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상태에서는
개인이 전혀 없고
영원한 존재만이 있습니다.
에고가 일어나면
그것이 생시입니다.
동시에
생각들도 일어납니다.
그더러 생각들이
누구에게 있는지
발견하라 하십시오.
그 생각들은
어디서 일어납니까?
그것은
의식하는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희미하게라도
이해하는 것이
에고를
소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의 무한한 존재를
깨닫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 상태에서는
개인이 전혀 없고
영원한
존재만이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 죽었다는 생각도 없고,
비통해 할 일도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죽음의 공포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자신이
과연 태어났는지,
즉
자기에게 탄생이 있는지
발견하라 하십시오.
그러면
자기는 항상 존재하며,
태어나는 몸은
생각 속으로 흡수된다는 것,
그리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모든
해악의 뿌리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항상 존재하는
가장 깊은 내면의
자기 안에 안주하게
될 것이고,
태어났다는 생각이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생각들은
무수한 전생에 축적된
원습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절멸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원습에서
벗어난 상태가
원초적 상태이고,
영원한
순수성의 상태입니다.
누구나 영원한 자기를
자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수많은 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기 자신은
영원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니까요.
그 본래적 진리가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사람은
의식하는 자기를
지각능력 없는 몸과
혼동함으로써
미혹됩니다.
이 미혹이 끝나야 합니다.
태어나는 것은
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미혹은
에고와 동시에
일어날 뿐입니다.
그것은
일어나고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실재는
결코 일어나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깨달은 스승이 그렇게 말하면,
제자는 그 말을 듣고 그에 대해
성찰하여 자기를 깨닫습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데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항상 존재하는
참나를 깨닫는 데는
어떤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깨달음은 항상 있습니다.
환幻을 제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이들은
스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것을 단박에
제거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깨달음을 얻으려면
명상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둘 다 옳습니다.
관점이 다를 뿐이지요.
명상은
스승의 은총에 의해
그 원습이 점차 약화되면서
단계적으로만 다가옵니다.
ㅡ 대담ㆍ라마나 마하리쉬 ㅡ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