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배달국 신시
한반도의 대동강변에 정착하였던 동이족 중 일부는 요하를 따라 西進하고, 바이칼 호수에서 남하해 온 북방계 동이족 무리와 홍산 부근에서 조우 遭遇하게 된다.
이들은 손을 맞잡고 이 곳에서 터를 닦고 고대 문명을 건설한다.
동이족은 이곳 홍산지역에서 건설한 문명을 사방으로 전파하였으며, 이후 북만주와 한반도로 펴졌다.
요하 서쪽에 예족 濊族이 형성된 것이다.
배달국 倍達國과 신시 神市의 형성과정이다.
삼국유사에 서술된 환국 桓國과 신시 神市
古記云, 昔有桓國,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白山頂,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옛 기록에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는데, 서자 환웅이 천하에 뜻을 품고, 자주 인간 세상을 탐하였다. 환인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인간 세상을 홍익할 만한 곳이라 생각되었다.
이에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 했다.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바이칼 호수에서 대흥안령산맥을 거쳐 남으로 내려온 북방 동이족과 한반도에서 올라온 남방 동이족은 손을 맞잡고, 고원의 넓은 지역 곳곳에 터를 잡고 고대 문명을 이루었다.
북방계와 남방계의 합류로 동이족의 원류가 이루어진 것이다.
홍산지역에 터를 잡은 배달국 신시이다.
환국 桓國에서 갈라져 나온 동이족의 원류다.
흐르는 물길은 많으나 고원지대라 홍수 洪水 걱정은 없다. 당시에는 귀한 천연 소금이 생산되는 염라수 인근에 나라의 터를 닦은 것이다.
고기 古記에는 서자 환웅이라 표현하고 있다.
서자 庶子란 장자 長子나 적자 嫡子가 아니란 뜻이다.
고대 기록에서 자신의 조상을 서자라고 표현하다니,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경 不敬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원시 原始 시대에 사실, 맏아들 같은 경우, 부모님의 기존 거처 旣存 居處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장자나 적자는 그 지역과 부족을 지켜야 할 중대한 책무 責務를 짊어지고 있는, 다음 세대의 예비 족장 族長이다.
부족민 다들 그렇게 여기며, 예비 족장을 자신들이 속한 부족의 ‘미래의 희망’으로 존중해주고 대우해 준다. 장자나 적자도 어릴 때부터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탓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미래의 희망’은 부족민들을 자연재해와 다른 부족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야 할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보수적 保守的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큰 자연재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조상들이 살아왔던 그 지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아니, 어지간한 작은 변화는 그곳에서 소화 시키고, 자신들이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운신 運身이 제한적 制限的일 수밖에 없다.
자연히,
새로운 터전,
신천지 新天地를 찾아 떠나는 자는 장자나 적자가 아닌, 다른 자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며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그러니 ‘서자 庶子’라고 서술 敍述 되어있는 기록은 아주 사실적인 표현이다.
신빙성 信憑性이 높은 기록으로 여겨진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홍산 紅山
붉은 산.
바위도 흙도 붉다.
철분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철분이 지표면 地表面에 노출되면 산소와 화합 化合, 산화 酸化된 탓에 땅과 산이 모두 붉은 색으로 보여진다.
땅에 철분이 많다는 것은, 철광석이 인근 지역에 흔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철을 만지고 다루는 기술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홍산에서 옥기를 만들고 제단을 구축하여 여신 女神을 모시고 국가의 기틀을 세웠다. 모계사회 母系社會가 화려하게 꽃을 피운 시점이다.
배달국 倍達國의 신시 神市다.
초기 청동기 제작 기술을 터득한 배달국의 동이족은 이 야금술 冶金術로 극소량 極少量이지만, 족장 族長 전용 청동제 무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 부족을 개화 開化. 복속시켜 나갔다.
다뉴세문경과 비파형 동검이 나타난다.
땅에는 철분 성분이 많으니, 다른 미네랄 mineral도 풍부하여 곡식도 건강하고 튼실하게 자라나 다른 지역에 비해 생산성이 우수하였다.
먹거리가 풍부하면 자연히 인구도 증가하게 된다.
일부의 동이족은 난하와 조선하, 영정하 물길을 따라 따뜻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발해만에 다다라 또, 다른 예족 濊族을 형성한다.
