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론강단-509 성경과 역사의 거울(고린도전서10장1-13절)
성경말씀은 고린도전서 10장 1절에서 13절까지 봉독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오늘 고린도전서 제 10장에는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오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을 해 두었는데, 기록해 둔 것이 그 때 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생활뿐 아니라 예를 들어서 예레미야 같은 경우 보세요.
예레미야가 40년을 울면서 눈물로 말씀을 전했지만 그 시대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록을 해 놓은 것은 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인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는가 하는 것을 알란가 해서 그 예레미야서를 기록했을 거거든요.
그 때 그 사람들은 안 들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 보통 기독교인들이 심지어 목사님들까지 예레미야서를 보느냐 하면 안 보거든요.
‘잘된다 복준다’ 그런 말 없다고 해서 안 보는 거야.
그래서 예레미야서 딱 한절 33장 3절 ‘내게 부르짖어라.’ 그 한 말만 보고 맨날 주여 삼창하고 부르짖고 예레미야 울든지 말든지 내 알바 없다.
이렇게 성경을 성경이야말로 과거에 기록된 사실이지만 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울 삼아서 우리 삶을 거기에 비춰보고,
또 10장 6절에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라고 번역을 했는데, 사실은 이 단어는 여기 나오는 거울이라는 단어는 번역이 좀 의미로는 맞는데 원어에서는 직역을 한게 아니라, 이것은 완전히 의역을 한 거야.
히브리어 원문은 여기가 ‘티포스’라는 말인데, 그것은 ‘경계’라고 해야 맞습니다. 경계..
거울과는 전혀 달라요.
실제로 성경에서 말하는 거울이라는 단어는 고린도전서 좀 있다가 나올 거예요.
13장에 ‘이제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 할 때 그 거울이 진짜 거울이고, 여기 말하는 우리 말로 두번이나 11절에도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어’라고 번역한 것도 직역이 아니고 의역을 한는 건데, 티포스라는 말은 경계가 되어, 조심하라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조심하라는 뜻으로 기록되었다. 그런 얘기예요.
자, 이제 10장 1절부터 차근차근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런 것을 우리가 ‘이중부정’이라고 하죠?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한다. 이렇게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을 말할 때 씁니다.
‘제발 좀 알았으면 좋겠다.’ 할 때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한다. 이렇게 기록하는 건데,
뭘 그렇게 알게 할려고 하느냐 하면,
..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하는 얘긴데,
그 때,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신비하고 신령한 만나를 먹었다는 얘기죠.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이 반석이니까 반석이야말로 그리스도다..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생각할 때 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은 사람들이니까 은혜 받았고 복 받은 사람이 아니냐..
반석에서 물이 터져나와서 그런 물을 마셨으니까 정말 하나님이 돌보시는 백성이고 하나님이 복주시는 백성이고 은혜 베푸시는 백성이고, 신령한 것을 받았으니까 복받고 은혜 받은 거냐?
별로 그렇지 않다는 거야.
여러분 어느 날 아침에 여러분 자고 났는데, 때거리가 없어봐. 그래서 ‘하나님 오늘 아침에 때거리가 없습니다. 먹을 것을 주옵소서.’ 나갔더니 마루에 만나가 이만큼 떨어졌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길길이 뛰고 난리가 날 거야. 그렇죠.
그런데 그 만나 먹고도 죽었어요.
만나를 하루 저녁만 먹은게 아니고 40년간 먹었는데..
그리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서 마시고 그런 기적을 그렇게 많이 체험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도 가나안 땅에 데려가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은 그렇게 기적을 많이 보고도 안 믿었으니까 순종 안 했으니까 우리보다 믿음이 더 나쁜지 몰라요.
여러분은 별로 기적도 안 보고 잘 믿는데.. 그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도 안 믿어가지고 그래서 결국은 그 기적을 그렇게 많이 보면서도 믿지 않아서 멸망받은 사람의 본보기가 되었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천국 못갈바에 애굽에서 고센 땅에서 살걸 그렇죠?
