고 말하니..... 내 일본어 발음이 서툰지 잘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니 할아버지와 통화를 하더니 조금후
여기에 택시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택시 기사가 받을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우토시 택시연합회에서 다른 사람이 받은지라 교회라는 장소를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도들의 섬이라는 아마쿠사(天草) 로 가려고 하는데 내가 작성한 여행게획서에는
우토역(宇土駅) 11시 47분 미스미선 기차 660엔 (관광 A 기차는 2,500엔) - 12시 27분
미스미역 (三角駅) 에 도착해서는 나와서 흰 피라미드를 돌아가면 미스미 동항 (三角東港) 입니다.
( 미스미 서항 三角西港 은 동항에서 언덕을 넘어가면 나오니 1880년대에 새로 만든
항구로 지금은 카페이자 의상대여소가 된 옛 호텔은 1890년대에
여기서 사랑에 빠졌던 작가 고이즈미 야쿠모가 좋아한 곳으로 옛 건축물들이 많답니다. )
미스미 동항 (三角東港) 에서 아마쿠사 다카라지마 라인 (天草宝島ライン) 배를 타는데,
평일(11시 15분, 16시 15분) 이고 토일요일 11시 25분, 13시 45분, 16시 15분
이며 20분후 아마쿠사의 마쓰시마(미에시마) 항에 도착하니 가미 아마쿠사를 관광합니다.
가미아마쿠사시는 인포메이션센터를 비롯해 볼더링 체험존, 아마쿠사의 신선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마켓존과 숍이 모여 있으며 카약, 크루즈, 패러세일링 등 액티비티의 예약과
체험이 가능하다는데.... 자전거를 대여해 가미아마쿠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불수 있습니다.
주소: Kumamoto, Kamiamakusa, Matsushimamachi Aitsu, 6215-17
운영시간: 09:00 ~ 17:30 미오 카미노 아마쿠사 mio camino Amakusa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kyusanko.co.jp/miocaminoamakusa/
리조라 테라스 아마쿠사 リゾラテラス天草 : 다양한 컨셉의 상점이 모여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바다 전망을 감상하며 식사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부터, 아마쿠사 지역 특산품을 만날 수 있는 기념품 숍.
주소: Kamiamakusa, Matsushimamachi Aitsu, Kitamaejima
6215-16 운영시간: 09:00 ~ 17:30 (주말에는 18시까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lisolaterrace.com/
그런데 우토역에서 보니 10시 45분으로 기차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아있는데 이 역은
새로 초현대식으로 지었는데..... 대합실이나 편의점이며 휴계 시설이
전혀 없고 화장실과 역사 뿐이니 여기서 우두커니 기다리기는 너무 무료합니다.
이코카 카드를 개찰기에 터치하고 들어가서는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중에 날도 추운데
기다리자니 무료하고 추운 중에 마침 여기 우토시 남쪽에 야츠시로
(八代) 가는 기차가 들어오기로....... 10시 50분에 추위도 피할겸 그만 올라 탑니다.
가다가 중간에서 돌아올 생각으로 올라탄 것인데.... 그런데 이 기차는 완행인 후쓰(普通 보통)
기차라 시간이 너무 걸리는지라 11시 10분에 3정거장 만인 알라사역에 내려
반대편 플랫폼으로 갔는데 10분 내에 기차가 있으면 돌아가서 저 미스미행 열차를 타면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다음 열차가 30분 후인 11시 42분에나 있네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이 열차를 타고 우토시에 도착하면 우리가 탈려는 11시
47분 기차는 15분 정도가 늦어 못타게 되었으니 쓸데없는 짓을 해 버렸습니다?
어쩔수 없는지라 역으로 들어가 이코카 카드를 찍고 다시 들어오면서 이코카 카드를 찍었는데,
조금 기다려서는 구마모토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고 우토역에 도착하니 역시나
10여분이 늦어 기차는 놓친지라....... 역사를 나가면서 이코카 카드를 터치하니 에러가 뜹니다.
해서 역무원에게 설명을 하는데..... 3정거장을 가서 다시 되돌아 왔다고 예기를 하자니 요금을 내지
않는다기 보다는 잘못 탔다는 말은 해야 해서.... 그리고 왜 에러가 난건지 생각해 보면 저
3정거장을 가서 역으로 들어가면서 카드를 찍기는 했는데 개찰기가 아닌 다른 곳에 찍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역무원은 돈을 추가로 달라는 말은 하지를 않고 키보드를 조작해 해제를
해주니..... 2번 탄 것 중에 한번은 요금이 빠져 나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미스미 가는 기차는 한시간에 한 대가 있으니 50분 가량 기다리면 탈수 있지만 원래 기차에서
한시간이나 늦어진 지라..... 그만 버스를 타기로 학고는 역을 나와 버스 정류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버스 정류소에 무슨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는데..... 구마모토에서 여기 우토역을
거쳐 아마쿠사로 가는 버스가 여기 우토역 구간은 운행을 하지 않는다네요?
이걸 휴대폰으로 찍어 다시 역으로 올라가서는 일단 다음 기차를 660엔씩
현금으로 끊고는 기차표를 받아든후 휴대폰 화면을 보이면서 버스가
이제 운행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서류철을 뒤적이다가 어디 전화를 합니다.
그러고는 아마쿠사에서 구마모토로 돌아오는 버스만 우토역 구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간다는 소리이며
반대로 구마모토에서 아마쿠사로 가는 버스는 여기 우토역을 거친다기에 다시 기차표를 환불한
다음에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 13시 03분에 도착하는 아마쿠사호 (あまくさ号) 버스에 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