더 멀리 내려간 부족은 황하를 건너 산동성 태산을 지나, 해안선을 따라 회수를 거쳐 장강 長江 이남까지 진출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 세대 數 世代를 거치면서, 북 北으로 다시 되돌아 이주한 무리도 있었고, 동서로 서로 교차한 부족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무리의 구성원 構成員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혹은 갈등을 느껴 이정표 里程標를 달리 선택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부족 공동의 양식 糧食을 훔쳤거나 공용물품을 훼손시켜 스스로 도주하거나, 또 다른 범죄를 지어 부족에서 강제 축출 逐出 당한 무리도 있었을 것이다.
한족 韓族은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하여 자리를 잡았다.
모두 동이족의 분파이다.
생김새가 같고, 사용하는 언어가 같으며, 생활방식이 똑같다.
모두가 배달 민족의 자손들이다.
* 배달국 신시 倍達國 神市.
그동안 재야 사학자들은 배달국.
그 존재를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었고,
강단의 사학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까지 그래 왔었다.
단군과 고조선도 부정하던 자들인데,
단군조선의 그 윗대 조상을 들먹이면,
그들은,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비웃고 말았다.
그러한 연유로 강단 사학자와 재야 사학자 간의 논쟁은
서로가 유사 사학자 類似 史學者라고 상대방을 폄하 貶下하였다.
그러나, 진실 유무를 떠나 무리수가 많고,
강단의 권력을 잡고 있는, 강단 사학자들은 바위였고,
소수의 재야 사학자는 계란에 불과하였다.
강단은 주류였고,
재야는 비주류였다.
사회 통념 通念이 그래왔었고,
여론 與論이 그렇게 대우하였다.
그런데,
홍산 유적이 발굴되면서 상황이 돌변하였다.
고서적만 나타나면 무조건 위서 僞書라며,
몰아붙이며, 평가절하 平價切下시켰던,
그 내용들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고서적 古書籍들이 위서가 아니라,
강단 사학자들, 자신들이 몰랐던 것이었다.
자신들의 학문적인 소양이 부족하고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력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것이
적나라 赤裸裸하게 드러나 버렸다.
그들은 머릿수로, 강단의 권위를 이용하여
고서적들을 위서로 낙인찍은 후,
“이 책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위서다”
라며 언론에 공개하곤 하였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 致賀하며
조상들이 애서 기록한 사실 史實을 던져버리고
무궁화를 넘어뜨린 후
손에는 자신의 선조들이 흘린
그 선혈 鮮血이 묻은
붉은 포도주잔을 들고 서로 부딪히며
승리의 찬가를 부르곤 하였다.
마치,
독립군을 사로잡은 총독부의 순사처럼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 마냥
위세 당당하게 행세하였다.
그런데,
단군조선은 물론,
배달국 신시도 엄연히 존재하였다는
확실한 물증이 드러난 것이다.
배달국 신시의 유적들이 홍산 지역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발굴되었으며
수 많은 유물들이 나와 버린 것이다.
상당수의 고서 古書들은
위서 僞書가 아닌 진서 珍書였다.
지금까지 강단의 사학자들이
비학자 非學者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진실과 역사에 대한 위선자 僞善者들이었다.
상곡 上谷,
서쪽은 사막에서 그 귀한 물이 용출 湧出된다고 유명한 사정 沙井이고,
남쪽이 탁록이다.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이 10년간 결사적으로 싸웠던 탁록대전 涿鹿大戰이 벌어진 곳이다.
홍산 부근에서 고대 문명을 이룬 동이족의 일부는 요하의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 평원을 거쳐 요동반도와 한반도로 들어가 기존의 정착인들과 합류하여 한족 韓族을 형성한다.
농사와 목축이 성흥 成興하여 홍산지역 무리의 세력이 크지자, 배달국을 건국하고,무리중 일부는 강(난하)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큰 물줄기를 힘들게 도강 渡江하기 보다는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그리고 난하 상류를 지나, 서남 방면으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서남쪽으로 가려면 상곡을 거쳐 탁록을 지나야만 한다.
-99.
첫댓글 로그인 하기가 힘들어 , 이제야 되네요.
뿌리 깊은 일제사관 빨리 뿌리 뽑아야지요
강사합니다
타도!
식민사관.