괜히 나와서 말을 안 듣고 믿음 없이 하다가 그런 신령한 체험, 애굽 바로왕과 그 신하들에게 내린 열가지 재앙을 체험하고, 홍해 바다가 갈라져 마른 땅처럼 밟고 건너고, 매일 같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하고, 매일 같이 만나를 내어 먹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고, 그렇게 기적으로 기적으로 기적으로 살아왔으니까 하나님이 굉장한 은혜 주시고 복주신 백성이었느냐?
별로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5절에 보면,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여러분 하나님이 숫자 많은 편에 서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교회는 자그마한 교회죠.
자그마한 교회이니까 어떤 사람은 ‘아이고 교회가 너무 작아서 안 되겠다 애들 교육도 안 되겠다’ 하고 딴데로 가는 거야.
이것을 들어봐야죠.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숫자 많다고 숫자에 하나님이 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열심히 전도해야 되고 하지만, 그냥 단지 숫자 많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예수님께서 ‘적은 무리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때로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다 대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사람들이지,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꾸 사람들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려고 따라오니까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런 말씀을 세번씩이나 하시고 그런 사람을 내가 마지막에 다시 살린다 하니까 슬슬 사람들이 가는 거예요.
‘나는 내 마음대로 왔는데’ 하면서 또 가고 또 가고..
나중에 보니까 열두 제자밖에 안 남았어.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도 갈래?’ 그렇게 물어봤죠.
사실은 참 진리를 따라가고 손해볼지라도 진리를 따라가고, 세상 사람들이 멸시천대 할지라도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따라간다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예요. 어느 때나..
막 그저 군중심리에 몰려가고 큰 교회에 가면 뭐가 있지 않겠나..
대형 교회는 그 안에 온갖 프로그램과 편의시설이 많지 않겠나.. 그런 것 다 누리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 섬기기 위해서 가는게 아닌 수가 많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조금 다를 거예요.
세상에 누릴게 아무 것도 없고, 큰 교회도 아니니까 그렇잖아요.
여기에 뭘 기대하고 바랄 것이 아니라..
그래서 아무 프로그램도 없고 하니까 아마도 그래도 착각인줄 몰라도 진리를 찾아서 오신분들이 아닌가..
오늘도 보니까 지금 함께 예배드리는 중에 분당에서 한 가정이 오셨어요.
예배 한번 드리고 싶어서..
오전 예배때는 원주에서 한분 왔었거든요.
또 한분이 서울에서 한 가정이 온다고 했는데, 딴데로 갔는지 못 찾는지 아침에 출발 했다하는데 아직 도착 안 했어요.
그러면 제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제 얼굴보러 온 것도 아닐 것이고, 진리를 찾아왔다면 참 감사한 거야.
다른 것을 쫓아서가 아니라 진리를 쫓아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 뭘 바라고 나를 따르느냐? 무엇을 구하느냐?’
물어보시는 거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런 거울을 두었는데, 여기 거울은 성경의 거울 혹은 역사의 거울이죠.
지금도 제 책상 옆에 부단히 역사책을 놓고 봅니다.
최근에 보고 있는 책은 ‘투쟁의 역사’예요. 제가 싸울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역사 가운데 정말 옳은 것을 위해서 투쟁하고 정말 자기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쟁취하는 그런 자유를 누리는 어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1,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책을 다 한번 읽고 하도 제가 감동을 많이 받아서 또 한번 더 읽을려고 하는데, 오늘 낮에 왔던 원주에서 오신 분이 바로 투쟁의 현장이었던 알제리라고 하는 데가 있어요.
지중해 저 끄트머리 북아프리카 스페인 마주보는 쪽에 알제리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프랑스가 160년간 지배하면서 못됐게 했어요. 프랑스가..
