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과일
정예리
나는 항상 불만이 많았다. 내 뜻대로 안되면 한동안은 계속 불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자신이 긍정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고치고 싶었다.
필리핀에 오기 전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필리핀의 환경이 한국보다 열약하고, 덥고, 벌레도 많을텐데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필리핀에서 가장 걱정없이 놀았다는 언니의 말에 그래도 기대되는 마음으로 필리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오니 필리핀 샘들께서 지프니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다들 환하게 웃고 계셨고 그때 이동학습이 시작된게 실감이 났다. 무의식적으로 조금 긴장하고 있던 것도 탁 풀어지는 듯 했다. 사방이 탁 트인 블루지프니를 타고 뻥뚤린 창밖으로는 처음보는 필리핀의 나무, 사람들, 거리를 바라보았다. 통통튀는 스릴과 함께 시원한 바람을 맞을땐 진짜 기분이 좋다못해 황홀했다. 이렇게 깔리까산에 처음 도착했다.
초반엔 깔리까산이 새로웠다. 급식도, 교정도, 루틴도 새로웠다.
처음엔 몸이 계속 아파서 힘들었다. 배가 너무너무 아프고 자꾸 깨서 잠도 잘 못잤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다른애들은 다 행복해보이고 문제 없어보이는데 나만 문제가 많다'. 이런 생각을 할때면 더 비참해지는 것 같았다. 당연히 친구들도 여러 고민들이 있을 걸 아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항상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너도 이런 적 있어?' 라고 물어보며 내 상황을 알리고 이해받고 싶어했다. 뭐 이런 고민들은 한국에서도 항상 하니까 익숙하다 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런것들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눈으로만 공간에 적응해갔다. 그런데 적응하고나니 왠지 우울했다. 처음엔 바쁘게 적응하느라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보니 맨날 걷는 교정도, 기숙사도 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되니 점점더 불안은 커져 갔다. 항상 내옆에서 밝게 웃는 친구들을 볼때면 더 그랬다. 친구들은 벌써 이 공간과 친해보였고 알수없는 우울감도 느끼지 않아 보였다. 어느순간 항상 불안과 걱정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보니 깔리까산에 온 순간부터 홈스테이가 다가오는 이때까지 난 한순간도 불안하지 않은적이 없었다. 여행을 갈때도, 친구들과 떠들때도 말이다. 항상 더 나아지고 싶어서 했던 고민들이 이제와서는 내가 1학기를 어떻게 보낸거지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이런 고민들을 떠안고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홈스테이는 지루했던 일상에 색다른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환경은 내가 걱정하던 대로였다. 처음엔 어찌할바를 몰라 불만이 올라왔지만 금방 적응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들이 정말 많았다. 예원이에게 하나하나 징얼댈 수도 없었고, 내가 더 편하려면 생각을 바꾸고 직면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하는것이 나중에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하는 밑밥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경험들로 나는 긍정적인 생각이 때론 너무 심한 걱정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홈스테이를 다녀오고 나서는 깔리까산이 마치 오랜만에 온 고향 처럼 반가웠다. 공간에 대한 우울감이 사라지자 내가 하던 여러가지 걱정들도 차차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홈스테이를 기점으로 배아픈것이 사라졌다!! 1학기를 돌아보았다. 내가 했던 걱정들, 그로인해 든 생각들을 되짚어보니 나는 항상 잘되려고만 하지 내 마음은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든, 먼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나를 안좋은 생각으로 밀어붙이지 않아야겠다.
필리핀 이동학습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첫번째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두번째로 내가 그토록 원하던 피아노 완곡을 했다. 나는 개인프로젝트로 '시간을 달려서' 라는 곡을 완곡했다. 3개월 내내 한 곡만 연습하려니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연습하다보면 새까맣게 까먹는다. 처음 연습에 들어갈때만 지루하다. 나는 그걸 깨고 집중했을때 나에게 돌아오는 꾸준함의 열매가 갈수록 눈에 보였다. 나는 한 곡을 이렇게 오래 연습해 본적이 없었는데, 단기간 한 것 보단 완성도가 훨씬 높은 것 같다. 근데 이 연습은 여기가 필리핀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한국에선 아무리 3개월 동안 연습을 한다고 해도 여기서 만큼 집중하지 못했을 것 같다. 계속 다른 곡을 치고, 친구와 놀았을 것 같다. 그만큼 필리핀이 나에게 좋은 연습환경을 제공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연습에 들어가서 팍 집중하는 법을 알아간다. 세번째는 춤을 열심히 추게 되었다. 난 반공연을 준비할때 큰 행복을 느꼈다. 친구들과 다같이 하나가 되어 연습하니 열심히 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춤에 흥미가 없고 싫어한다면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반공연을 하며 16기와 더 가까워지고, 필리핀에 오기전에 비해 춤을 열심히 추게 된 것 같다. 춤추는 행복을 알게되었다.
필리핀에서 친구들과 아무 걱정없이 뛰어놀고, 수다를 떨었다. 남녀는 생각보다 빨리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한 것 같다. 여러 시행착오를 함께 겪으며, 3개월동안 함께했던 일상들은 영원히 우리 안에 남아 반짝일것이다. 나에겐 여러 불안들이 존재했고, 그것들을 해결하려 더 힘을 썼지만, 그 와중에도 내면엔 항상 함께라는 안정감이 있었다. 앞서말한 소소한 행복들과 시행착오들 덕분에 내 기억들은 성장으로 더욱 빛나는 것 같다. 필리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성장이었다. 여기서만 열리는 맛난 열대과일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