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인 시각으로 8.15 해방을 조명하자!(출12:13-14)
2024.8.11 해방기념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오늘의 설교본문인 출애굽기 12장 13-14절 말씀은 열 가지 재앙 중에서 마지막 열 번째인 장자를 치는 재앙을 내리기 직전에 미리 주신 말씀이다. 다 같이 다시 한 번 본문 말씀을 함께 읽자.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출 12:13-14)
“이 날을 기념하여”라는 말씀은 곧 이 날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다. 무엇을 잊지 말라는 것인가 하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의 역사와 그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 7절 말씀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유월절 양이신 것을 말했다(“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다시 말하면,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어린양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예표와 그림자라는 말씀이다. 또한 주님은 성찬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라고 하셨다(“나를 기념하라”,눅22:19, 고전11:24-25). 그리고 그 죽음마저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잊지 않고 기념하여 지키는 것이 지금의 주일예배이다.
오늘은 해방기념주일이다. 한국교회는 매년 8.15를 앞둔 주일을 해방기념주일로 지킨다. 한국교회가 해방기념주일을 제정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성경의 여러 절기들을 세운 목적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누구든지(국가, 교회, 개인 인생사 등) 과거의 역사를 잊으면,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거나, 교만해지기 쉽다. 그래서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는 말을 한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잊어서도 안된다.
이런 맥락에서 유대인들은 히틀러에 의해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Yad Vashem Holocaust Museum) 추모의 방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Forgive, but not forget)"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에는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을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일본 때문에 우리가 근대화가 되었다든지, 그때가 더 잘살았다고 칭송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의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앞장서서 국민들의 정서와는 반대로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군함도, 사도광산, 기타 등)을 부인하는 일에 앞장서기까지 한다. 참으로 놀랍고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어쨌든 해방에 대한 정치적인 분석이나 해석은 일단 그에 관련된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이 시간에는 선교적인 시각에서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는지, 그 숨겨진 주님의 뜻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고자 한다.
현재 아시아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60%(약45억 명,2021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전체 인구에서 기독교인 비율(=복음화율)은 약 5.32%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인 숫자는 전체인구의 약 20%정도이다. 이는 언뜻 보기에도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현저하게 많은 숫자이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가 발생한 원인이 뭘까? 여러 가지 것들을 분석해 낼 수 있겠지만, 그들 중의 한 가지가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근대역사에서 아시아 지역에 기독교가 들어갈 때, 대부분 그들을 지배했던 서구열강제국의 군사적인 힘과 함께 들어갔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과거 한국은 서양열강의 지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오히려 조선말기 한국에 들어온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은 어려운 시기에 한국의 독립과 발전을 도왔다(학교, 병원, 독립운동 동참, 한국전쟁 참여 등). 그래서 한국에서의 초기 기독교는 우리민족의 아픔과 함께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게 하셨을까? 그것은 우리나라와 한국교회를 아시아와 열방선교를 위한 복음의 모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확신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171개국에 약 2만720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이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계속적으로 지배를 받았다면, 일본의 우상숭배 문화 속에 동화되어서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8.15해방은 단순히 정치적인 해방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아시아와 세계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뜻과 은혜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선교적인 눈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나 우리교회 또는 자신의 인생사(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보면, 우리들이 가야할 방향과 길이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교회의 위치는 정확하게 말하면 ‘신진도’라는 섬에 있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육지와 섬을 연결한 신진대교라는 다리 위를 지나야 한다. 그렇기에 신진대교 위를 지나왔다는 것은, 알고 보면 죽음을 건너서 교회에 온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십자가대교(十字架大橋)를 놓아 주셨다. 그렇기에 십자가대교는 죽음으로 부터의 해방의 다리이며, 생명의 다리이며, 천국을 향한 자유의 다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해방의 소식을 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방향이고, 이것을 위해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를 불러 주셨고, 다른 나라와 다른 특별한 복음전파의 과정과 해방까지 주셨다.
마지막으로 태평양 전쟁 말기에 있었던 실화 한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일본이 패망하기 몇 달 전인 1945년 4월 1일에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했다. 그 당시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을 푸른 눈을 가진 ‘오니(鬼, 인간의 몸에 동물의 얼굴을 가진 괴물)’로 생각하고 극도의 공포감에 떨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군을 피해서 여러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 동굴들 중에 “치비치리 동굴”과 “시무쿠 동굴”이 있었다.
치비치리 동굴에서는 140여명의 사람들이 피신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 난징대학살(1937년 일본군이 난징 일대에서 중국인 20-30만 명을 학살한 사건)때 그 현장을 목격했던 간호사가 있었다. 그 간호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군이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학살했듯이, 미군들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하루’상이라는 소녀가(18살) 미군에게 잡혀서 죽느니 차라리 어머니의 손에 죽고 싶다고 간청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말대로 칼로 딸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것을 시작으로 동굴 안에서는 칼이나 낫으로 서로의 목이나 가슴을 찔러 죽이고, 자결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때 동굴 속에서 죽은 사람이 80여명 정도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치비치리 동굴에서 불과 800m 떨어진 시무쿠 동굴에 피신했던 천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살았다. 왜냐하면 시무쿠 동굴에는 과거에 하와이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두 사람이 공포에 떨고 있는 주민들을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군들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귀신(오니,鬼)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군들이 동굴 앞에 도착했을 때, 영어를 할 수 있었던 이 두 사람이 밖에 나가 미군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키나와의 두 동굴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상황에서 발생한 대조적인 사건이다. 두 동굴 속에 있던 사람들의 생사가 결정된 결정적인 차이는 미군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확하게 말해준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오키나와의 두 동굴 속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들이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실존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간호사의 잘못된 정보에 속았던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먼저 믿은 성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이미 경험했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먼저 믿은 성도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그러므로 지금도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나고 경험했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해주자. 그래서 그들도 우리와 함께 십자가대교를 함께 건너게 하자. 이것이 과거 우리에게 8.15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선교적인 시각으로 과거의 역사와 우리의 인생사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과거뿐만 아니라, 안개처럼 희미했던 미래의 방향까지도 환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