여러분 프랑스가 그런 나라를 지배하면서 못됐게 했기 때문에 그들이 프랑스가 믿는 기독교나 카톨릭을 안 믿고 이슬람으로 간 거예요.
물론 그 앞에부터 갔지만 잘 했어야 돼요.
기독교가 이슬람교와 비교가 안 되게 참 선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종교다 이것을 보여 줬어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 못했다는 거야.
대영제국은 어떻습니까?
대영제국은 우리가 그들 편에서 역사를 기록해서 그렇지, 이슬람 국가라든지 제3세계라든지 인도라든지 이런 데에서 하여튼 그런 나라가 와서 식민지 정책을 폈던 곳마다 이를 갈면서 기독교를 혐오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잘못한 거거든요.
그 때 그저 이른바 기독교라고 하는 나라 아니면 카톨릭이라는 나라가 가서 남미에서 제3세계에서 동남아에서 얼마나 악독한 일을 많이 했는데, 그 때 민족 지도자들이 일어나서 투쟁을 해가지고 독립한 이야기..
그게 전부 다 기독교로부터 독립한 이야기야. 보니까..
창피한 이야기죠.
그래서 섬기는 자세로 하지 않았고, 성경에 있는 말씀을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세로 하지 않고, 그저 군림하고 착취하고..
여러분 중국 선교사 뒤에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아편 장사였어요. 아편 장사..
중국에 그 유명한 선교사가 많이 갔었는데, 그 뒤로 꼭 아편 장사가 따라가서 나중에 중국 원나라 황제가 임칙서라는 사람을 내려 보내가지고 ‘네가 목숨을 걸고 아편을 완전히 척결하라.’ 해가지고 영국 상선으로부터 빼앗은 아편 상자가 2만 2천 3백 상자예요.
그것을 다 소금을 섞어서 불싸지르는데 20일이 걸렸어요.
불싸지르는데..
여러분 지금도 아편 전쟁이라는 영화가, 죄송합니다. 보실려면 할 수 없이 불법으로 다운 받아야 됩니다.
그 아편전쟁이라는 영화가 2시간 반쯤 될텐데, 엊그제 봤는데, 그 부분을 책도 읽어보고 영화도 보고 했는데, 여러분 책을 가지고 쓴 것도 사실에 10분지 1도 표현하기 어렵고 영화를 가지고 표현한 것도 100분지 1도 표현하기 어려운 거야.
그들이 악을 행하기를 몇십년 동안 행한 것을 한두시간에 어떻게 그것을 다 드러내겠어요?
그래서 그 역사를 보면서 정말 기독교 나라라고 하는 나라들이 못된 짓을 이렇게 많이 했을 수 있나..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다 아편에 중독되어서 나중에 원나라 황제 스승까지도 아편에 중독이 된 거예요.
벌벌 떨더니 황제가 임칙서를 보낼 때, 임칙서의 스승이고 황제도 그 스승 밑에서 배운 사람인데 그 임칙서 앞에서 ‘내가 아편에 물든 사람은 자네의 스승이고 내 스승이라도 어떻게 하는 것 봐라’ 하고 황제가 스승을 참수를 합니다.
‘똑 바로 보고 가서 너도 제대로 못하면 그냥 목이 달아난다.’
그래서 관리들에게 가서 모아놓고 지역관리들에게 가보니까 지역관리들이 다 영국 아편장사와 짜고 치는 거예요.
임칙서가 가서 관리부터 다 아편에 물들어있고 아편장사와 짜고 치니까 근절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임칙서가 그 관리들에게 가서, ‘여러분 혹시 아편에 같이 손 댔거나 아편에 중독된 사람 없느냐?’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네시간만 같이 앉아 있어봅시다.’ 그런 거야.
한 시간 되니까 그냥 아편 약효가 떨어져서 버들버들 떨다가 나가 자빠지는 사람 엎어지는 사람, 한 세시간 가니까 못견뎌가지고 도망을 가는 사람..
그러니까 관리들이 다 중독 된거야.
그런 데에 가서 아편을 척결할려고 하니까 되겠어요? 그게..
그래서 결국은 그래도 그것 다 빼앗아 가지고 2만 2천 3백 몇십 상자를 다 불사질렀더니 영국 정부에서 이른바 동인도 회사라고 해서 영국 정부가 인도 뱅골만에서 양질의 몰핀을 생산해가지고 중국을 침탈할려고 했던 건데, 그 영화 한번 꼭 보십시오.
바로 우리 이웃에게 있었던 역사인데, 잘 모르거든요. 아편전쟁에 대해서..
그 영국이 쳐들어오는 거예요. 쳐들어오는데 영국의 신무기 대포, 그 영국 대포는 사정거리가 엄청나고 명중률도 좋는데, 중국대포는 푱하면 앞에 떨어지고 게임이 안 되는 예요.
그래서 그 원나라가 지게 되니까 할 수 없이 협상해가지고 홍콩을 떼어가지고 영국에 갖다 바치고 항구 다섯개를 아편장사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것으로 해가지고 혹 뗄려다 혹 붙인거죠.
여러분 그 아편장사가 언제까지 있었느냐?
우리 나라 6.25사변때까지 계속 있었어요.
근절하기 어려운 거죠.
그런 투쟁의 역사를 읽어보면서 제가 느낀 건데, 유럽의 기독교와 카톨릭이 남미에 가서 얼마나 악한 짓 했는지 아세요? 카톨릭이..
영국이란 것은 우리 장로교와는 다릅니다만 그 영국이 대영제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 하고 악랄하게 남의 나라에 침략하고 그런 짓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전부 역사를 승자편에서 기록한 것만 읽었기 때문에 진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역사의 거울이 있고 성경의 거울이 있어요. 둘 다 잘 봐야 돼요.
오늘 ‘에밀졸라’ 영화 잘 보셨나요?
처절한 이야기죠. 정말..
프랑스도 그렇게 그런 짓들을 한 겁니다.
그렇게 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해가지고 썩어빠진 거야.
그런 것을 다 투쟁을 해가지고 오늘 우리가 이만큼 자유를 누리는 거죠.
그래서 여기 ‘하지말자 하지말자’ 라는 말이 네번 다섯번 나오는데,
6절에,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후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거울이 되어,
..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기 위해서 산에 올가간 사이 못 기다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사건인데, 아니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가 안 내려오면 올라가서 찾아봐야지 우상을 만들어서 되겠어요?
아주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죠.
우상을 만들고 거기다가 먹고 마시고 우상 앞에서 뛰놀고 그렇게 한 거야.
그래서 그런 것도 그러면 안 된다 그말이죠.
8절입니다.
8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구약성경에 보면 2만 4천명으로 되어 있어요.
2만 3천명이나 4천명이나 어떻든 많은 사람이 하루에 그렇게 죽었어요.
..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간음했다가 싯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죠.
그래서 2만 4천명이 죽었으니까..
왜 그런 것을 기록했겠느냐?
누가 간음할 때마다 2만 4천명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 호된 값을 지불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은 우리 후시대 우리에게 거울이 되게 해 놓은 거란 말이죠. 그게..
9절입니다.
9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자.
되지도 않은 짓을 하나님께 생떼로 졸라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하거든요.
그러다가 뱀에게 물렸다는 거죠.
10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원망하고 주를 시험하고 간음하고 우상숭배하고 다 이런 것들이 출애굽 과정에 늘 이어져 왔던 것들인데, 이것을 다 기록으로 남긴 것은 그 때 그 사람들은 말을 안 듣고 다 죽었지만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 말이죠.
11절,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경계로 기록되었다’ 하는 말이 정확한 말이죠.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여러분 섰으니까 넘어지는 거죠.
안 넘어지면 안 일어나죠.
그러니까 항상 우리가 겸손하게 발발 기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지, 뭐 그저 섰다고 잘났다고 하다가는 넘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어려운 과정 고비를 더러 넘겨 왔을 거예요.
‘야 이제 나는 사업도 끝났고 인생도 막장이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났다.’
그런 수가 가끔 있죠. 눈 앞에 캄캄하고..
그런데 또 보면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도 내시고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가 여기에 버티고 있는 거죠.
저는 한번 우리 집사람이 막내를 낳을 때 지켜보다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여자들이 원래 붙잡기만 해도 아야 어마야 저마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엄살이 심해서 애 낳는게 아프다 하겠지, 실제로 그렇게 아프겠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한번도 안 낳아봤으니까..
제가 송아지 낳는 것 많이 봤거든요. 시골에서..
마구를 치고 있는데, 그 송아지를 낳을란가 싶어서 짚을 갈아주고 치우고 있는데, 어미소가 아야 마야 이런 말도 없고 그냥 그냥 힘을 주더니 출렁하고 나오는 거야. 그냥..
아무 힘도 안 들이고 그렇게 쉽게 낳더라고..
그리고 닭은 매일 아침에 낳잖아요. 그러죠?
그냥 낳고 나서 꼬꼬댁 하면 끝나는 거지, 달걀 낳을 때 아야 하는 것 없어. 낳고 나서 꼬꼬댁 하는 것이고, 돼지는 30분만에 12마리 낳아버리는 거야. 음음 하면 한 마리 낳고.. 음음 하면 또 한 마리..
이렇게 순하게 낳는 거예요. 다..
그리고 낳아놓으면 5분만 되면 물만 마르면 쫓아다녀..
송아지도 그냥 엄마가 핥아주면 털 마르면서, 털이 안 마르면 겨우 다리가 후들후들 서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데 딱 털만 마르면 마당이 좁아.
송아지가 오전에 태어났는데 오후에 뛰어다니는 거야. 그냥..
그런데 내가 보니까 사람 새끼는 애먹이는 거요. 이게..
이게 무슨 30살 길러도 사람 노릇 할까말까.. 사람 잡는 거야. 완전히..
나는 참 여자들이 애 낳는 것을 예사로 생각했다가, 왜냐하면 첫째 둘째 셋째까지는 내가 낳을 것을 안 봤거든요.
우리 어머니가 다 조산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막내 낳을 때는 우리 어머니가 미쳐 오기도 전에 임산한 여인에게 해산고통이 갑자기 임한 것같이 그렇게 그냥 들이닥치는 바람에 어머니가 올 틈도 없이 내가 지켜보게 되었는데, 입술이 새파랗게 되어서 숨 넘어가다가 풀어지고 풀어지고..
그래서 그 때 참 그 아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내가 내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우리 어머니도 나를 저렇게 낳았을텐데..
나는 날 때 애가 컸다는데.. 동네에서 구경하러 왔었다는데..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겠는가..
그리고 우리 기를 때에는 기저귀라는 것도 없었어요.
기저귀는 무슨.. 그냥 엉덩이 다 내 놓고 아무대나 볼일을 보면 그냥 개가 와서 워리 하면 쫓아와서 싹 치우고.. 그러면 끝나는 거야. 그냥..
안 믿어지죠. 그게 똥개라는 거예요.
겨울 내도록 우리가 6살 될 때까지 아랫도리는 아예 안 입는 겁니다.
옷이 아예 없어요. 그냥..
그리고 7살쯤 되면 고쟁이 같이 생긴게 있어요.
중요한 것은 다 나오고 옆에서 보면 바지인데, 밑은 다 터진 거야.
그냥 바람이 무사통과하는 그런..
그러니까 참 볼일보기 편합니다. 아무 곳이나 앉으면 끝나니까..
그러다가 학교갈 때쯤 되어서 중요한 것 가려지는 그런 옷을 입은 거예요.
그리고 내복이라고 하는 메리야쓰가 나온 것도 우리가 초등학교 되어서 나왔어요.
그 앞에는 내복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신발도 고무신도 우리 때에 나왔거든요.
그 앞에는 짚신이야. 짚신..
창세이후로 우리 아버지까지 짚신을 신었다니까..
아이고 그런 데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게 아닙니다.
겨울에 고무장갑도 없었어요.
그냥 시내가 앞도랑이 따뜻하냐? 뒷도랑이 따뜻하냐?
그냥 도랑물 흐르는 개울에 가서 빨래를 하는 거예요. 찬물에..
수도가 어디 있어요?
집에 수도가 있는게 아닙니다.
마을에 가서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가지고, 독도 양철동이는 가벼운 것은 나중에 나왔어요. 그 앞에는 무거운 오지독을 이고가서.. 그러면 물이 질질질 목을 타고 내려와. 그 추운데..
그래가지고 얼음이 번질번질 얼어있는 그 길로 물을 길어다가 소죽 솥에 물을 가득 채워야 되고, 또 물독에 물 채워야 되고..
그리고 가스렌지나 오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무불을 갖다가 때어가지고 요리해가면서 불 집어넣고 요리 하다가.. 아이고..
길쌈 다 해야 되고 논밭 다 메어야 되고 애들을 일곱명이나 낳아야 되고..
그렇게 우리 어머니가 우리를 기른것 생각해볼 때 우리 어머니 앞에는 더 했을 것이고, 그 이전에는 더 했을 것이고,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 갖고 오기 전에는 무명베도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살았겠어? 도대체가.. 창세이후로 지금까지..
그래서 내가 살아 존재한다는 것만 해도 신비한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그래서 이게 저나 되니까 이런 말을 하지요. 우리 아들 대에만 해도 모르는 겁니다. 진짜.. 듣지 못한 얘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 우리가 너무 편해가지고 이렇게 살아도 천당가겠나 싶을 정도로..
지금 우리가 사는게 너무 편해가지고 이렇게 편하게만 편하게만 살아서 천당 가겠나 싶을 정도로.
우리 어머니 우리 집사람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았어요.
옛 사람들이 이렇게 삶을 정말 어렵게 살았는데, 그런데 바울이 살았던 2천년 전에는 오죽 했겠어요?
거기다가 예수 믿으면 잡아 죽이는 판이니..
그런데도 불구하고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신다.
제가 볼 때 바울 같은 사람이니까 참고 다 견뎠지 요즈음 사람 같으면 참고 견디지 못할 것 같아..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다른 모든 죄도 지어서는 안 되지만, 우상숭배만큼은 안 해야 됩니다.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어린 애도 아니니까 스스로 판단해봐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이 세상 사람들, 이반인의 제사는 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거예요.
자주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우리가 조상에게 제사한다 하지만 조상이 아닙니다.
조상은 오지 않아요.
조상이 오지 않고 우리가 조상인줄 알고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이렇게 써서 붙여놓고 자기 아버지가 오는 줄 알고 절하지만, 아버지는 못 옵니다. 대단히 죄송한데 낙원에 가도 못 오고 음부에 가도 못 오는 거야.
못 오는 대신이 못 오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동네 온갖 귀신들 잡신들이 와서 앉아 있을 거예요. 보나마나..
여러분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안 보여서 그렇지, 볼 수 있다면 틀림없이 동네 귀신들 다 앉아있을 거야.
왜냐? 사람이 거기 절하거든.
사람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야.
하나님의 형상에게 절 받으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귀신들이..
그러니까 구푸릴 때마다 귀신들이 희희낙낙하고 앉아 있을 거란 말이요. 하나님의 형상이 자기들에게 절을 하니까.
여러분 우리가 형상을 거기 구푸리는 것은 실상을 절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할 수 있죠. 까짓 것..
그런데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결코 어떤 귀신 앞에 내 허리를 거기 굽혀서 마귀에게 귀신에게 우리 허리를 굽혀서 절 받게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거기 구푸리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내가 교만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거기 구푸릴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귀신에게 제사한다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거야.
그러면 안 되겠죠.
귀신과 교제하는 거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우리가 성찬식 할 때 예수님 피를 마셨던 그 입으로 귀신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다.
그런 얘기죠.
..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하나님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얘기죠.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할 수 있다고 다 유익한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다고 다 가하다고 해서 다 덕을 세우는게 아니야.
그래서 항상 무슨 일을 하든지, 옳은가 바른가 유익한가 덕을 세우는 건가 그것을 생각을 해보고 행동을 해야 돼요.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내게 유익하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도록 삼가야 돼요.
그래서 내게도 유익하고 다른 사람도 유익한 일을 찾아야 돼요. 일을..
내가 덕보면 다른 사람 손해보면 위험한 거야.
그런데 25절은 우리가 꼭 살펴야 되는데,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낮에도 말씀드렸죠?
고린도에 가면 고린도 섬 한복판에 우뚝 솟은 산 언덕 높은 산성같이 생긴데가 있는데, 아크로고린도라고 해요.
그 아크로고린도 안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는데, 그 신전에 바쳐졌던 수많은 제물들을 자기들이 다 못 먹기 때문에 시장에 갖다 판다는 거예요.
그런 경우에 그냥 따지지 말고 묻지 말고 그냥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양이 있다할지라도 그 양도 하나님이 내신 것이지, 우상에게 뽀뽀를 한 것도 아니고 침을 흘린 것도 아니고 시장에 파는 것 같으면 그냥 사다 먹으라.
그런데,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것 제사한 거죠? 우상에게 바쳤던 거죠?’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먹으라는 거야.
그런데 그 때 먹을려고 하는데,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제물이야.’ 그렇게 하면 우리보고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귀뜸을 하는데, 그래도 먹으라 하면 약한 양심이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까 그 사람이 먹지 않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조심을 해야 돼요.
우리 양심이 아니고 그 약한 양심이 상처를 입지 않게 하라는 거죠.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낮에도 말씀드렸죠?
자유한 것이나 권리나 그런 것을 다 주장하지 말고,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런 자세를 취하라.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다 하는 쪽으로 행동을 해야 돼요.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그 사람 때문에 교회 가기 싫다.’
우리 성도님 중에 ‘누구 꼴보기 싫어서 교회 가기 싫다.’ 이런 말 나오게 살아서는 안 돼요.
아무리 옳고 그르고 간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 꼴보기 싫어서 교회 가기 싫다’ 이런 말 듣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러면 잘못된 거야. 벌써.. 극히 삼가야 돼요.
제가 전에 있던 밀양 무안교회 한 여자 집사님이 사람이 너무 착해요.
앞을 봐도 착하고 뒤를 봐도 착하고 언제봐도 착하고 한결같이 늘 웃는 인상이고, 그래서 새로 온 분이 얼마 안 되었는데, 그분이 너무 인상이 참 좋으니까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감동이 된다는 거야.
그런데 그분이 막걸리 만드는 양조장 사장 부인이야.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착해요.
온 성도들 중에 그만큼 사람이 착한 사람이 없는 거야.
양조장 사장 부인인데 그렇게 착해요.
그래서 오는 사람마다 ‘저 사람 양조장 사장 부인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고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람이 감동이 된다는 거예요.
너무 너무 착하니까..
그런 교회에서 이렇게 누가봐도 참 보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지.. 누구 꼴보기 싫어서 교회 가기 싫다. 이런 말 들어서는 안 돼요.
정말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나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나 때문에 혹은 나의 행동이나 말이나 잘못해가지고 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게 아닌가 깊이 생각해봐야 돼요.
그래서 제가 전에 있던 분들에게 그러죠.
우리 교회는 목표 지향이 아니라 관계 지향이다.
또 화평이 더 중요해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평이예요. 화평..
화평을 깨 가지고 화평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없어요. 절대로..
특히 교회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나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이것을 덕을 세운다는 거죠.
항상 더 큰 것을 생각하는게 덕이예요.
여러분 덕(德) 자가 ‘큰 덕(德)’ 자예요. 큰 덕..
내 작은 이해관계 아니면 내 작은 감정 내 작은 자존심 이런 것 보다 항상 더 큰 것 을 생각해서 나 한사람 기쁜 것 보다는 나 한사람 조금 마음이 상하더라도 더 여러 사람이 더 기쁘게 하는 쪽으로 일을 한다..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도 거치는 자가 있다는 거죠.
지금도 오늘날 일전에 뉴스엔 조이라고 하는 교회 개혁 신문에서 당신은 왜 기독교를 싫어합니까? 여러분 혹시 뉴스엔 조이에 들어가봐요.
기독교를 왜 싫어하는지 다 읽어봐야 돼요.
읽어보면 우리 교회 우리 생활 내 개인 내 가정 내 자녀 고칠게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번도 직접 안 들어봤잖아요.
그런데 신문에 그렇게 내니까 교회 욕 하고 싶은 사람 마음놓고 해보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어떤 목사님이 답변을 했는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욕하는게 전부 다 진실이고 사실이라는 거야.
예수 안 믿는 사람 교회 나오기 싫어하는 기독교 싫어하는 사람이 다는 아니라도 거의 대부분이 사실이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는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하지만 교회는 싫다’ 이런 말 들으면 안 된다는 거야.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깊이 생각해야 돼요.
반대로 그 사람 보고 싶어서, ‘하나님이야 보이나? 나는 사람들이 좋아서 간다.’
‘천국은 이 다음에 가는 것이고 나는 사람들이 그분들이 너무 좋아..’
‘누구 보고 싶어서 간다’ 이렇게 되어야지, 누구 보기 싫어서 그래놓고 우리가 아이고 하나님 보고 가야지 사람 보고 가면 됩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거꾸로 아이고 하나님 보고 갑니까? 사람 보고 가는 거죠. 우선에..
하나님이야 안 보이잖아요.
사람을 보고 하나님 믿습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잖아요. 어떻게 불신자가 믿음이 약한 자가 사람 안 보고 하나님 볼 수 있겠습니까? 못 보죠.
세상 사람이나 초신자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사람 보고 오는 것이지, 하나님 보고 오는게 아니예요.
그리고 하나님 보고 교회 간다 그렇게 못합니다.
하나님은 안보이니까.. 사람 보고 오는 거예요. 교회에는..
그래서 우리가 정말 누구 보고 싶어서 누구 생각할 때 교회 안 갈 수 없다. 이런 말을 듣고 살아야 돼요.
제가 첫시간에 얘기 했죠.
고린도 교회 문제를 다 이해하면 오늘 우리 대부분의 한국교회 문제 다 이해되는 거다.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로마서 갈라디아서보다 중요한게 이게 지금 실제적으로 고린도 교회에 있던 이런 문제 지적받는 것 다 우리가 우리 생활에서 우리 교회에서 우리 가정에서 해소가 되면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는 날아 올라갑니다. 정말..
잘 배워야 돼요.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 신앙과 생활이거든요.
그러니까 신앙도 신앙이지만 생활이 잘 되어야 돼요.
그래서 우리 샤론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하나님 보기 위해서가 아니고, 샤론교회 성도들을 보고 교회에 나오고 싶어지는 그런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고린도 교회 그 때 기록된 것도 옛날 출애굽 때 기록된 것도 다 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성경이 거울이 되고 역사가 거울이 되고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계가 되게 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늘 성경 앞에 역사 앞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고, 혹시 하나님 말씀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나 또 지역 사회에서나 가문에서나 회사에서나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 싫어지는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의 말과 행동과 우리의 생각까지 가다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